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25)
로판 속 공무원 825화(826/945)
제국은 대륙 위에 군림하는 국가다. 그로 인해 대륙의 모든 것은 제국으로 모이게 되니, 한때 제국 물류의 중심이었던 하우젠츠 서클이 작은 대륙처럼 위엄을 과시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라고 하면 보통 재화를 떠올리는 법이다. 대륙 곳곳의 특색이 담긴 재화, 서로 다른 문화를 자랑하는 재화들이 모이는 작은 대륙. 대개 물류의 중심이라고 하면 그런 것들을 떠올리게 되며, 실제 이루어지는 결과 또한 그렇다.
허나 모두가 상상할 수 있는 결과로 끝난다면 재미가 없는 법. 하우젠츠 서클은 시시하게 재화만 집결하는 곳이 아니었다.
“하여간 바젠 놈들은 입만 살아서!”
“머리보다 몸이 앞서는 네놈들만 할까!”
만질 수 있는 물질적 재화 말고, 만질 수 없는 감정 또한 대륙을 이루는 요소. 국가 사이의 치열한 대립과 갈등 또한 하우젠츠 서클을 이루는 관광거리가 되어버렸다.
‘별게 다 모이네.’
온갖 것을 모으다가 국가 감정도 모아버린 하우젠츠 서클의 위용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심지어 대화를 들어보니 저 둘은 류튼 왕국과 바젠 왕국 사람인 것 같다. 아르메인처럼 제국과 가까운 국가가 아닌, 유벤처럼 거의 대륙 반대편에 존재하는 국가의 사람들이 제국까지 와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실로 경이로운 일이다. 싸울 거면 근처에서 싸우지, 뭐 하러 대륙 반대편까지 와서 싸우냐고. 황실한테 파이트 머니라도 받았냐?
‘게다가 류튼이랑 바젠이라.’
기사왕국인 아르메인과 마도강국인 유벤. 그 둘은 대륙 2위와 3위의 국력을 자랑하는 국가인 데다, 각각 검과 마법을 숭상하는지라 양국의 대립은 익숙을 넘어 친숙한 수준이다.
그런데 아르메인과 유벤이 아닌 류튼과 바젠의 대립? 그 두 국가도 검과 마법에 특화된 국가기는 하나, 아르메인과 유벤에 비하면 2진급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즉,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메이저 리그가 아닌 마이너 리그 선수들이 제국에서 맹활약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더욱 흥미진진했다. 메이저 리거가 아닌 마이너 리거들의 논쟁이라. 직접 류튼이나 바젠 현지로 가지 않는 이상 보기 힘들잖아.
“장관님, 장관님.”
“응?”
“검 쓰는 녀석이면 머리가 쇠처럼 굳는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쿡쿡 옆구리를 찌르는 에리의 말에 픽 웃음을 흘렸다.
그 발언은 나도 들었다. 바젠 출신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눈이 뒤집힌 채 외치는데, 어떻게 못 들을 수 있겠나. 무시하기에는 원독과 진심이 가득 담긴 말이어서 도저히 넘길 수 없었다.
“마법사는 그렇게 말해도 돼.”
하지만 딱히 노엽거나 언짢지는 않았다. 마법사와 검사가 서로서로 쌍욕을 날리며 깎아내리는 건 안부 인사나 마찬가지니까. 이건 상식이다.
오히려 마법사가 기사를 칭찬한다? 그건 큰 거 한 방을 준비하기 위한 마법사의 빌드업일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면전에다 쌍욕을 박는 게 마음 편해.
‘흐음.’
그보다 서클에 들어서자마자 반겨주는 것이 제3국인들의 논쟁. 관광지에서 보기에는 희귀한 광경이라 분위기를 빠르게 살폈으나, 다른 사람들은 저 둘이 싸우든 말든 별 관심이 없었다.
그렇군. 여기서는 저게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군.
“그냥 가자.”
“어, 진짜요? 어디 가서 저런 거 못 볼 텐데?”
내가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하자, 에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정말 이 기괴하고도 흥미로운 싸움을 무시할 거냐고. 제도에서는 절대 볼 수 없을 광경을 지나칠 거냐고.
“어차피 저거랑 비슷한 거 또 볼 거야. 초입부터 싸우고 있는데 깊숙한 곳은 오죽하겠냐.”
“아.”
내 설득에 에리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가 뭔지도 모르는 땅개 놈들이!”
“네들도 내륙국이잖아, 이 머저리들아!”
“우리한테는 충실한 친우인 포토스가 있다! 어딜 감히 네놈들과 동급 취급을 해!?”
실제로 걸음을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인물들이 새로운 주제로 논검을 벌이는 게 보였다.
충실한 친우인 포토스와 내륙국 땅개. 대충 들어보니까 이번에는 보르옌 왕국과 지브로트 왕국의 분쟁인 것 같다. 본래 국경이 붙어 있으면 사이가 나쁜 법이니, 보르옌과 지브로트도 앙숙처럼 지내는 국가들이지.
그런 상황에서 두 국가는 국력도 비슷한 수준이고, 하필 비슷한 수준의 공국도 거느리고 있다. 차라리 한쪽이 명확하게 강하면 이런 분쟁도 없을 텐데 말이야. 공교롭기도 하지.
“그래봤자 둘 다 쿼로노스랑 제레노에 비하면 밀리지 않나요?”
“어허.”
그런 말은 쉽게 하는 거 아니야. 팩트 폭력은 어떤 폭력보다 강한 폭력이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타국에서 애국심을 발휘할 정도로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큰 것들이다. 그런 놈들의 어그로가 이쪽으로 끌리면 곤란하니, 최대한 에리의 입을 단속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내 예상대로 곳곳에서 제3국인들의 분쟁이 일어난다는 걸 확인했다. 이제 평범하게 쇼핑몰 구경이나 해야지.
애석하게도 에리의 입은 한동안 자유를 박탈당했다.
조금 걸음을 옮기니 다른 놈들이 싸우고 있고, 다른 곳으로 향하니 또 싸우고 있었다. 몇 걸음만 걸어도 굳이 남의 나라에서 조국의 긍지를 거는 미친놈들이 발견되었으니, 에리의 입은 계속 단속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우젠츠에는 개새끼들만 모였나?’
계속 거리를 돌아다니면 새로운 싸움을 직관할 것 같아 근처 카페로 피신한 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혀로 상대를 죽일 기세일 뿐, 물리적 충돌이 이루어지지 않는 건 다행이다. 아마 제국에서─ 그것도 황실 직할령에서 유혈 사태를 일으킬 정도로 정신 나간 놈은 없다는 뜻일 터.
허나 그걸 위안으로 삼기에는 하우젠츠 서클 곳곳에서 분쟁이 쉽게 목격되었다. 아수라들이 모여서 싸운다는 수라도가 딱 이런 광경이 아닐까 싶다.
“하우젠츠에는 미친놈들만 살아요?”
그 와중에 딸기주스를 흡입하던 에리가 덤덤히 폭언을 내뱉었다.
어떻게 보면 지역 비하 발언이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서클이 아니라 콜로세움이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름을 착각한 것 같다. 하우젠츠 서클이 아니라 하우젠츠 콜로세움이 아니었을까. 쇼핑몰에 입점한 상인들이 장사 대신 싸움에 집중한다면 콜로세움이 맞는 것 같은데.
“이곳에는 처음 오신 분들인 것 같군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함에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사이. 직접 과자를 들고 온 사장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하우젠츠에는 몇 년 전에 방문한 적이 있지만, 하우젠츠 서클에 방문한 건 처음이다. 많이… 활기찬 곳이로군.”
차마 이곳에서 장사하는 사람에게 ‘이 정신 나간 소돔과 고모라는 뭐냐.’ 라고 따질 수는 없었다. 처음 방문한 나랑 에리도 혼란스러운데, 장사하는 당사자는 얼마나 심정이 복잡할까.
“하하, 굳이 좋게 돌려서 말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곳이 대외적 명성과 달리 기괴하게 뒤틀린 곳이라는 건 저희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정작 내 배려는 순식간에 쓰레기가 되었지만.
“하우젠츠 서클이 만들어진 건 수십 년 전의 일입니다만,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티라프 왕령과 가까운 입지 덕에 그 이전에도 이곳은 온갖 상인들이 모이고, 지나가는 곳으로 유명했지요. 그 명성을 더욱 굳건하게 만든 것이 전대 애실론 가주입니다.”
“그렇다고 듣기는 했다.”
“헌데 그, 전대 애실론 가주가 보통 고약한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 하던데, 이 하우젠츠 서클도 전대 애실론 가주처럼 고약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이건 처음 듣는 말이라 절로 흥미가 생겼다.
그리고 아무리 전대 애실론 가주가 역적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며 몰락했다지만 귀족은 귀족. 평민으로 보이는 사장이 이런 말을 할 정도면, 하우젠츠 서클 내에서 전대 애실론 가주의 평판은 형편없다는 뜻이다. 평민조차 귀족을 귀족 나으리가 아니라 미친개로 여겼다는 의미.
“그 인간이 인간 언저리이기는 했지.”
그렇기에 사장의 조심스러운 애실론 까기를 받아주자 사장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헌데 고약하다라. 대체 어떻길래 그런 말이 나오는 거지? 아무리 그래도 자네가 생계를 유지하는 곳인데.”
“그것이 말입니다만.”
상상만 해도 정신이 아찔해지기라도 하는지, 잠시 뒷목을 매만진 사장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타국 상인들의 분쟁은 전대 가주가 의도한 작품입니다. 타국인들의 담합을 막기 위해, 국가적 자존심을 자극하여 과도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 온갖 공작을 저질렀지요. 저 같은 평민 나부랭이도 알 정도로 노골적이었습니다.”
“과도한 경쟁이라.”
“예. 자기 나라의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하는 것이니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싸게 팔고, 조금이라도 좋은 걸 팔았죠. 솔직히 사는 입장에서는 좋기야 한데… 그게 수십 년이나 이어지니…”
대충 알 것 같기에 혀를 차고 말았다. 그런 미친 출혈 경쟁이 수십 년이나 이어졌으면 가족도 원수가 되고도 남는다.
게다가 이 하우젠츠 서클에서 투닥이는 건 가족이 아닌, 국적이 다른 상인들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유혈 사태가 나지 않은 게 놀라울 정─
“이번 달에만 벌써 여섯 명이 코가 부러졌습니다.”
“뭣.”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아, 오해는 마십시오! 길거리에서 싸운다는 건 아닙니다! 여기서 서쪽으로 쭉 가시면 작은 건물이 하나 나오는데, 거기서 합법적으로 싸우는 겁니다! 끝나고 나면 치료도 하고요!”
그 말에 침통히 눈을 감고 말았다.
전대 애실론 이 새끼. 대륙에 지옥을 만든 주제에 본인은 지옥으로 튀어버렸어.
‘제국사에 흉흉한 게 나오면 2황자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전대 애실론 가주도 제국의 대표적 개새끼로 취급해야겠다.
미안하다. 내가 2황자에 정신이 팔려서 너를 너무 과소평가했어, 망할 놈.
“와, 신기하게 만들었네요? 진짜 돈만 뽑으면 된다는 의지가 엄청 보이는데?”
이 미친 인세의 지옥에 에리는 순수하게 감탄을 하며 눈을 반짝였다.
기뻐하지 말라고. 지금 미니 사이즈 대륙의 화약고가 제국에 있는 거잖아.
아무리 제국이 대륙의 중심이라지만, 그딴 것도 끌어안을 필요는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