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27)
로판 속 공무원 827화(828/945)
내가 부패한 귀족은 아니지만 딱히 청렴결백하며 공명정대한 귀족인 것도 아니다. 감찰부장으로 지내며 받은 친구비만 얼마고, 업무를 볼 때마다 겸사겸사 주머니에 챙긴 것들이 얼마던가. 작정하고 돈을 긁어모은 건 아니나, 재산을 늘릴 기회가 흘러오면 마다하지 않았다.
이유는 나름 복합적이었다. 좀 챙기는 모습을 보여야 다른 귀족들이 ‘저 양반도 대화가 통하는 양반’이라 여기게 되고, 늘어나는 재산을 보면 괜히 흐뭇하기도 했지. 정작 돈을 쓸 시간이 없어서 늘어나기만 한다는 게 문제지만.
아무튼 나한테 뇌물은 딱히 혐오스럽거나, 불같이 노성을 토할 개념이 아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네.’
하지만 그건 죄가 없는 귀족이 친구비 느낌으로 주는 뇌물에만 통하는 이야기. 이미 죄가 적발되어 실시간으로 잡혀가는 놈한테는 받은 적이 없다.
어딜 감히 현행범 주제에 공권력 앞에서 돈을 흔들어. 그런 돈을 받아봤자 내 기분과 속만 더러워지고, 황제에게 시달릴 명분만 늘어나는 꼴이잖아.
그리고 감찰성에 잡혀갈 정도의 놈이면 높은 확률로 재산 몰수가 덤이다. 어차피 감찰성 창고나 국고에 들어가게 될 돈인데, 그거 조금 빨리 받자고 현행범을 봐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다행히 도박장은 하우젠츠 서클 내에서 이곳뿐인 것 같더군.”
– 하나밖에 없는 것조차 제대로 살피지 못하였으니, 무슨 염치로 고개를 들겠습니까. 각하의 귀중한 시간을 더럽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불쾌했던 감정은 얼굴 대신 정수리를 보여주는 윈스턴 덕분에 조금씩 가라앉았다.
불법 도박장이 당당히 영업을 한 건 수석 지방관의 주도가 아닌 그 아래 지방관들의 만행으로 추정된다. 북부 하우젠츠의 지배권이 애실론 가문에서 황실로 넘어갈 때, 그 혼란을 노려 도박장이 지방관들에게 무차별적인 기름칠을 한 것이다. 도박장 하나 좌지우지하는 건 지방관의 권한으로도 충분하니까.
물론 확실한 건 아니다. 수석 지방관이 정말로 무고한지 아닌지는 제대로 털어봐야 알 수 있겠지. 지금은 어디까지나 임시로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장관님! 여기 장부 있어요!”
“어, 잘했어.”
다만 임시 확인을 맡은 사람이 정보부 1과장이었던 에리다. 현장을 터는 건 나보다 능숙한 고인물이, 어지간한 감찰성 공무원보다 유능한 간부가 친히 도박장과 지방관들 사이의 커넥션을 파악했다.
그렇다면 임시 확인 결과가 공식 확인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애초에 에리의 눈을 피할 정도의 능력이면 하우젠츠에서 썩을 인재가 아니기도 하고.
“어째서…”
“음?”
그 와중에 듣기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어째서, 어째서 장관 각하께서 이곳에 계신 겁니까! 소인이 알기로 각하께서는 분명 휴가 중이실진대! 제도에 계셔야 하실진대! 어찌 변방의 도박장까지 직접 오셔서, 고작 도박장의 일탈을 직접 살피시는 겁니까!”
‘이게 돌았나.’
억울함과 원통함이 가득한 목소리에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미친놈아. 휴가 중이니까 놀러 왔지, 내가 업무 중이면 여기까지 왔겠냐? 게다가 도박장의 일탈을 살피려고 온 것도 아니다. 왔더니 일탈이 보인 거라고.
‘왜 억울해 하는 거지?’
나도 모르게 튀어나가려는 손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이 중에서 가장 억울해야 할 사람은 나다. 기껏 놀러 왔더니 이런 상황과 마주한 나.
그러나 이 분노를 담아 주먹을 휘두르면 아직 불어야 할 게 많은 죄인이 죽을 수도 있다. 마치 과거 아카데미 감찰관으로 지내던 시절, 붉은 파도의 대가리를 골로 보낸 것처럼.
한순간의 실수로 머리를 ㅓ리로 만드는 건 한 번으로 충분하다. 두 번이나 그럴 수는 없다.
‘참자.’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 이 새끼도 나름 억울하겠지. 수십 년 동안 떵떵거리고 살 정도면, 불법 도박장을 합법인 척 유지하고 있을 정도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을 거다. 자신의 아지트가 무너질 위기는 피하기 위해 눈치를 살폈을 거고, 나처럼 회피 불가 재앙이 근처를 지나가면 납작 엎드렸을 터.
헌데 당연히 제도에 있을 거라 생각한 인물이 난데없이 하우젠츠에 나타나 자신의 아지트를 뒤엎었다. 이 새끼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기분이 아닐까?
사실 날벼락이고 나발이고 애초에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억울할 일도 없었겠다만, 그런 걸 생각할 놈이라면 감히 행정부를 능멸했겠나.
“분수에 맞지 않은 영광을 누렸으니, 예상을 뛰어넘는 징벌을 받는 게 맞지 않나. 모든 업보는 결국 돌아오는 법이다.”
그렇기에 억울함을 토하는 불법 도박쟁이에게 덤덤히 말했다.
차라리 네가 순순히 하우젠츠 지방관들에게 잡혔다면 나까지 볼 일은 없었을 거라고. 수십 년이나 세금을 미납했으니 감찰성 장관이 직접 찾아오는 서비스를 진행한 거라고.
‘수십 년 미납이라.’
절로 실소가 나왔다. 수개월 미납도 쌍욕을 내뱉으며 추징하는 게 제국이거늘, 수십 년 미납이면 재무성과 사법성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쩌면 상상을 초월한 미납이라 도리어 감탄할 수도 있다. 본래 사람이라면 자신의 인지를 넘어선 미지와 마주한 순간, 공포에 떨거나 감탄하는 법이지.
그리고 재무성과 사법성의 수장들은 공포에 떨 양반들이 아니다. 오히려 지루한 장관 생활 중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며 좋아할 거다.
“아, 수석 지방관.”
– 예, 각하.
마지막 지시를 위해 입을 열자 윈스턴도 불법 도박쟁이의 외침을 들었는지, 아까보다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답했다.
“이 도박장, 운영진은 전부 교체하되 계속 유지하도록. 없애기에는 그 역할과 전통이 상당한 곳이니까.”
– 명심하겠습니다. 각하께서 주신 기회와 배려에 부끄럽지 않도록, 깨끗한 도박장 유지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 말에 무심코 웃음이 나올 뻔했다. 윈스턴의 각오는 알겠지만 도박장과 깨끗이라는 단어가 공존할 수 있는 건가.
“그래. 기대하도록 하지.”
허나 내가 윈스턴에게 도박장에 관한 지시를 내린 건, 도박장 관련으로 숙청이 진행되어도 윈스턴은 무사할 거라는 암시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윈스턴 입장에서는 살았다는 안도와 두 번 좆될 수는 없다는 다짐으로 불타오르지 않겠나.
그런 사람에게 찬물을 끼얹는 건 도리가 아니다.
***
장관과 에르제베트가 북 하우젠츠로 향했다. 지난 신혼여행과 달리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여행을 즐긴다고 하니, 저녁이 되면 다시 제도로 돌아올 터.
처음에는 장관이 북 하우젠츠로 간다는 말에 눈이 뒤집혔었다.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지. 북 하우젠츠가 안전하고 조용하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데, 감찰성의 수장인 장관이 간다는 말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이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 황제라는 놈이 황실 직할령의 평온을, 지방관들의 헌신을 잠시나마 의심했다. 수년 동안 이어진 충성을 무시하고 말았다.
반성하자. 고작 과거의 기억과 찰나의 감정 때문에 수년의 기록과 결과를 잊은 한심함을.
─라고 다짐한 것이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인데.
“…하우젠츠 서클 내에 불법 도박장이 존재했고, 장관이 이를 적발하여 운영진을 체포했다. 짐이 이해한 것이 맞나?”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내성 장관의 보고에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한때 장관의 성인 초상화가 걸려있었으나, 너무 오래 걸어두면 장관이 폭주할 것 같아 다시 떼어낸 벽.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벽.
‘다시 걸어야 하나?’
기껏 수거한 초상화를 다시 걸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됐다.
분명 장관은 가벼운 마음으로 북 하우젠츠로 향했다. 그저 놀기 위해서 간 것이고, 그조차 며칠이 아닌 아침부터 저녁까지 상주할 예정이었다.
헌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아침부터 저녁이라는 그 찰나 동안, 장관은 수십 년 동안 숨어있던 불법 도박장을 적발하고 감찰했다. 고작 몇 시간 사이에 업무를 진행했다.
‘관료들의 수호성인도 아니고.’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장관은 관료들의 수호성인, 그것도 살아서 성인이 될 존재기에 휴가 중에도 일을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이 기행을 설명할 수 없다.
장관이 휴가 중임에도 일을 하는 건 이제 익숙한 수준이다. 신혼여행을 갔다가 특이한 일에 휘말리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황제인 나조차 모르던 불법 도박장을 몇 시간 만에 알아채 정상화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일이 아니다. 이 정도면 에넨의 가호를 받아 관료들을 수호하는 수호성인이 맞지 않겠나.
‘이런.’
장관이 관료들의 수호성인이라는 결론을 내리자 입꼬리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행정부를 능멸한 죄인들을 법대로 처벌하고, 그동안 미납된 세금은 철저히 회수하라. 과거의 오물을 털어내야 새롭게 일어날 하우젠츠 서클의 전통이 굳건할 수 있을 것이다.”
“예, 폐하. 그리하겠습니다.”
그렇기에 황급히 원칙대로 하라는 명을 내렸다. 불법 도박장이 발견되었다면 불법으로 지낸 기간 동안 쌓은 이득을 회수하고, 죄인들을 처벌하며, 합법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특별할 것 없는 명이고, 반발할 것도 없는 명. 덕분에 궁내성 장관은 빠르게 허리를 숙이며 물러났다.
“프흐…”
그리고 궁내성 장관이 나가는 걸 확인하자마자 웃음을 흘렸다.
모든 의문이 풀렸다. 장관이 휴가를 부르짖는 주제에 일을 사랑하는 이유를, 신혼여행 중에도 일을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그래, 수호성인이면 어쩔 수 없지. 신이 내린 운명이라면 배교를 하지 않는 이상 벗어날 수 없지.
‘이게 첫날이라니.’
문득 오늘이 장관의 신혼여행 첫날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북 하우젠츠는 장관의 많고 많은 여행지 중 하나일 뿐, 앞으로 수많은 여행지에 방문해야 한다.
과연 그때는 무슨 일이 터질까. 가슴이 두근거리─
‘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황제가 문자를 보냈다.
[ 장관은 여러 국적의 상인들이 모인 곳에서, 서로 다른 국적의 상인들이 갈등을 일으키는 곳에서 제국의 장관으로서 분연히 일어났다. 이는 대륙 위에 군림하고 열국을 아우르는 제국의 기상과도 같으니, 어찌 감탄을 금치 않으랴. ] [ 제국은 모든 것을 아우르기에 대륙이다. 제국 자체가 작은 대륙이기에 제국이다. 장관은 작은 대륙을 성공적으로 아우르고 보듬었으니, 이는 제국을 넘어 대륙의 홍복이다. ] [ 휴가 중임에도 제국과 대륙의 기둥으로서 그 의무와 명예를 잃지 않는 장관을 치하하며, 이번 장관이 정상화 한 작은 사업장을 장관에게 하사한다. ]그 문자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망할 놈.’
불법 도박쟁이보다 이놈이 더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