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28)
로판 속 공무원 828화(829/945)
북부 하우젠츠에 갔다가 역사와 전통을 지닌 도박장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리 봐도 도박장보다는 콜로세움이지만 분류상 도박장이기는 하다.
일단 귀족이 도박장을 소유한 것은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장 황금공만 해도 제국은 물론 대륙에서도 손 꼽히는 규모의 카지노를 소유하고 있지 않나. 도박에 대한 인식이 복잡 미묘한 것과 별개로, 제국이 도박장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혐오하지는 않는다.
다만 황제가 하사한 도박장은 카드 게임을 하거나, 룰렛을 돌리거나, 눈치 싸움을 하는 보편적인 도박장과 거리가 멀다. 주먹과 고성, 피와 눈물이 흐르는 배틀로얄 도박장이다.
‘이딴 거 필요 없어.’
솔직히 그런 도박장은 가지고 싶지 않다. 그런 거 가지고 있으면 꿈자리가 흉할 것 같아.
물론 소유권만 나에게 넘긴 거지, 실질적인 관리는 북부 하우젠츠에서 빡세게 할 거다. 내가 도박장 운영에 개입하는 게 아닌 이상 알아서 돌아가고, 꼬박꼬박 수익이 지갑으로 들어올 터.
그래도 기분이 오묘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앉아서 상인들의 피와 눈물이 묻은 돈을 가지게 되다니, 뭔가 악덕 귀족이 된 것 같잖아.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무법 도시의 흑막 같은 포지션.
“그냥 가지는 게 좋지 않아요? 이제 불법도 아니고 합법으로 전환될 텐데, 사양할 필요는 없잖아요! 오히려 합법 도박장을 꺼리면 감찰성 장관이 도박은 무조건적으로 탄압한다는 얘기나 나올걸요?”
“그건 그렇지.”
허나 에리의 설득 아닌 설득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아무 직책이 없는 평범한 귀족이라면 도박장을 꺼려 해도 무방하나, 하필 나는 감찰성의 수장이다. 감찰 최고 책임자가 합법 도박을 꺼려 하거나 언짢아하는 기색을 보이면 제국 전체의 합법 도박장이 휘청거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합법 도박장들의 수익이 줄어들고, 수익이 줄어들면 세금도 줄어들고, 세금이 줄어들면 국고도 줄고, 재무를 담당하는장관의 고성은 높아지고,황제의 서운함은 늘어나고.
‘와.’
절로 탄성이 나왔다.도박장을 거부하면 생길 화려한 스노우볼. 아주 잠깐만 상상해도 받았을 때의 찝찝함보다 거부했을 때의 귀찮음이 더 크다.
“괜히 휴가 중에 일했다가 이게 무슨 일인지.”
“장관님은 장관이기라도 하지, 전 과장도 아니잖아요. 저 휴가에다 무보직인데도 일한 거예요.”
차마 반박할 수 없는 무적의 말에 슬쩍 시선을 내리깔았다.
에리한테 논리적으로 밀린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놀랍게도 하우젠츠 서클의 불법 도박장을 털어낸 것은 신혼여행 첫째 날에 생긴 이벤트다.
신혼여행을 시작하자마자 생긴 이벤트. 처음 방문한 여행지에서 생긴 이벤트. 아직 신혼여행이 몇 주는 남은 걸 고려하면 두렵기 짝이 없는 일이다.
‘다음 장소에서는 무슨 일이 생기려고.’
애꿎은 입술을 깨물며 제국 지도를 내려다봤다.
이번 신혼여행은 텔레포트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여행인지라, 한 곳에만 머무르지 않고 제국 곳곳을 돌아다닐 예정이었다. 그렇기에 북부 하우젠츠는 당일치기로 즐길 여행지에 불과하며, 우리가 앞으로 방문해야 할 여행지는 10곳이 넘는다.
그런데 만약, 만약 방문하는 곳마다 사건이 터진다면? 북부 하우젠츠처럼 현지 수석 지방관이나 영주도 모르던 사건을 발견하고 만다면?
‘봐도 그냥 넘어가야 하나?’
아니, 그건 안 될 일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감찰성 장관이 사건을 발견하고도 무시하거나 못 본 척하면 감찰성의 권위가 추락한다. 누구도 감찰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감찰성의 행보를 우습게 볼 것이다.
그러면 해당 지역 수석 지방관과 영주에게 통보하고 갈 길을 가는 거?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만, 해당 사건이 수석 지방관이나 영주와 유착하여 생긴 문제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속으로 나를 얼마나 비웃을까.
그렇다면 제도에 있는 감찰성 인력을 즉시 소환하는 게 가장 무난한 방법이다. 내가 발견은 하되, 처리는 부하들에게 맡기는 것이…
…
‘왜 이런 고민을 해야 하지?’
문득 근원적인 의문에 도달했다.
너무 늦은 의문이지만 나 명목상 휴가 중 아닌가? 휴가 중이면서 업무를 처리한 게 한두 번은 아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과 마주했을 때의 일이다. 상황과 마주하기 전에 업무에 대한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이게 맞나.’
이윽고 의문이 아닌 분노가 치솟았다. 이 세상 어떤 공무원이 휴가 중인데도 일을 하고 다니냐고. 그것도 한 번이나 두 번이 아닌 여러 번이나.
이게 다 감찰성 장관이라는 딱지 때문이다. 내가 이 빌어먹을 명함 때문에 눈치가 보여서, 목에 걸린 족쇄 때문에 노예근성이 생겨서 자발적 업무를 진행 중인 거다. 막말로 내가 감찰성 장관이 아닌 평범한 제국백이었으면 이런 일이 있었을까? 무슨 문제를 발견하더라도 ‘내 관할이 아니다.’ 라며 넘어갔겠지.
그러니 이 통탄스러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장관직에서 물러나고 싶다고?”
“완전히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소신이 업무에 복귀할 때까지만 일시적으로 직위를 해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잠시나마 감찰성 장관이라는 명함을 내려놓는 것.
어차피 휴가가 끝나면 다시 들게 될 명함이나, 아주 잠깐이나마 내려놓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이 미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소신이 폐하의 자비로 인하여 가족들과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으나, 폐하의 과분한 신뢰 덕에 하사받은 이름은 그 존재 자체로도 위엄이요, 권위입니다. 뭇 귀족들이 고개 숙여야 할 권위가 제국을 배회하고 있으니, 충성스럽고 유능한 폐하의 신하들이 지레 두려워하고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우려됩니다.”
“본래 감찰이란 게 그런 것 아닌가.”
“평상시라면 그러한 두려움을 기껍게 받아들였을 겁니다. 허나 소신은 휴가 중이지 않습니까. 이는 존귀하신 폐하의 권위를 받아 활동하던 관료가, 일시적으로 폐하의 권위를 반납한 것입니다. 폐하의 권위를 등에 업지 못한 관료는 그저 범부에 불과하온데, 귀족들은 그저 감찰성 장관이라는 이름을 두려워하여 고개 숙이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명분이라 뿌듯했다. 이보다 매끄럽고, 이보다 황제의 체면을 살려주는 명분이 어디 있을까.
단순히 하기 싫어서 내려놓는 것이 아니다. 황제의 권위를 업지 못한 관료가 귀족들 위에 군림하면 곤란하다는 정치적 명분이다.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복귀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이 얼마나 완벽하고 깔끔한가.
“흐음.”
실제로 황제는 내 제안에 턱을 매만지며 고심했다. 저놈이 듣기에도 반박하기 어려운 명분이라는 거겠지.
‘수락해.’
그러니까 수락해. 너한테도 양심이라는 게 있으면 수락해.
내가 휴가 중에도 너한테 가져다 바친 성과가 몇인데. 남은 휴가 정도는 편하고 조용하게 지내도 되잖아. 나한테는 그럴 자격이 있어.
***
장관의 말에 조용히 턱을 매만지며 고심했다.
‘오늘 저녁은 뭘 먹지.’
장관의 처우가 아닌 내 저녁 식사에 대해서. 지금 장관이 하는 주장보다는 저녁이 더 중요하니까.
그만큼 장관의 말은 딱히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는 말이다. 뭐?잠시 장관직을 내려놔? 휴가 중인 장관이 제국을 떠돌면 귀족들이 불안해해?
‘그게 좋은 건데.’
휴가 중이어야 할 감찰성 장관이 제국을 무작위로 떠도는 것. 공인이 아닌 개인으로 움직이는 거라 위치 파악도 힘든 것. 방문 명분은 기습 감찰이 아닌 여행이라 항의도 못 하는 것. 이 절묘한 상황이 얼마나 좋은데 그걸 포기할까.
요즘은 장관이 현역으로 지내는 것보다 휴가 상태로 있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진지하게 검토 중이다. 공인이라면 제국이라는 족쇄에 묶이나, 휴가 중인 개인이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니.
당장 장관이 휴가를 즐기는 동안 국경만 몇 번을 넘었던가. 장관이 휴가 중이 아니었다면, 정상적인 장관이었다면 그렇게 자주 국경을 넘을 수 있었을까?
‘그럴 리가.’
사실 장관은 감찰부장 시절부터 사무 능력보다는 무력을 높이 평가하여 그 자리에 앉혔다. 또한 그 무력과 업적을 기반으로 한 명성이 장관의 가장 큰 무기지.지금도 감찰성은 장관이 감찰부장 시절부터 신뢰한 장관 비서가 훌륭히 이끌고 있지 않나.
그러니 장관은 감찰성 청사에 묶어둘 필요 없이,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두는 것이 옳다. 그러면 제국 전역, 더 나아가 대륙 전역이 장관의 사정 범위에 들어오는 것이니까. 온 대륙이 장관의 눈길에 두려워할 테니까.
‘휴가 중일 때 더 빛나는 관료.’
이 얼마나 기이하고도 독특한 관료인지 모르겠다. 제국 역사 300년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 300년이 더 이어져도 이런 관료는 나오지 않을 거다.
‘흐으으음.’
허나 이대로 장관의 요청을 무시하는 건 조금 곤란하다.
‘눈이 돌았군.’
저 강렬한 눈빛. 내 앞에서 장관직 해제를 운운하는 대담함. 아무래도 이번 불법 도박장 사태가 장관의 이성을 뒤흔든 모양이다.
이해는 한다. 기껏 신혼여행을 즐기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불법 도박장을 처리하고 있었다. 장관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겠지. 언제 또 이런 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도 있을 테고.
‘마음은 이해한다만.’
기이한 열망으로 불타오르는 장관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거절하면 그대로 집무실 바닥에 드러누울 기세였으나 차마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장관의 직책을 해제하면 그대로 야인으로 살 게 뻔하지 않나. 휴가가 끝나면 다시 장관으로 복귀한다? 어디서 그런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해.
‘한 번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면 온갖 명분으로 거절할 거다.’
휴가가 끝나도 장관직을 거부하며, 복귀를 철저히 피할 미래가 뻔히 보인다. 장관이라면 분명 그럴 거다.
물론 강하게 권하면 끝내 복직하겠지만, 잠시나마 장관직에서 내려올 수 있다는 선례가 생기면 곤란하다. 장관이라면 그 선례를 툭하면 들먹일 테니.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나와 장관의 싸움은 퇴직하고자 하는 장관과 만류하는 내가 아닌, 일단 퇴직한 장관과 다시 복직시키려는 나의 싸움이 될 터. 몇 번을 생각해도 내 손해다. 시작부터 반은 지고 있는 싸움이지 않나.
“당장 결정할 문제는 아니로군. 우선 장관이 부인과의 신혼여행을 마치면, 그때 다시 논하도록 하지.”
그래서 일단은 보류를 선언했다.
돌아버린 장관이 조금이나마 머리를 식힐 수 있게. 장관의 미친 주장을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할 시간을 벌기 위해.
아니면 장관의 명치에 강한 한 방을 내리꽂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장관직 해제가 장관에게 이롭기만 하지는 않다는 걸 보여준다면, 장관도 이 미친 주장을 거둘 것이다.
‘장관이 물러날 정도의 충격이라.’
과연 어떤 걸 준비해야 장관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할까.
이거 참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