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32)
로판 속 공무원 832화(833/945)
달콤한 꿈을 꾸었다. 과거 죽음으로서 모든 생명 위에 군림하고, 대륙을 뒤흔들었던 시절보다 더욱 달콤하고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쟝생이! 오늘 해임이야!”
무려 해임이라는 꿈. 수년 동안 이어진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
우습게도 만인의 희망을 짓밟고, 무수한 절망을 선사하던 내가 희망을 품고 말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진심으로 자유를 맞이한 기분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잠깐에 불과했다. 나에게 해임을 통보한 녀석은 주인의 자식 중 가장 총애를 받는 첫째이나, 그래도 내 주인은 그 어린 녀석이 아닌 주인이다. 주인이 해임을 선언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도 솔직히 말하면 기대했다. 아비이니 아들의 뜻에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주지 않을까 기대했어.
‘그저 봄날의 꿈이었나.’
마치 눈을 뜨면 사라지는 꿈처럼. 마치 해가 뜨자 사라지는 이슬처럼. 말 그대로 손에 남지 않고 아련하게 떠나버린 희망이 되었다.
“죽음이시여. 괜찮으십니까?”
내가 바닥에 엎드린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자, 내 종이었던 녀석이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더욱 씁쓸했다. 더 이상 죽음이라 부를 수 없는 나를, 아무런 힘도 없는 나를 이리도 신실하게 섬기다니. 내 위에 무수히 많은 상전들이 있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충성하다니.
종교 전쟁 시절에 이리도 충직한 신도가 여럿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이 대륙은 태양이 아닌 죽음이 지배하는 세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안 괜찮다.”
그래서인지 괜히 더 퉁명스러운 대답이 나왔다. 동시에 진심이 가득 담긴 대답이기도 했고. 내 처지가 괜찮아 보인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니겠─
“그렇다면 죽음이시여. 아주 잠시라도 바깥으로 나가시는 건 어떠신지요?”
“으음?”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난데없는 말에 슬쩍 고개를 들어 종─ 리시안느에게 시선을 돌리니, 리시안느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죽음께서는 이 저택의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여러 존재들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그와 비례하는 감사를 받았지요.”
“아니, 그.”
호의와 감사라는 말에 잠시 입이 달싹거렸으나 겨우 참았다.
그렇군. 내 처절한 애완동물 생활을 그렇게 미화할 수도 있는 거군.
“허나 이 저택에는 죽음만 계시는 게 아닙니다. 한때 대륙을 뒤흔들었던 존재들이 있고, 이 시대에 태어났지만 총애를 받는 존재들도 있지요. 죽음께서 자리를 비워도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요.”
그 말에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얼굴이 여럿 있었다.
글쎄. 내가 자리를 비우면 난리 칠 것들이 제법 있는 것 같은데.
‘아니, 잠깐이면 상관없나?’
주인의 고향으로 휴가를 떠났을 때, 그때도 주인의 자식들이 아쉬워할지언정 못 가게 막지는 않았다. 내가 없어도 그럭저럭 무방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죽음이시여. 아주 잠깐, 잠깐이라도 이 저택을 나가시는 겁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자유를 기다리는 게 아닌, 스스로 자유를 쟁취하시는 겁니다!”
리시안느의 외침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바닥에 무기력히 엎드려 있던 몸이 저절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위에서 내려오는 자유가 아니라 내가 쟁취하는 자유. 바닥에 엎드려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 발로 서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것.
그래, 옳은 말이다. 리시안느의 말이, 내 충실한 종의 말이 옳다.
‘나 하나쯤이야.’
나 하나 잠깐 없어져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리고 내가 이 저택과 작은 녀석들을 위하여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얼마나 몸이 쥐어 짜이며 마음이 무너졌던가. 티티를 제외하면 나보다 작은 녀석들에게 붙잡힌 녀석도 없을 거다.
사실 얼마 전부터는 티티보다 내가 더 시달리는 기분이기도 하다. 티티, 그 배신자는 매일 저택 밖으로 나가고 있으니까. 제니인지 뭔지 사랑에 눈이 멀어가지고.
“리시안느.”
“예, 죽음이시여!”
“나에게는 나의 길을 택할 권리가 있는가?”
“누구도 죽음의 행진을 막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 자리를 벗어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는가?”
“죽음은 본디 한곳이 아닌 대륙을 떠도는 존재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라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다. 아무리 과거의 일이라지만 나는 한때 죽음. 지금은 장생. 결코 한 장소에 묶여 살아갈 존재가 아니다. 죽음이든, 장생이든 대륙을 떠돌며 모든 생명 위에 군림해야 할 존재다.
간다! 나의 손으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
아이들과 놀아주던 중, 의외의 소식을 듣고 말았다.
“장생이가 가출했다고?”
“네에…”
유리스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전달한 소식. 정말 상상도 못 한 소식이라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압빠. 가출이 모야?”
그리고 침묵을 깬 건 내 품에 있던 프리드리히였다.
다행이다. 우리 아이들이 아직 가출이라는 단어를 몰라서. 만약 장생이가 집을 나갔다는 걸 인지했다면 얼마나 서럽게 울었을까. 그만큼 우리 아이들에게 있어 장생이의 존재는 강렬하고도 소중하다.
“장생이가 집에만 있는 게 심심해서 잠깐 밖으로 나간 거야. 금방 돌아올 거야.”
“우웅…”
아무튼 최대한 장생이의 가출을 별거 아닌 식으로 얘기하자, 프리드리히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프리드리히. 다른 동물 친구들이랑 놀고 있을래? 걔들도 심심해서 나가면 안 되잖아.”
“웅!”
슬쩍 프리드리히를 바닥에 내려놓으니 프리드리히는 빠르게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아마 프리드리히의 놀이 상대는 평화가 될 것 같다. 아까 얼핏 보니까 근처에서 자고 있더라고. 마침 평화는 남자아이들이 환장하는 호랑이 형태니 몇 시간은 잡혀서 시달리겠지.
갑작스러운 봉변 같겠지만 감수해라. 네 친구인 장생이가 탈주해서 생긴 참사니까. 원래 이런 건 연대 책임이야.
“어떻게 나간 거야? 사용인들 눈을 피해서 나갈 수는 없었을 텐데?”
그렇게 프리드리히가 시야 밖으로 나간 걸 확인한 후, 다시 유리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해하기 어렵다. 이 저택은 넓고, 그만큼 사용인들도 많다. 장생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저택 곳곳에 퍼진 사용인들을 피해 탈출에 성공할 수는 없다.
장생이가 텔레포트가 가능하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잖아. 장생이가 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이미 수백 번은 도망쳤을 거야.
“저, 그게, 평소와 달리 너무 당당히 걸어나가서. 허락받고 나가는 줄 알았대요.”
“어?”
“최근에 장생이가 기운이 없었잖아요. 그래서 주인님이나갔다 오라고 허락하신 줄 알았대요.”
그 말에 다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정공법이었나.’
난감하다. 사실 장생이가 어디 숨거나 도망치는 족족 발각된 이유는 눈치를 살피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은밀하게 움직이려는 티가 팍팍 나서, 제대로 숨거나 도망치기 전에 들킨 것이다.
헌데 장생이가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히 움직이는 방법을 택했다. 이러면 사용인들의 감시가 조금 소홀해질 수밖에. 성수들이 돌아다니는 걸 하나하나 관리하기에는 피곤한 일이니까.
‘하필 타이밍도 절묘했어.’
결정적으로 유리스의 말처럼 근래 장생이는 우울증 증세를 보였었다. 페디에게 해임이라는 말을 들었다가 취소 당했으니, 자유가 눈앞에서 사라진 기분이었겠지.
그러니 사용인들이 장생이를 딱하게 여기고, 장생이가 휴가를 받았다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실제로 나는 티티와 성수들에게 릴레이 휴가를 부여 중이잖아. 잠시 제도 외출을 허락받았다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앞으로 더 주의를─!”
“아, 괜찮아. 당당하게 나간 걸 보면 이미 맛이 간 것 같은데, 거기서 막았으면 오히려 날뛰었을 거야.”
울상이 된 유리스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를 건넸다.
과정이 많이 이상하지만 결과만 보면 괜찮다. 장생이가 정공법이라는 최종 수단을 택한 것을 보면 이미 정신적으로 몰렸다는 뜻. 그런 장생이를 막았다면 장생이가 울부짖거나, 땅바닥을 구르거나, 식음을 전폐했겠지.
그렇다면 이렇게 슬쩍 내보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당근과 채찍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도 아니니.
‘어차피 어디 있는지는 아니까.’
게다가 티티에게 자동 산책을 시켰을 때 걸었던 위치 추적 마법. 생각보다 유용한 마법인지라 현시점에서는 티티를 포함하여 모든 동물들에게 걸어둔 상태다. 장생이가 무단으로 탈주했더라도 작정하면 5분 안에 포획할 수 있다.
‘괘씸하게 가출을.’
그래도 이성적으로 괜찮은 것과 감정적으로 괜찮은 건 별개의 일. 감히 우리 집에서 도망쳤다는 사실은 불쾌하기 짝이 없다.
우리 아이들이 장생이를 얼마나 아꼈는데. 가끔 보면 이 아빠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았고, 우리 저택 최고 존엄인 티티와 좋은 승부를 할 정도로 애정을 줬었지.
그만큼 장생이도 아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아아아아악! 제발 날 놓아라!”
사랑을,
“제발, 제발 좀 쉬게 해다오! 잠깐이라도 좋다!”
받으며,
“방금 눈 붙였다. 하루는 바라지도 않으니 1시간만 놓아다오.”
지냈…
“차라리 구덩이에서 죽을 걸 그랬나…”
음.
‘힘들면 잠깐 바람 좀 쐴 수도 있지.’
장생이와의 추억을 떠올리니 좋은 기억보다는 눈물겨운 울부짖음이 먼저 떠올랐다.
그 녀석이 고생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 이게 막연하게 아는 것과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건 다르구나.
‘잘 놀다가 와라.’
그동안 미안했다. 내가 오늘 하루 일탈하는 건 봐줄 테니까 적당히 쉬다가 와.
어쩐지 페디가 해임 얘기를 꺼냈을 때 과할 정도로 좋아하더라. 어린아이의 말에도 희망을 가질 만큼 절박했다는 거였어.
‘조만간 다른 애들도 보내야 하나?’
문득 장생이가 아닌 다른 성수들에게도 생각이 닿았다.
장생이가 성수들 중 제일가는 총애를 받지만, 그렇다고 다른 성수들이 홀대받지는 않는다. 장생이의 피로가 극심하다면 다른 녀석들도 가벼운 피로는 아닐 터.
그동안 한 마리씩 타일글레헨에 파견 보내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제 제도 외출권도 돌아가면서 하사해야겠다.
‘미안하다.’
주인이 너무 무심했어서 미안해.
***
자유는 내 손으로 쟁취하는 것이 맞았다.
‘이렇게 쉽게 나오다니.’
아직도 얼떨떨하다. 평소에는 조금만 숨으려고 해도 금방 들켰다. 참다못해 도망치려고 하면 바로 붙잡혔다.
분명 그러했는데, 이번에는 당당히 걸어 나왔음에도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내 발걸음을 감히 막을 수 없다는 것처럼.
‘네 말이 맞았구나.’
나와 나란히 걷는 리시안느를 보니 절로 흡족해졌다.
너는 내 충실한 부하라고 자칭할 자격이 있다. 나에게 신격이 있었다면 정식 사도로 삼았을 것이다.
“리시안느.”
“예, 죽음이시여.”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사도라 여길 것이다.”
“사, 사도…!”
그러자 리시안느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이리도 좋아할 줄 알았다면 진즉에 사도라 불러줄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