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33)
로판 속 공무원 833화(834/945)
사도와 함께 외출을 즐겼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이 닿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누군가를 피하기 위함이 아니요, 몸을 숨기기 위함도 아닌 내 의지대로.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어떠한 걱정이나 근심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경사스러운 일인가.
‘당연할 때는 감사함을 느끼지 못했지.’
죽음이라 불리며 모든 생명의 공포로 군림했을 당시. 그때는 이 자유로운 발걸음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 누가 감히 나를 막겠는가. 누가 건방지게 죽음의 행진을 막겠는가. 그렇기에 자유로운 행보는 나에게 있어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으며, 결코 무너지지 않을 상식이었다.
그러한 상식이 무너지고 수백 년 동안 깊고 어두운 구덩이와 혹한 속에 방치되었다. 기껏 감옥에서 탈출한 이후로는 죽음이 아닌 장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갔다. 내 기나긴 삶 동안 한 번도 겪지 못한 보모 역할까지 하면서.
이제는 보모 역할도 익숙해져서 받아들이고 있다. 나한테 신성이 없다는 걸, 다시는 죽음으로 군림하지 못한다는 걸 인정했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다.’
물론 자신의 처지를 인정한다고 아무런 피로도 느끼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 반란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을 터.
그래서 탈출했다. 앞으로 평생 아이들의 보모로 지내야 하니, 적절한 자유와 휴식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겠나.
심지어 내가 완전히 도망치겠다는 것도 아니다. 아주 잠시만 자리 좀 비우겠다는 것이니 큰 욕심도 아니잖아. 나는 주인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탐욕을 부린 거다.
“죽음이시─”
“지금은 죽음이라고 하지 마라.”
내 절제력과 인내심에 찬사를 보내는 사이, 사도가 입을 열려고 하길래 잠시 제지했다.
“우리는 실로 오랜만에 자유를 즐기고 있다. 우리의 정체가 밝혀지면 이 자유는 빠르게 끝나겠지. 밖에서만큼은 죽음이 아닌 장생이라 불러라.”
“제, 제가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이는 우리의 위대한 행보를 위함이다. 또한 네가 나를 무어라 부르든, 네가 나의 사도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그러자 리시안느의 눈망울이 더욱 촉촉해졌다.
“명심하겠습니다, 장생이시여!”
“음.”
바닥에 엎드리는 사도를 향해 흡족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마음에 드는 충복이다. 내가 에넨에게 봉인 당하여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내 힘의 파편을 찾아내 스스로 인간을 초월한 존재다. 능력에 비례하여 신앙심과 충성심도 출중한 존재다. 이 얼마나 보기 좋은 충복인가.
이러한 충복을 종교 전쟁 때 만나지 못한 것이 나의 패인이라면, 늦게나마 만난 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
“사도. 내 등에 타라.”
그래서일까. 특별히 이 기특하고 충직한 사도에게 내 등을 허락했다.
“예?”
“등에 타라고 했다. 어서 올라와라.”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리자, 사도는 머리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 아, 안 됩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어찌 그런 불경한 짓을!”
불경이라는 말에 뿌듯하면서도 씁쓸했다. 내가 저택에 있는 동안 작은 녀석들에게 무슨 짓을 당하는지는 사도도 잘 알고 있다.
툭하면 온몸이 빨리고, 툭하면 온몸이 쥐여짜이고, 툭하면 온몸이 여기저기로 늘어나고. 불경 수준을 넘어 신성모독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수준이었지.
그 처참한 광경을 봤음에도 고작 등에 타는 것에 불경을 언급하다니. 이 얼마나 충성스럽고도 신실한가.
“타라. 네 걸음 속도에 맞추는 건 번거로운 일이니, 함께 움직이는 편이 좋다.”
“제가 미숙하여 장생께 결례를…!”
“됐으니 타라. 마지막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제야 사도는 쭈뼛거리며 내 등에 올라탔다.
진즉에 그럴 것이지. 이제야 마음 놓고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겠어.
애석하게도 나와 사도의 외견은 위협적이지 못하다. 나는 개라는 표현보다 강아지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덩치였으며, 사도도 얼핏 보면 작디작은 인형 수준에 불과했으니까.
그렇게 탄생한 ‘인형을 등에 태우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강아지’라는 조합. 인간들의 관심을 끌기에 딱인 조합이다.
“어머나, 얘 좀 봐. 가출이라도 한 거니?”
“털도 뽀송뽀송한 걸 보니 주인이 엄청 아낀 모양인데? 잠시 한눈 판 사이에 도망쳤나 봐.”
인파가 많은 거리에 발을 내딛자,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몰려오는 손길.
익숙한 상황이라 딱히 놀랍지도 않다. 걸을 때마다 온갖 접촉을 당하는 건 나에게 일상이나 다름없으니.
“위에 있는 인형은 뭐지?”
“글쎄. 깨끗한 걸 보니 최근에 만든 인형 같은데, 주인한테 어린 자식이라도 있나?”
“저런. 그럼 어린애 장난감이랑 같이 가출한 거야? 주인도 속이 많이 타겠어.”
그 와중에 사도가 부동자세와 침묵을 유지하니, 가까이에 있는 인간들도 사도를 인형이라 여겼다.
당연한 반응이기는 하다. 인간의 좁은 사고력으로는 내 등에 있는 존재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없을 터. 인형이라는 뻔하고 시시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넌 어디서 온 거니? 집을 알면 돌려보내 줄 텐─”
“타일글레헨.”
“어?”
“타일글레헨 백작의 저택에서 왔다.”
내 머리를 쓰다듬던 인간을 향해 입을 열자 근처에 있던 인간들이 딱딱하게 굳었다.
물어봐서 대답해 줬더니 이런 반응이라니. 괘씸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이다.
“마, 말을 했어? 방금 말한 거야?”
“아니, 그보다 타일글레헨이라고 했잖아. 백작 각하의 애완동물이었나?”
“그러고 보니 각하의 애완동물… 이미 하나 돌아다니고 있는 걸로…”
이윽고 나와 사도를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더더욱 괘씸하다. 내 정체를 알았다면 냉큼 사과부터 할 것이지. 감히 주인의 저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나를, 주인의 자식들에게 총애 받는 나를 일개 짐승처럼 여겨?
“난 가출을 한 게 아니라 잠시 외출을 나왔다. 때가 되면 알아서 돌아갈 테니, 막지 말고 비켜라.”
그래도 지금은 귀하고도 귀한 자유 시간. 불쾌감과 분노를 표하기 위해 낭비하기에는 너무나 귀한 시간이다.
“아, 응. 그래.”
“어, 어서 지나가렴. 막아서 미안해.”
내 단호한 선언에 인간들도 위압감을 느꼈는지, 뒤로 물러나 길을 만들었다.
비록 몸은 작아지고 신성도 잃었다지만 한때 신이었던 존재. 평범한 인간을 꾸짖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 내 위엄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닌 모양이다.
“앞으로 조심하도록.”
덕분에 괘씸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내 위엄을 알아보는 것들이라면 자비롭게 용서할 의향이 있으니.
“세상에. 각하께 특이한 보물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설마 말하는 짐승도 있을 줄이야.”
“각하가 기르는 애완동물… 맞겠지? 제도에서 저런 걸 기를 분은 황제 폐하나 백작 각하뿐이잖아.”
가벼운 발걸음으로 인간들을 지나치자 뒤에서 다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째 나보다는 내 뒤에 있는 주인의 위엄에 눌린 것 같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
장생이의 탈주 소식을 접하고 1시간 정도 후.
– 각하의 애완동물이 제도를 떠돌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제도 경비대장의 연락이 날아왔다.
– 허나 각하의 비호를 받는 존재라는 건 그 동물의 자칭, 인지라… 각하께 확인차 연락드렸습니다.
정작 먼저 연락을 건 경비대장의 표정은 복잡하기 그지없었지만.
이해한다. 동물의 자칭이라니, 이처럼 기괴한 표현이 어디 있을까. 괜히 경비대장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진 것이 아니다.
“맞습니다. 스스로 말도 하고 생각도 깊게 할 줄 아는 기특한 녀석이지요. 근래 심심해하는 것 같아서 잠시 밖으로 내보냈는데, 혹 제도에서 소란이라도 일으킨 겁니까?”
–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각하의 손을 타서 그런지 온순하고도 현명한 녀석이라고 합니다. 오히려 제도 시민들이 그 녀석을 보고 놀라고 있으니, 인간들이 애꿎은 짐승을 귀찮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아무튼 정중히 대답하자 경비대장은 손까지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온순하고도 현명하다라. 그 녀석이 현명한 건 맞지만 온순은 아닐 텐데. 오랜만에 맞이하는 자유를 위해 조용히 지내고 있는 건가?
– 하오면 각하. 각하의 애완동물이 안전히 귀가할 수 있도록 대원들에게 각별히 신경 쓰라 말해두겠습니다.
그 와중에 경비대장은 장생이를 대상으로 한 VIP 경호 작전을 언급했다.
고마운 배려지만 불필요한 배려다. 이미 장생이에게는 위치 추적 마법을 건 상태고, 장생이가 위험에 처하려면 제도 한복판에서 마법 테러 사태 정도는 터져야 한다. 그조차도 장생이 능력이라면 슬쩍 피해 다니겠지.
그러니 장생이 경호를 부탁하는 건 경비대의 인력을 이상한 곳에 낭비하는 꼴이다. 그건 제국의 귀족으로서 부끄러운 일.
“괜찮습니다. 제도는 경비대와 근위 군단 덕에 언제나 안전하거늘, 어찌 별개의 조치를 원하겠습니까? 저는 이미 제도의 안전을 믿기에 그 녀석을 밖으로 보낸 것입니다.”
– 참으로 감사한 말씀이오나, 제가 보기에도 신기한 녀석이라 시민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경비대장의 말에 잠시 턱을 매만졌다.
저렇게까지 말하면 계속 거절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거절로 일관하면 경비대장의 마음이 불편한 채로, 불안한 채로 하루를 보내게 될 터.
“그렇다면 그 녀석이 제도 바깥으로 나가는지 아닌지, 딱 그 정도만 확인해 주십시오.”
내 제안에 경비대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생이가 제도 밖에 있는지 안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 간단한 방식을 쓰면 제도의 성문만 지키면 되는 일이나, 경비대장이라면 소재 파악이라는 명목으로 경비원 두세 명 정도를 장생이에게 붙일 거다.
그것도 인력 낭비지만 어쩌겠나. 그 정도는 해야 경비대장의 마음이 풀릴 텐데.
***
재앙이 다가왔다.
“으에? 쟝생이? 리씨안느?”
“아.”
“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맞이한 재앙.
“쟝생이! 리씨안느! 나 오는거 알구 나온거야!?”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재앙.
“…사도! 잠시 갈라진다!”
“네, 네!?”
“둘 중 하나는 이 자유를 만끽하고 돌아간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면 하나는 살 수 있다!”
그렇기에 재앙을 보자마자 바로 결단을 내렸다.
지금은 사도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자고. 둘 중 하나는 도주에 성공해서, 이 꿈과 같은 자유를 즐기다가 복귀하자고.
“장생이시여! 제가 어찌 당신을 두고 도망치겠습니까!”
“도망이 아니다! 전략적인 후퇴야!”
망설이는 사도를 향해 호통을 쳤다. 사도의 충성심은 알지만, 지금은 내 말에 따르는 것이 충성이다.
“내려가라! 그리고 달려라! 어서!”
아마 황태녀는 사도보다 나를 우선적으로 잡을 터.
그렇다면 이 신이라고 할 수 없는 몸을 희생하여 사도를 살린다. 네가 정녕 사도라면이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마라!
“자, 장생이시여…! 부디 무사히 빠져나오시길!”
다행히 사도도 내 마음을 이해했는지, 빠르게 내 등에서 내려와 달리기 시작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둘 다 잡혔다. 황태녀가 아닌 다른 존재 때문에.
“시녀쟝! 고마어!”
황태녀와 늘 함께 다니는 시녀장 때문에.
내가 어리석었다. 저 활발한 황태녀를 항상 보필하는 인간이라면… 그 체력이 엄청날 것이 뻔하거늘…
‘망할.’
내 자유, 여기서 끝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