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34)
로판 속 공무원 834화(835/945)
황태녀가 저택에 왔다. 이건 늘 있는 일이니 딱히 놀라운 일도 아니다.
다만 황태녀의 품에 안긴 존재들을 보자마자 탄식을 흘리고 말았다.
‘너희 왜 거기 있냐.’
황태녀의 품에서 축 늘어져 있는 장생이와 어두운 안색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리시안느. 설마 저 두 녀석과 벌써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다.
장생이가 탈주했다는 소식을 듣고 약 1시간 정도 후에 제도 경비대장과 대화를 나눴다. 다시 그로부터 10분 정도가 지났으니 아직 가출 2시간도 찍지 못했다.
헌데 이게 뭔가. 왜 혼신의 대탈출을 한 녀석들이 광속으로 돌아온 건가.
“전하. 장생이와 리시안느는 어디서 만난 것입니까?”
일단 착잡한 심정을 애써 억누르며 사태부터 파악했다. 너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다가 황태녀한테 붙잡혀 온 거야.
“쪄어기! 때부 집 오는길애 만낫서! 나 오는거 알구 기다리고 잇썼나바!”
“그렇, 군요.”
그리고 해맑기 그지없는 대답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 그냥 재수가 없어서 저택에 오던 황태녀와 마주친 거였군.
‘에넨한테 미움받으면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눈물이 앞을 가리는 기분이다. 에넨에게 봉인까지 당할 정도로 사이가 나쁜 (전직)악신이라 그런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희대의 참사를 겪고 말았다.
그 넓고 넓은 제도 안에서 하필 황태녀와 마주칠 줄 누가 알았을까. 그것도 황태녀가 제도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것도 아니고, 단순히 저택에 오던 길에 만난 거잖아. 이 정도면 태양이 장생이의 조기 귀가를 원한 것이다.
‘어쩔 수 없지.’
그렇기에 측은한 눈으로 장생이를 보다가 결단을 내렸다.
“전하. 장생이와 리시안느가 전하를 마중하기 위해 나간 건, 오늘은 전하와 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으에?”
내 말에 황태녀도, 황태녀의 품 속에 있던 장생이와 리시안느도 놀랐다.
“쟝생이랑 리씨안누, 나랑 못 노라?”
“예. 오늘 장생이와 리시안느는 밖에서 산책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하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전하와 인사라도 나누고자 한 것이지요.”
슬쩍 황태녀에게 손을 뻗자 황태녀는 조심스레 장생이와 리시안느를 건네줬다.
“그럼 나두 밖애서 놀면안대…?”
그러면서도 아쉬움을 표하는 걸 보니, 확실히 장생이가 아이들의 슈퍼스타기는 한 모양이다.
티티야. 이거 어쩌면 1위 자리를 뺏길 수도 있겠다. 사랑을 위해 외출 시간이 길어지는 동안 2위가 훅 치고 올라왔어.
“다음에 놀면 어떻겠습니까? 오늘은 장생이가 열심히 제도를 돌아다니고, 다음에 전하와 함께 갈 곳을 미리 알아볼 겁니다. 그동안은 다른 아이들과 같이 노시지요.”
“우우우웅… 아랏써!”
하지만 장생이가 1위를 위협하는 2위라도 많고 많은 동물들 중 하나. 최대한 부드럽게 설득하자 황태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쟝생이! 죠은곳애서 만이 놀고와야대!”
“무, 물론이다. 다음에 같이 놀 곳을 잔뜩 보고 오마!”
“웅! 구럼 잘다녀와!”
“그럼 전하. 전 장생이와 리시안느를 다시 배웅하고 오겠습니다.”
“웅! 때부도 잘다녀와!”
황태녀의 활기찬 배웅을 뒤로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얘네를 저택 밖에서 풀어줘야 성공적으로 제도 산책을 이어갈 수 있다. 저택 내부에서 풀어줬다가는 우리 아이들한테 붙잡힐 가능성이 높아.
“주, 주인.”
“또 잡혀오면 그때는 도와주기 힘들다.”
그 와중에 말을 더듬는 장생이에게 단호히 입을 열었다.
내가 한 번은 도와줄 수 있지만 두 번은 힘들다. 황태녀에게 같은 명분은 두 번이나 통하지 않으니까. 또 잡혀오면 그때는 진짜 팔자인 거지.
“그러니까 이번에는 실컷 놀다가 돌아와. 이렇게 잡혀오지 말고.”
그 말과 함께 장생이와 리시안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가라, 자비는 이게 마지막이다. 다음에 만난다면 그때는 나도 추노꾼이다.
“…고맙다, 주인.”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게요!”
내 마음을 읽었는지,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던 장생이와 리시안느는 빠르게 등을 돌려 사라졌다.
그보다 다른 녀석도 아닌 장생이한테 고맙다는 말을 다 듣다니. 괜히 감동적이다.
‘전직 사왕이 잊지 않는 은혜라.’
그리고 리시안느가 은혜를 잊지 않는다면, 대체 어떻게 돌려줄지 기대되면서도 무섭다. 혹시 내가 죽으면 장례는 전직 사왕이 집도하는 건가?
‘영광이네.’
뭔가 대륙 제일의 장례사가 집도하는 장례 같아.
가출 사건 이후로 장생이의 충성도가 올라간 것이 눈에 보였다.
평소보다 덜 툴툴거렸고, 평소보다 더 협조적이고, 평소보다 더 아이들과 놀아줬다. 평소에 10만큼 일을 했다면 이제는 40, 50 정도까지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역시 사람은 절박하고 절망적일 때 도와준 은혜를 잊지 않는 법이다. 비록 장생이는 사람이 아니지만, 사람과 비슷한 지능의 소유자니 다를 건 없을 터.
“주인. 슬슬 율리아가 깨어날 시간이니, 이제 율리아에게 가보겠다.”
“어, 그래. 고생하고.”
“음.”
이제는 자발적으로 우리 아이들을 돌보는 장생이, 짧디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는 장생이를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재능이 있는 자는 노력하는 자보다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보다 못하다. 이제 장생이는 보모의 재능을 타고난 슈퍼스타에서, 보모 행위를 즐기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실로 크라시우스 가문의 홍복이지.
“주인.”
“엉?”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 지랄맞은 놈이 저리 순해진 건가.”
이 홍복은 나에게만 놀라운 일이 아니었는지, 마침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겸손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정과 신뢰를 쌓을 일이 있었지.”
“그건 또 무슨.”
사실대로 말하자 겸손은 무슨 말이냐는 듯 혀를 찼다.
유감스럽지만 진짜다. 나와 장생이는 가출 사태 덕분에 깊은 우정을 나누었고, 서로를 향한 신뢰를 구축할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 치달으면 상대가 도와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저 녀석만큼 우정이나 신뢰와 거리가 먼 녀석도 드물다. 같은 사흉이 아니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고, 칠죄종이라 불린 우리 정도는 돼야 근처를 지나갈 수 있었지. 그만큼 난폭하고 자기애가 강한 녀석이다.”
“옛날이야기를 꺼내면 너네 중에 멀쩡한 애는 아무도 없어.”
“뭐, 그건 그렇지…”
맞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겸손은 바닥에 철퍽 주저앉더니,
“주인.”
“어, 말해.”
“나도 주인과 우정이나 신뢰를 쌓고 싶다.”
당당하게 결연한 목소리로 용건을 꺼냈다.
그 모습에 픽 웃음을 흘렸다. 어쩐지 아까부터 근처에서 얼쩡거린다 싶더니, 그 말이 하고 싶어서 그랬구나.
“너도 나가고 싶다고?”
겸손의 고개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나도! 나도 밖에 나가고 싶다! 많이는 안 바란다! 장생, 저 녀석처럼 몇 시간이면 돼! 내가 알아서 돌아올 테니 제발!”
“알았으니까 진정해.”
그러다가 숨넘어가겠다.
허나 내 걱정 어린 만류에도 불구하고 겸손의 고갯짓과 날갯짓은 더욱 격렬해졌다. 저러다가 머리나 날개 중에 하나는 떨어지는 게 아닌가, 우려스러울 정도로.
그래서 미안하고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장생이와 리시안느의 외출이 얼마나 부러웠으면 저럴까. 타일글레헨에 주기적 휴가를 보내는 걸로는 만족스럽지 않았구나.
“뭐, 네 말대로 하루 안에 끝낼 외출이면 빨리 보내줄 수 있지.”
“하루가 뭐냐! 몇 시간이면 충분하다!”
“네가 도망치지만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보내줄 수 있고.”
“내 집이 여기인데 어디를 가겠나! 저녁 식사 전까지는 돌아오겠다!”
갈수록 처절해지는 외침에 숙연한 마음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내가 나름 이 녀석들의 복지는 신경 썼다고 자부했는데, 주인으로 군림하는 자의 착각이었구나. 실제로 구르는 녀석들 입장에서는 아직도 부족한 거였어.
“그런데 너, 작아서 혼자 나가기에는 위험한 거 알지? 너보다 큰 장생이도 리시안느랑 같이 움직였잖아.”
“크기에 연연하지 마라! 이 작은 몸으로, 나는 작은 주인들의 총애를 이겨냈으니까!”
이상하다. 말로는 총애라고 했지만 정작 귀로는 시련이라고 들려.
“됐고, 자선이랑 친절 중에 하나 붙여줄게. 걔네 타고 돌아다니면 움직이기 편할 거야.”
그러나 작은 미묘함에 매몰되어 마땅히 줘야 할 포상을 무를 생각은 없다.
겸손도 그동안 열심히 노력했다. 성수들은 물론, 우리 저택에 상주하는 동물들 중에서 가장 작은 크기를 자랑하기에 아이들의 주요 장난감 중 하나로 활약했지.
그런 겸손에게 포상을 주지 않으면 누가 포상을 즐기겠나. 아무리 이 녀석들이 전직 악신이라도, 지금은 우리 저택을 이루는 기둥이잖아. 대우받아 마땅한 녀석들이다.
“고맙다, 주인! 정말 고맙다!”
아무튼 내 확약에 겸손은 날개를 파들파들 떨며 기뻐했다.
누가 이 녀석들을 보고 전직 악신이라고, 현직 성수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아니다.
‘오히려 티티가 성수 같아.’
아니, 티티면 성수를 넘어서 신수라고 해야 하나?
***
최근 들어 경비대에 기묘한 업무가 추가되었다.
“각하. 타일글레헨 백작 각하의 애완… 동물이 저택을 나섰다고 합니다.”
바로 오늘은 어떤 짐승이 제도를 돌아다닐지 확인하는 것.
“오늘은 어떤 녀석들이지?”
“사슴과 뱀입니다.”
이번에도 기묘한 조합이라 잠시 눈을 감았다.
어제는 호랑이와 거북. 그제는 양과 여우, 그끄제는 말과 병아리였지. 참으로 기이하고도 독특한 조합이다.
‘어디서 그런 것들만 모은 건지.’
일반적인 애완동물과는 거리가 먼, 그것도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는 짐승들. 대체 어디서 그런 짐승들을 구한 건지 놀라울 지경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타일글레헨 백작, 감찰성 장관의 애완동물이다. 쓸데없는 호기심을 가지는 건 현명하지 않다.
“또한 백작 각하께서 이번에도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로군.”
심지어 백작의 애완동물을 신경 쓰는 대가로 적지 않은 대가도 받고 있으니, 경비대를 위해서라도 침묵하는 것이 옳다.
물론 매일 보내는 것이기에 화려한 대가는 아니다. 적당히 대원들이 입술을 적실 수 있는 술, 입을 즐겁게 만드는 음식, 걸어 다니며 취할 수 있는 과자 정도지. 그리고 다용도로 쓸 수 있는 돈도 약간.
그래도 늘 피로와 싸우는 경비대에게 있어 이런 사소하고도 확실한 선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비대는 육체가 가장 큰 재산이고, 돈은 많을수록 좋은 법.
“그러고 보니 각하.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식 말인가?”
“각하의 애완동물들 말입니다. 사실 백작 각하의 눈과 귀가 되어 제도의 부정을 살피는 중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부관의 말에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소문은 당연히 알고 있다.
‘내가 퍼트렸으니까.’
백작의 양해를 구해서 내가 퍼뜨린 소문이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감찰성 수장의 수족이 제도를 순찰한다. 그런 소문이 퍼지면 제도 어딘가에 숨어있을 범죄자들이 감히 움직이지 못할 터.
부관이 나에게 보고를 할 정도면 제도 구석구석까지 잘 퍼진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