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35)
로판 속 공무원 835화(836/945)
장생이의 유쾌한 가출쇼 이후로 성수들의 릴레이 외출이 이어졌다.
그리고 오늘은 활기와 인내. 독수리와 곰 듀오가 외출하는 날이다.
“저녁 전에만 돌아오고, 도중에 피곤하면 조기에 복귀해도 되고.”
“저녁 전! 알았다!”
“여기 돈도 조금 줄 테니까 배고프거나 목마르면 써. 산책 도중에 몸이 힘들면 서럽잖아.”
“잘 쓰겠습니다!”
날개를 퍼덕이는 활기와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인내.
대답은 열심히 하고 있지만 눈동자에서 강렬한 열망을 읽었기에 픽 웃음을 흘렸다. 저거 잔소리는 적당히 하고 빨리 보내 달라는 눈빛이야.
그래, 자유가 코앞인데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귀에 들어오겠나. 심지어 활기와 인내는 11마리의 성수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외출을 하게 된 녀석들이다. 비록 며칠 정도의 차이지만 그 며칠 사이에 얼마나 속이 타들어갔을까.
“그럼 열심히 놀고 와. 제도 밖으로 나가지는 말고.”
“명심하겠다!”
“제도 안에서만 활동! 저녁 전까지 복귀!”
내 선언에 활기와 인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질주했다.
저녁 전까지 최대한 자유를 누리겠다는 의지. 누군가 자신들을 막는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다짐. 그 두 가지 감정이 여과 없이 느껴졌다.
‘잘 달리네.’
그보다 곰의 등에 올라탄 독수리라. 이번에도 독특하고 기이한 조합이라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제는 사슴의 뿔에 뱀이 몸을 감은 조합이었다. 그제는 호랑이 머리 위에 거북이, 그끄제는 양의 털 속에 여우가, 또 그전 날에는 말의 갈기에 병아리가 매달린 조합이었지.
최초의 탈주자였던 장생이는 리시안느를 등에 태우고 다녔으니, 그 뒤 이어지는 탈주자들도 하나같이 인상적인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전통이 된 것 같아.
– 뀨우우웅.
– 뀨이잉.
그렇게 두 성수가 바람과 같이 사라지자, 내 발치에 있던 마네와 미네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아 두 토끼를 안아 들었다. 자기 선배들이 연이어 외출을 나가니 자기들도 나가고 싶다는 뜻이겠지.
“너희도 때가 되면 보내줄게.”
– 뀨웅! 뀨웅!
– 뀨이잉!
내 약속에 마네와 미네의 귀가 쫑긋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세쌍둥이를 보는 기분이라 괜히 웃음이 나왔다. 역시 귀가 길면 기본적으로 귀여워.
‘…얘네만 보내는 건 조금 불안한데.’
그런데 이 녀석들을 밖에 내보내도 되는 걸까? 얘네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지능을 지닌 티티도, 사람과 다를 거 없이 말을 하는 성수도 아니잖아. 괜히 자유롭게 풀어뒀다가 토끼탕 엔딩을 맞이하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다.
차라리 얘네는 주니까지 포함해서 셋을 보낼까? 아니야, 주니가 소기는 하지만 아직은 송아지 단계라 썩 도움이 되지는 않아.
‘송아지 한 마리랑 토끼 두 마리.’
진심으로 걱정된다. 이 작고 말도 못 하는 녀석들이 제도에서 무슨 수난을 겪을까. 사람들한테 이리저리 치이거나, 핸들링 당하느라 고생만 하는 거 아냐?
그렇다고 얘네만 안 보내면 마음의 상처를 입겠지. 차별 대우는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에게도 서운한 행위니까.
‘사용인들이 나갈 때 같이 보내야겠다.’
예를 들면 유리스와 소피아가 장을 보러 갈 때. 그럴 때 마네와 미네, 주니를 같이 내보내면 그럭저럭 괜찮은 산책이 될 거다. 넉넉하게 수 시간 정도 놀고 오라고 하면 유리스랑 소피아도 좋아하겠지.
물론 마네, 미네, 주니 입장에서는 동행인이 있는 게 아쉬울 수 있으나, 동행인이 없다면 불안해서 내보낼 수가 없다.
비록 내 비호를 받는 동물들이 죽거나 다치지는 않겠지만, 귀여운 외견 때문에 온갖 쓰다듬을 당하고 스트레스가 쌓일 수 있어.
‘살다 살다 이런 걱정을 다 하네.’
조금 미묘한 기분이기는 하다. 영지나 가문의 운영 문제가 아닌 애완동물의 산책 때문에 고민하는 귀족이라.
제국 역사에 나 같은 귀족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다.
***
바람이 달다. 너무나 달아서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봉인에서 풀려난 이후, 이렇게 기쁜 적이 있었던가.”
“없었지. 기껏해야 타일글레헨에 갔을 때 정도일까.”
내 중얼거림에 성큼성큼 걸어가던 인내도 슬쩍 대꾸를 해줬다.
‘핫.’
덕분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한때 역병이라고 불리던 나. 분노라고 불리던 인내. 근처에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병을 뿌리는 존재가 나였고,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모든 걸 파괴하고 다닌 것이 인내였다. 그런 우리가 같은 주제로 같은 감정을 품게 되다니.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
“그보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
인내의 말에 날갯깃을 정돈하려다 그대로 굳고 말았다.
“…네가 갈 곳을 정해둔 거 아니었나? 난 네가 걷고 있길래 가만히 있던 건데?”
“난 네가 보는 곳으로 가던 거였는데?”
인내의 말에 나도 인내도 침묵에 빠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갈 곳이 있는 거라 믿고, 서로의 행보에 말없이 지지를 보내는 상황이었다. 헌데 그게 착각이었어.
‘이게 뭔.’
자신이 아닌 상대를 믿어서 생긴 참사. 옛날의 우리였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어쩔 수 없지. 지금부터 갈 곳을 정하는 수밖에.”
“그러고 보니 활기. 정결이 신선한 과일을 파는 곳이 있다고 말했었는데, 거기부터 가겠나?”
“사과도 파나?”
“팔겠지. 없으면 다른 걸 먹어도 되고.”
실로 지당한 말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원하는 게 없으면 다른 걸 먹으면 그만이다. 우리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 저택 밖으로 나온 것이니까. 모든 것을 우리 의지대로 하기 위해 나온 거니까.
그리고 사과가 없으면 다른 과일을 고르는 것도, 우리가 먹을 과일을 우리가 사는 것도. 이 모든 행동을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있다.
‘최고로군.’
이제는 웃음이 아니라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당연히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너무나 기쁘고 행복해서, 도저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나오는 눈물이다.
“활기. 우나?”
“그러는 너도 우는 것 같은데.”
“우는 게 아니다. 과거의 가련했던 나를 추억 속으로 보내는 것이지.”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말이 목 끝까지 치솟았지만 참았다.
머리로는 개소리라고 외쳤지만, 마음으로는 무슨 말인지 본능적으로 이해했으니.
마음이 이해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괜한 트집을 잡는 건 아름답지 못해.
과연 정결이 추천한 가게는 그 게으른 녀석이 추천할 정도로 멋진 곳이었다.
“사과. 사과는 있나?”
“단맛이 강한 사과가 있고, 신맛이 더 강한 사과가 있는데. 어떤 걸로 줄까?”
“둘 다.”
만족스럽다. 다양한 입맛에 맞추어 같은 종류의 상품도 여러 가지를 배치한 가게라니. 이보다 멋지고 성실한 가게가 얼마나 있을까.
“인내. 너는 어떤 걸로 먹을 거냐.”
“나도 사과로.”
“사과 20개 주게.”
“아니, 그. 난 5개면 충분해.”
“25개 주게.”
20개는 내가 먹을 생각이었다. 내가 요즘 사과에 맛이 들려서 말이야.
덕분에 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저택에서 한 번에 10개, 20개를 먹으려고 하면 배탈 난다고 못 먹게 했지. 전직 악신이자 현직 성수인 내가 그 정도로 배탈 날 일이 없, 는… 데…?
“어?”
“갑자기 왜 그러지? 빨리 계산하고 다음 장소로─”
“주, 주머니를 잃어버렸다.”
“뭐 이 새끼야?”
마치 분노 시절로 돌아간 듯, 나를 등에 태우고 있던 인내는 두 발로 일어나더니 내 몸을 손으로 잡았다.
“지, 진정해라!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가지고 있었어! 최근에 떨어뜨린 거니 금방 찾을 수 있다!”
심상치 않은 악력이라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무리 내가 튼튼해도 상대 또한 전직 악신이다. 인내가 분노 시절로 돌아가 진심을 낸다면 한동안 날개가 부러진 채 지내야 할 수도 있다.
“저기, 돈이 없으면 그냥 가져가도 돼. 내가 선물로 줄게.”
나와 인내가 서로 다른 이유로 동요하자, 점주가 슬그머니 사과를 건네주었다.
고마운 말이지만 안 된다. 첫 외출부터 공짜로 남의 물건을 가져간다? 분명 이 소식이 어떤 방식으로든 주인의 귀에 들어갈 테고, 그렇게 되면 나와 인내의 두 번째 외출은 기약할 수 없다. 자기 이름을 내세워 부정행위를 했다고 주인이 외출 금지를 선언할 테니까.
절대, 절대 그것만큼은 안 된다. 차라리 굶고 말지 외출 금지는 안 돼.
“기다려라. 금방 돌아올 테니!”
“진짜 가져가도 되는데…”
“돌아오겠다!”
“그, 그래.”
점주의 대답을 들은 뒤, 최대한 몸을 발버둥 치며 인내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돈을 잃어버려서 생긴 분노는 돈을 찾음으로써 해소할 수 있다. 나와 인내의 행복하고 자유로운 외출을 위해서라도 인내의 분노를 잠재워야 한다.
그러니 돈. 잃어버린 돈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분간 내 날개는 하늘이 아니라 땅으로 펼쳐질 거야.
‘아.’
그리고 내 절박함을 하늘과 대지가 알았는지, 익숙한 주머니를 들고 걸어가는 인간이 보였다.
“이, 인내! 저기 있다! 저 인간이 우리가 잃어버린 주머니를 찾아줬어!”
“뭐?”
내 외침에 인내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러고는 나처럼 주머니의 존재를 파악했는지, 다시 두 발에서 네 발로 땅을 딛기 시작했다.
“거기! 인간! 잠시 멈춰라!”
그 틈을 노려 빠르게 인간을 향해 날아갔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찾아줘서 고마워…!
***
언제나처럼 열심히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던 중, 품 속에 있던 통신구가 빛을 냈다.
– 각하. 제도 경비대장입니다.
요즘 들어 얼굴을 자주 보는 제도 경비대장의 연락이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혹 제가 각하를 귀찮게 한 것은 아닌지.
“아니요, 괜찮습니다. 경비대장께서 연락을 하셨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아닙니까.
알아서 잘 놀고 있는 아이들을 힐끔 쳐다보다가 슬쩍 자리를 옮겼다.
경비대장의 표정이 복잡 미묘했으니까. 어두운 안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밝은 안색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말하기 복잡한 일이 생겼다는 것. 아이들 앞에서 할 대화는 아닐 거다.
“무슨 일이십니까? 돌려 말하실 것 없이 편하게 말하셔도 됩니다.”
– 그게, 말입니다.
잠시 눈치를 보던 경비대장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각하의 애완동물들이 소매치기범을 검거했습니다.
“…예?”
– 다만 그 과정에서 범인이 곰에게 들이받혀진지라, 범인의 뼈가 조금 부러졌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라 한동안 눈만 깜빡였다.
소매치기범, 검거, 곰의 돌격, 골절.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왜, 그런 일이…”
한참이나 침묵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쉬라고 보냈던 놈들이 왜 소매치기범을 검거하고 있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