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36)
로판 속 공무원 836화(837/945)
우리 집 애완동물이 사람을 팼다는 소식에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경비대장의 말로는 소매치기범 검거라고 했지만, 그게 소매치기범을 잡은 건지 멀쩡한 사람을 소매치기범으로 만든 건지는 알 수 없잖아. 내 체면을 생각해서 민간인을 소매치기범으로 둔갑한 걸 수도 있어.
그러니 이 일은 직접 확인해야 한다. 정말 소매치기범을 잡은 건지, 뼈가 대체 얼마나 ‘조금’ 부러진 건지 두 눈으로 봐야 한다.
‘이게 대체 뭔.’
경비대 본부로 이동하면서 연신 한숨을 내뱉었다.
성수들이 비록 동물의 육체를 지니고 있으나, 지성과 눈치는 인간과 다를 것이 없어서 안심하고 있었다. 심지어 인간과 원활한 소통도 가능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헌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 믿음이 이런 대참사로 이어지다니. 아무리 오늘 나간 녀석들이 맹금류와 맹수의 조합이라도 사람 패는 건 너무하지 않나.
‘제발 소매치기범이어라.’
그렇기에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제발 활기와 인내가 잡은 시민이 무고한 시민이 아닌 소매치기범이기를. 단순히 곰의 육체로 검거하느라 작은 충돌이 일어난 것이기를.
‘…소매치기범 맞겠지.’
사실 그 녀석들이 사람을 팬 건 통탄스러운 일이나, 무고한 시민을 팼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전직 악신인 녀석들이니 ‘그 녀석들이 사람을 팰 리가 없어!’ 같은 믿음이 아니다. 이런 사건을 터뜨리면 본인들만 손해라는 걸 알 거라는 믿음. 도덕이 아닌 실리가 걸린 문제기에 생기는 믿음이다. 기껏 손에 넣은 자유를 자기 손으로 날릴 만큼 멍청이들이 아니니까.
그런 희망과 기대를 가지며 경비대 본부에 도착했고,
“주, 주인! 벌써 왔나! 주인이 직접 올 필요는 없었는데!”
초조한 안색으로 바닥을 돌아다니던 활기가 반겨주었다.
기특한 녀석이다. 주인이 직접 찾아온다는 말에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니. 마치 아빠의 퇴근을 기다리는 자식의 모습 같아.
정작 퇴근이 아니라 출근과 다름없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야.
“인내는?”
“그, 인내는 지금.”
곧바로 인내의 상태를 묻자 활기는 눈동자를 좌우로 굴렸다.이 말을 해도 되는 건지 고민하는 것처럼.
“땅을 파서 그 안에 들어가 있다.”
다행히 금방 부리를 열었지만, 다소 인상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땅을 팠다고?”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라 되물었다.
도대체 사람을 팬 것과 땅을 파고 들어간 것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거냐. 조금이라도 연관점이 있어야 내가 납득하지.
“그게, 인내가 돈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조금 화가 나서,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있어야 분을 가라앉힐 것 같다고…”
그리고 이어지는 활기의 설명에 실소가 터졌다. 겨울잠 자는 곰도 아니고 혼자 있고 싶어서 땅속으로 들어갔다라.
‘괜찮은데?’
덕분에 안도했다. 이거 최악의 상황은 피한 것 같으니까.
곰이 지닌 압도적 능력으로 소매치기범을 후려갈겼음에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이는 인내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는 뜻.
동시에 눈이 돌아갈 만큼 분노했음에도 소매치기범을 약간의 골절 정도로 응징했다. 분노한 곰이 진심을 내면 인간 따위는 인/간으로 만들었겠지.
‘최소한의 이성은 있다.’
인내에게 사리분별이 가능할 이성이 남아있다면, 인내가 후려갈긴 소매치기범도 무고한 시민일 확률이 극히 낮다.
다행이다.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악은 확실하게 피했어.
“주인. 우리는 억울하다. 그놈이 우리 돈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이런 비극도 터지지 않았어. 게다가 그 돈은 우리 돈이 아니라 주인의 돈이지 않나.”
그러나 활기는 내 실소를 폭발의 전조라고 여겼는지, 횡설수설하며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너무 절박한 호소라 차마 끊어내지도 못했다. 여기서 말을 끊으면 활기가 그대로 통곡할 것 같으니.
“그리고 인내는 내가 잃어버린 돈을 수거한 것뿐이다! 인내는 죄가 없다! 있으면 돈에 욕심을 낸 놈에게 있지!”
‘오.’
이번에는 시민 폭행 소식을 들었을 때와 다른 의미로 놀랐다.
이 녀석들이 설마 서로를 위해 변호할 줄이야. 자신의 안위가 아닌 상대의 안위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잖아.
물론 ‘돈을 잃어버린 내 잘못이다!’가 아닌 ‘돈에 손을 댄 새끼 잘못이다!’ 라는 변명을 하고 있으나, 그래도 인내의 폭행을 정당화하는 건 변함이 없다.
“그만.”
아까보다 평온한 마음으로 입을 열자 활기의 부리가 꾹 닫혔다.
“소매치기범을 팬 거 맞지?”
“마, 맞다.”
“상대가 죽은 건 아니고.”
“뼈가 부러지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멀쩡하다! 뼈도 마법을 쓰면 금방 붙는다고 했다!”
“그럼 됐어.”
날개까지 퍼덕이며 항변하던 활기의 머리를 부드럽게 토닥였다.
“앞으로 조심해. 이번에는 운이 좋아 뼈만 부러지고 끝났지, 너희한테 잘못 걸리면 죽을 수도 있어.”
“주, 주인…!”
“돈 관리도 잘 하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활기를 품에 안은 채 걸음을 옮겼다.
본부까지 왔으니 경비대장이랑 얘기도 하고, 도대체 독수리와 곰의 돈을 훔친 용자가 누구인지도 봐야지.
활기의 주장과 경비대장의 설명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잃어버린 돈을 소매치기범이 주운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돈을 돌려받으려고 달려갔는데, 소매치기범이 그대로 도망을 쳐서 작은 충돌이 생겼습니다.”
“뼈가 부러진 걸 작다고 해도 괜찮은 겁니까?”
“기사도 아닌데 곰과 부딪히고 골절로 끝났으면 양호한 것이지요.”
활기와 인내가 이유 없이 사람을 팬 게 아니라, 먼저 선빵을 날린 소매치기범을 응징한 것이라는 확답.
“그래서, 그놈은 왜 그런 거랍니까? 말하는 독수리와 곰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평범한 시민을 상대하는 게 편할 텐데.”
“소매치기의 정석은 여행으로 들뜬 사람을 노리는 거라고 했습니다. 비록 사람이 아닌 짐승이지만, 예외는 없다고… 하더군요.”
활기와 인내를 노린 소매치기범은 편견이 없어도 너무 없는 새끼였다던 정보.
생각 이상으로 미친놈이라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확실히 소매치기범 입장에서는 현지인보다 여행에 들뜬 사람을 노리는 게 편하겠지만, 걔네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잖아. 그것도 맹금류와 맹수.
‘제국의 미래가 밝구나…’
일개 범죄자조차 이토록 편견 없이 열린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니. 다른 시민들과 귀족들은 얼마나 개방적일까.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다.
“주인. 우리 이제 다시 돌아다녀도 되는 건가?”
그리고 이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은 활기의 목소리에 금방 깨졌다.
“도, 돌아가야 한다면 돌아가겠다.”
내가 조용히 바라보자 활기는 움츠러들며 말을 이었다.
애잔한 모습이다. 본인들이 무고하다는 걸 부르짖고, 실제로 무고한 게 밝혀졌음에도 내 눈치를 보고 있잖아. 자기들도 내심 얼마나 불안했으면 이럴까.
“됐어. 아직 저녁도 안 됐으니 계속 놀다 와.”
그래서 여전히 내 품에 있던 활기를 인내의 머리에 내려놓았다.
애잔할 정도로 눈치를 보고 불안해하는 녀석들이다. 이번 소매치기 사건처럼 선빵을 당하는 게 아닌 이상 먼저 사고를 칠 일은 없다.
그럼 계속 놀게 둬야지 어쩌겠나. 단순히 사건에 휘말렸다고 자유를 박탈하는 건 가혹한 일이지.
“너도 편하게 놀다 오고.”
“가, 감사합니다.”
겸사겸사 인내의 머리를 토닥이자 인내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 녀석들도 몇 년 동안 아이들이랑 놀아줘서 그런가, 확실히 독기가 많이 빠진 모양이다.이제는 전직 악신이라는 생각도 못 하겠어.
뭐, 말 안 듣고 지랄병 걸린 애완동물보다는 순하고 말 잘 듣는 애들이 더 좋지.
지랄병은 내가 걸릴 것 같다.
“차랑 보드카. 둘 중 어떤 게 더 좋나?”
“차로… 부탁드립니다.”
“그러지. 사실 짐도 황후한테 보드카를 압수 당해서 말이야. 주고 싶어도 못 준다네.”
또 황제에게 소환을 당했다.
미칠 것 같다. 무슨 일만 생기면 바로 황제 얼굴을 보게 되는 이 상황이 지겹고도 끔찍해.
평상시라면 이게 내 팔자려니 싶겠지만, 지금의 나는 장관직에서 일시적으로 내려온 상태지 않나. 황제의 부름에 개처럼 달려가야 하는 입장이 아니─
“백작의 애완동물이 제도에서 소란을 일으켰다더군.”
놀랍게도 달려가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 그것이.”
“아, 물론 자세한 이야기는 짐도 들었네. 소매치기범을 잡은 것이라지? 그걸 탓하려는 건 아니야.”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은 황제였지만,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온갖 걱정이 치솟았다.
“다만 아무리 정당방위여도 아무 권한이 없는 짐승들이 시민을 폭행한 것이지 않나. 그냥 넘어가기에는 곤란한 일이지.”
이윽고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차마 반론할 수 없는 완벽한 이유. 황제라면 응당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명분. 저런 말을 듣고 어찌 당당할 수 있을까.
‘귀족의 애완동물이 제도 시민을 팼다.’
이런저런 요소를 빼고 담백하게 사실만 나열하면 그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권신이 기르는 맹수가 시민을 해한 것, 역사책에서나 나올 횡포가 재현된 거야.
그 제도 시민이 소매치기범이고, 소매치기범이 먼저 애완동물의 소중한 용돈을 훔친 건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관건은 체포나 심판의 권한이 없는 활기와 인내가 사적 제재를 가한 것이니까.
“차라리 백작이 소매치기범을 제압한 거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거야. 아직 세간에서는 백작이 장관인 줄 아니까. 솔직히 감찰성 장관 앞에서 소매치기를 한다면 목이 잘려 죽어도 자연사지.”
“소매치기로 어찌 사형을…”
“말이 그렇다는 걸세, 말이.”
픽 웃음을 흘린 황제는 찻주전자를 들더니, 친히 내 앞에 있는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백작.”
“예, 폐하.”
“백작이 가진 수많은 작위와 직책 중에는 리시자리우네 기사단원의 자리도 있지. 기억하는가?”
“어찌 그것을 잊겠습니까. 소신에게는 너무도 과분하고 황송한 자리이옵니다.”
“그리고 기사는 마땅히 종자를 거느릴 수 있다네.”
그 말에 흠칫 어깨를 떨고 말았다.
너 이 새끼, 설마.
“백작의 애완동물들. 그냥 종자로 삼게. 그러면 이런 일이 다시 생겨도 명분상 아무런 문제가 없어.”
“그, 폐하. 동물을 영광스러운 리시자리우네 기사단원의 종자로 삼는 건, 과연 괜찮은 일일지…”
“리시자리우네 기사단에 관한 법률은 생각보다 느슨해서 말일세. 동물을 종자로 삼지 말라는 법은 없다네.”
그야 당연히 없겠지. 상식적으로 짐승을 종자로 삼는 미치광이가 어디 있겠냐.
유감스러운 건 그 최초의 미치광이에 내 이름이 기록되기 직전이라는 거다. 황제가 직접 이야기를 꺼냈다면 제안보다는 명령에 가까우니까.
“백작. 그것들이 종자라는 직함은 가지고 있어야 사고를 쳐도 금방 수습할 수 있어. 뭐, 일이 터질 때마다 백작이 직접 수습할 거라면 안 해도 되고.”
“…내일 안으로 종자 임명식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러게나.”
내 항복 아닌 항복에 황제는 잘 생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밉다. 나를 짐승들의 기사로 만든 황제가 밉다.
***
씁쓸한 안색으로 차를 마시는 백작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기껏 장관직도 해제해 줬는데 왜 쉬지를 못하는지. 왜 야인 신분으로도 사건의 중심에 서고 있는 것인지.
‘누가 보면 내가 의도적으로 굴리는 줄 알겠어.’
장관이 자기 애완동물들을 제도에 내보낸 것도, 제도에 나간 애완동물들이 사고를 친 것도 내 의지가 아니다.
그저 장관과 애완동물들이 스스로 자초한 일에 불과하다.
‘이것도 운명이겠지.’
장관이라는 직함에서 벗어나니 리시자리우네 기사단원이라는 직함을 활용하게 된 백작.
이쯤 되면 백작이 어디까지 고생하나 궁금할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