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4)
내가 관리해야 하는 학생은 여섯 명이다. 그 중 딱 절반은 제국인이고, 나머지 절반이 느그… 아니, 외국인이다.
제국인 학생은 방학이 되면 적당히 본인의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루이제는 나이어드 남작가, 에리히는 크라시우스 백작가, 아인테르는 황궁이라는 터전이 있으니까. 제국에 터전이 없는 외국인 학생은 조국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멀고 낯선 제국보다는 조국에서 대접받고 지내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 거기서는 손가락 하나로 부릴 수 있는 아랫놈들이 널리고 널렸다.
‘그런데 왜.’
왜 안 돌아가냐고. 방학 때 아카데미에 머물러서 뭐하려고.
물론 아카데미에 남는 학생들이 없는 건 아니다. 기숙사는 방학 중에도 운영되고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니까. 그리고 그러는 학생들은 보통 아카데미 성적에 인생이 걸린 평민이거나 어지간히 집이 먼 경우다.
저 외국 놈 셋이 아카데미 성적이 중요할까? 차라리 아카데미 다닐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이득이다. 집이 멀어? 텔레포트 마법사는 폼이냐.
“의외로군.”
옆에 있는 쿠키통으로 세 놈의 대가리를 내려치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참자, 참아야 한다. 여기서 터지면 바로 외교 분쟁에 형무성 직행이다. 내 전과 기록에 한 줄이 추가되는 건 곤란하다.
“그래도 아카데미에 남아봤자 할 일도 없으니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나.”
마음 같아서는 ‘지랄 말고 당장 꺼져!’ 라고 하고 싶지만 최대한 순화해서 말했다. 그런데 정말 아카데미에 남아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루이제도 영지에 돌아가…
아니 시발 설마.
“제가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언제 제국에 오겠습니까. 이럴 때 제국을 돌아다니며 견문을 쌓아야죠.”
류티스의 말은 혹시나 하는 내 추측에 신빙성을 실어주었다. 말은 제국을 돌아다닌다고 하지만 저 망할 것이 어디로 갈지는 뻔하다.
“학기 중에는 바쁘니 방학밖에 시간이 없더군요.”
라테르까지 합류하여 본인들이 아카데미에 머무는 당위성을 주장했다. 혼자 말해도 되는 걸 둘이 연달아 말한다고?
짰다. 이 새끼들 이미 짰다. 삼국 인사 중 하나만 남는 건 명분이 서지 않지만 셋이 전부 남는다고 하면 오히려 귀국시킬 명분이 희미해진다. 일단 류티스와 라테르는 서로 담합한 것 같고, 높은 확률로 타니안도 포함이겠지. 절대 우발적인 행동은 아니다.
‘지독한 새끼들.’
날이 갈수록 밝아지던 빌라르를 떠올리니 이 끔찍한 상황에 치가 떨렸다. 빌라르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그렇게 밝을 수 없다. 혼신을 다해서 개노답 삼인방을 설득하느라 기력이 빨렸겠지.
그리고 저것들도 그걸 알고 철저히 비밀로 하다가 방학 직전에 터뜨린 것이다. 미리 알렸다면 빌라르가 귀찮게 했을 테니까. 잔인한 새끼들…
“다들 아카데미에 머무는 거야?”
이리나와 머리를 맞대고 있던 루이제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눈은 교과서로 향했지만 귀는 이쪽으로 열려있던 모양.
“여행도 매일 다닐 수는 없을 텐데. 지루하지 않을까?”
“괜찮습니다, 자매님. 셋이나 있으니까요.”
정확히는 셋 플러스 수십이다. 호위 전력도 사람이야 이것들아.
아무튼 루이제의 말에도 단호히 대응하는 것을 보면 이것들이 귀국하지 않는 건 상수다. 하, 망할.
“다들 제국에 있으면 방학 중에 만나는 것도 괜찮겠지. 동아리 여행이라도 하게.”
긴 고민 끝에 내뱉은 말에 반응은 격렬했다. 루이제야 아무렴 상관없고, 부원들은 내가 명분을 실어준다고 하니 마냥 좋겠지. 그 모습을 보니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이게 최선이다.’
놀랍게도 정말 이게 최선이다. 어차피 셋의 제국 상주를 막지 못하면 차라리 동아리 전원이 모이는 게 편하다. 따로따로 루이제를 본다며 개인 플레이 하는 것보다는 뭉쳐있는 게 관리하기 편하니까.
“이거 어디서 만날지도 정해야겠는데.”
“느긋하게 정하자고.”
“이리나도 올래?”
“으, 응? 나도?”
부원들의 대화가 들릴 때마다 쿠키통을 조용히 쥐어잡았다. 조금 구겨지는 것 같지만 괜찮다. 어차피 학기는 끝났으니까.
동아리 시간이 끝나자마자 급하게 빌라르를 소환했다. 중요한 일이라고 하니 5분도 안 돼서 빌라르가 도착했고, 자리에 앉자마자 끔찍한 상황을 공유했다.
그리고 빌라르의 반응은 한탄도 침묵도 격노도 아닌 초월적인 무언가였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는 조용히 찻잔을 잡았다.
‘이 상황에서 웃는다고?’
빙의 전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힘들 때 우는 건 삼류고 참는 건 이류라고. 그러면 일류는 어떤 사람인가? 힘들 때 웃는 사람이다. 일류, 빌라르는 일류다. 끔찍한 현실에서 해탈한 일류가 돼버렸다.
하지만 완전한 일류에 도달하지는 못한 것 같다. 찻잔을 잡은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숙연한 마음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 걸로 했다.
“놀라운 일이군요.”
= 시발.
미소를 머금고 있던 빌라르의 첫 마디. 그 첫 마디가 무슨 의미인지는 나도 알고 빌라르도 알고 있었다. 다음 학기 책임자도 빌라르가 맡는 것과는 별개로 아무튼 귀국이 코 앞이었다. 그리운 고향과 가족을 만나기 직전이었는데 난데없이 연장 근무란다.
심지어 방학 중에 새로운 호위 전력을 개편할 예정이었는데, 귀국을 못하네? 이제 본국은 ‘왜 왕자 저하를 귀국시키지 못했냐’ 면서 까고, 옆에서는 ‘우리 왜 귀국 못하냐’ 라고 친다. 이 정도면 빌라르가 에넨을 향해 욕을 내뱉어도 에넨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예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숙연할 정도로 떨리는 손으로 차를 마신 빌라르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역시 빌라르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빌라르가 알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입 다물고 있던 거였으면 난 더 이상 사람을 믿지 못했을 거다.
“저도 의외인 일이라 조금은 당황스럽군요.”
애써 웃으며 말했지만 조금 당황스러운 게 아니다. 삼국 놈들이 아카데미에 머물면 삼국 호위 전력만 아카데미에 발이 묶이는 게 아니다. 자동으로 나도 묶인다.
‘망할.’
방학 기간에도 아카데미에 머무는 건 불가능하다. 차라리 내가 아카데미 교직원이라면 모를까, 난 감찰부장이라는 본업이 있다. 지금까지는 차장이 부장 대리로 버티고 있어서 문제가 없지만 그건 방학 때 내가 복귀한다는 전제로 버티고 있는 거다.
난 집에 가야 한다. 이번 방학 때 돌아가지 못하면 거의 1년 동안 부장이 자리를 비우게 되는 거고, 이 일이 매 방학마다 터지면 3년이나 자리를 비우게 된다. 년 단위로 최고 결정권자가 없는 부서? 미쳤냐고.
결국 빌라르와의 회담은 별 소득 없이 한숨만 내쉬다가 끝났다. 이번 문제는 우리 선에서 해결하기에 너무 큰 사안이니까. 우리한테 왕자와 성자 후보를 강제로 귀국시킬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쩝니까?”
– 뭐 그딴 일이.
그리고 아카데미에 발이 묶인 것도 내가 자력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빌라르가 가자마자 바로 장관에게 연락을 보내니 장관도 어이가 없는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감찰부(부장 없음)이라는 상태가 장기화되면 장관도 피곤해지니까.
– 정말 아카데미에 머문다고?
“지금까지 거짓말을 하는 걸 못 봤습니다.”
– 거 고귀한 분들에게 맞는 아름다운 성품이구나.
그러게. 그래도 지금 심정으로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것들이면 좋았을 것 같다.
장관도 같은 심정인지 미간을 찌푸리며 무언가 중얼거렸다. 통신구가 작은 소리는 제대로 전달 못해서 다행이다. 온갖 욕을 내뱉는 중일 것 같은데.
“일단 이번은 어떻게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래, 1년 정도는 가능하겠지. 그 후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있냐?
“그…”
아뇨, 장담 못하겠네요.
애초에 자기들끼리 담합해서 기습적으로 터뜨린 상식 외의 놈들이니 ‘그래도 이번만 그러는 거겠지’ 같은 안일한 판단은 지양해야 한다. 오히려 이번에 했으니 다음은 더 쉽게 할 놈들이다.
– 다행인 건 급한 일은 없다는 건데.
드물게 한숨을 내쉬는 장관의 모습에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여름에 감찰부가 급하게 처리할 일은 없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하반기까지 범위를 넓혀도 내가 직접 지휘해야 할 일도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 당분간은 통신구로 결재해라.
“예?”
아니 그 더럽게 비효율적인 일을.
– 어쩌겠냐. 너도 제도로 못 오고, 차장이 아카데미로 갈 수도 없는데.
“그건 그렇습니다만.”
딱히 반박할 수가 없기에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면에 비하면 당연히 비효율적이지만, 그래도 아예 관여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통신구를 통한 구두 결재가 낫긴 하니까.
– 다른 방안을 구할 때까지 그렇게 버텨.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은 껐다.
고작 발등에 붙은 불을 끈 대가로 내 머리 위에 메테오가 떨어졌다. 이번에는 타니안의 입을 통한 재앙이었다.
“제도에 가보려고 합니다.”
“…제도?”
빌라르와 1차, 장관과 2차 긴급 회의를 마친 다음날 동아리 시간, 새로운 폭탄이 터졌다.
“굳이 제도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평범하게 답한 겉과 달리 내 속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안돼, 너희가 제도로 가는 건 안돼. 거기는 진짜 안돼. 차라리 보야르를 한 번 더 가라. 제도는 안된다…!
“제도를 보지 않으면 어찌 제국을 봤다고 하겠습니까?”
“수학여행 때 갈 수도 있잖나.”
“하하, 제도를 간다고 확정된 것도 아니니 시간이 있을 때 가야죠.”
이미 제도로 정한 것 같은 단호함에 주변을 살피자 다른 부원들도 타니안을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이미 제도로 가자고 담합을 했거나, 아니면 제도로 가는 게 마음에 들거나.
“제도면 좋을 것 같아요!”
일단 후자인 것 같은 루이제는 벌써부터 기대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이것들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브레이크인 루이제도 제도에 꽂혔다.
“사람이 많아서 복잡할 텐데.”
“하하, 형제님. 놀러 가는 곳에 사람이 적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딱히 틀린 말은 아니기에 입만 몇 번 달싹이다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동아리 시간이 끝나 나 홀로 남은 동아리실.
“개새끼들…”
아직도 타들어가는 속을 달래기 위해 동아리실에 있는 물을 들이키고 있었다.
아카데미에 머물기만 한다면 내 본업에 지장이 생기는 정도다. 제국 여기저기를 여행하면 호위 전력이 피곤해지는 정도다. 여기에 더 추가해도 교장 정도가 진땀을 흘리겠지.
하지만 제도는 차원이 다르다. 외국 주요 인사가 아카데미 일정이 아닌 개인적으로 제도를 방문하면 스케일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진다.
‘시발.’
감찰부장과 아카데미 교장 같은 부장급 라인은 ‘따위’로 취급할 수 있는 라인업이 등판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