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45)
로판 속 공무원 845화(846/945)
제국 영토에서 발견된 아르메인 관련 유물은 아르메인에 인계하고, 아르메인 영토에서 발견된 제국 관련 유물은 크펠로펜에 인계한다. 이는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지는 쌍방 거래이며, 유물을 인계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 이번 셉터 사건을 계기로 급하게 맺어진 조약이다. 겉으로만 보면 양국이 고고학계를 위해 파격적인 선언을 한 것 같지만, 역대 제국 영토와 아르메인─ 혹은 그 전신이 되는 왕국들의 영토는 서로 겹친 적이 없다. 이번에 강을 타고 북쪽 바다까지 흘러간 트리카 황제의 셉터가 특이한 거지, 이 조약은 유명무실한 조약이나 마찬가지다.
헌데 분명 유명무실해야 하는 조약이, 트리카 황제의 셉터로 끝나야 할 조약이 다시 빛을 보게 생겼다.
“옛날 사람들은 수틀리면 죄다 강에 버리기라도 했나? 왜 온갖 것이 바다에서 발견되는 거지?”
아직 식지도 않은 차를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황제의 모습에 절로 숙연한 감정이 들었다. 식도가 타들어가는 것보다 속을 달래는 게 우선인 모양이다.
물론 이번 사태는 그럴만한 사태다. 한때 제국의 북부 변경백령이었던 소르덴에서 아르메인 3대 국왕의 보주가 나타났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소르덴 백작령을 관통하는 강에서 아르메인의 보주가 나왔다.
이번에 트리카의 셉터가 발견된 북쪽 바다로 이어지는 강이니, 아마 아르메인 인근 해역에서 이리저리 해류에 휩쓸리다가 강으로 역류한 모양이다. 아니면 물고기가 물어서 역주행을 했거나.
‘하필이면.’
착잡하다. 어차피 발견될 유물이라면 셉터가 소르덴, 보주가 아르메인에서 발견되면 안 됐나? 그럼 이렇게 골머리를 앓을 필요도 없이 좋잖아. 왜 서로 남의 물건을 발견한 거냐고.
‘빌어먹을 바다.’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북쪽 바다. 정확한 명칭은 ‘델레우스해’라고도 하는데, 솔직히 지금 중요한 건 이름 따위가 아니다. 셉터와 보주가 그 바다에 잠들어 있었다는 게 문제지.
이변이 한 번만 일어났다면 두 번 일어날 것이라 장담할 수 없으나, 두 번이나 일어난 이변은 세 번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셉터와 보주 말고도 다른 보물들이 인양될 수 있어.
‘북방을 장악한 여파가 이렇게 터지다니.’
다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델레우스해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계륵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바다였으니까. 보물 인양은커녕 배를 띄울 일도 극히 드물었던 흉악한 바다였으니까.
델레우스해는 아르메인 서부 전역에 걸쳐진 바다인지라, 아르메인이 델레우스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북쪽으로는 대양 무역, 남쪽으로는 제국 상륙, 서쪽으로는 북방 영역 개척을 이룰 수 있는 희대의 요충지였다.
다만 델레우스해 북쪽은 얼음이 둥둥 떠다니고, 제국 상륙은 좁은 해안선에 빼곡히 요새가 건설되어 불가능하며, 북방 영역은 유목민들이 너무나 사나워 상륙도 제대로 못 했다. 실질적으로 델레우스해는 아르메인에게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
그런 상황에서 제국이 북방을 장악하였고, 제국과 아르메인 양국이 우호 관계를 체결하였다. 이제 아르메인 입장에서는 델레우스해를 통해 제국과 적극적인 무역이 가능하게 된 상황. 그동안 방치되었던 바다에 온갖 함선들이 쏟아져 나오게 됐다.
‘망할.’
머리가 지끈거린다. 대륙이 평화로워서 생긴 문제라면 대체 어디다 하소연해야 하나.
“폐하.”
“말하게.”
“어찌하여 전대 왕국도 아닌 아르메인의 보주가 분실되었던 겁니까? 소신은 아르메인의 역사에 무지하여 어찌된 연유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까부터 의문이었던 내용을 입에 담자 황제는 침묵했다.
아니, 그런데 궁금하기는 하잖아. 아르메인보다 이전에 존재한 왕국의 보주라면 그러려니 할 텐데, 아르메인은 현시점에서도 대륙 2위로 군림 중인 강국이다. 그런 강국의 보주가 왜 아르메인 밖을 돌아다니고 있던 거지?
“…아르메인 건국 초기에 내전이 있었지. 3대 국왕의 동생이 반란을 일으켰고, 기습적인 공격에 수도를 상실한 국왕은 서쪽으로 도망쳤어.”
생각보다 심각한 비하인드 스토리라 흠칫 어깨를 떨고 말았다.
반역에 당하여 수도를 상실하고 도망친 국왕, 그 국왕이 상실한 보주. 대충 짐작 가는 스토리가 있다.
“허면 반역자의 손에 보주를 넘길 바에는 바다에 버린 것입니까?”
“정황상 그럴 걸세. 3대 국왕이 보주를 버렸다는 말은 있었지만 정확한 위치는 몰랐으니까. 아무래도 그게 바다거나 강이었던 모양이야.”
그렇게 말한 황제는 턱을 매만지더니, 빈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이게, 진짜 문제는 그 이후라네. 하필 보주를 버린 직후에 반역을 일으킨 동생이 암살됐어.”
“…예?”
“반란군은 구심점이 죽자 와해됐고, 반란군에게 짓눌렸던 각지의 근왕군은 빠르게 수도를 탈환했지. 결국 국왕은 보주만 잃고 끝난 거야.”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전개라 멍하니 입을 벌렸다.
보통 수도도 잃고, 왕의 상징인 보물을 바다에 던져버렸다면 그 말로는 정해져 있지 않나? 끝내 전사하거나 자결함으로써 몰락하는 것. 그게 보편적인 엔딩인데?
‘잠깐만.’
순간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위기에 몰렸던 3대 국왕이 다시 승리를 거머쥐고 수도에 복귀했다면,
“저, 폐하. 혹시 현 아르메인 왕가는─”
“3대 국왕의 직계일세. 조상이 잃어버린 보주를 찾았으니 아주 환장을 하겠군.”
나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이거 무조건적인 양도를 한다, 같은 조약을 맺지 않았다면 제국 외무성과 아르메인 외교부 사이에 온갖 고성이 오고 갔을 거다.
“백작. 짐은 이 일이 알려지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두렵다네. 이러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들이 북쪽 바다로 몰리지는 않을까, 조약에 해당하지 않는 제3국이 개입하지는 않을까 두려워.”
듣기만 해도 아찔해지는 말이라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 일어난 일은 세 번, 네 번, 다섯 번도 일어날 수 있는 법. 만약 이런 보물이 민간인 손이나 제3국의 손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터질까. 실로 두려운 일이다.
“하오면 폐하. 보주의 가치도 셉터처럼 떨어뜨리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셉터야 이미 망한 제국의 것인 데다 짐의 손에 들어올 물건이니 그래도 상관없었지만, 이번에 발견한 보주는 현 왕가의 보물이지 않나. 임의로 가치를 깎아내리기는 곤란하지.”
차마 부정할 수 없는 말이라 침음만 흘렸다.
그건 그렇다. 어떻게 보면 자국이 발견한 셉터도 순순히 양도한 아르메인 국왕인데, 그런 아르메인 국왕에게 ‘느그 조상이 버린 보주 찾았는데, 이것도 똥값 만들어도 괜찮지?’ 라고 하는 건 싸우자는 꼴이다. 내가 아르메인 국왕이었다면 천명대전 마려울 거야.
“최선은 아르메인이 자발적으로 보주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건데, 말로는 간단한 일이나 그게 생각대로 되겠나.”
찻잔을 입에 대려던 황제는 뒤늦게 빈 잔이라는 걸 인식했는지, 거칠게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작도 더 마시겠나?”
“예, 폐하.”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황제는 바닥을 들어 올리더니, 그 안에 있던 보드카를 두 병 꺼냈다.
미친놈아. 차가 아니라 보드카 얘기였냐고.
***
미안하오, 황후. 내가 정말 어지간하면 자제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도저히 안 마시고는 못 버틸 것 같소.
‘빌어먹을 인생.’
백작과 병째로 건배를 한 후, 단숨에 보드카를 들이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의문이다. 왜 세상은 나에게만 이리도 엄격한 건지 알 수 없다.
현명하고 자상하며 아름다운 아내를 둬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 셋이나 있어서? 어색했던 동생과 관계를 개선해서? 위대한 중흥 군주를 아비로 둔 덕에 강대한 제국을 물려받아서?
사실 신이 나에게 준 것은 많다. 결코 쉽게 얻은 것들은 아니지만, 은총을 준 만큼 시련도 준다고 하면 그럭저럭 납득할 수 있다.
‘숨 좀 쉬자.’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하다. 짧은 시간 내에 머리가 새하얘지는 시련들이 연이어 몰려오고 있다.
난데없이 트리카 제국의 셉터가 발견되어 급히 아르메인과 조약을 체결했다. 아무리 아르메인 국왕 입장에서도 트리카의 셉터는 국내 강경파를 자극하는 애물단지라지만, 기껏 발견한 트리카의 유물을 일방적으로 양도받는 조약이었다. 그 대가로 아르메인에게 적지 않은 대가를 은밀하게 전달했지.
심지어 마살로 가문에는 급히 제작한 셉터를 선물로 보내기까지 했다. 백작의 거센 항의를 각오하며, 오직 셉터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예정에 없던 예산을 투입했다.
그렇게, 그렇게 이를 악물며 권위가 뒤흔들릴 변수를, 제국의 천명에 도전할 요소를 없앴는데.
‘이제는 보주라니.’
이쯤 되면 억울하다. 유명무실한 조약이 될 것 같아서 아르메인에 대가를 준 건데, 대가는 대가대로 주고 보주는 보주대로 주게 생겼다.
게다가 아르메인이 받을 보주는 현 국왕의 직계 조상이 상실한 보물. 보주를 인계받으면 왕의 권위가 높아지면 높아졌지, 흔들릴 일은 없다.
‘이를 어찌한다.’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신이 작정하고 내린 듯한 이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는 것이 좋을까. 과연 어떤 현명한 계책으로 시련을 이겨내야 할까.
솔직한 심정으로는 보주의 가치도 셉터처럼 떨어뜨리고 싶다. 나는 셉터 때문에 온갖 고생을 했는데, 가만히 있던 아르메인 국왕이 보주 덕을 보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이참에 권위를 조정할 필요가 있어.’
물론 사적인 욕망 외에도 공적인 이유 역시 존재한다.
셉터가 발견되고, 보주가 발견됐다. 다음은 왕관이나 옥새, 혹은 옥좌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그때마다 이렇게 머리를 굴리며 조약을 체결하는 건 골치 아픈 일이지.
그러니 반드시 가치와 권위를 조정해야 한다. 반드시.
‘…일단 함구한다.’
다만 보주를 발견한 것을 밝히면 셉터와 보주를 맞교환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보주는 보주대로 주목받고, 기껏 가치를 떨어뜨리기 시작한 셉터는 ‘보주와 동급인 보물.’이라는 인식만 강해진다.
마침 류티스 왕자의 결혼식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보주는 그때 전달하자. 왕족의 경사를 기념하며 전달한다면 아르메인도 기뻐할 거다.
그리고 상대의 기분이 좋다면 협상도 용이한 법. 그 기세를 몰아 보주의 가치 조정을 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결혼식이라.’
그러고 보면 백작도 류티스 왕자의 결혼식에 참석할 것 같은데, 협상을 백작에게 맡겨볼까?
‘아니야.’
상당히 매력적인 생각이지만 금방 털어냈다.백작이 유능하기는 해도 국가 간의 외교에 능통한 편은 아니다.
또한 백작은 장관직까지 내려놓으며 휴가 동안 휴가를 즐기겠다고 천명한 상태. 그런 백작에게 협상의 협자라도 꺼내면 백작의 주먹이 날아올 수 있다.
‘외무성에게 맡기는 수밖에.’
이번 일은 전문가인 외무성 장관을 믿자. 류티스 왕자의 결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외무성 장관도 포함해서 보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