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48)
로판 속 공무원 848화(849/945)
에리히의 서식지로 첫 파견을 간 겸손은 자기 이름 그대로 겸손을 배우고 왔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어. 어찌 막 태어난 아기가 그리도 활발한 것이냐…!”
온몸을 파들파들 떨며 두려움과 원통함을 토하는 겸손.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으나 매운맛을 좀 많이 본 모양이다.
살짝 궁금하기는 하다. 자신만만하던 녀석이 저 모양이 됐다라. 로베르트에게 여러 번 깔리고, 에두아르트가 입으로 물기라도 했나?
아니야. 이제 막 태어난 아기한테 병아리를 물게 하는 건 곤란하지. 반대로 로베르트가 물고, 에두아르트가 깔아뭉갰을 확률이 높다.
‘잘 놀았나 보네.’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 한창 호기심이 넘칠 로베르트, 가만히 요람에만 누워있어야 지루할 에두아르트. 형제가 다른 의미로 심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말하는 병아리가 고개를 빳빳하게 들며 돌아다녔다. 이 얼마나 즐거운 장난감인가.
게다가 겸손을 포함한 성수들은 매우 튼튼하다. 아이들이 깔아뭉개는 건 물론, 실수로 3층이나 4층 높이에서 떨어뜨려도 멀쩡할 녀석들이다.
말도 하고 망가지지도 않고 리액션도 훌륭하며 귀여운 장난감. 이건 성인인 나도 환장할 수준인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에리히가 훌륭한 판단, 훌륭한 요청을 한 거였어.
‘큰 녀석들도 문제없겠다.’
그리고 우리 조카들이 겸손과 격렬하게 놀았다는 건 동물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뜻이다. 작은 애들을 순차적으로 보내는 건 예정대로 하되, 전부 보내면 큰 녀석들도 투입하자. 굳이 오래 뜸 들일 필요는 없다.
두근거린다. 과연 듬직한 곰, 복슬복슬한 양, 위풍당당한 말을 본 조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고생했다.”
절로 훈훈해지는 가슴 때문인지, 아직도 진동 상태인 겸손을 부드럽게 토닥여줬다.
남의 여동생을 역병이나 재앙 취급한 건 잊을 수 없으나, 조카들한테 정의 구현을 당했으니 넘어가 주자. 가족의 원한을 가족이 갚아줬다면 그보다 완벽한 결말은 없으니.
“그런데 그렇게 힘들었냐? 힘들어봤자 애 둘인데.”
겸손을 토닥이면서도 마음 깊숙한 곳에 있던 의문을 슬쩍 꺼냈다.
겸손의 기강이 잡혔으니 분명 긍정적인 결과다. 허나 과정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납득이 안 돼. 테레사와 놀아주는 것도 우리 저택에 있는 것과 비교하면 휴가처럼 여기는 녀석들이, 고작 둘을 상대로 이런다고? 에두아르트가 내 상상 이상으로 비범했던 건가?
“주인은… 주인은 모른다… 아니, 나도 몰랐으니 주인이라고 알 턱이 없지…”
내 질문에 겸손은 아까보다 더욱 씁쓸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로베르트는 그나마 괜찮았다. 나를 보니 이리저리 만지거나 입에 넣으려고는 했지만, 그 정도는 평소에도 겪던 일이니 괜찮았어.”
‘저런.’
순간 진심 어린 탄식이 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니 동정할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에두아르트는, 동생은 달랐다. 그 녀석은 테레사와 비슷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50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한 존재가 연이어 태어난 거야!”
이윽고 겸손의 진동이 거세졌다.
더 이상 상상도 하기 싫다는 것처럼. 도저히 자신의 미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처럼.
“인정할 수 없다! 이럴 수는 없어! 내가, 우리가 테레사를 어떻게 이겨냈는데! 걔가 좀 크니까 새로운 테레사가 나타나다니!”
‘미친 건가.’
진지하게 겸손의 정신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러다 부리에 거품까지 물고 쓰러지는 거 아닌가?
동시에 에리히의 미래도 심히 우려됐다. 테레사가 전성기 때는 타일글레헨 백작성을 말 그대로 뒤집어 놓았다. 비글의 활발함을 타고난 아이인데,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울음으로 승화한 아이였지. 덕분에 어머니와 유모는 물론, 사용인들도 기절 직전까지 갔었다.
그 참사를 막기 위해 나와 크라시우스 가문의 기사들은 기꺼이 등을 희생했다. 심지어 아버지까지도. 그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나서야 이겨냈던 것이 테레사의 전성기다.
그런데 테레사를 자주 본 겸손이, 어쩌면 테레사와 놀아준 횟수로는 나보다 많을 겸손이 에두아르트에게서 ‘제2의 테레사’를 보았다. 설마 그 정도까지일까 싶지만 전문가가 그렇게 증언하고 있다.
‘어쩌지 이거.’
어느새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제국백을 섬기는 가신들이 총동원되어서 겨우 달랜 게 테레사잖아. 에리히한테 그 정도 인력 동원이 가능한가?
“확실해?”
“확실하다! 내 경험, 내 안목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저 요람 속 괴물은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게 미쳤나.”
남의 조카를 괴물 취급하는 발언에 겸손을 조금 강하게 쥐었다.
정신이 나간 것 같아서 어지간한 발언은 봐주려고 했는데, 괴물은 선 넘었지 이 새끼야.
“모, 목을, 졸라도, 진시이이일… 은, 변치 않는다…!”
누가 들으면 고문 당하는 독립운동가나 참기자로 착각할 것 같은 발언.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 같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보다 나 목이 아니라 몸통 쥔 거야. 남들이 오해할 발언하지 마, 이 노랑이야.
확 빨강이로 만들어버릴라.
매일매일 다른 성수들을 보내겠다는 계약에 따라, 맛이 간 겸손 외에도 여러 성수들을 파견 보냈다.
“주인… 주인의… 가문에는… 특이한 피라도 흐르는… 거야…?”
“어떻게 동시대, 같은 가문에 저런 존재가 둘이나 태어난 거지?”
“제가 장담하는데, 지금은 그 아이도 눈치를 보는 단계입니다. 몇 주만 지나면 난리가 날 거예요.”
그리고 파견을 다녀온 모든 성수들이 일제히 같은 증언을 했다.
이쯤 되면 나도 무섭다. 이거 방치하면 에리히가 극단적인 가출을 하거나 돌연사를 할 것 같아. 에두아르트가 각성하게 되면 다시 등으로 기어다니는 생활을 해야 하나…?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에두아르트가 세라가 아닌 에리히를 닮았다는 게 확정되는 순간이다. 그냥 닮은 게 아니라 한 3배 정도 더 닮은 것 같아서 문제지.
“백작. 표정이 왜 그런가?”
이 깊은 시름이 얼굴에도 올라왔는지, 맞은편에 있던 황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폐하. 잠시 개인적인 일이 있어 고민했을 뿐입니다.”
“그런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담아두지는 말게. 짐의 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하고.”
“참으로 황송한 말씀입니다.”
황제가 아니라 그 누구에게 말한들 도움이 되지 않을 고민이지만 예의상 감사를 표했다. 아마 저놈도 의례적으로 한 말일 테니.
“그런데 백작. 개인적인 고민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민망하나, 잠시 나라의 일을 논해도 되겠나?”
그 말에 찻잔을 들고 있던 손이 흠칫 떨렸다.
이 새끼. 그냥 의례적으로 한 말이 아니었구나. 자기 양심의 가책을 덜어내려고 한 말이었어. 내가 너를 도와줄 테니 너도 나를 도와 달라는 말을 하려고.
“말씀하소서. 비록 소신이 휴직 중이어 폐하께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을 터이나, 폐하의 고민을 같이 짊어지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최대한 감정을 다듬으며 회피 기동을 시작했다.
난 휴직 중인 귀족이다. 장관직에서도 물러난 백수다. 황제가 고민을 말하면 귀로 들어줄 수는 있지만, 몸으로 이행할 생각은 없다. 그 점을 명확하게 강조했다.
“음. 듣기만 해도 든든하군. 실은 나라의 일이라고는 했지만 백작 개인의 일이라고 해도 무방해.”
“예?”
“그게 말일세.”
아주 잠시 입을 다물었던 황제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백작. 류티스 왕자의 결혼식 때 참석할 예정이지?”
“아무래도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신이 동아리 고문 시절, 연을 쌓았던 부원들의 결혼식에 전부 참석했습니다. 류티스 왕자의 결혼식에만 불참하면 드물게도 온풍이 불고 있는 양국의 관계가 어색해지겠지요.”
“과연. 백작은 실로 제국의 충신이로군. 나라의 일을 이리도 생각해 주다니 말이야.”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황제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고,
“아르메인에 가게 되면 검묘에서 하늘 좀 베어주게.”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말을 내뱉었다.
“…폐하. 혹시 아르메인과 전쟁을 벌이실 생각이십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다. 남의 나라에서 하늘을 베라는 것도 기이한 명인데, 다른 곳도 아니고 검묘에서 베라고?아르메인에서 검묘가 가지는 의미를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검묘는 아르메인의 자존심이며 긍지이자 상징이다. 그곳에 꽂힌 무수한 검들은 아르메인의 역사를 상징한다. 과장을 좀 보태면 아르메인의 의회 겸 국립묘지 겸 대성당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곳. 그곳이 검묘다.
“짐이 미쳤나. 짐은 가능하다면 짐의 치세 때 전쟁이 없었으면 하는 사람일세.”
다행스럽게도 내 반문에 황제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더더욱 의문이다. 전쟁을 원하지 않으면서 왜 그딴 짓을.
“검묘에서 하늘을 가르는 건 아르메인의 요청이었네.”
“예?”
“검묘에 잠든 위대한 조상들의 넋에게 대륙 제일 검의 위용을 보여주고 싶다더군. 검을 쥔 무인이 최종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 과거의 무인들은 감히 꿈에도 꾸지 못한 경지를 보여주고 싶다─ 라는 것이 아르메인 국왕의 청이었어.”
친절한 설명에 이마를 짚고 말았다.
이 검에 미친 것들. 기어코 검에 환장하는 본능 때문에 조상들의 안식까지 깨우는 거냐.
‘오히려 좋아하려나?’
생각해 보면 저 미친 것들의 조상이다. 오히려 검에 환장하는 본능이 짙으면 짙었지, 덜할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저승에서 하늘이 갈라지는 걸 보고 기뻐할 수도 있다. 만약 저승이 천상이라면 더 가까이서 직관하는 것이니, 감동의 눈물까지 흘릴지도 모른다.
“하필 유물 인계 조약을 체결하는 조건으로 그걸 부탁해서 말이야. 차마 거절할 수도 없더군.”
셉터를 사실상 무상으로 넘긴 대가가 하늘 베기라니. 참 아르메인답다는 생각이 들…
…
?
“폐하. 소신은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만.”
“그, 미안하네. 짐도 어지간하면 그런 대가는 피하고 싶었는데, 아르메인이 워낙 완강했어.”
드물게도 바로 사과를 하는 황제.
그래, 그렇다면 이해한다. 셉터가 아르메인 손에 들려있다면 무슨 일이 터질지 장담할 수 없으니, 어떻게든 수거가 우선이었겠지.
“셉터가 발견된 이후로 폐하를 뵌 것은 여러 번 있지 않았습니까?”
다만 그 조약의 내막을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는가. 왜 이제야 말했는가가 의문이다.
“그게 말일세.”
내 추궁에 황제는 머쓱히 입꼬리를 올렸다.
“사실 조약이 완전히 확정되면 알려주려고 했는데, 하필 그날 보주가 발견되었지 뭔가. 정신이 없어서 말을 못 했다네.”
단순히 까먹었다는 말에 침통히 눈을 감고 말았다.
잊을 게 따로 잊지. 남의 나라의 성지에서 하늘을 베는 걸 까먹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