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5)
국력 2위 국가의 3왕자, 국력 3위 국가의 2왕자, 대륙 주류 종교 차기 성자. 이 가슴이 절로 웅장해지는 멤버가 제도에 방문한다면 생길 여파는 어마어마하다.
차라리 수학여행으로 방문한 거면 ‘학생 중 일부’ 라는 포지션이기에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치안은 각별히 살피겠지만 제국이 직접 환영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아카데미 일정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온다? 그러면 제국도 그에 맞는 의전을 준비해야 한다.
왕실 인사의 방문을 아랫사람이 맞이하는 건 외교적 결례다. 제 아무리 공작, 장관, 원수 같은 권력자들이라도 엄연히 신하에 불과하니. 그러니 황실 인사가 나서야 한다.
‘황태자밖에 없잖아.’
이런 일에 존귀한 황제가 직접 나설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자식들이 나서야 하는데, 지옥에 있는 2황자를 부활시킬 수는 없고 이제 와서 3황자에게 실권을 줄 수도 없으니 황태자만 남는다.
그리고 황태자가 나서면 황실 업무를 담당하는 궁내성이 빠질 수 없다. 궁내성 장관도 이번 일에 참가하게 된다.
궁내성이 움직여야 할 일이면 특무성도 따라간다. 특무성 장관도 이번 일에 참가하게 된다. 황실 인사가 맞이해야 한다는 이유로 벌써 황태자와 장관 둘이 엮였다.
‘또 뭐가 있더라.’
막막한 심정에 미간을 짚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외국 왕실 인사 접견이 황태자가 어슬렁어슬렁 나가서 맞이한다고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구르는 존재들이 있다.
우선 당연히 외무성 장관이 엮인다.
전례와 법적 문제를 살펴야 하기에 사법성 장관이 엮인다.
제국 영토와 도로를 이용할 것이기에 국토성 장관이 엮인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내무성 장관이 엮인다.
호위군과 군악대 등이 끌려올 예정이기에 전쟁성 장관이 엮인다.
이 모든 것이 돈이기에 재무성 장관이 엮인다.
마지막으로 제도 아우스엔의 시장도 엮인다. 물론 이 양반도 장관급 인사로 취급된다.
그리고 난 제과 동아리가 제도에 방문한다는 소식을 행정부에 전해서 방금 떠올린 10명의 인사를 움직이게 해야 한다. 너무 즐거운 일인 걸.
‘머리부터 떨어지면 가능할까.’
문득 창 밖을 바라보게 됐다.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머리부터 떨어지면 기절하지 않을까? 한 두 달 정도만 잠들었다가 일어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이 기가 막힌 상황에 갑자기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아, 빌라르가 이런 기분이었구나. 힘들 때 웃으면 일류는 무슨, 웃지라도 않으면 정신이 나갈 것 같다.
‘돌아버리겠네.’
황태자, 장관 여덟, 장관에 준하는 인사 하나. 이제 난 그 사이에 끼어 신나게 두들겨 맞아야 한다.
오늘만큼 장관에게 연락을 하는 게 두려운 적이 있었을까.
– 뭔 개소리야!
꿈에 나올까 시끄러운 장관의 정당한 분노가 통신구를 통해 내 귀에 꽂혔다. 하루 만에 연락을 걸어서 무슨 일인가 싶었던 장관은 상황을 듣자마자 온갖 육두문자와 우렁찬 외침을 시도했다.
물론 눈이 뒤집힐 일이기는 하다. 내가 과장에게 이런 소식을 들었다면 똑같았겠지. 그러니 겸허하게 고막을 희생하며 장관의 잔소리를 듣고 있는 거고.
차라리 재무성 수준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면 귀찮고 짜증나더라도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재무성 장관도 일개 참여자에 불과할 정도로 스케일이 커졌다.
– 너 이,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한 거야!
“아니, 왜 저한테 그럽니까! 저도 오늘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책임을 묻는 것 같은 발언에는 울컥해버렸다. 이건 정말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다. 내가 걔들한테 제도로 오라고 유도한 거면 모가지가 잘려도 할 말 없는 미친 새끼가 맞지만, 난 아직 미치지 않은 선량한 피해자에 불과하다.
“지들이 오겠다는 걸 제가 어떻게 막습니까!”
애초에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이 대륙에는 고약한 기조가 뿌리 깊게 박혀있다. 공무원은 높으신 분들의 수족에 불과하다는 것. 높으신 분이 하고 싶은 걸 이루는 존재, 가고 싶은 곳에 따라가는 존재. 그저 아바타나 그림자 같은 존재다.
아무리 마음씨 좋은 사람이라도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가는데 ‘오늘도 수고했어 내 다리야.’ 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유감스럽게도 공무원이 딱 그 다리 수준이다. 내가 그렇고, 장관도 그렇고, 빌라르도 그렇다.
왕족께서 어디를 가시려는데 일개 다리 주제에 ‘나 거기 가기 싫은데.’ 라고 한다? 있을 수 없지, 개같은 거.
– 그건 그렇지.
내 진심 가득한 항변에 장관도 할 말이 없는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 미안하다, 너무 어이가 없는 일이라.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오죽하면 그 장관이 소리친 것에 대해 사과까지 하겠냐. 정말 이해할 수 있으니 원망은 안 하겠다만.
– 장관 여덟이라, 설마 여름에 장관회의를 하게 될 줄은.
실소를 흘리는 장관에게 그래도 진짜 장관회의처럼 장관 전원이 모인 건 아니지 않습니까, 라는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지금 상황에서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미친 도발이니까.
– 우선 궁내부 장관에게는 내가 말할 테니 대기해라.
“알겠습니다.”
윗쪽에 대신 알리겠다는 장관의 말에 안심했다. 그래도 장관과는 평소 투닥이면서 쌓인 정 때문에라도 부담 없이 연락을 걸 수 있는데, 궁내성 장관은 아직 어색하니까. 아마 그 양반과 친해지는 것보다 궁내성 장관이 바뀌는 게 더 빠를 거다.
– 당장 오는 건 아니지?
“예, 방학 중으로만 정했지 아직 시간 조율도 안 했습니다.”
– 그나마 다행이군.
너무 매운맛 재앙을 당해서 그런지 어지간한 일은 다행이라 여길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딱히 반가운 소식은 아니네.
– 최대한 빠르게 진행할 테니 통신구 계속 붙들고 있어라.
“염려마십쇼.”
만약 내 윗사람들끼리 조율이 끝났는데 정작 부장 나부랭이가 연락을 제때 못 받으면 괘씸죄가 하늘을 뚫게 된다. 그건 상상만 해도 두려운 일.
그래도 어디 부장회의도 아니고 미니 장관회의나 다름없는 구성이다. 빨라도 닷새는 걸려야 윤곽이 잡히겠지.
‘그때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으면.’
그리고 놀랍게도 5시간도 지나지 않아 통신구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니 일이 일어날 시간도 주지 않고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 감찰부장. 자네가 준비한 선물은 막 받았다네.
“…….”
심지어 연락을 건 것은 아인테르와 같은 금발에 보라색 눈,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확연히 다른 청년.
– 요즘 업무로 바쁜 건 어찌 알고 이런 재미난 소식을 준비했나. 너무 즐거워서 몇 번이나 웃었는지.
궁내부 장관을 끼지 않고 황태자가 직접 연락을 걸었다.
“송구하옵…”
– 아, 그런 말은 말게. 내가 친우의 선물에 정색할 정도로 재미없는 사람은 아니야.
통신구를 통해 보이는 황태자의 입은 유쾌한 웃음소리를 내는 반면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 선물 정말 잘 받았네.
=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이딴 똥을 투척해?
지금은 일이 터진 것에 대한 책임이 아닌 일을 수습해야 하는 단계니 뭐라 탓하지는 않았지만, 눈으로는 살벌한 욕을 내뱉고 있었다. 시발,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랬냐고.
“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더 나은 것을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전하께옵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몇 번을 사죄드려도 부족한 일이나, 그리 생각해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 내 잘못 아님. 대처가 불가능할 정도로 갑자기 터진 일임. 꼬우면 자르시든가.
– 하하, 역시 감찰부장의 충정은 언제나 기껍군.
= 개새끼가. 그래, 넘어가 준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격렬한 속내도 빠르게 오고 갔다. 나는 황태자에게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황태자도 나에게 날릴 수 있는 것이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욕을 담은 안부 인사만 건네는 것이 최선이었다.
애초에 황태자도 질책을 위해 건 연락은 아닐 거다. 아카데미에서 아인테르를 감시하고 있을 놈이 갑자기 부원들과 우르르 제도로 온다고 하니 뭔가 싶었겠지. 바쁜데 이상한 업무를 던진 거에 대해서는 진짜 언짢은 것 같지만.
– 의외인 선물이라 더 즐거웠다네. 인생이 예상한 대로만 흐르면 지루하지 않겠나.
롤러코스터 같은 다이나믹 인생의 산증인이 말하니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 즐거움은 같이 나눠야지. 곧 아카데미도 방학이던가?
“예, 그렇습니다.”
– 방학식이 끝나면 제도로 오게.
소환 명령이 떨어졌다. 사실 장관들이 알아서 으쌰으쌰 처리하기를 은근히 바라기는 했지만, 역시 부질없는 희망이었다.
하긴 이 기괴한 소식을 행정부에 날린 당사자가 회의에 불참하면 더 이상하긴 하지. 내가 거기 가서 할 말이 없다고 쳐도 당사자의 얼굴을 보며 분노를 다지기 위해서 꼭 데려오라 주장할 양반이 몇 있다.
“알겠습니다, 전하.”
– 그래, 그러면 그때 보도록 하지.
빛을 잃은 통신구를 멍하니 바라봤다. 아카데미에 발이 묶이지 않고 제도로 가고 싶기는 했지만 이렇게 가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방학식까지 남은 아주 찰나의 시간. 혹시라도 그 찰나에 녀석들의 생각이 바뀌지는 않을까 몇 번이나 떠봤다.
만약 제도로 간다는 생각이 바뀌면 바로 행정부에 소식을 날리면 되니까. 이미 회의 날짜도 잡혀서 ‘장관 가지고 노냐?’ 라는 말은 나올 수 있지만, 정작 그 양반들도 회의가 취소된다고 하면 탭댄스를 추며 퇴근할 사람들이다.
하지만 기대를 하니 실망을 하는 법이다.
“당분간은 다 아카데미에 머무는 건가?”
“네. 짐 빼는 것도 오래 걸려서요.”
“그러면 그동안 일정 세우면 되겠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제도 여행 계획이 취소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언제 제도로 갈 지 일정을 세우자는 말이나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무우-려 황태자가 친히 보내준 텔레포트 마법사와 함께 궁내성 청사 앞에 떨어졌다.
이 앞, 윗사람 10명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