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55)
로판 속 공무원 855화(856/945)
제국군의 명목상 수장은 총사령관이다. 허나 총사령관직은 황제가 자동으로 겸하는 직책이니, 실질적인 수장은 부사령관인 전승공이다.
그리고 전승공이 부사령관의 자리를 지킨 것도 제법 오랜 기간이 지났다. 첫째 장인어른이 동부 왕국들을 쥐어 패던 시절에는 전승공도 많고 많은 지휘관 중 하나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부사령관이 된 전승공은 군부의 상징으로 군림했지.
제국군의 상위 기관인 전쟁성 장관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부사령관. 백만 제국군의 존경과 경외를 받는 부사령관. 두 차례의 북방 전쟁에서 승리하여 황실과 제국에 영광을 바친 부사령관.
그런 부사령관의 은퇴는 서른도 안 된 애송이가 감히 논할 주제가 아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전승공은 군인으로서 활약했고, 내가 관료가 되기 전부터 부사령관으로서 활약했으니.
“각하께서 남긴 위업은 만인이 기억하고, 그 의지는 후임 부사령관들이 소중히 이어나갈 것입니다.”
그렇기에 겨우 입을 열며 의례적인─ 동시에 진심이 담긴 격려를 건넸다.
뻔한 말이지만 전승공은 실제로 어마어마한 위업을 남겼다. 누가 후임 부사령관이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제국군의 고위 지휘관과 참모들은 전승공을 깊이 존경하고 있다. 전승공이 남긴 유지가 있다면 애지중지할 정도로.
그러니 전승공은 백수가 될지언정 잊힌 존재가 되지는 않을 거다. 군부의 수장으로 군림할 수는 없어도, 원로로서 온갖 존경을 받을 터.
“칼 군의 말처럼 된다면 더 바랄 것도 없겠지. 인간의 삶은 유한하나, 만인의 기억과 기록 속에 영원토록 남는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을까.”
“조만간 엘프 주거 지구로 갈 예정인데, 그때 각하의 업적을 열렬히 홍보하고 오겠습니다.”
“하하! 이거 참, 확실히 엘프들이 내 이름을 안다면 천년은 가겠어!”
내 농담이 취향을 저격한 듯 전승공은 한참이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서 할 말은 아니네만. 당장 물러난다는 건 아니야.”
“예?”
“조금 서운하다네. 이거 칼 군, 속으로는 내가 빨리 물러나기를 바란 거 아닌가?”
“아, 아니, 그건…!”
“농담일세. 누가 들어도 당장 물러난다고 생각할 만큼 말하기는 했지. 오해하는 게 당연해.”
흡족함을 담아 고개를 끄덕이는 전승공의 모습에 쓴웃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전승공은 은퇴를 고려 중이라고 했지, 당장 사직서를 내러 간다고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부사령관이라는 직책이 며칠 만에 뚝딱 교체될 자리도 아니지 않나.
첫째 장인어른은 직책이 아니라 작위를 광속으로 넘겼지만, 그건 장인어른이 년 단위로 은퇴를 준비 중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미 장인어른의 실권 상당수가 형님 손에 있었기 때문이지.
‘아직 실권을 쥐고 있으면 물러나는 것도 일이다.’
반면 전승공은 어제까지도, 이 순간에도 실권을 손에 쥔 관료다. 차라리 부사령관직에 법적인 임기나 관례적인 임기가 있다면 모를까, 그런 게 없다면 실권자가 빠르게 교체되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은퇴를 각오했기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하려고 하네.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만나러 시간도 쓰고, 내가 꿈꿔왔던 이상향을 만들기도 하고.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상향…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상향. 오히려 은퇴를 앞둔 말년 관료기에 가능한 일을 준비 중일세.”
그렇게 말한 전승공의 표정은 급속도로 밝아졌다. 눈도 전승공의 나이를 잠시 잊게 만들 정도로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호기심이 솟구쳤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 불리는 공작이 꿈꾸던 이상향. 지금까지 시도하지 못하였고, 은퇴를 각오한 시점에서야 겨우 이루고자 하는 이상향은 무엇일까. 대체 어떤 그림을 그리길래 그 전승공이 아이처럼 기뻐하는 걸까.
“괜찮으시다면 각하께서 꿈꾸시는 이상향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전승공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군인들을 위한 아카데미. 그게 내 이상향이야.”
“…아카데미요?”
이윽고 전승공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군문을 꿈꾸는 청년들을 위하여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 단순히 제국 아카데미에서 넓고 얕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군에 대하여 좁고 깊게 배우는 장소. 나는 그런 장소를 원한다네.”
요약하면 평범한 종합 대학이 아닌 사관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말. 덕분에 얼떨떨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게 있다면 좋기는 좋을 거다. 현재는 아카데미 졸업생 중 무에 관심이 많은 졸업생들이 군부의 문을 두드리는 형식이나, 솔직히 썩 효율적인 방식은 아니다. 군인 희망자의 숫자도 매년 들쑥날쑥하고, 평범한 졸업생보다 나을 뿐이지 당장 군인으로 굴리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으니까.
물론 뉴비는 언제나 환영이기에 제국군에서는 군부의 문을 두드린 자들을 정성 들여 육성 중이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런 상황에서 아예 전문적인 사관학교를 설립한다? 매년 졸업생의 숫자가 일정하고, 3년 동안 군인으로서의 지식을 습득한 사람들이 몰려와?
‘있으면 좋지.’
국익과 군사력 향상에 보탬이 되느냐 아니냐를 따지면 당연히 전자다. 과장 좀 보태면 사관학교의 등장으로 인해 인재풀이 2배, 3배 이상으로 넓어질 수 있다.
성공적으로 건설만 된다면 말이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만약 제국에 이미 사관학교 역할을 하는 곳이 있고, 그 학교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겠다는 거면 웃는 얼굴로 응원할 수 있다. 전승공의 위엄과 황실의 지지만 있다면 개혁 정도는 순식간에 처리가 가능할 테니까.
허나 허허벌판에서 사관학교를 만든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까지 없던 개념을 새롭게 만드는 건 권위와 공감대 형성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나는 빙의 전, 사관학교라는 존재가 당연한 세상에서 살기는 했는데… 사관학교에 다니기는커녕 근처에도 간 적이 없으니 별 의미는 없다. 사관학교 정문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
“과연 상상만 해도 아름다운 이상향입니다. 마지막까지 제국과 군을 위해 위대한 의지를 남기시니, 어찌 감탄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일단은 전승공의 뜻을 응원해 줬다.
말하는 걸 보니 사관학교 건립은 전승공의 오랜 꿈이었던 모양인데, 그런 꿈을 어찌 ‘그거 안 될 것 같은데요?’ 라는 말로 무시하겠나. 게다가 내가 떠올린 문제점을 전승공이라고 모를 리는 없다.
사관학교를 만들 자신이 있기에, 설령 어딘가 이상하더라도 자신이 첫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나아가려는 거겠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고난은 자신이 짊어지고, 유를 바꿔나가는 건 후임들에게 맡기기 위해.
“혹시 제가 각하를 도울 일이 있겠습니까?”
“음?”
내 제안에 전승공은 예상치 못한 말이라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괜찮다네. 칼 군은 장관직에서도 내려오지 않았나. 휴가를 온전히 즐겨야 할 사람에게 일을 맡기다니, 그건 안 될 일이지.”
그러고는 작게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 말로 인해 내 마음속 투지가 불타올랐다. 안 그래도 전승공의 일이라면 바빠도 돕는 것이 도리인데, 상대가 저런 말까지 하면 돕고자 하는 의지가 더욱 강렬해질 수밖에 없다.마침 전승공의 말처럼 장관직에서도 내려온 상황이라 돕고자 한다면 작정하고 도울 수 있고.
‘휴가를 온전히 즐겨야 한다라.’
전승공의 말에 감동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황궁에 있을 어떤 누렁이는 휴가 중에도 일을 시켰는데, 전승공은 내 휴식을 배려해서 거절하다니.
그래, 이게 인격자지. 이게 성인이야.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휴가고 나발이고 내가 먼저 나서서 돕고 싶어진다. 황제 그 새끼는 그걸 몰라.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제가 비록 관료로서는 휴가 중이나, 제국을 위해 헌신하는 귀족인 건 변치 않습니다. 또한 오랜 전우가 원대한 꿈을 꾸고 있는데 어찌 외면하겠습니까. 각하께서도 저에게 오랜 꿈이 있다면 바로 손을 보태실 거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니 반박할 수가 없군.”
픽 웃음을 흘린 전승공을 향해 나도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도 휴가 중에 일을 떠안게 되었지만, 딱히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전승공에게 받은 배려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지.
전승공은 유유히 총사령부로 복귀했다.
나와 달리 전승공은 휴가 중인 것도 아니고, 겨우 시간을 내서 저택까지 방문한 거니까. 사관학교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논하도록 했다.
“장인어른께서 퇴직을?”
“예, 폐하. 이미 마음을 굳힌 듯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황제에게 방문하여 어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뭔가 고자질쟁이가 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제국군 부사령관이 은퇴를 결심했다는 건 황제로서 꼭 알아야 할 일이니까.
당연히 전승공이 때가 되면 말해주겠다만, 이런 건 하루라도 먼저 아는 게 좋─
“곤란한 일이로군.”
‘응?’
황제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단순히 장인의 은퇴를 아쉬워한다거나, 오랜 기간 제국군을 이끈 명장의 퇴장을 안타까워하는 수준이 아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을 목격한 사람의 반응이었다.
“백작.”
“예, 폐하. 말씀하소서.”
“백작이 좀… 말려줄 수 있겠나? 짐도 장인어른을 최대한 만류할 예정이네만, 짐이 말리면 군주로서 의례적인 절차라 오해하실 수도 있어.”
그 말에 절로 고개가 기울어졌다.
‘왜?’
왜 이렇게 간절한 모습이지? 나도 전승공의 퇴직이 안타깝기는 하나, 황실과 제국의 안정을 생각하면 이게 맞지 않나?
군권을 쥐고 있는 황제의 장인 겸 차기 황제의 외조부. 이건 아무리 전승공이 충성심 넘쳐도, 다른 귀족들이 괜한 마음을 품거나 오해할 가능성이 크니까.
“짐도 장인어른의 뜻에는 감사할 따름일세. 어떤 심정으로 그런 결단을 내렸는지도 잘 알고.”
“하오면 어째서…”
“백작. 군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나?”
“모릅니다.”
뜬금없는 질문이라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종군 경험도 있고, 전승공과의 연도 있고, 한때 군부로 이직할 뻔한 적도 있어서 제국군의 체계나 주요 인물들은 그럭저럭 알지만, 그렇다고 내부 사정에 능통한 건 아니다.
“그런가? 조금 의외로군. 백작이라면 군부의 사정에 능통할 줄 알았는데.”
황제의 반응에 울컥하고 말았다.
이 새끼야. 네가 나를 감찰부장으로 2단계 승진만 안 시켰어도 난 군부로 이직했어. 누구보다 군부 사정에 능통할 당사자가 됐을 거라고.
“뭐, 행정부 소속인 백작이 모르는 건 당연하지만.”
황제도 뒤늦게 그 점을 인지했는지, 어색한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망할 새끼. 나한테는 관운이 뒤바뀐 역사적 순간이었거늘. 너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이었구나.
“군부는 지휘관들과 참모의 대립이 심한 편이라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솟구치는 분노를 억눌렀다.
“제법 역사 깊은 대립이라 아주 골치가 아파.”
황제의 말처럼 상당히 골치 아픈 주제였으니까.
Z2dKbDJFSCtSbEo3WFlpUEN0eDQxZmRQcm5aR3ZiMUppRDVCaC9ORW5xNGlKRXdiRDRzUUFobWNpNTNqOGlDU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