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56)
로판 속 공무원 856화(857/945)
전쟁성 휘하의 ‘부’급 부서는 총 5개다. 제국군을 포함하여 6개라고 취급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튼 부라고 이름 붙은 부서는 5개가 맞다.
육군을 담당하는 육군부, 해군을 담당하는 해군부, 기사와 마법사 같은 특수 전력을 관리하는 특수부, 전사자와 부상자, 참전 장병에 대한 보상 등이 이루어지는 보훈부.
마지막으로 전쟁성 내에서 가장 최근에 생긴 부서이자─ 황제가 말한 지휘관-참모 대립의 상징인 참모부까지.
‘지휘관과 참모의 대립이라.’
내가 군부 내부 사정에 능통한 건 아니나, 황제의 말을 듣고 나니 바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건 군부의 현 상황이지 역사가 아니니까.
본래 제국, 더 나아가 대륙의 모든 국가들은 현장에 나간 지휘관의 판단과 능력을 신뢰하는 편이다. 중앙에서 이래라저래라 간섭을 하면 이길 전투도 망하는 법이고, 아무리 군주가 신성해도 백전노장보다 군사적 지식이 뛰어날 수는 없지 않나.
그렇기에 군부의 꽃이자 상징은 지휘관이었다. 직접 전장에 나서서 병사들을 지휘하고, 능력을 인정받으면 전선 하나를 아우르는 사령관이 되고, 정치력도 출중하면 군부의 수장이 된다. 이는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지휘관의 출세 루트다.
헌데 제국에서는 약 100년 전부터 이 정석적인 루트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지휘관의 독점이 무너졌지.’
군부의 상징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지휘관. 출세하려면 당연히 밟아야 하는 꽃길. 이 불변의 상식이자 진리는 리브노만 황실의 환상적인 암군 라인이 등장하면서 흔들렸다.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어처구니없었다. 암군들이 군부에 자기 사람을 꽂아 넣고 싶어서 없던 참모직도 만들고, 지휘관의 시녀나 마찬가지였던 기존 참모직의 권위를 미친 듯이 올렸다.
굳이 지휘관에 꽂지 않고 참모에 꽂은 이유도 간단하다. 지휘관 자리는 이미 만석이라 넣을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기존 지휘관을 쫓아내고 자기 사람을 꽂기에는 암군 놈들에게 그럴 강단이 없었으니까.
‘애초에 군부 장악이 아니라 지인을 위한 수작이었으니 당연한 일인가?’
만약 그 암군들이 나름의 대의를 가지고, 황실과 제국을 위해 군부를 장악하고자 한 거였다면 기존 지휘관을 가차 없이 처리했을 거다. 자신의 사람을 새로운 지휘관으로 내려보내고, 군권을 더욱 강력하게 쥐었을 거다.
허나 암군들은 그러지 않았다. 대의 따위 없이 자신의 친구, 부하에게 그럴싸한 감투를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군부와 싸우고 싶지는 않았겠지.
그렇게 제국 군부는 박힌 돌인 지휘관과 굴러 들어온 돌인 참모의 공존이 이루어졌고,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놀랍게도 암군의 헛발질은 크리티컬을 터뜨렸다.
현장에서 병사들을 지휘하고 그때그때 적절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지휘관과 달리, 참모들은 모든 정보를 종합하여 보다 넓고 깊은 판단을 내렸다. 도리어 한 걸음 뒤에 있기에 볼 수 있는 것들을 보게 됐다.
암군의 친구 놀이로 인한 참모의 권한 상승이 제국군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진 기묘한 상황. 덕분에 암군 라인의 잔재를 정리한 상황도 참모부는 건드리지 않았다. 원인은 이상하지만 결과는 확실했으니.
“시작부터 좋지 않은 이유로 공존하게 되었고, 참모의 역할은 시간이 지날수록 부각되었지. 그런 식으로 이어져 온 대립이니 사이가 좋을 리가 있겠나.”
작게 한숨을 내쉰 황제는 뒷목을 매만졌다.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지친다는 것처럼.
이해한다. 군부 이직이 실패한 나조차 지휘관과 참모의 대립은 익히 알고 있었다. 단순히 단체 내 파벌 다툼이라고 하기에는 역사가 깊고, 원인도 괴랄한 일이니 모를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립은 희미해지지 않고 짙어지기만 했다.
‘대립이 끝날 뻔한 적도 있었지만.’
사실 첫째 장인어른이 동부 왕국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을 때, 당시 장인어른은 이상적인 지휘관 그 자체였다. 일신의 무력과 지휘력으로 적들의 대가리를 깨부쉈으니 지휘관들이 보기에 얼마나 감동적이었겠나.
덕분에 지휘관들이 다시 참모들 위에 군림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었다. 참모가 백 명이 있어도 유능한 지휘관 하나가 등장하면 전쟁을 뒤엎을 수 있는데, 앉아서 대가리만 굴리는 참모가 어딜 감히 지휘관님들과 겸상하느냐는 논리가 나왔다.
그렇게 군부 내부의 대립은 지휘관의 승리로 끝나는가 싶었으나, 부사령관으로 등극한 전승공이 참모들을 은근히 밀어주더라. 전승공이 보기에는 참모의 유용성이 확실하니, 참모가 지휘관의 시녀로 복귀하는 걸 막았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반발이 터졌겠지만 어쩌겠나.
‘공작이 까라면 까야지.’
심지어 전승공은 정석적인 지휘관 루트를 밟으며 승진한 성골 지휘관이었다. 지휘관들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어도 표출할 수 없는 상대였다.
어떻게 자신들의 선배이자 우상이나 마찬가지인 전승공의 결정에 반발하겠나. 그것도 상명하복이 미덕인 군인들이.
그래도 그 대립이 쭉 이어졌다면 결국 터졌을 수 있으나,
“영원한 푸른 하늘의 이름으로! 초원의 영혼을 불사르라!”
카간이 등장하며 지휘관들과 참모들의 대립은 강제 서비스 종료되었다. 대립 같은 것도 여유가 있을 때, 목숨이 붙어 있을 때나 하는 거잖아. 당장 뒤지게 생겼는데 같은 편끼리 싸울 여유가 어디 있어.
그로 인해 지휘관-참모의 대립이 일시 중단되고, 카간이라는 괴물을 상대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나름 관계가 회복되기도 했다. 제국의 천명을 누구보다 위협한 카간이 제국군의 안정성은 굳건하게 만들다니. 이 얼마나 기괴한 일인가.
물론 어디까지나 과거에 비해 회복된 수준이었다. 100년이나 이어진 대립은 카간조차 완전히 없앨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지금은 장인어른의 권위에 모두가 수긍하고 있어서 잠잠한 것일세. 지휘관들은 자신들의 선배인 장인어른을, 참모들은 자신들을 밀어준 장인어른을 존중하여 침묵하는 것이지.”
그 뒤에 이어질 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전승공이라는 억제기가 사라지면 제국군은 다시금 신나는 내분에 돌입할 터. 황제 입장에서는 치가 떨릴 일이다.
최대한 행복회로를 돌리면 전승공의 후임자도 지휘관과 참모들의 존경을 받고, 두 세력을 적절하게 아우르는 거지만… 글쎄. 솔직히 전승공 말고 누가 그런 위업을 이룰 수 있을까.
황제의 장인이라는 직함, 공작이라는 작위, 군인으로서 세운 공훈 등. 말 그대로 모든 걸 가진 전승공이다. 대체 누가 후임으로 와야 전승공의 공백을 채울 수 있을까. 이건 하블렘 공작령에 있을 에발트 공자가 와도 안 된다.
“차라리 그때 군부로 보냈더라면…”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그냥 혼잣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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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은 말이 들려 되묻자 황제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하필 내 앞에서, 하필 전승공의 은퇴를 논하는 상황에서 군부로 보내느니 마느니 같은 말이 나온다? 이거 누가 봐도 나를 두고 하는 말이잖아. 내가 감찰부장으로 승진한 게 아니라 군부로 갔다면 전승공의 후임으로 삼았을 거라는 말.
‘미친 새끼인가.’
아무리 오지 않을 미래라지만 끔찍한 발언이다. 20대 장관은 적어도 ‘내 위에 더 높은 장관 많음.’ 이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지, 20대 부사령관은 선 넘었잖아. 다른 사령관들이나 군단장들이 잘도 따르겠다.
“아무튼 백작.”
“…예, 하명하소서.”
“군인을 위한 아카데미가 생긴다면 국익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은 자명하네. 이는 황제로서 부정할 수 없어.”
“실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다만 그것이 장인어른의 마지막 업적이 되는 건 곤란해.”
진심이 가득한 말이라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만큼은 나와 황제의 마음이 통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전승공의 은퇴가 황실과 제국을 위한 결단이라 생각했는데, 아직은 유임이 국익을 위한 길이었다. 전승공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군부가 터질 수도 있다.
그러니 최소 5년, 어쩌면 10년 정도는 더 전승공이 버텨야 한다. 그 정도는 지나야 답이 보일 거야.
“저, 헌데 폐하.”
“왜 그러나?”
“전승공을 만류하는 것과 별개로, 군인을 위한 아카데미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허허벌판에서 교육 기관을 새롭게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내 말에 황제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건 교육성 장관과 전쟁성 장관이 생각할 일이지.”
바로 납득했다.
***
테레사와 놀아주던 중, 의외의 인물에게서 연락이 왔다.
– 갑작스레 연락하여 미안하네. 혹시 바쁜데 방해한 건 아닌가?
“아닙니다, 각하. 자식에게 일을 떠넘기고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놈일진대, 어찌 바쁠 일이 있겠습니까.”
칼과 에리히의 결혼식, 신년하례식 때나 인사를 나누는 전승공 각하께서 연락을 주셨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테레사를 부인에게 맡긴 후, 슬며시 자리를 옮겼다. 공작의 갑작스러운 연락이라면 보통 용무가 아닐 터이니.
– 시간을 보내고 있다라. 역시 은퇴를 하면 여유가 생기는 법인가 보군.
“무언가 일을 하려고 해도 권한이 없지 않습니까. 바쁘다면 그게 더 곤란한 일이지요.”
– 하긴. 그도 그렇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신 각하는 잠시 턱을 매만지시더니, 조심스레 말을 이으셨다.
– 여유가 많다면 말일세. 제국의 미래를 위하여 시간을 빌려줄 수 있겠나?
“시간, 말씀이십니까?”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제국의 미래를 위해 빌려달라니.
– 그래. 경의 뛰어난 능력과 인품이 아니라면 부탁할 사람이 없는 일이야.
낯부끄러운 칭찬이지만 각하의 표정은 진지했다.
흥미롭고도 기이한 일이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공작이 내 힘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각하가 아니라, 각하 아래 있는 가신들 선에서도 해결할 수 있을 터인─
– 군인들을 육성하기 위한 전문적인 아카데미를 만들 예정이네. 경이 교사를 맡아준다면 그만큼 좋은 일은 없을 터.
‘아.’
과연. 이런 일이라면 가신들 선에서 해결하기 난감한 일이지.
– 물론 아카데미를 만들기는커녕 삽질도 한 번 하지 않았으나, 이런 건 교사진부터 갖추어야 하지 않겠나. 전대 호르펠트 백작에게도 제안해 볼 생각일세.
각하의 말씀에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어째 익숙한 얼굴들이 한곳에 모일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