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58)
로판 속 공무원 858화(859/945)
사관학교 교사 자리를 노리는 군부 고인물들의 청탁. 그 청탁으로 인해 한동안 통신구가 불타오를 것이라 예상했지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예상이었다.
일단 통신구가 전구 수준으로 지속적인 빛을 내뿜은 건 맞다. 저러다 발광 기능이 손상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빛나더라. 그만큼 군부 내의 적지 않은 고인물들, 혹은 은퇴한 썩은물들이 사관학교에 진심이라는 뜻일 터.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군부도 전승공의 야망에 호의적이라는 의미다.
다만 통신구’만’ 불타오른 것은 아니었다.
“흐흐, 오랜만에 뵙습니다.”
남들이 연락을 할 때 직접 저택까지 찾아온 천하대장부. 어차피 청탁을 할 거라면 직접 얼굴을 보는 게 도리라며 당당히 발걸음을 옮긴 중부 방면군 사령관.
헬론 남작, 플로렌스 로티드 오브 헬론이 저택에 방문했다.
“편히 말씀하십쇼. 제가 장관이 되기는 했지만, 말은 예전처럼 편히 하자고 타협하지 않았습니까.”
일단 헬론 남작─ 중부 방면군 사령관에게 찻잔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행정부의 장관과 제국군의 방면군 사령관. 이 둘의 의전을 비교하면 장관이 살짝 더 우위다. 명목상 제국군은 전쟁성 장관 휘하인지라, 제국군 소속 일개 사령관이 행정부 장관보다 우위일 수는 없으니까.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빡빡하게 의전 서열을 따져야 할 공식 석상에서나 그런 거고, 이런 사석에서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상하관계다.
애초에 중부 방면군 사령관은 내가 공무원이 되기 전부터 군부에 입지를 다진인재였잖아. 심지어 재무성 장관의 친우이자 전우기도 하지. 그런 상대에게 승진 좀 했다고 존대를 듣는 건 인성이 터진 행위다.
“아유, 부탁하러 온 입장인데 당연히 말을 높여야죠.”
“사령관과 장관의 관계가 아니라 플로렌스와 칼의 관계로 청탁하는 게 더 효과적일 텐데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순식간에 돌변하는 사령관의 태도에 픽 웃음을 흘렸다. 저 양반도 진심으로 존대한 게 아니라 장난으로 그런 거겠지만, 나름 방면군 사령관이라는 사람이 기이할 정도로 가볍다.
물론 엄격 근엄 진지한 것보다는 이런 사람이 대하기 편하지만. 게다가 대토벌 전쟁 2년 동안 그럭저럭 정이 쌓이기도 했고.
“참. 오는 길에 빈손으로 오기는 민망해서 선물이나 가져왔다. 애들이 가지고 놀 인형인데, 괜찮냐?”
그렇게 말한 사령관은 아까부터 정체가 궁금했던 거대한 자루를 건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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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자루를 열어 보니 어마어마한 양의 인형이 반겨주었다. 과장 좀 보태면 방 하나의 바닥을 빼곡하게 채울 정도로.
“아니, 뭐 이렇게 많이 가져오셨습니까? 날도 더운데 괜한 고생을 시킨 것 같습니다.”
“애들이 많으니 인형도 많아야지. 게다가 이제 팔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 이 정도는 가뿐해!”
양팔을 과시하듯 들어 올린 사령관은 낄낄 웃음을 흘렸다.
조금 매운맛 농담이지만 ‘팔이 하나라서 몸이 가벼워!’ 같은 농담이 아닌 게 어디냐. 몸에 장애가 있다가 완쾌되어서 쓸 수 있는 농담이니,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웃을 수 있는 거지.
‘완쾌돼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마법과 성법이 발달한 이 세계에서 외상이 영구적 장애로 남는 건 차마 불행이라는 말조차 쓸 수 없는 참담한 사태다. 그렇기에 사령관의 외팔 인생은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헌데 과거의 사령관은 자신의 영구 장애를 판돈 삼아 미친 농담을 남발하던 사람이었다. 그 영구 장애가 최근 완치되어 외팔이 농담이 사라졌으니, 제국군을 넘어 제국의 홍복이지 않겠나.
그 홍복이 영원한 푸른 하늘 덕분에 찾아왔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말이다.
‘어떻게 보면 영원한 푸른 하늘 때문에 생긴 외상인데.’
카간에게 칼빵을 당했던 내가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상반신에 새겼던 것처럼, 사령관을 포함한 몇몇 참전 용사들도 회복 불가 상태의 부상을 품었었다. 카간 그 망할 것이 일반 공격이 아니라 신의 힘을 담아서 공격했는데 어쩌겠어.덕분에 전역까지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요정의 힘을 빌려 신의 힘을 거두게 되고, 그로 인해 영원한 푸른 하늘과 접점이 생기며 이야기가 달라졌다.
정확히는 영원한 푸른 하늘의 힘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상처에 들러붙은 힘을 수거할 수 있으니, 상처도 회복할 수 있게 됐지.’
신 때문에 생긴 영구 부상이니 신의 힘으로 회복하는 것. 뭔가 병 주고 약 주는 것 같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방안이었다.
“회복할 수 있다고? 됐어! 팔 없는 채로 몇 년 정도 살아보니 이제 익숙하더라고! 그 빌어먹을 역천자에게 한 방 먹였다는 훈장이기도 하니 이대로 살아야지!”
다만 사령관에게 처음 회복을 권유했을 때. 의외의 사유로 거절하기도 했지만,
“회복할 수 있다는 말… 아직 유효하냐?”
“아, 네. 물론입니다.”
며칠 지나니 말이 바뀌더라. 이게 회복이 불가능할 때는 적응하며 살았지만, 막상 치료가 가능하다고 하니 각오와 해탈이 무너진 것 같았다.
살짝 민망한 상황이었으나 굳이 탓하지는 않았다. 그 각오와 해탈 덕분에 사령관이 지금까지 버틴 거고, 부상을 벗어낼 수 있다면 의미가 없는 각오이고 해탈이니.
“대신 팔이 하나라 동정표를 받아서 사령관으로 승진했는데, 뿅- 하고 다시 팔이 났으니 물러나야 하지 않겠냐?”
‘아니 씹.’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발언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기껏 훈훈한 회복 과정을 회상 중이었는데, 거기서 그런 말을 하면 내가 뭐가 돼. 뭔가 내가 술수를 부려서 사령관을 쫓아낸 것 같잖아.
그보다 사지 중 하나가 불편한 장애인에서 다시 정상인이 되는 과정을 ‘뿅하고 팔이 났다.’로 퉁쳐도 되는 건가? 난 당사자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
“…사령관 각하의 능력과 공훈은 모두가 인정할 수준이었습니다. 팔이 없어서 승진한 것이 아니라, 팔을 잃을 정도로 헌신했기에 승진한 것이죠. 이제 다시 팔이 생겼으니 오히려 보다 중한 곳에 쓰고자 하지 않겠습니까?”
“중한 곳? 이미 중부 방면군 사령관인데 얼마나 더 중하게 쓰려고.”
“그야 부사령관이라거나─”
“그래서 군부에서 탈출하려는 거다, 이놈아.”
끔찍한 소리 하지 말라는 듯 단호히 고개를 저은 사령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망할. 외부인인 네 입에서도 부사령관 얘기가 나올 줄이야. 남들이 보기에도 내가 후보기는 한 모양이야.”
착잡함과 씁쓸함 가득한 목소리에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저 몸짓, 저 표정, 저 목소리. 승진을 격렬하게 꺼려 하는 사람의 모습이니까. 누구보다 익숙한 모습이기에 잘 알 수 있다.
“부사령관, 싫으신 겁니까?”
침묵을 깨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내 지레짐작일 수도 있으니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지.
“그건 아니야. 나도 군문에 발을 들였는데, 부사령관까지 가고 싶다는 욕심은 가지고 있지. 승진은 관료의 기본적 욕구 아니냐?”
그 말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사실 저게 맞는 말이기는 하다. 나랑 내 주변의 몇몇이 이상한 거지, 승진은 모든 사람들의 욕구가 맞아.
“하지만 전승공 각하의 바로 다음이 되는 건 싫어.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그분 다음은 좀, 많이 뜨거운 불지옥 같아.”
“아.”
이어지는 말에 바로 납득했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부사령관이라는 직책 자체도 가벼운 직책이 아닌데, 내 바로 전임자가 전승공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전승공 각하께 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사령관 각하의 입지나 명성이면 교장도 노려볼 법합니다마는.”
“솔직히 교장이 아니라 경비원이어도 상관없어. 이름만 좀 꽂아줘.”
진심이 가득한 말이라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이거 전승공의 은퇴를 만류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 같다.
***
역시 하나의 머리보다는 여럿의 머리가 좋은 결과를 내는 법이다.
“군인 아카데미… 아니, 사관학교의 부지는 제국 아카데미 인근. 이건 동의하십니까?”
“예, 동의합니다. 교육 기관의 부지로는 그곳만 한 곳이 없습니다.”
전쟁성 장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교육성 장관. 그 광경을 보니 절로 흐뭇해졌다.
“허나 제국 아카데미와 사관학교가 근접해 있으면 아카데미 학생들이 느낄 위화감과 사관학교 학생들이 느낄 박탈감이 걱정입니다. 군인이 되기 위한 교육이라면 필연적으로 통제가 강할 터인데, 제국 아카데미를 보고 자유를 갈망할 수 있습니다.”
“흐으음.”
이어지는 교육성 장관의 말에 전쟁성 장관은 턱을 매만지며 고심했다.
나도 그 걱정을 잠깐 했었다. 갑자기 새로운 이웃이 생긴 제국 아카데미 학생들은 그렇다 쳐도, 사관학교 학생들은 바로 옆에서 자유로운 학창 생활을 보내는 또래들을 봐야 한다. 동요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
그러나 동요를 차단할 수 없다면 그 동요도 교육의 일부로 삼아야 한다.
“군인의 길은 결코 쉽지 않지. 고작 그런 걸로 동요하여 이탈할 자질이라면 차라리 사관학교 시절에 걸러지는 것이 낫다. 그것이 제국과 그 학생을 위해서라도 좋은 길이야.”
“확실히, 그도 그렇군요.”
“과연 각하의 혜안은 실로 감탄스럽습니다.”
내 말에 교육성 장관과 전쟁성 장관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하오면 각하. 사관학교의 입학 조건은 어찌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입학 조건이라면?”
“우선 제국 아카데미와 동일하게 신분은 가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평민이라도 황실과 제국을 향한 우국충정의 마음, 강인한 육체가 있다면 충분히 군인의 자격이 있지요.”
당연한 말로 운을 뗀 교육성 장관은 잠시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제국인에게는 열린 교육 기관이 되겠지만, 타국인에 대해서는 조건을 보다 세밀하게 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타국인의 입학은 막아야 합니다! 사관학교는 제국군의 미래요, 제국군이 쌓아올린 노하우의 결정체가 될 곳! 그런 곳에 어찌 타국인이 발을 딛겠습니까!”
“저도 그건 잘 압니다. 허나 제국 아카데미가 모든 대륙인에게 열린 곳이니, 혹 사관학교도 같은 길을 걷는 건가 의문이어서 말입니다.”
전쟁성 장관의 열렬한 반대에 교육성 장관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다만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타국인이 제국의 사관학교에 졸업하면… 타국의 군부에 친제국 파벌을 만드는 것 아닙니까? 몇 년 동안 제국에서 생활하고, 제국의 가치관을 배우고, 제국인 동기들이 있습니다. 당장 효과를 보기는 어려워도 졸업 이후 10년, 20년이 지나면 그럭저럭 재미를 볼 것 같습니다만?”
“그건─”
“그건 당장 결정할 문제가 아니군. 다음에 논하도록 하지.”
내 중재에 두 장관은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머리가 많은 만큼 논할 것도 많아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