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59)
로판 속 공무원 859화(860/945)
한때나마 군인이었던 사람들이 둘 이상 모이면 반드시 사관학교 이야기가 나올 만큼, 사관학교 건립은 제국 사교계의 가장 거대한 관심사가 되었다.
“나도 교편을 들어볼까 고민 중이다.”
“예?”
심지어 올해 들어 완전한 백수로 거듭난 첫째 장인어른조차 깊은 관심을 가지셨다. 전직 공작이자 작년까지만 해도 공식 최고령 공작이었던 사람이 교편 운운할 정도로.
그냥 농담 삼아 하시는 말씀일 테지만 절로 몸이 떨렸다. 전승공이 기획하고 철혈공이 현장에서 이끄는 사관학교라니. 대체 어떤 괴물들이 육성될까. 대륙을 뒤엎을 골든-몬스터 세대가 등장하지 않을까?
“뭐,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놈이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말이다.”
“원하는 것을 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열정과 의지만 있다면 제2, 제3의 인생도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지요.”
허나 장인어른의 씁쓸한 중얼거림에 본능적인 위로를 내뱉었다.
노인의 나이 탓은 듣는 젊은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기본적인 인성을 가진 놈이라면 나이 탓을 하는 노인에게 ‘하긴. 그 나이 먹고 꿈을 꾸기는 힘들죠.’ 같은 말을 할 새끼가 어디 있어.
그렇기에 책상 아래로 숨긴 손이 파르르 떨렸다. 혹시 내 말 때문에 장인어른이 각성하고, 정말로 사관학교 교사직에 도전하면 어쩌나 싶어서.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라. 그러다 내가 덥석 교사직을 물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러는 것이냐.”
다행히 장인어른은 내 위로에 픽 웃음만 흘리실 뿐, 각성하지는 않았다.
“…티 많이 났습니까?”
“내가 네 인생의 3배는 살았다. 서른도 안 된 애송이의 속내도 파악하지 못하면 혀 깨물고 죽어야지.”
틀린 말은 아닌지라 어색하게 웃음만 흘렸다. 내가 아무리 팔자에도 없는 고위직에서 몇 년을 굴렀더라도, 장인어른은 수십 년 동안 공작으로 군림한 분. 새파랗게 어린놈의 속내 정도는 보기만 해도 파악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조금 아쉽기는 하군. 한 30년 정도 전에 사관학교가 세워졌다면, 동쪽 놈들과의 전쟁이 끝나자마자 사관학교로 갔을 거다.”
“30년 전이면 장인어른의 전성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어찌 꽃길을 마다하시고 일개 교사로…”
“내 지식과 경험이 극에 이르렀을 때. 그때 가르쳐야 더 훌륭한 가르침을 주지 않았겠느냐. 나 하나 현장에서 물러나는 대신, 무수히 많은 미래들이 탄생하는 거다.”
납득할 수 있는 말이라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인력에 여유가 있다면 어마어마한 업적을 세운 사람은 현장이 아니라 후방으로 빼고, 그 후방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것이 보편적인 루트다. 마치 비행기 조종사들이 에이스를 달성하면 후방으로 빠져 신입 조종사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허나 인력에 여유가 없다면 에이스가 후학들의 몫까지 굴러야 하는 것이 숙명. 애석하게도 30년 전에는 사관학교도 없었고, 장인어른을 대체할 인재풀도 넉넉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있기는 했지만 황제의 명대로 순순히 따른다는 보장이 없었다. 게다가 충성스러운 인재가 있다면 외적이 아닌 내부의 악재와 싸우게 해야 했고. 그 시절은 그랬었다.
“아쉽군, 아쉬워. 내가 30년만 늦게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연신 턱을 매만지며 한탄을 내뱉는 장인어른의 모습에 조용히 차를 마셨다.
저러다 장인어른이 ‘내 몸에는 교사의 피가 흐르고 있다.’ 라고 하시는 건 아닐까 우려스럽다. 말씀하시는 걸 보면 미련이 강한 것 같기는 한데. 은퇴도 하셨으니 이성을 잠시 내려두고 쾌락을 추구하시는 거 아닐까?
사실 장인어른이 수십 년 동안 헌신한 걸 생각하면 말년에 쾌락을 추구하셔도 누구도 항의할 수 없다. 평생을 고생만 한 분이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데, 누가 감히 그걸 막겠나.
심지어 그 쾌락 추구도 교사로서 후학을 양성하겠다는 국익을 위한 쾌락이다. 명분상으로도 완벽하지.
‘중부 방면군 사령관이 아니라 장인어른이 교장이 되는 건가.’
제국 사관학교 초대 교장, 18대 울켄 공작 올리버 바렌티 오브 울켄.
상상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지고 손발이 벌벌 떨린다. 초대 교장이 공작이면 그 뒤의 교장들은 대체 누가 되어야 하는 걸까. 이거 사관학교 교장은 전·현직 공작들만 가능하다─ 같은 관례가 생기는 거 아닌가?
실로 두려운 일이다. 사관학교는 아무래도 전쟁성 휘하 기관이 될 것 같은데, 전쟁성 장관은 공작을 명목상 부하로 두게 생겼다.
‘이미 두고 있으니 상관없겠구나.’
생각해 보니 전쟁성 휘하 기관인 제국군도 전승공이 이끌고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공작 하나 추가돼도 별지장은 없을 거다. 총에 한 방 맞으나 두 방 맞으나 거기서 거기니까.
새삼스럽지만 전쟁성 장관만 같은 극한 직업도 없는 것 같다. 재무성, 감찰성은 상대적 선녀였어.
“흐으음.”
“왜 그러십니까?”
“너도 은퇴하게 되면 교사가 될 생각은 없느냐? 마침 넌 명예 교사 학위도 있으니까. 아예 명예라는 이름을 떼고 진짜 교사가 되는 거지.”
상당히 솔깃한 말이지만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은퇴하게 된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상황일 텐데, 처절하게 구르고 구르다가 다시 일을 하기는 싫다. 난 제2의 인생 같은 거 원하지 않아.
그리고 난 전문적인 군사학을 배운 적도, 대규모 병력을 지휘하며 전선을 유지한 경험도 없다. 내 수준은 딱 별동대로 활약하는 무인 정도지. 그런 놈이 가르쳐봤자 뭘 가르치겠어. 하늘 베기라도 가르쳐 줘야 하나?
‘그럼 교사가 아니라 광대잖아.’
주기적으로 학생들 앞에서 하늘을 베며 재롱을 부리는 광대. 학생들에게서 즐거움과 환호를 이끌어 내는 특급 광대.
내 명예 교사 학위를 광대학 교사로 만들 수는 없다. 명예는 명예로 남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이니.
‘괜히 나서면 밑천만 털린다.’
결정적으로 내 얄팍한 밑천으로 누군가를 가르치겠다고 까불면 순식간에 웃음벨로 전락할 터.
그것만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내 자긍심이자 자존심을 쓰레기로 만들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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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관학교 건립은 전승공 각하 개인의 꿈이 아니라 군부 인사들의 총의가 되었다. 이제 각하께서 멈추고자 하셔도 군부에서 밀고 나갈 것이다.
그렇기에 테레사와 놀아주면서도 틈틈이 서적을 보고, 내 경험을 정리하며 교사가 될 준비를 했다.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는 것과 습득한 것을 가르치는 건 별개의 일이니.
각하께서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사관학교니, 그 사관학교의 첫 번째 교사진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 해야 하니.
‘교사라.’
깃펜을 책상에 내려두며 픽 웃음을 흘렸다.
설마 내 인생에 교사라는 단어가 끼어들 줄은 몰랐다. 아주 잠깐 감찰부에 몸을 담은 적이 있었고, 그 뒤에 군부에서 활동했고, 이후에는 의회에서 지냈지. 아카데미조차 입학하지 않은 나에게 교사라는 단어는 멀고 먼 단어였다.
헌데 그랬던 내가 교사가 된다라. 멀리 갈 것도 없이 작년의 나조차 믿지 못할 일이다.
‘음?’
그래도 코앞으로 닥친 현실을 계속 부정할 수는 없으니 다시 깃펜을 들려던 찰나, 책상에 올려둔 통신구가 빛을 뿜었다.
“빌헬름 크라시우스입니다.”
– 큰 오라버니. 접니다.
“엘린?”
반가운 얼굴이라 깃펜이 아닌 통신구를 들었다.
사관학교가 언제 개교하는지도 정해진 바가 없으니, 지금 중요한 것은 내 공부가 아닌 엘린과의 대화다. 큰 오라비로서 막내 여동생의 연락을 받는 것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
– 갑자기 연락을 드려 죄송합니다. 혹시 큰 오라버니의 시간을 방해한 건 아닙니까?
“작위도 직책도 없는 사람에게는 남는 것이 시간이다. 걱정할 필요 없다.”
– 근래는 사관학교 문제로 바쁘실 텐데요.
그 말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 큰 오라비의 소식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도, 그에 대한 걱정을 해주는 것도 기꺼운 일이었으니.
“그걸 감안해도 시간이 많다. 조급하게 진행해야 할 일도 아니니까.”
–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희미한 미소를 지은 엘린은 잠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마치 할 말을 속으로 정리하는 것처럼.
“편히 말하거라. 남도 아닌 가족끼리 어찌 눈치를 보며 말하느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대로 하면 된다.”
– …네, 큰 오라버니. 감사합니다.
내 말에 엘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 큰 오라버니. 둘째 오라버니가 어디서 지내는지 기억하십니까?
“당연히 기억하지. 데아스트 백작가에 있다.”
고민할 것도 없는 질문이기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엘린의 둘째 오라버니, 우리 남매 중 차남인 아우구스트 크라시우스. 현재는 제국 동부에 위치한 데아스트 백작가의 데릴 사위로 들어가서 아우구스트 데아스트가 된 내 동생.
우리 남매 중 나 다음으로 고생한 녀석이기에 이래저래 걱정도 많이 되고 미안하기도 했으나, 다행히 데아스트 가문에서 부인과 그럭저럭 양호하게 지내는 녀석.
– 세간에서는 데아스트 백작가도 명문 무가라고 칭하지요. 실제로 철혈공께서 동부 왕국들을 제압하시던 시절, 당대 데아스트 가주가 철혈공 각하를 모시기도 했고요.
“그랬지. 그래서 아버지께서 아우구스트를 데아스트로 보내셨고 말이다.”
– 들리는 얘기로는, 둘째 오라버니도 사관학교의 교사 제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뭣.”
의외의 정보라 통신구를 든 손이 살짝 떨렸다.
– 큰 오라버니 말씀대로 데아스트 가문은 아버지께서 택하실 정도로 명망 높은 무가. 둘째 오라버니는 현 데아스트 가주의 부군으로서 군인으로서의 소양을 갈고닦았다고 합니다. 덕분에 전승공 각하께서도 둘째 오라버니의 지식을 높게 평가하셨지요.
나지막하게 이어지는 설명에 한동안 입을 열 수 없었다.
아직은 엘린과도 막 친해지는 단계라 다른 동생들의 상황에 능통하지는 않았다. 그저 가정에 불화 없이 평온하게 지내고 있다는 걸, 조카들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걸 파악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설마 엘린이 아우구스트의 소식을 들고 올 줄은 몰랐다.
‘아우구스트도 교사…’
그것도 아우구스트를 사관학교에서 볼 수도 있다는 정보일 줄은, 더더욱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