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60)
로판 속 공무원 860화(861/945)
이번에도 아버지의 호출이 떨어져 호수로 달려갔다.
“아, 형 왔어?”
“뭐야. 너도 왔냐?”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에리히까지 있다는 것. 크라시우스 삼 부자가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예상치 못한 조합이라 살짝 당황했다. 가족이 모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나, 에두아르트가 태어난 이후로 에리히의 외출 빈도는 급격히 줄어든 상태니까. 아무리 성수들의 조력이 있다고 해도 에두아르트의 활발함은 에리히의 부재를 허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세라가 침대에 누워있는 상황에서 남편인 에리히가 낚시를 하러 호수로 온다? 이건 아무리 온순하고 선량하며 자비심 깊은 세라여도 분노할 사태다. 그렇기에 에리히 본인부터가 외출을 자제하는 건 물론, 아버지나 나도 에리히를 밖으로 부르지는 않았다. 차라리 저택으로 찾아가면 찾아갔지.
‘무슨 일이지?’
이미 자리에 앉아 낚싯대를 바라보고 계신 아버지. 그러나 묘하게 낚싯대가 아닌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아버지의 모습에 절로 의문이 들었다.
냅다 우리를 한자리에 소환하실 정도면, 그것도 다른 사람의 눈과 귀가 없는 곳에 부를 정도면 보통 일은 아닐 터. 그런데 은퇴하신 이후로 백수인 아버지한테 특별하거나 위급한 일이 생길 수 있나? 솔직히 없을 것 같은데.
‘차라리 나한테 생기면 생겼지.’
아버지가 짊어지고 계시던 크라시우스 가주의 업, 타일글레헨 백작의 업은 나에게 옮겨졌다. 가족을 부를만한 일이 생기면 나한테 생겼지, 아버지한테 생길 일이 있을까 의문이다.
“…갑자기 불러서 미안하다. 너희에게 긴히 할 말이 있어서 말이다.”
“괜찮습니다. 이럴 때 가족끼리 보는 건데, 미안할 게 있겠습니까?”
그래도 심경이 복잡해 보이는 아버지에게 ‘시시한 일로 부른 건 아니죠?’ 같은 말을 하는 건 어지간히 뜨거운 효자여야 가능한 일. 일단 아버지 우측에 펼쳐진 간이 의자에 앉으며 덤덤히 고개를 내저었다.
“저도 괜찮습니다. 형이 보내준 성수들이 워낙 애들을 잘 돌봐줘서, 잠깐 바람 쐬러 나올 정도는 됩니다.”
“다행이구나.”
우리 셋 중 가장 바쁠 에리히도 고개를 젓자, 그제야 아버지의 표정이 다소 부드러워졌다.
“그래. 귀한 시간을 내주어 와줬으니 오래 끌 수는 없지. 딱 용건만 말하도록 하마.”
그렇게 운을 뗀 아버지는 낚싯대를 매만지셨고,
“너희 숙부들과 고모들, 사촌들을 보게 된다면 어떨 것 같으냐?”
“예?”
이어지는 말에 에리히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아마 나도 나르젠 백작가를 털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막내 고모와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몰랐다면 같은 반응을 보였을 거다. 아버지와 막내 고모가 재회한 순간부터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 예상했으니 덤덤할 수 있었다.
사실 예상보다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기는 하나, 이런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
“이 아비가 사관학교에서 너희 숙부와 만나게 되었다.”
‘아.’
이건 예상치 못한 흐름이라 나도 놀라고 말았다.
전승공이 교사로 쓸만한 사람들을 알차게 선정 중이라고는 들었는데, 설마 숙부 중 한 명도 걸릴 줄이야. 이걸 누가 예상하겠냐고.
‘누구지?’
허나 당혹감과 별개로 숙부 세 분의 정보를 빠르게 떠올렸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마침 사법계 감찰 이후로 숙부들과 고모들에 대한 최신 정보를 갱신한 상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내다가 장관 비서에게 ‘이번에도 각하 혈육을 털게 되었습니다.’ 라는 보고가 올라오면 민망하잖아. 그전에 미리미리 조짐을 알아내야 서로 머쓱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겸사겸사 크라시우스의 가주로서 크라시우스의 핏줄을 이은 분들을 살피기도 해야 하고. 진즉에 짊어져야 할 의무를 늦게나마 짊어진 거지.
‘첫째 숙부인가?’
그리고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은 듯, 금방 유력한 후보가 도출되었다.
첫째 숙부인 아우구스트 데아스트. 제국 동부에 위치한 데아스트 백작가로 장가를 간 분이자, 현 데아스트 백작가 가주의 남편이신 분. 철저한 정략혼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부부 사이는 그럭저럭 양호하고, 슬하의 자녀들도 많으신 분.
다만 우직하게 가주의 반려자로서 활동하는 현부양부이신지라 대외 활동은 거의 없다시피 한 분이거늘, 그런 분이 사관학교 교사라고? 그것도 사관학교의 미래를 좌우할 첫 번째 교사진 중 하나?
‘다른 숙부들에 비해서는 그나마 가능성 있기는 한데.’
이해하기 어렵지만 둘째 숙부와 셋째 숙부는 무가가 아닌 문가 쪽에 계신다. 성도 크라시우스에서 그쪽 성으로 바꾸셨으니, 무인의 소양이 아닌 문인의 소양을 익히고 계실 건 당연한 일.
그러니 자동으로 첫째 숙부다. 크라시우스의 피, 데아스트의 의무를 짊어진 첫째 숙부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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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숙부께서 데아스트에 계시는 동안 학문에 열중하신 모양입니다. 아버지께서 노련한 경험으로 인정을 받았다면, 그분은 뛰어난 지식으로 인정을 받으셨군요.”
“네 말이 맞다. 아우구스트 그 녀석, 가주의 부군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노력한 모양이야.”
희미한 미소를 짓는 아버지와 달리 에리히는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
대충 알 것 같다. 저놈 아마 첫째 숙부의 이름이 아우구스트라는 것도, 지금은 데아스트 백작가에 계시다는 것도 처음 알았을 거야.
“나도 너희 막내 고모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미처 몰랐을 거다. 사관학교가 세워진 후에야 알았겠지.”
“막내 고모… 가 알려주신 겁니까?”
의외의 정보에 이어 의외의 출처였다. 크라시우스 남매들은 조부 되시는 분의 맹활약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지고, 아버지가 가주가 된 이후로는 서로 연락조차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막내 고모가 첫째 숙부의 정보를 파악하여 아버지에게 전해주다니. 사실 연락을 안 하는 건 아버지뿐이었던 건가? 아니면 막내 고모만이 유일하게 남매들과 소통하며 지냈거나.
‘둘 다 슬프네.’
전자라면 아버지가 왕따였다는 점에서, 후자라면 일곱이나 되는 남매 중 하나만 행동력이 좋았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오해하지는 말거라. 막내도 이 아비와 만난 이후로 다른 남매들과 만나기 시작한 것 같으니.”
“아, 예.”
“아무튼 막내에게서 너희 숙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이제 우리를 덮은 그림자도 희미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아니, 이미 진즉에 사라진 그림자였지만 우리가 눈을 뜨지 못하여 눈치채지 못한 거겠지.”
씁쓸함과 후련함이 깃든 얼굴의 아버지. 반면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는 에리히.
조카라는 놈이 자기 숙부, 고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 통탄스러울 따름이나, 애석하게도 얼마 전까지의 크라시우스 가문은 모르는 게 정상이었다. 나도 감찰 문제가 아니었다면 에리히와 크게 다를 건 없었을 테니.
저택으로 돌아가면 에리히한테 속성 과외라도 해주자… 앞으로는 숙부, 고모들만 보는 게 아니라 사촌들도 자주 보게 될 것 같아.
“그래서 이 기회에 다시 우리 남매들끼리 만남을 가져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 아비가 동생들과 만나면 너희도 무관할 수는 없지 않느냐. 혹여나 불편하지는 않을까 물어본 것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말씀하신 아버지는 긴장감 어린 눈빛으로 나와 에리히를 바라보셨다. 혹시 우리가 ‘이제 와서 만나기는 좀 어색한데요.’ 라고 말하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것처럼.
어찌나 짙은 긴장이었는지, 에리히마저 자세를 가다듬을 정도였다.
***
딱딱하고 차가웠던 크라시우스 가문이 점점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오늘을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가문으로 변할 수도 있다. 부모와 자식, 시부모와 며느리, 조부모와 손주의 사이가 좋으니, 이제는 늙은 전대 가주와 남매들의 관계가 회복되기 직전이니까.
약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남남으로 지냈던 우리가, 어쩌면 그 이전에도 정상적인 남매라고 하기 어려웠던 우리가 비로소 하나가 되려고 하니까.
“제가 에리히와 테레사를 보는 게 당연한 것처럼 아버지가 숙부들, 고모들을 보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불편할 게 어디 있겠습니까.”
“사촌이야 이미 릴리아나도 있으니, 더 생겨도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저희 애들을 귀여워해 줄 사람이 늘어서 좋을 것 같습니다만.”
호수에서 칼, 에리히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혈육을 만난다고 하면 당황스러울 법도 하거늘, 이 아비를 생각해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하던 아이들.
정말 고마운 일이다. 못난 아비에게 과분할 정도로 좋은 아이들이야.
“빌리?”
“아, 미안하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부인의 목소리에 황급히 입꼬리를 가다듬었다.
민망하다. 귀족으로서 대화 상대를 앞에 두고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다니. 나도 나이를 먹으며 정신을 굳건히 단련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구나.
“괜찮아요. 오랜만에 보는 가족이니 정신이 다른 곳으로 샐 수도 있죠.”
그래도 부인은 내 부족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지어주었다.
“저도 오랜만에 서방님, 아가씨를 보려니 긴장되니까요.”
“미안하오. 내 고집 때문에 당신도─”
“이럴 때는 미안이라는 말을 쓰는 게 아니에요.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게 이상한 거지, 가족끼리 만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나요?”
단호하고도 부드러운 부인의 말에 더더욱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가 가주가 된 이후로 가족들이 흩어졌으니, 부인도 20년 동안 동생들을 보지 못했다. 조카들은 말할 것도 없지.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조짐도 없이 남매들을 본다고 통보와 마찬가지인 말을 했다. 내가 남매 중 맏이니 맏이의 아내인 부인도 덩달아 바쁠 수밖에 없다.
‘과분한 부인이다.’
과분한 자식들에 이어 과분한 부인. 양심상 부모복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인생이나, 부인복과 자식복은 세상 누구보다도 훌륭하다.
정작 이 복을 내 손으로 던져버릴 뻔한 것이 우스운 일이지만.
“그런데 빌리. 초대는 어디로 할 생각인가요?”
“당연히 이곳 아니겠소? 맏이인 내가 초대하는 건데, 정작 다른 곳에 모이자고 하는 건 이상하지 않소.”
“물어보길 잘 했네요.”
내 대답에 부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방님들과 아가씨들은 이 타일글레헨에 좋은 추억이 없어요. 그런데 수십 년 만에 하는 재회를 타일글레헨에서 하자고요? 언젠가는 해야겠지만, 적어도 처음부터 쓸 장소는 아니에요.”
그 말에 바로 수긍했다. 확실히 내 생각이 짧았다.
“그럼 부인, 어디가 좋을 것 같소?”
“제도에 있는 크라시우스 저택이나, 칼의 개인 저택이요.”
둘 다 장단점이 명확한 장소라 침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