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64)
로판 속 공무원 864화(865/945)
연회장 내부를 이리저리 누비며 동생들을 기다렸다.
겸사겸사 부인과 함께 장식들을 살피기도 하고, 엘린과 함께 기호품은 충분한지 재확인하기도 했다.
사실 이제 와서 둘러본다고 놓친 것이 나오거나 보완할 점이 보이지는 않을 거다. 부인과 며느리들이 얼마나 완벽하게 연회를 준비했던가. 나와 엘린이 부족한 기억을 쥐어짜며 얼마나 동생들의 취향에 맞추었던가.
그저 이렇게라도 움직여야 긴장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멀쩡한 마음가짐으로 동생들을 보고 싶었다.
“아버지.”
그렇게 한참이나 방황하던 중, 입구 쪽에서 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우구스트 숙부님과 크리스틴 숙모님께서 오셨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동생들 중 한 명이 왔다는 소식. 이 모임을 진행한 계기인 아우구스트가 왔다는 소식.
그 말에 작게 심호흡을 내쉬고 몸을 돌렸다. 칼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아우구스트와 제수가 있을 방향으로.
‘아.’
시야에 아우구스트가 들어오자마자 탄식이 나올 뻔했다.
내 바로 아래 동생인 아우구스트. 우리 칠남매 중 둘째인지라, 내가 못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아버지에게 시달렸던 아이.
첫째인 내가 아버지의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둘째인 아우구스트가 다음 후계자가 될 자격이 있기에, 이 형이 형 노릇을 하지 못하면 고통받아야 했던 녀석.
모든 동생들에게 미안하지만 가장 아픈 손가락을 고르자면 아우구스트였다. 내가 뛰어난 형이었다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었으니.
“오랜─”
“그럼 전 다시 가보겠습니다.”
겨우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아우구스트와 제수를 데리고 온 칼이 순식간에 물러났다.
아주 잠깐이지만 칼이 원망스러웠다. 간신히 용기를 내서 먼저 인사를 건네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들 때문에 실패했다.
그래도 원망은 금방 가라앉았다. 칼이 무엇 때문에 저리도 다급한지 알고 있으니까. 아무리 칼이라도 어쩔 수 없는, 아비라면 피할 수 없는 시련 때문에 저러는 것이다. 나도 칼의 아비로서 이해해야지.
“오랜만에 보는구나. 그간, 잘 지냈느냐?”
그리고 인사가 잠시 끊겼다면 다시 이으면 그만이다. 다행스럽게도한번 내었던 용기를 다시 내는 건 의외로 간단했다.
“…예, 형님. 아무 탈 없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아, 제수씨도 건강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너무 아우구스트에게만 향했던 관심을 옆에 있던 제수에게도 돌렸다.
이번 연회는 동생들만 오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오기로 했다. 제수도 내 초대를 받은 손님이자, 동생의 상처를 보듬어준 고마운 사람. 마땅히 존중을 표하며 살갑게 대해야 한다.
“편히 말씀해 주세요, 아주버님. 아주버님께 존대를 들으니 송구스럽습니다.”
정작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 반말을 요구하니 난감할 따름이지만.
물론 내가 제수보다 나이도 많고, 남편의 형이라 항렬이 앞서기에 반말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기는 하다. 그래도 못난 나보다 제수가 아우구스트에게 심적인 위안을 주지 않았나. 내가 백 명 있는 것보다는 제수 한 명이 있는 것이 아우구스트에게 더 이롭지 않나.
그런 사람에게 어찌 말을 놓겠는가. 차마 동생들에게 존대를 하는 맏이가 될 수는 없어도, 제수들이나 매부들에게는 정중히 대해야 한다.
“연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편히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도 제수의 요구에 면전에서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 최대한 애매한 발언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이 정도면 제수도 납득하겠지.
“연회가 끝나기 전이라. 기대하겠습니다.”
예상대로 제수 또한 이 주제로 투닥일 생각은 없었는지, 순순히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린. 매부는 어디 가고 너 혼자만 있는 거냐.”
“방금 저택에서 출발했다고 하니 곧 올 겁니다.”
그 와중에 아우구스트는 부인과 인사를 나누더니, 의아함을 담은 채 엘린에게 말을 걸었다.
나와 부인, 아우구스트와 제수가 함께 왔음에도 홀로 연회장에 있는 엘린. 확실히 막 저택에 온 아우구스트가 보기에는 기이한 광경일 터.
“아니, 처음부터 같이 오지 않고 왜.”
“저는 어제 미리 온 겁니다. 남편은 먼저 오기에는 눈치가 보이니, 오늘 누구보다 먼저 오겠다고 하더군요.설마 둘째 오라버니가 먼저 오실 줄은 몰랐지만요.”
“그런가.”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던 아우구스트는 이윽고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 매부는 우리의 가족이지만, 애석하게도 같은 가족에게 감찰을 당한 상태다. 비록 백작위를 물려받았으나 긍정적인 이유로 계승된 작위가 아니지. 그렇기에 정당한 초대를 받은 것임에도 막내 매부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담대한 사람이라도 한때 자신의 목숨줄, 가문의 존폐를 쥐고 있던 사람을 어찌 편하게 볼까. 놀란 가슴이 진정하기 전까지는 최대한 덜 보고 싶겠지.
“괜한 걱정인 것 같구나. 우리 조카님을 보니 이미 끝난 일로 눈치를 줄 사람은 아닌 것 같던데.”
그 말에 연회장에 있던 모두의 이목이 아우구스트에게 향했다.
“오늘 처음 본 조카인데, 벌써 파악이 끝난 건가요?”
빙긋 미소를 지은 제수가 툭 아우구스트의 어깨를 건드렸다.
아마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의 의문일 거다. 아우구스트는 칼을 처음 보는 것이고, 세간에 퍼진 칼의 명성은 다소 흉악한 명성이 섞여있다. 감찰성의 장관이자 전쟁 영웅의 숙명이니 어쩔 수 없는 일.
그럼에도 아우구스트는 칼을 만난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성품을 논하였다. 그것도 세간의 인식과 다른 부드러운 평가를.
“파악이라고 할 게 있습니까. 아이들을 위해 손수 수레를 끄는 아비입니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온화한 성품이라는 걸 알 수 있지요. 설령 냉혹하더라도 자기 가족에게만큼은 따뜻하다는 뜻이고요.”
그렇게 말한 아우구스트는 다시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형님.”
“말하거라.”
“좋은 아비로 지내셨나 봅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어떠한 말보다 아름답게 들리는 말이었다.
아우구스트가 무슨 심정으로 저 말을 한 건지 알 것 같기에.
과거 제국 제일의 후작가라 불리었던, 감히 상황 폐하와 황실을 능멸하였던 애실론 가문의 저택.
비록 이 저택의 본래 주인은 저주받아 마땅한 것들이나, 위세만큼은 진정으로 강력했다. 그러한 애실론이 제도에 지은 저택이니, 우리 크라시우스 가문의 저택과 비교해도 웅장하며 화려했다.
덕분에 연회장 또한 어지간한 대귀족들의 연회장과 비교해도 뛰어났다. 아마 황궁이나 공작성의 연회장 정도는 되어야 이곳보다 확실하게 뛰어나다고 확신할 수 있겠지.
그 정도로 화려한 장소에 오직 14명만이 모여있었다. 나와 동생들, 그 반려자들까지 고작 14명이.
‘처음부터 들어오라고 할 걸 그랬나.’
연회 유지를 위한 사용인들을 제외하면 우리밖에 없는 상황. 너무도 휑하고 고요한지라 잠시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칼과 며느리들에게 자리를 채워달라고 할걸. 처음은 남매들끼리 하고 싶었던 말을 하라고, 친해지면 그때 자기들을 소개해달라고 물러나던 며느리들을 잡을걸.
허나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늦었다. 게다가 며느리들이 그런 결단을 한 이유도 충분히 알고 있지 않나.
‘우리가 이겨내야 할 문제다.’
어색하다고 다른 사람을 부르면 영원히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누구보다 가까워야 할 가족들이 타인의 중재가 있어야만 안심할 수 있다.
그건 끔찍한 일이다. 물론 얼굴조차 보지 않았던 과거를 생각하면 그조차 장족의 발전이지. 하지만 고작 그 정도에 만족하려고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아우구스트에게 인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맏이로서 용기를 내려던 찰나.
“큰 오라버니.”
“왜, 왜 그러느냐?”
우리 남매 중 장녀인 요제피나의 부름에 말을 더듬고 말았다.
기껏 고개를 들었던 용기가 순식간에 고개를 숙이고, 당혹감과 민망함이 가슴을 좀먹기 시작했다.
맏이로서 든든한 모습을 보여야 하거늘. 너희 앞에서는 난 언제나 미숙하고 부족한 맏이로구나.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도, 우리가 헤어지고 20년 정도가 지난 후에도.
“이 선물. 큰 오라버니가 준비하신 건가요?”
“나와 엘린이 준비했다. 아무래도 여자한테 줄 선물은 같은 여자가 잘 알지 않겠느냐.”
그래도 요제피나의 질문에 본능적으로 답할 정신은 남아서 다행이다.
요제피나가 연회 내내 품에 안고 있던 상자. 사실 나와 엘린이 아니라 엘린 홀로 준비했다는 말이 옳을 선물들.
“아까 큰 오라버니가 다른 곳을 보고 계실 때, 몰래 내용물을 확인했습니다. 어쩐지 가볍더라니 에그타르트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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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렸을 적에 자주 먹던 간식이 에그타르트였으니까. 혹시 내 착각이라면…”
“아니요, 맞습니다. 하루의 낙이나 마찬가지였던 게 티타임 때 먹는 에그타르트였죠.”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요제피나의 말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둘이 머리를 맞대니까 올바른 결과가 나왔다. 나도 엘린도 기억이 변질된 상태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는데, 집단 지성은 최악의 사태를 막아주었다.
“사실, 썩 좋은 기억은 아닙니다. 에그타르트를 좋아한 건 맞으나, 막상 바라보면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지요. 그래서인지 출가를 한 이후로는 에그타르트를 먹은 적이 드뭅니다.”
‘아.’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맞다. 그 말이 맞다. 트라우마 때문에 타일글레헨 백작령에는 오지도 않던 동생들이다. 그 정도로 극심한 충격이니, 당연히 어린 시절에 즐기던 기호품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멍청한 놈. 그 당연한 걸 생각하지 못하다니. 선물을 준비한다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이런 실수를.
“하지만 이상하지요. 분명 그때와 같은 에그타르트인데, 딱히 변한 게 없는 에그타르트인데… 이제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어느새 상자를 연 요제피나는 에그타르트 하나를 꺼내 들더니, 한 입 베어 물었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죠. 과거 같은 거 절대 변하지 않는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요제피나.”
“다들 상자나 열어볼까요? 저 혼자 주인 앞에서 선물을 열어버린 철부지로 만들 생각은 아니겠지요?”
“아, 그래. 열어야지.”
“마침 안에 뭐가 있나 궁금하던 참이었어요.”
요제피나의 말에 다른 동생들도 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습을 드러내는 코냑, 살라미, 진, 치즈 케이크, 치즈 쿠키.
마지막으로 부인이 조용히 건네준 위스키까지.
“이렇게 보니 통일성이 없기는 하군요.”
“참, 그때는 몰랐는데 다들 개성이 강하기는 합니다. 아버지가 계실 적에는 통제만 받으며 지냈는데 말이죠.”
동생들의 말에 멍하니 선물들을 바라봤다.
“큰 형님. 마침 안주도 있으니, 다 같이 나눠 먹지 않겠습니까? 선물이니 어디에 쓰든 저희 마음이지 않습니까.”
“그, 건.”
“아예 밖에 있는 조카님과 조카며느리들도 부르지요.”
“그럽시다. 저 정원에서 조카님 처음 보고 엄청 놀랐습니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넘어갔는데, 지금은 좀 괜찮으니 대화라도 하고 싶군요.”
못난 맏이를 위해 용기를 내주는 동생들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