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65)
로판 속 공무원 865화(866/945)
확실히 내가 몸 쓰는 일은 잘 하는 것 같다.
“관성 드리프트!”
“우아아아!”
“압빠! 채고! 죠아!”
분명 수레에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건 오늘이 처음인데, 어느덧 안전하게 속도를 내는 건 물론 이런 묘기까지 부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사실 드리프트 같은 걸 해도 괜찮은 건가 나 스스로도 의문이나, 원래 놀이 활동이 격렬할수록 아이들은 환장하는 법. 내가 의문이 커지는 것과 비례하여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커졌다.
“칼. 아무리 마법이 있다지만 조심하렴. 아이들이 타고 있는데 너무 격렬하잖니.”
물론 나도 아무 대책 없이 냅다 드리프트를 박아버린 건 아니다. 저택 제일, 제도 제일, 제국 제일을 넘어 대륙 제일의 마법사가 바로 옆에 있다. 아이들의 안전 정도는 가장 먼저, 누구보다 빠르게 확보한 상태다.
그저 안전하다는 이성적 판단과 별개로 보기에 영 안 좋아서 문제지. 직접 끌고 다니는 나도 그런데, 지켜보는 트릭시는 오죽할까. 아마 처음부터 마법을 걸어주는 게 아니었나 고민 중일 거다.
“아냐! 이거 죠아! 채고야!”
“웅! 계속 이러케 탈래!”
“엄마도 고마워! 엄마 마법 채고!”
그렇기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려던 찰나, 수레에 타고 있던 아이들이 너도나도 나를 두둔하기 시작했다.
고맙지만 곤란하다. 트릭시는 길고 깨끗한 머리카락, 일반인들과 달리 뾰족한 귀, 다양한 마법 활용으로 인해 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그런 트릭시에게 항의를 할 정도면 이 수레 놀이가 마음에 들었다는 뜻. 오늘 한 번으로 끝날 놀이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로 통탄스러운 일이다. 차라리 테레사를 안은 채 등으로 이동하는 게 낫지, 매일매일 수레 끄는 아비가 되는 건 좀.
‘말려줘.’
나도 모르게 트릭시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내가 안 된다고 하면 아이들이 통곡하거나 토라질 거야. 그러니 아이들이 사랑하는 트릭시가, 나보다 서열이 높은 트릭시가 말려준다면…!
“아빠도 힘들 테니 중간중간 쉬어야 한단다. 알겠지?”
“웅! 아빠랑 가치 간식두 먹을께!”
“후후, 그래. 그러면 충분하단다.”
‘아.’
미약하지만 유일했던 희망이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아이들의 원망을 받기 싫은 건 나뿐만 아니라 트릭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트릭시가 아이들의 사랑을 잔뜩 받고는 있으나, 백 번 잘해주다가 한 번 마음 상하게 하면 그대로 호감도가 떨어지는 게 인간관계. 특히 아직 어린아이들을 상대로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조금은 기대했는데. 아이들에게 대체 불가 인력인 트릭시라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 진심으로 기대했었는─
“트릭시 엄마! 엄마도 가치 타!”
“어?”
“으, 으응?”
수레 가장 깊숙한 곳에 앉아있던 페디가 활기차게 입을 열었다.
예상치 못한 제안이라 나도 트릭시도 멍한 목소리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역시 장남.’
이윽고 당혹감은 경이로움으로 변했다. 우리 아이들 중 장남이자 맏이라는 이름은 장식이 아닌지, 동생들은 물론 부모의 예상마저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어떤 아이가 자기들이 타고 있는 수레에 엄마까지 타라며 제안하겠는가. 심지어 친엄마도 아닌 두 번째 엄마에게.
“마쟈! 가치 놀쟈!”
“엄마도! 엄마도!”
“뜨릭씨 엄마! 가치!”
“저, 저기.”
귀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 트릭시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치 방금 전의 나처럼.
“타. 어디까지 갈래?”
허나 내가 돌려줄 수 있는 답도 방금 전과 같았다. 나도 트릭시가 원하는 답을 돌려줄 수 없었다.
치졸하게 아까 전의 복수를 하는 건 아니다. 귀가 축 늘어진 채 터덜터덜 수레에 올라타는 트릭시가 보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트릭시의 머리카락을 잡으며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고 싶어도 아니다.
그저 아이가 원하면 부모는 들어줘야 하기에. 트릭시도 소중하지만, 여러 아이가 원한다면 아내 하나가 희생하는 것이 맞기에.
‘미안해.’
닿지 않을 사과지만 속으로 트릭시에게 사과를 건넸다. 높은 확률로 방금 전의 트릭시도 나에게 사과를 했을 테니, 이걸로 무승부다.
“주인님! 둘째 마님!”
그렇게 다시 관성 드리프트를 시전하기 위하여 허벅지에 힘을 주니, 본채 안에 있던 유리스가 달려왔다.
“유리스? 무슨 일이야?”
다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절로 고개가 기울어졌다.
지금 사용인들은 최소 인원만 제외하면 전부 연회장 쪽에 투입되지 않았나? 연회에 참석한 인원은 적지만 참석자 전원이 나보다 항렬이 높은 어른들이잖아. 사용인들 입장에서는 전력을 다하여 모셔야 하는 상황이다.
“그, 그게…”
잠시 숨을 고르던 유리스는 수레에 타고 있는 트릭시를 보며 흠칫하더니,
“대인께서 주인님하고 마님들을 찾으세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프로다운 모습이라 절로 감탄이 나왔다. 남편인 나였어도 트릭시가 수레에 타고 있으면 동요할 자신이 있거늘. 어린 꼬맹이였던 유리스도 훌륭한 사용인이 다 됐구나. 이 주인은 기쁘다.
“아버지께서?”
“네! 다른 마님들에게는 소피아가 갔어요!”
아무튼 감탄과 별개로 유리스가 가져온 소식은 상당히 의외였다.
크라시우스 칠남매가 약 20년 만에 모인 자리다. 그조차 내 조부 되는 분이 돌아가신 시점을 기준으로 잡은 것이니. 결혼으로 흩어진 걸 감안하면 그보다 오래됐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남매들만의 시간을 위해 일부러 나랑 부인들은 물러난 상태다. 그런데 연회가 시작한 지도 얼마 안 지났는데, 벌써 우리를 찾으신다고? 남매들만의 시간은 어디 갔어.
‘어쩌지 이거.’
도의상 거절하는 게 맞는 것 같지만, 내가 의아해 하는 걸 아버지라고 모를 리 없다. 오히려 나보다도 이 시간을 기다렸을 아버지지 않나.
백번 양보해서 아버지가 물러나셨더라도, 옆에 있던 어머니가 저지하셨을 터. 그러니 이 소환은 거절하기보다 응하는 것이 옳다.
“아이들 얘기는 없었어?”
다만 이건 확실히 해야 한다. 저택의 사용인들이 전부 연회 유지에 투입되었고, 아이들은 한창 나와 놀던 중이다. 이 아이들을 두고 냅다 연회장으로 달려간다? 마땅히 아이들을 돌볼 사용인들도 없는 상황에서?
물론 아직 기어다니는 것이 고작이거나 기지도 못하는 아이들을 돌보는 사용인들. 아이들의 영원한 장난감인 성수들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이렇게 불을 지핀 상황에서 그냥 가면 후환이 두렵다. 다음에 놀 때는 아이들이 얼마나 성화겠어.
“어, 그, 도련님들이랑 아가씨들 얘기는 없었지만, 대인이랑 같이 계시던 분들이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싶다 하셨거든요.”
그렇게 말한 유리스는 홀로 끙끙거리더니,
“도련님들이랑 아가씨들도 그분들한테는 가족이니까, 같이 가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겠네.”
완벽한 결론이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건 그렇지. 거기 계신 분들은 정원에서 수레를 끌던 나랑 마주쳤으니, 나랑 아이들이 같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계신다.
그리고 전부 육아 경험도 있는 분들이다. 우리 아이들 수준의 나이라면 부모 가는 곳에 무조건 따라간다는 사실도 당연히 인지하시겠지. 즉, 나와 부인들을 부른 건 자동으로 조카손주들도 보고 싶다는 의미다.
좋아, 가자. 크라시우스 총출동이다.
***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가족이란 매일매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음식을 먹는 존재다, 라는 말을.
어렸을 때는 그 말이 의례적인 말인 줄 알았다. 혹은 가족이라는 존재가 그다지 즐겁고 평온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는 늘 함께 식사를 했지만 따뜻하고 화목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이런 것이 가족이라면 가족도 별거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허나 부인과 결혼하여 아우구스트 데아스트가 되고, 자식들을 낳으며 그 생각이 달라졌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건 가족이 맞는다고. 그냥 우리 크라시우스가 이상했던 거라고.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이제야 크라시우스 가문이 진정으로 가족처럼 느껴졌다.
“아까 개성이 강하다고 했던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무슨 술만 세 개입니까?”
“그렇게 따지면 과자도 세 개다. 안주 하나에 술 하나라고 생각하면 돼.”
타일글레헨 백작성에서 먹었던 수많은 음식, 고급스러운 진미보다 이 작은 간식거리가 더 식사처럼 느껴졌다. 마치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식사 같기도 했다.
“대인. 타일글레헨 백작과 2부인께서 오셨습니다.”
그렇게 형님이 직접 따라준 위스키를 입에 대니, 얼마 지나지 않아 연회장 입구 쪽에 있던 사용인이 형님에게 다가왔다.
우리 조카님. 갑자기 불러서 당황스러웠을 텐데 이렇게 빨리 와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게다가 2부인과 같이 왔다는 걸 보면 마침 같은 자리에 있, 었…?
‘잠시만.’
조카님의 두 번째 부인이 누구였지?
분명 첫 번째 부인은 울켄 공작가의 막내딸… 아니, 이제는 막내 여동생이라고 불러야 할 마르게타 공녀였지. 그다음 부인은 분명.
‘마종공 각하.’
잔을 들고 있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막연하게 조카와 부인’들’이라고 할 때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그중에서도 정확히 2부인이 찾아오자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귀족 중의 귀족. 황제 폐하를 제외하면 만인을 발아래에 둘 수 있는 존재. 황족조차 차기 계승권자를 제외하면 존중하게 되는 고귀한 자.
심지어 그러한 다섯 공작 중에서도 백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군림한, 이 대륙 전체의 정점이나 마찬가지인 대마법사.
‘그분을, 조카며느리로 대해야 한다고?’
곤란하다. 아니, 곤란하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제국의 귀족으로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일단 현명공 각하께서는 마종공 각하를 조카며느리로 대한다는 소문이 있으나, 이는 현명공께서 같은 공작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현명공께서는 많이, 좀, 독특하신 분이지 않나.
그러니 일반 귀족인 우리 따위가 감히 마종공 각하를 편히 대할 수는 없다. 아랫사람처럼 대하는 건 미친 짓이다.
‘아무도 이걸 눈치채지 못했다고?’
빠르게 동생들을 훑어보자 다섯 명 전원이 당혹감 깃든 표정으로 입구 쪽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우리가 많이 긴장하기는 한 모양이다. 조금만 생각해도 바로 아는 걸 이제야 눈치채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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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지금이라도 돌아가 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잠시, 문이 열리자 조카님과 조카며느리… 님께서 안으로 들어오셨다.
“크라시우스 가문의 칼이 숙부님들과 고모님들, 숙모님들과 고모부님들을 뵙습니다.”
“크라시우스 가의 며느리가 크라시우스의 어르신들께 인사드립니다.”
뒤이어 조카님과 조카며느리님의 황공한 인사에 질끈 눈을 감고 말았다.
“진즉에 인사드려야 했는데, 제가 우둔하고 굼떠서 이제야 인사를 드립니다. 부디 실수를 용서해 주시길.”
‘아…’
하지만 조카며느리님께서는 눈을 감으면 귀를 박살 내면 된다는 듯, 사교계에 퍼지면 무슨 소문이 돌까 두려울 정도의 사과를 건네셨다.
아니다, 이건 아니다. 차라리 우리가 조카며느리님께 사과를 해야 한다. 우리가 바로 바닥에 엎드리며 사과를 해야 했어.
“안녕하새요!”
‘으응…?’
고요한 연회장에 울려 퍼지는 해맑은 목소리에 도로 눈을 떴다.
작디작은 아이들이 조카님 다리 뒤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짜근할아바지! 고모할마니!”
“안냥하새요!”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우리를 바라보는 아이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