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66)
로판 속 공무원 866화(867/945)
아이들은 귀엽다. 작고 무해하며 순진한 눈동자를 볼 때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참을 수 없다.
물론 아이들을 꺼려 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단순히 타인을 멀리한다거나, 아이들의 브레이크 없는 활발함을 싫어한다거나─ 대충 그런 이유들 때문에. 하지만 아이를 낳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아이를 겹쳐보기 때문인지, 대체적으로 아이들에게 유하고 온화한 편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아버지의 동생분들과 그 반려자분들은 아이를 낳은 것을 넘어 손주까지 본 분들. 그런 분들 앞에 조카손주들이 나타났다.
그것도 약 20년 동안 보지 못했던 맏형, 혹은 맏오라비의 손주들이.
“…과연. 누가 봐도 크라시우스의 피를 이은 아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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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분은 아우구스트 숙부였다.
“저 짙은 흑발과 흑안. 우연히 길거리에서 봤어도 크라시우스의 아이라는 걸 알아챘을 겁니다.”
아이들 중 가장 앞에 있는 페디를 보며 미소 짓는 아우구스트 숙부. 확실히페디도 차기 크라시우스 가문의 가주가 될 운명이라 그런가, 누구보다 선명하고 강렬한 흑발과 흑안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페디의 동복동생인 율리아도 머리는 흑발이다. 오죽하면 크라시우스의 유전자가 마르의 유전자와 합이 잘 맞는 건가, 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을까. 그중에서도 페디는 눈까지 흑색인 완벽한 크라시우스지.
“조카님. 저 아이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페르디난트 크라시우스입니다. 제 첫째 아이죠.”
“호오, 크라시우스의 차기 주인이었군요.”
그렇게 말한 아우구스트 숙부는 손에 들고 있던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더니, 에그타르트를 접시에 한가득 담았다.
“자. 멋지게 인사한 보답이다. 다들 하나씩 먹거라.”
그러고는 조심스레 아이들에게 다가가 에그타르트를 하나씩 건네줬다.
무릎을 꿇으며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춰주는 섬세함. 그 사소한 동작만으로도 아우구스트 숙부의 성품을 알 수 있었다.
“와! 감사함니다!”
“잘먹껫습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작은할아버지가 맛있는 간식을 건네주자, 아이들은 고개를 꾸벅이며 신나게 간식을 받았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족’이라는 존재는 자기들에게 잘 대해 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사실 우리 아이들에게 못 대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가족들은 제3자와는 다르게 사랑을 담아서 대해주는 법.
그러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가족의 출몰로 두근거리는 상황이었는데, 그 가족이 보자마자 간식까지 건네줬다. 아이들의 호감도가 급속도로 상승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저거 제가 받은 선물인데 생색은 둘째 오라버니가 내네요.”
“미안하다. 그렇다고 애들한테 코냑을 줄 수는 없지 않느냐.”
요제피나 고모의 중얼거림에 아우구스트 숙부는 작게 웃음을 흘리며 사과를 했다.
‘오.’
평온하고도 일상적인 광경이라 감탄이 나올 뻔했다.
칠남매 전원이 모인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오늘 하루 동안 대화가 100마디는 오고 갈까 걱정했었는데, 역시 핏줄의 힘은 강력했던 모양이다. 짧은 시간 안에 저렇게나 관계가 진척됐잖아.
“시고모님의 묵인이 있었기에 시숙부님께서 망설임 없이 선물을 주실 수 있던 거겠지요.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으, 으음. 과찬이십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희 조카손주가 먹을 건데요, 네, 얼마든지… 줄 수 있죠.”
다만 남매들의 사이가 좋아진 것과 별개로, 조카며느리와는 빠르게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았다.
트릭시가 슬며시 입을 열자 말을 더듬는 아우구스트 숙부, 자연스레 눈을 내리 까는 요제피나 고모.저 모습을 보고도 빨리 친해질 거라 기대하는 게 양심 없는 생각이기는 하다.
애초에 우리 부모님도 트릭시를 며느리로 받아들이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으니까. 다른 장인, 장모님들도 마찬가지고.
‘정작 트릭시가 권위를 내세우는 편도 아닌데.’
아주 미약하게 귀가 내려간 트릭시를 보니 절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트릭시는 공작이라는 작위, 100년이 넘게 군림한 경력, 대마법사라는 경지가 어우러져 황제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고귀한 존재가 되었다. 그렇기에 위세 높은 귀족들도, 하다못해 같은 공작들도 트릭시 앞에서는 정중했다.
허나 트릭시는 한 번도 자신의 권력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거나, 다른 귀족들을 과도하게 압박한 적이 없다. 그저 마탑주로서 마법 발전에 몰두한 연구자요, 조금 격하게 말하면 히키코모리였지. 세르베트 공작인 베아트릭스가 아니라 혼혈 엘프 트릭시는 무해하고도 선량한 존재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트릭시를 두려워하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조카며느리가 아닌 공작으로밖에 보이지 않기에.
‘시간이 해결할 문제겠지.’
속으로 시무룩해 하고 있을 트릭시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언젠가는 숙부들과 고모들, 숙모들과 고모부들도 트릭시를 조카며느리로 받아들이겠지. 내가 그저 마종공으로만 바라봤었던 트릭시를 부인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허어.”
“세상에, 세상에…”
“우리 조카님, 엄청난 남자였군.”
그 와중에 내가 트릭시와 스킨십을 하니, 부모님을 제외한 다른 어른들은 수군거리며 감탄과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조금 의도한 거기는 하다. 우리 사이는 정략이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사랑이며, 서로를 공작이나 제국백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로 대하는 중이라는 과시. 그 과시를 위하여 어른들 앞에서 애정표현을 하는 뜨거운 남자가 되었다.
이래야 저분들이 하루라도 빨리 적응할 것 아닌가. 원래 이런 건 말로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죄송해요, 저희가 조금 늦었죠?”
뒤이어 다른 부인들도 온 덕에 다소 술렁거렸던 분위기는 금방 가라앉았다.
이제 트릭시가 아닌 다른 조카며느리들을 대하느라 공작과 마주한다는 부담은 줄어들었을 거다. 대신 나와 트릭시의 스킨십은 계속 뇌리에 남게 되겠지.
‘그거면 됐어.’
오늘은 그걸로 충분하다. 첫술부터 배부르기를 원하는 건 양심이 없으니까.
우리가 오기 전 연회장의 분위기가 어땠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현재 분위기와는 확연히 달랐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세실리아라고 했지? 이 케이크도 먹어 보겠니?”
“엄마가 식사전애는 간식 만이 먹지 말랫서요!”
“어머나, 똑똑하기도 하지.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는 많이 먹어도 된단다. 이게 식사 대신 먹는 거거든.”
“지, 진쨔요?”
“그럼. 진짜지요.”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쓰다듬고, 안아주고, 칭찬해 주고, 먹여주는 숙부, 고모들. 졸지에 남매 상봉장이 아닌 아이들과 놀아주는 장소가 되었으니, 당연히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민망했다. 아이들을 이곳에 데려온 건 연회장의 분위기가 어색할 경우, 아이들이라는 압도적 활발함을 투입해서 완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미 아버지와 동생분들의 관계가 진척되고 있는 상황에서 냅다 판을 바꿔버릴 의도가 아니었다.
‘괜히 데려온 건가.’
살짝 후회됐다. 다행히 다들 손주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 즐거워 보이지만, 그래도 이 자리는 남매들의 극적인 재회를 위한 자리였는데.
“고맙구나.”
“예?”
허나 내 죄책감과 달리 아버지는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여셨다.
아니, 그보다 언제 내 옆까지 오신 거야.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막내 고모랑 계시지 않았나?
“우리는 20년이 넘게 따로 살아왔고, 그 이전에도 제대로 된 소통을 못 하였다. 그래서 공통된 관심사 같은 게 없었지. 서로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대화 같은 건 감히 바랄 수 없었다.”
내가 놀라든 말든, 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시는 아버지의 말씀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말씀이 맞다. 대화라는 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주제가 있어야 하는 법. 그러나 이 안타까운 남매들은 20년이나 헤어졌기에 대화 주제가 마땅치 않았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과거 얘기를 할 수도 있으나, 그 과거는 내 조부 덕에 시꺼멓기 그지없는 과거다.
“그나마 선물 덕분에 물꼬를 틀 수 있었다. 그래도 연회 내내 같은 주제로 대화할 수는 없었지.”
그것도 맞는 말씀이다. 아무리 언변가라도 한 주제로 몇 시간이나 대화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아버지는 딱히 언변이 뛰어난 분이 아니고, 동생분들도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보거라. 크라시우스라는 핏줄을 제외하면 닮은 거 하나 없는 우리지만, 딱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가정을 꾸렸다는 것. 그렇기에 조카손주들을 보고 저렇게 하나가 되지 않았느냐.”
“그렇, 군요.”
아버지와 함께 연회장을 바라보았다.
세 분의 숙부들도, 세 분의 고모들도, 그리고 다시 세 분의 숙모들과 고모부들도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귀족들이 친목을 위해 의례적으로 짓는 기계적인 미소가 아닌, 진심에서 나오는 밝은 미소였다.
내가 연회장에 들어왔을 때부터 꾸준히 내 눈치를 보던 막내 고모부─ 밀키언 백작까지도.
‘조카손주로 하나 되는 어른들이라.’
마치 은퇴하고 할 일이 없던 노인들이 노인정이나 게이트볼장에 모여 서로의 손주 자랑을 하는 모습 같다.
자기들 손주 자랑이 아닌 남의 손주랑 놀아주고 있다는 게 차이점이지만, 아무튼 우정을 쌓기 위한 소통이라는 건 변함이 없지.
“그러니 고맙다. 시작은 우리가 했어도, 이어 나간 건 너와 아이들 덕분이야.”
“시작이 없었다면 이어 나가지도 못했을 겁니다. 설령 제가 도움이 됐더라도 그건 아이들의 공이죠. 제가 들을 말은 아닙니다.”
내 말에 아버지는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셨다.
근래 본 미소 중에 가장 밝고도 가볍게 느껴지는 미소였다.
***
20년의 공백과 그 이전 20년의 과거.
도합 40년을 가뿐하게 넘는 시간 동안 가족 같지 않은 가족으로 지냈으나, 그 어색함이 해소되는 데는 4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이토록 쉬운 것을.’
형님이 주었던 코냑을 마시다 픽 웃음을 흘렸다.
물론 어색함이 사라진 것이지, 죽고 못 사는 애틋한 가족이 된 건 아니다. 그래도 불과 4시간 전의 우리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는 큰 오라버니가 연회를 열었으니, 다음에는 둘째 오라버니가 여는 걸로 할까요?”
심지어 이번 회동을 일회성이 아닌 정기적 모임으로 만들자는 것에 모두가 동의했다. 순서는 단순하게, 동시에 남매답게 나이 순서로.
‘다들 좋아하겠어.’
내가 떠나기 전, 부디 남매들과 친해지고 오라며 격려와 응원을 건네주었던 아이들. 그 녀석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주면 자기 일처럼 기뻐할 것이다.어쩌면 감찰성 장관의 사촌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겠다며 나보다 좋아할 수도 있다.
그래, 언젠가는 사촌들끼리도 만날 수 있게 하자. 더 나아가 육촌끼리도. 당장은 무리지만 언젠가는.
“주인.”
‘응?’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금 잔을 입에 대려던 찰나, 입구 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배고프다. 왜 식사 시간인데 아무도 안 챙겨주는 거냐.”
이상하다. 분명 목소리가 들리는데 왜 아무것도 안 보이…?
“병아리?”
부인의 말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작은 병아리 하나가 조카님에게 칭얼거리고 있었다.
“뭐야.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어?”
“여기서 맛있는 냄새가 나길래.”
그것도 삐약 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 말로.
‘허어.’
이번 연회. 실로 기이한 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