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67)
로판 속 공무원 867화(868/945)
크라시우스 칠남매의 기적적인 재회는 나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사실 20년 만에 회동이 결정된 것치고는 칠남매 중에서 한 명도 빠지지 않았다는 것부터가 경이로운 업적이기는 하다. 원래 나이가 들수록, 멀리 있을수록 만나기 힘든 것이 인간 관계지 않던가. 한 명이나 두 명, 어쩌면 절반 이상이 불참했어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곱 명 전원이 반려자와 함께 전부 참석하였다. 연회가 끝난 뒤 객관적인 시야에서 보니, 첫 단추부터 잘 꿰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와 막내 고모가 준비한 선물은 크라시우스 칠남매를 진정한 식구(食口)로 만들었고, 뒤이어 우리 아이들이 투입되면서 어른들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녹아내렸다.
“말하는 병아리라니. 조카님 저택에 특이한 짐승들이 많다는 건 들었지만, 직접 보니 특이하다는 말로 표현하는 게 실례일 정도군요.”
“어쩜. 작은 게 귀엽기도 하지. 너도 케이크 좋아하니?”
“짐승이 단 거나 짠 걸 먹으면 위험하지 않습니까?”
“난 주기만 하면 아무거나 잘 먹는다.”
겸사겸사 연회장에 출몰한 겸손도 어른들의 주목을 강렬하게 끌었다.
우리야 몇 년 동안 같은 집에서 지냈으니 말하는 짐승도 일상이지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것도 수십 년 동안 살아온 어른들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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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아이들은 ‘동물 = 절대 말할 수 없는 존재’라는 관념이 희미하기라도 하잖아. 반면 어른들은 동물이 말을 못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 여기고. 그 당연함이 깨졌는데 어찌 덤덤할 수 있을까.
“겸소니! 여기 우리 짜근할아바지랑! 고모할무니!”
“그렇군. 아무도 안 보인다 했더니, 귀한 손님들이 와서 바빴던 거였어.”
“겸소니도 인사해!”
“인사하라면서 손으로 쥘 필요는 없지 않나…?”
게다가 겸손이가 오자 평소처럼 겸손이를 물고 빠는 아이들. 작은 아이들과 작은 동물의 공존에 어른들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었다.
그렇게 여러 요소들로 인해 연회는 훈훈히 마무리되었고, 조만간 아우구스트 숙부가 두 번째 연회를 주최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칠남매는 뿔뿔이 흩어졌다. 언젠가 다시 모일 드래곤볼처럼.
“때부! 어제 때부 삼쵼이랑 고모왓따며!”
“예, 전하. 실로 오랜만에 모인 자리였습니다. 소신도 처음 뵌 분들이지요.”
“치사해!”
“예?”
다만 드래곤볼이 처음 모인 걸 보지 못한 어느 꼬마 숙녀는 나에게 열렬히 항의하였다.
“나두 때부 삼쵼이랑 고모 보고시펏는대! 치사하게 때부만 보고!”
예상치도 못한 항의에 입을 열지 못했다. 설마 저런 이유로 화를 낼 줄은 몰랐으니까.
‘오지 못하게 해서 화가 난 게 아니야?’
연회가 열리는 동안에는 황태녀가 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다른 날은 다 상관 없지만 부디 연회만큼은 피해 달라고 황제와 황후에게 절절히 부탁했었다. 둘도 크라시우스 가문의 안타까운 비극을 대략적이나마 알기에, 황태녀가 연회에 끼어들면 무슨 사태가 터질지 알기에 내 말에 수긍해 줬다.
그래서 황태녀가 심통이 나면 단순히 저택에 놀러 오지 못해서일 줄 알았는데. 내 가족을 보지 못해서 심통이 난 거라고?
‘이게 뭔.’
당혹스럽지만 괜히 웃음이 나왔다.
아마 황태녀의 항의는 ‘대부의 가족 = 내 가족’이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박혀서 그런 거겠지. 나를 그만큼 진짜 가족이라 여기며 좋아한다는 뜻이니 기쁘기도 하다.
‘그래도 연회 참석은 안 돼.’
허나 기쁜 건 기쁜 거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아이의 활발함으로 어른들의 어색함을 녹인다?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연회장을 누비는 아이가 마땅히 숭배해야 할 아이라면, 차기 제국의 주인이 될 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작인 트릭시에게도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치를 보던 분들이지 않나. 그런 상황에서 공작 위에 군림하는 황태녀가 나타나는 건 너무 과한 충격 요법이다. 그 정도면 숙부들이나 고모들 중에서 심장 마비로 쓰러지는 사람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아.
“전하. 그건 전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으에? 나 땜에?”
“아니지요. 때문이 아니라 위해서입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황태녀를 안아올리며 가볍게 등을 토닥였다.
“제 숙부님들과 고모님들은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전하가 오셔도 전하와 놀 수 없었겠지요.”
“진쨔?”
아니다. 딱히 중요한 이야기 같은 건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황태녀와 놀 수 없다는 말은 진짜다.
이 세상 어느 귀족이 황태녀와 놀아줄 수 있겠냐고. 그것도 오늘 처음 본 황태녀를.
“물론이지요. 헌데 전하와 처음 본 역사적인 순간에 놀아주지 못하는 건 너무 슬픈 일 아닙니까? 전하께서도 처음 본 소신의 가족들과 놀지 못하는 건 아쉬울 테고요.”
“우웅… 그건 그런대…”
“그러니 마음 푸시지요, 전하. 전하와 마음껏 놀 수 있는 때가 온다면 소신이 먼저 전하를 모시겠습니다.”
“우우우우웅…”
내 말에 황태녀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가더니,
“죠아! 때부 믿을깨!”
“황송합니다.”
내 두뇌를 쥐어짠 변명에 넘어가 주었다.
안심했다. 황태녀가 계속 항의를 하면 데아스트 백작령에 달려가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황태녀를 들고 숙부 집에 찾아가는 미친 조카가 되는 건 피했다.
‘어째 날이 갈수록 변명만 늘어나는 거 같지.’
이윽고 작은 자괴감이 늘었다. 아이를 키우면 부성애와 아이와의 교감, 드넓은 관용과 자비, 아이들과 놀아줄 수 있는 체력. 대충 이런 것들이 늘어날 줄 알았다.
이 중에서 늘어나는 건 어째 부성애뿐이고, 굳이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동원하는 변명 솜씨 같다. 이게 맞는 육아법인가 진지하게 의문이다.
동시에 아비가 이 모양이니 아이들도 거짓말을 배우는 게 아닐까─ 라는 걱정도 든다. 부디 그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기를.
이제는 완전히 여름이라고 할 수 있는 날이 되었다.
날이 갈수록 불러오는 리제와 린의 배. 점점 밖에 나가는 걸 꺼려 하는 아이들. 제니와 새끼들을 보러 갈 때마다 굳은 결의를 하며 나가는 티티. 이 모든 것이 여름의 맹렬함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 여름. 결코 피할 수 없는 빅-이벤트가 하나 있다.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오는구나.”
“그러게나 말이다.”
로베르트, 에두아르트와 놀아주기 위해 방문한 에리히의 저택.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나지막이 입을 여는 에리히와 멍하니 대꾸하는 나.
그래, 정말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륙이 망하는 그 순간까지 오지 않을 것 같던 날이 왔어.
“이제 2주 남았나?”
“2주 후면 류티스도 기혼자네.”
에리히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도 에리히도 작게 웃음을 흘렸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류티스가 올해 여름에 결혼한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이미 약혼 선물까지 보내며 준비했음에도, 류티스와 결혼이라는 단어가 결합되니 계속 웃음만 나온다.
솔직히 제과 동아리 부원들은 하나같이 둔했다. 저것들 결혼은커녕 연애는 가능할까 걱정이 될 정도로. 에리히는 물론, 아인테르와 라테르, 타니안이 그랬지.
허나 류티스는 그중 압권이었다. 특별히 더 눈치가 없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고, 압도적인 기행 때문에 그랬다. 유독 격의 없이 화끈한 성격도 한몫했고.
‘눈치도 더 없었나?’
가물가물하다. 당시에는 부원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느라 정신이 없었고, 지금 와서는 몇 년 전의 일이라 자세한 기억이 없다.
정확히는 굳이 희미해져가는 기억을 도로 되살리고 싶지 않다. 이건 없어져도 무방한 기억인지라.
“아, 형은 막내 형수랑 같이 간다고 했었나?”
“그랬지. 마침 피네가 아르메인에 관심이 있더라고.”
에리히의 말에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라테르의 결혼식 때 린과의 신혼여행을 겸했던 것처럼, 류티스의 결혼식 때는 피네와의 신혼여행을 겸할 예정이다.
딱히 의도한 일정하여 겹친 일정은 아니다. 의외로 피네가 아르메인을 원하더라. 피네가 제국 북부 출신이라 아르메인에 대한 소식을 이것저것 듣기도 했고, 무인으로서 기사왕국이라 불리는 곳에 흥미도 가는 모양.
피네가 아르메인을 언급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어차피 가야 할 아르메인 왕국행과 신혼여행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아닌 피네가 자기가 원하는 걸 먼저 말했다는 것. 그 사실이 기쁘고 감동적이었다.
‘당연히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고 할 줄 알았지.’
그러면 나는 ‘신혼여행은 전부 부인들이 골랐으니 이번에도 피네가 골라.’ 라는 말을 하고, 피네는 또 그걸 사양하고, 나는 사양을 사양하고. 그런 지루한 공방이 무한 반복될 줄 알았다.
헌데 피네가 구체적인 장소를 먼저 언급했다. 역시 사람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니 성격이 긍정적으로 변했어. 이 남편은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다 나올 것 같아.
‘…정말 원해서 고른 거 맞겠지?’
살짝 불안하다. 내가 아르메인에 가야 한다는 건 부인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 혹시 피네가 그걸 고려해서 아르메인에 가고 싶은 척, 나를 배려한 건 아닐까? 자기가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말한 게 아닐까?
애석하게도 가능성이 있다. 피네의 눈치와 지능, 배려심을 생각하면 그 정도 연기는 충분히 가능해.
‘그렇다고 추궁할 수도 없고.’
피네가 정말로 아르메인을 원했을 확률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네 진심을 말해!’ 같은 추궁을 하면 미친 남편이지 그게.
“너는 어떻게 할 거야? 같이 갈 수 있겠어?”
“2주 여유 있으니까 될 것 같은데? 세라도 이제 일상적인 거동이 가능하니까. 쾌차 기념 여행이라 생각하지 뭐.”
착잡한 심정에 슬쩍 화제를 돌리니, 에리히는 평온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도 제과 동아리였잖아. 같은 부원의 결혼식이니 갈 수 있으면 가겠다 하더라고.”
“시기가 잘 맞아서 다행이네. 봄에 했으면 못 갔을 텐데.”
“차라리 못 가는 게 맞지 않았나 싶어.”
반쯤 농담, 반쯤 진심이 섞인 말에 픽 웃음을 흘렸다.
저게 세라의 대외 활동을 걱정해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출산을 마친 아내에게 흉한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남편의 마음인지는 모르겠다.
“그럼 이번에도 우리 먼저 간다. 너희는 느긋하게 와.”
“아, 응. 우린 결혼식 사흘 전 즈음에 갈게.”
“그래.”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에두아르트의 방으로 향했다.
지금쯤 홀로 로베르트와 에두아르트를 돌보고 있을 제노비아가 한계에 이르렀을 시간. 슬슬 손을 보태러 가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