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69)
로판 속 공무원 869화(870/945)
국경에서 시작된 환대는 아르메인의 수도인 라두스에 이를 때까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방문하는 도시마다, 식사를 위해 마차에서 내린 도시마다 반겨주는 인파들. 더욱 구체적으로는 아르메인 외교부에서 달려온 (업무)해방 노예들.
안색은 다소 어두웠지만 눈은 반짝이고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한 것이, 진심으로 반겨주는 게 느껴져서 실소가 절로 나왔다. 내가 제국 외무성 공무원들한테도 이렇게 환대 받지는 못할 텐데.
‘정작 기사들은 없었지만.’
막 라두스의 성문을 통과하고 나서야 위화감을 느꼈다. 환대를 받을 때는 외교부 사람들이 일당백의 기세를 자랑해서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나를 맞이한 인원 중에 기사들은 없었다.
놀라운 일이다. 물론 호위병은 있었지만 기사와 병사들은 다른 법. 검에 미치고 검에 사는 검박─ 아니, 검 애호가들이 아르메인의 기사들이다. 헌데 그런 애호가들이 대륙 제일 검의 방문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솔직히 의외다. 내 명성을 생각하면 기사들이 환대해 주고 외교부가 잠잠해야 하잖아. 왜 반대로 이루어진 건데.
‘낯 가리는 건가?’
순간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나를 보기가 부끄러워서 오지 않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일단 기사들이 자존심 때문에 나를 꺼려 하는 건 아닐 거다. 이미 국가적 차원에서 파워 게임을 포기하기도 했고, 내가 검사 분야에서는 1위인 걸 인정했다. 그런 주제에 뒤늦게 틱틱거리는 건 도리어 자신들의 체면을 구기는 꼴이다.
그렇다면 정말 생각하기 싫은 발상이고 끔찍한 가능성이나, 어쩌면 아르메인 기사들이 수줍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치 아이돌을 눈앞에 두고 아무 말도 못 하는 팬처럼.
‘기사단 팬클럽.’
상상만 해도 정신이 아찔하다. 우락부락한 남정네들이 수줍어하며 몸을 배배 꼬는 모습을 떠올리고 말았어. 이게 무슨 인세의 지옥인 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거겠지.’
이윽고 빠르게 머리를 털어내며 끔찍한 가능성을 폐기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나에 대한 배척일 리는 없다. 아르메인의 심장이자 근본은 누가 뭐라고 해도 기사들이기에, 기사들이 나를 꺼린다면 아르메인 외교부에서도 나를 환대하기 어려웠을 거다.
그리고 아르메인의 호쾌함과 저돌적인 성향을 고려하면 부끄러워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차라리 너도 나도 환대를 위해 몰려나오다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게 더 그럴듯하지. 내가 모르는 곳에 전복된 마차 수십 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 아마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걸 거다. 그래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일 터. 어차피 아르메인에 지내다 보면 좋든 싫든 보게 될 테니 너무 고민하지 말자.
“대륙 제일 검을 향하여! 검례!”
다만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백 명이 넘는 인원을 한 번에 보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어.
‘이게 뭔.’
왕궁 입구에서 일제히 검례를 하는 기사들의 모습에 정신을 놓고 말았다.
나는 류티스의 결혼식 축하와 더불어 검묘에서 하늘을 갈라야 하는 상황. 덕분에 신혼여행을 즐기기 전, 왕궁에 방문하여 아르메인 국왕과 인사를 나누기로 했다. 사실 자국 황제도 아닌 타국 군주를 보는 건 썩 달갑지 않은 일이나, 무려 국왕의 요청이니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빠르게 용무만 마치고 돌아가려고 했거늘. 피할 수 없는 공간에서 어마어마한 폭탄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쩐지 안 보이더라니 이런 걸 준비 중이었냐.
“검을 추구하는 후배들이 대륙 제일 검을 뵙습니다!”
“””제일 검을 뵙습니다!”””
그 와중에 기이하기 짝이 없는 인사가 이어져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후배들…?’
실로 기이한 일이다. 단순히 왕만 보고 가려다가 아르메인 기사들의 선배가 되어버렸다. 대충 봐도 나보다 연장자가 한가득인데, 순식간에 선배가 되어버렸어.
미친 인간들. 나는 당신들 같은 후배는 모른다. 난 선배도 없고 후배도 없는 무취학 성인이야. 내 후배를 자처하는 건 너희도 졸업장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인데,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겠냐?
“역시.”
허나 이 혼란 속에서 내 옆에 있던 피네는 만족스럽다는 듯, 혹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외교부 관료들만 환대에 나서서 의아했었는데, 이런 걸 준비하고 있었군요. 대륙 제일에게 걸맞은 마땅한 대우입니다.”
‘아.’
피네의 말에 이마를 짚을 뻔했다.
내 소중한 아내이자 추종자 1호인 피네. 어떻게 보면 내 망상으로 끝났던 기사단 팬클럽을 실현시킨 선구자. 그 정도로 사랑과 존경이 넘쳐흐르는 피네기에 이런 광경을 보고도 움찔하기는커녕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내 남편은 이런 대우를 받는 게 마땅한 사람이라고. 기사왕국의 심장에서 기사들의 존경 어린 검례를 받는 사람이라고.
정작 남편은 속이 타들어가고 있지만.
“어서 오십시오, 제일 검!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속을 더욱 뜨겁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익숙한 빨간 머리와 빨간 눈. 내 속을 태우고 있는 불꽃도 저렇게 빨갛겠지.
“류티스 저하, 를 뵙습니다.”
“하하! 이거 참, 제일 검에게 존대를 들으니 부끄럽습니다!”
씁쓸함을 억누르며 나를 아르메인까지 오게 만든 원흉에게 고개를 숙이니, 류티스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부인께도 인사드립니다! 애석하게도 결혼식 때는 직접 축하드리지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축하를 전할 수 있게 되었군요! 그것도 제 결혼을 앞두고 축하할 수 있다니! 마치 신께서 인도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피네에게도 목례를 하며 왕족치고는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아무리 목례라지만 왕족, 그것도 왕의 직계가 타국 귀족에게 고개를 숙였다. 피네의 남편인 나까지도 잠시 당황할 정도의 대우였으나,
‘너네 왜 가만히 있는데.’
나보다 더 당황해야 할 아르메인 놈들은 잠잠하기 그지없었다.
뭐지? 혹시 내 부인이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라고 생각하는 건가? 만약 그런 거라면 고마우면서도 두렵다. 저 광기와 단합력이 두려워.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저하. 저 또한 저하의 경사를 축하드려야 하나 아직은 다소 이른 것 같으니, 결혼식 때가 되면 다시금 인사드리겠습니다.”
“하하, 그거 좋지요! 그럼 그때 다시 뵙겠습니다!”
피네의 말에 다시 웃음을 흘린 류티스는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 그럼 같이 들어가시죠. 부왕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설마 저하께서 직접 안내를 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 사이에 이 정도는 해야지요. 그리고 저도 제일 검의 강림을 직접 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도 저 사이에 껴서 검례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공포스러운 말을 내뱉는 만행에 침통히 눈을 감았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말로 끝났지,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Z2dKbDJFSCtSbEo3WFlpUEN0eDQxZDIxSlVLWWJwQ2VZcldiVXVlTVZTaDUxUXQ4T3BsSHJqWEQzZ1kwVDlOeQ
지금까지 류티스의 성품이 어디서 나온 건가 궁금했었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돌연변이일까, 아니면 콩을 심은 곳에서 콩이 나온 자연적인 성품이었을까. 그도 아니라면 팥으로 태어났는데 자라면서 콩이 되어버린 대참사일까. 지난 몇 년 동안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리고 년 단위로 이어진 의문이 오늘 풀렸다.
“환영하네, 타일글레헨 백작. 먼 길을 오느라 노고가 많았을 텐데, 오자마자 격한 환영을 받았으니 피곤하지는 않을까 걱정이로군.”
‘아.’
온화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주는 중년 남성. 류티스처럼 강렬한 적발과 적안이 인상적이지만, 얼굴에는 강인함과 온화함이 동시에 깃들어있는 군주.
동시에 나에게 ‘밖에 의전이 좀 과했지? 미안하다.’ 라고 유감까지 표하는 섬세함까지.
‘류티스가 돌연변이였네.’
바로 깨달았다. 현 아르메인 국왕은 지극히 정상이지만, 류티스가 그 유전자를 이상하게 물려받은 거라고.
감동했다. 솔직히 말해서 아르메인 국왕이 검묘 하늘 베기를 요청했을 때, 이거 아르메인과 로벤스 왕가 자체가 맛이 간 건가 진지하게 우려했었다. 류티스가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편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토양부터 기괴하니 그런 거목이 자란 거 아니겠냐고.
허나 아니었다. 적어도 아르메인 국왕이 보여주는 모습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화로웠다. 저게 본성을 숨긴 연기여도 상관없다. 류티스는 연기조차 안 하니까.
“피곤이라니요. 기사왕국의 심장에서 기사들의 환대를 받는 것만큼 영광인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타국의 신하에게 이토록 큰 영광을 허락해 주신 전하의 은혜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이해해 주어 고맙군. 무를 향한 열망과 동경은 아국의 상징이자 정체성과 같은 것. 아무리 왕실이라도─ 아니, 왕실이기에 더더욱 말릴 수 없었지.”
설득력 넘치는 이유라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국가의 상징, 정체성, 동력은 왕이라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것이기에.
그래, 이렇게 말하면 얼마나 좋아. 냅다 기행을 저지르는 게 아니라 그 기행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면, 그건 더 이상 기행이 아니라 정책의 일부가 된다. 나도 나름 공무원이니 타국의 정책 집행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헌데 백작. 함께 온 부인이 감찰성 특임부장, 맞는가?”
“예, 전하. 그렇사옵니다.”
어떻게 알았느냐,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제국의 부장급 관료라면 타국에서는 주목해야 할 주요 인사로 통하니까.
심지어 피네는 특무성 시절에도 묵광대장으로서 맹렬하게 활약하였고, 내 부인 중 한 명이 되면서 사교계에서도 유명해졌다. 오히려 국왕이 피네를 모른다면 능력에 의구심을 가져야 할 지경이다.
“과연. 부인 또한 훌륭한 무인이로군.”
아무튼 피네를 빠르게 훑어본 국왕은 피네의 무위를 파악한 듯, 작게 탄성을 흘리며 감탄했다.
역시 기사왕국의 국왕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그저 보기만 해도 무인의 경지를 파악할 수 있다니.
“이러면 계획을 달리해야 하는가.”
‘…계획?’
국왕의 중얼거림에 불안감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본능이 속삭이고 있다. 방금 말한 저 계획, 절대 평범하고 조용한 계획은 아니다. 무조건 나와 피네와 연관된, 시끄럽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계획이다.
“백작.”
“예, 전하. 말씀하시지요.”
“아국의 기사들은 대륙 제일 검이라 불리는 백작을 본 것만으로도 영광이라 생각하나, 일부 기사들은 백작과 직접 검을 맞부딪히고 싶어 한다네.”
“예?”
“그들이 백작을 이기고자 검을 드는 건 아니야. 고수와 검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무인에게 있어서는 기연이라 할 수 있지.”
불안함은 점점 선명해졌다.
“백작. 혹시 아국의 기사들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겠는가? 아니면 자네의 부인이 나서도 괜찮고.”
“가르침,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물론 이는 강요가 아니고, 적절한 보상도 줄 생각일세.”
그 말에 탄식이 터져 나올 뻔했다.
정상인 줄 알았는데, 류티스의 친부가 맞기는 한 모양이다.
‘피네는 왜.’
그보다 피네는 왜 끼워 넣는 건데. 대륙 제일 검에게 도전하려면 그 아래 수문장부터 이겨야 한다, 뭐 그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