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77)
로판 속 공무원 877화(878/945)
흐음.
흐으으으음.
‘낯설군.’
연신 옷을 매만지다가 괜히 헛기침을 했다. 분명 내 몸에 걸쳐져 있는 옷인데도 남의 옷처럼 느껴진다. 마치 밧줄 같은 걸로 몸을 묶은 기분이야.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활동에 편한 옷들을 입지 않나. 공식 석상에서 입는 예복마저 최대한 몸을 움직이기 편하도록 맞춤 제작을 하였으니, 내가 살면서 입은 옷 중 가장 불편한 옷은 아카데미 교복일 정도다. 그 교복마저 간단한 대련이나 단련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였지.
하지만 이 옷은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번에도 입고 움직이기 편하게 만들라 하고 싶었으나, 아름다움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하는 옷이라 불편함을 감수해야 됐다.
‘결혼식에서도 편한 걸 추구할 수는 없지.’
내가 복잡하고 딱딱한 것을 싫어해도 결혼식을 망칠 정도로 막 나가는 놈은 아니다. 일생의 한 번─ 아니, 한 번이 아닐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인생에서 중요한 행사 중 하나가 결혼식이다. 서로 다른 가문이 연을 맺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가정을 꾸리는 성스러운 행사다.
아무리 나와 페로사가 기사라도 결혼식을 투박하게 할 수는 없다. 어쩌면 기사기에 남들보다 화려하게 해야 할 수도 있다.
‘결혼식이 아니면 늘 갑옷을 입고 다닐 테니.’
페로사가 당당하고 강인한 기사가 아닌, 아름답고 화사한 레이디로 지낼 날은 많지 않다. 페로사 스스로가 아르메인의 자랑스러운 기사로서 살아가기를 바라니까. 나도 그런 페로사의 꿈을 응원하니까.
그래도 페로사 또한 기사이기 이전에 여인이다. 신부에게 있어 결혼식은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화려한 장소에서 주인공으로 우뚝 서는 것 아닌가. 그때 누구보다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건 욕심이 아닌 본능이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바라는 것이고, 당연히 이루어야 할 일이다.
게다가 나나 페로사나 가문이 부족한 사람들도 아니지 않나. 그런 주제에 결혼식을 투박하게 하면 앞에서는 검소하다고 할지언정 뒤에서는 욕이 나올 터. 귀족들은 왕족이라도 흠이 보이면 물고 뜯기를 좋아하는 족속들이다.
그럴 수는 없다. 앞으로 평생을 함께 할 반려에게, 그런 반려와 정식으로 하나가 되는 자리에서 그런 치욕을 줄 수는 없다. 만약 그런 참사가 터지면 아르메인의 기사라고 자부할 수 없지.
‘…그래도 불편한 걸 부정할 수는 없지만.’
아주 살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방심하면 옷이 뜯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고문 선생. 새삼스레 당신이 존경스럽습니다. 난 단 한 번의 결혼식도 이렇게 쩔쩔매면서 하는데, 어떻게 여섯 번이나 한 겁니까. 그냥 결혼을 여러 번이나 해서 익숙해진 겁니까?
‘나도 여러 번 해야 하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저으며 털어냈다.
결혼식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결혼식을 여러 번 하다니. 이 무슨 광인이나 할 법한 발상인가. 이걸 현실로 옮기는 사람이 있다면 미치광이의 두뇌에 야수의 심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고문 선생이 야수 같은 존재라는 건 아니다. 결혼까지 나아갈 만큼 마음이 맞는 상대가 있다면 여러 번 결혼할 수도 있지.
단지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페로사밖에 없다. 오늘 있을 처음이자 마지막 결혼식에 모든 걸 쏟아붓고, 완벽한 결혼식을 만들면 충분하다.
“새신랑. 준비는 잘돼 가나?”
“아, 둘째 형님.”
그렇게 성공적인 결혼식을 위하여 마음을 다잡던 중. 둘째 형님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흐흐, 이거 참. 설마 네가 결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러고는 내 옆에 있던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웃음을 흘렸다.
내 결혼이 확정된 날부터 거의 1주에 한 번 꼴로 듣는 말이다. 물론 말하는 사람들마다 이런저런 포장지를 덮어 좋게 말하기는 하지만, 속내는 ‘너도 결혼이라는 걸 하는구나.’ 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단지 가족이자 같은 왕족인 형님은 포장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처럼 대놓고 말하는 것이겠지.
“제가 미혼으로 버티면 뒤에서 욕먹습니다. 동생들도 위에 있는 놈이 비켜야 결혼하지 않겠습니까?”
“욕은 무슨. 네가 계속 미혼으로 지냈다면 부왕께서는 널 넘기고 혼사를 진행하셨을 텐데.”
옳은 말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부왕 전하는 못난 아들 때문에 그 아래 자식들이 미혼으로 지내는 걸 방치하실 분이 아니다. 순서고 뭐고 과하게 미적거리면 냅다 넘기셨을 확률이 높다.
자식 한 명의 체면보다는 여럿의 행복이 우선이니까. 게다가 부왕께서 내 체면을 포기하실 정도면, 그건 부왕께서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한 이후일 테니.
“아무튼 몇 번이나 말한 거지만 다시 축하한다. 형님도 하객들을 맞이하느라 직접 오시지는 못했지만, 대신 축하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셨다.”
“흐음.”
“뭐냐. 왜 그렇게 보는 거냐?”
“다들 바쁜데 형님은 어떻게 오신 건가 싶어서 말입니다.”
합리적인 지적에 형님은 조용히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굵고 단단한 팔뚝이다. 그 팔뚝으로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동생의 목을 조른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
‘분명 나도 성장했는데.’
이상한 일이다. 1살, 2살 차이도 어마어마한 격차인 어린 시절이라면 모를까, 이제 나도 당당한 아르메인의 남아이자 기사다. 솔직히 대련을 붙으면 형님에게 승리를 거둘 자신도 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이렇게 몸과 몸으로 부딪히면 반항할 수가 없다. 아직 내 육체는 형님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뜻인가?
“이게 기껏 와줬더니 시비나 걸고 말이야. 이대로 결혼식장 한 바퀴 돌고 싶은 거냐?”
“아, 아닙, 니다.”
“뭐, 내가 한가해서 온 건 맞지.”
아주 잠깐 억울한 마음이 치솟았다.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면서 왜.
“왕세자 옆에 2왕자가 얼쩡거리면 귀족들이 이상한 눈으로 본다. 그러니 다른 가족들은 다 귀족 앞에 나서도, 나는 네 옆에 붙어 있는 거야. 이게 둘째의 숙명이다.”
“혹시 첫째로 태어나고 싶으셨습니까?”
“미쳤냐? 어떻게 사람이 왕세자 같은 걸 하지?”
큰형님이 들었다면 분개했을 발언이지만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 자리에는 큰형님이 없으니까.
둘째 형님이 다녀간 이후로 마음이 편해졌다.
어색한 옷 때문에 몸이 불편한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긴장감 때문에 마음도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 긴장감이 둘째 형님과의 대화 덕분에 풀렸고.
‘고맙습니다, 형님.’
아직 목은 좀 욱신거리지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 긴장감 때문에 결혼식을 망치는 것보다는 목이 좀 아프고 끝나는 게 낫지.
“저, 저하.”
“음?”
“목이 조금 붉어진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나와 팔짱을 끼고 있던 페로사의 말에 머쓱히 목을 매만졌다.
그렇군. 자국이 조금 남았었나. 형님도 동생의 결혼식에 은근 흥분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나라도 결혼식은 설레서 말이야. 얼굴이 빨개지는 건 막았지만, 목은 내 말을 안 듣는 것 같아.”
그래도 차마 ‘둘째 형님에게 농담 한번 건넸다가 보복당했다.’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적당히 농담 섞인 대답을 돌려줬다.
“그보다 저하라니. 결혼식 날에 듣기에는 너무 딱딱한 칭호인데.”
“이 순간이 지나면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이지 않습니까. 마지막 추억이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추억이라.”
추억. 확실히 추억이 중요하기는 하지. 굉장히 그럴듯한 사유라 바로 납득했다.
하지만 나는 페로사라고 부를 거다. 페로사가 나를 저하라고 부르면 아직 남편을 어려워한다고 여길 수 있지만, 내가 페로사를 경이라 부르면 아무 감정 없는 정략결혼처럼 보이지 않나.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법.
“페로사.”
“예, 저하.”
“아카데미에 입학한 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인 것 같다.”
진심이다. 제국 아카데미에 입학한 덕분에 국경을 초월한 우정을 쌓았고, 아르메인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을 하였으며, 대륙 제일 검이라 불리는 사람과 연을 맺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카데미 덕분에 알게 된 인연과 결혼까지 하게 됐다. 아카데미 입학을 기점으로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역시 우리 자식도 제국 아카데미에 보내는 게 좋을까?”
“아, 아직 결혼식도 안 끝났는데 아이 얘기는 좀…”
“미리미리 준비하면 좋지 않나?”
얼굴을 붉히는 페로사의 모습에 웃음을 흘렸다.
물론 결혼식을 망칠 수는 없으니 아주 작게. 나와 페로사만 들릴 정도로.
“하지만 결혼식이 끝난 후에 얘기하는 쪽이 좋기는 하겠지. 시간은 많으니까.”
그래, 아주 많을 거다. 나도 페로사도 단련에 열중하던 기사지, 딱히 업무에 열중해야 하는 관료가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신혼이라는 방패까지 얻었다. 몇 주, 몇 달 동안 저택에서 지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터.
‘단풍이 물들 때까지 저택에만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아니면 첫눈이 내릴 때까지 있거나.
결혼식은 잠깐이나마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 무난히 끝났다. 페로사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어서 그런가, 결혼식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덕담처럼 느껴졌다.
조금 곤란한 일이다. 페로사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려고 했는데 이리도 무색무취하게 넘어가다니. 왕자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하와 같이 서있는 것 자체로도 기뻤는데, 더 바랄 게 어디 있겠습니까.”
정작 페로사는 미소를 머금으며 만족한 기색을 보였다.
이러면 더욱 곤란하다.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재결혼식을 강행할 수도 없지 않나. 게다가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만족한 것 같았다.
‘이렇게 된 이상 하늘 베기뿐이다.’
그래서 페로사의 손을 꼭 붙잡은 채 검묘로 향했다.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 중에서도 일부만 갈 수 있는 장소. 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화려한 축하.
페로사도 무인이니 검묘에서 이루어지는 하늘 베기를 보면 기뻐할 거다. 다소 아쉬웠던 결혼식을 순식간에 유일무이한 결혼식으로 만들 거다.
“…어서 오십시오. 귀한 분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런 다짐을 하며 페로사, 가족들, 처가 식구들, 일부 하객들과 함께 검묘에 도착하니, 결혼식 막바지에 몰래 빠져나갔던 부왕 전하와 고문 선생이 반겨주었다.
“또한 타국인으로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을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통하여, 영광스러운 자리를 마련해 주신 아르메인 국왕 전하께 다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부왕 전하가 검묘에 꽂아두었던 검을 든 채로.
***
착잡하다. 검묘에서 하늘을 베는 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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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뭔데.’
설마 국왕이 자기 검으로 하늘을 베어 달라고 할 줄은 몰랐다.
그나마 초대 국왕의 검을 써달라고 하는 걸 말리고 말려서 이거라는 게 더 참담해.
‘망할.’
이 미치광이 나라. 빨리 하늘 베고 튀어야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