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78)
로판 속 공무원 878화(879/945)
가슴이 두근거렸다. 왕족의 의무를 깨달은 이후로, 왕세자로 책봉된 이후로, 아르메인의 국왕이 된 이후로 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린 적이 있었던가.
마치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아이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동화에 적힌 용맹한 기사들의 모험담, 음유시인들이 노래하는 위대한 장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좋아하던 그 시절로. 이상을 이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어딘가에 실재하는 현실이라 생각하던 그 시절로.
‘나도 이렇게 흥분할 수 있었던 놈이었나.’
미친 듯이 요동치는 심장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가는 입꼬리.
류티스에게는 매우 미안한 생각이지만, 솔직히 류티스가 결혼한 것보다 더 두근거렸다. 애써 변명을 하자면 이미 두 아들과 한 명의 딸의 결혼을 본 입장이니, 네 번째 자식의 결혼은 상대적으로 덤덤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이 광경은 왕인 나조차 처음 보는 광경이다.
‘하늘 베기.’
아티팩트로 저장한 광경이 아닌 실제로 보는 하늘 베기. 푸르고 푸른, 드높고도 드높은 하늘이 인간의 힘으로 갈라지는 경이로운 광경.
이런 광경을 보고도 덤덤한 사람이 있다면 마음이 없는 자일 거다. 무의 길을 걷지 않는 자조차 감탄할 것이고, 검사들을 은근히 얕보는 마법사들 또한 고개를 조아릴 업적이다.
그런 위업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이 어찌 기쁘지 않으랴.
‘죽으면 질투 좀 받겠어.’
심지어 다른 것도 아닌 내 애검으로 말이다.
“크흐.”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도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든 시선이 하늘로 향한지라 나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저들 또한 나처럼 심장이 요동치고 있을 것이기에.
‘이 후예가 모셔온 귀빈이니 이 정도는 용서해 주십시오.’
아무튼 격렬하게 질투 중이실 선조들께 소소한 사과를 올렸다.
분명 우리의 선조들이라면 어째서 네 검으로 하늘을 벤 거냐고. 당연히 자기 검으로 베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항의 중이실 거다. 물론 그 ‘자기’가 누구인지는 수백의 의견 충돌이 있을 거고.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현시점에서 아르메인의 왕은 난데. 내가 요청하여 이루어진 하늘 베기고, 내 아들과 연이 있는 귀빈인데. 솔직히 이렇게 막강한 지분이면 충분히 욕심을 부릴만하다.
‘승작 축하한다, 내 보물.’
타일글레헨 백작 손에 들린 내 애병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기사왕국이라 불리는 아르메인의 국왕. 이런 존귀한 자리에 오를 예정이었고, 실제로 오른 무인의 검이라면 그 자체로도 뛰어난 명검이다. 아마 아르메인 내에서 저 검보다 뛰어난 검은 역사를 뒤져야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랬던 애병에게 이제는 ‘하늘을 가른 검’이라는 전설까지 붙었다. 작위로 비유하자면 공작이었던 녀석이 최소 대공, 혹은 왕까지 오른 것. 실로 훌륭한 승작이다.
“…저기, 전하.”
“음, 편히 말하게. 무슨 일인가?”
죽어서 영혼이 되면 알몸으로 변하는 건가, 아니면 생전 사용하던 옷이나 검도 지참할 수 있는 건가 고민하던 중. 타일글레헨 백작이 다가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 백작에게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밝은 미소를 지으며 보여주며 반겨줬다. 재가 되어 식어버린 동심을 다시 일깨워 준 사람이다. 검사가 도달할 수 있는 경이로운 경지를 보여준 사람이다. 영웅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으니, 무슨 말을 하더라도 기꺼이─
“실로 송구스러운 말씀이오나, 전하께옵서 잠시 맡겨주신 검에 금이 갔습니다.”
“뭣?”
그 말에 황급히 내 애병을 살펴보았다.
‘정말이로군.’
아주 미세하지만 백작의 말처럼 금이 가있었다.
“오랜만에 사용하는 하늘 베기에다, 귀하신 분들에게 선보이는 것이라 긴장을 했던 모양입니다. 전하의 물건을 망가뜨렸으니 어찌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있겠습니까. 백 번을 사죄드려도 부족한 일입니다.”
내가 조용히 금을 바라보자 백작은 고개까지 숙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아르메인의 영웅이자 검의 정점이 고작 이런 일로 고개를 숙이다니.
‘오히려 좋거늘.’
하늘을 베다가 손상된 검. 마치 수많은 전장에서 활약하느라 부상을 입은 전쟁 영웅 같아서 가슴을 울린다.
내 애병이 모든 병기들의 왕이자 전쟁 영웅? 이건 못 참지. 내가 죽어서 자벨 1세 대왕을 뵙게 되더라도 당당하게 고개를 들 수 있을 정도야.
‘이를 어찌한다.’
피해자─ 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사람에게는 경사지만, 정작 선물을 준 사람은 스스로를 가해자라고 여기는 상황.
여기서 약간의 연기를 하면 백작에게 여러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 하늘 베기를 더 한다거나, 저번처럼 서명이 적힌 검을 받는다거나, 대륙 제일 검과 직접 대련을 한다거나 등. 이것저것 요구할 것은 많다.
허나 그건 치졸하고 비겁한 짓이다. 백작이 나에게 아르메인의 사내이자 무인이 가진 동심을 일깨워 주었으니, 나도 지금은 군주가 아닌 사내로 행동하는 게 옳다.
“고개 들게, 백작. 덕분에 이 검은 대륙에서 하나뿐인 검이 되지 않았나. 어차피 검묘에만 있어서 쓸 일도 없는 검일세!”
그렇기에 백작의 어깨를 토닥이며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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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탁하여 일어난 일이다. 만약 책임이 있다면 나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
과정과 결과가 좋았다. 둘 중 하나만 좋아도 정상참작을 할 수 있는데, 둘 다 좋으면 말할 게 있겠나.
마지막으로 예상치도 못한 훌륭한 부산물도 얻었다. 내 애병은 아르메인이 무너지는 그 순간까지 기억될 것이다.
‘그럼 됐어.’
고작 검에 금 간 것 정도로 이 기쁨을 억누를 수는 없지, 아암.
결혼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하늘 베기라는 일종의 뒤풀이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으니, 류티스에게도 분명 기쁜 결혼식이 되었을 터.
그러니 이 아비가 작은 욕망을 채운 것도 이해해 줄 거다. 아비도 무인인데 아들의 검이 아닌 내 검으로 하늘 좀 벨 수 있는 거지. 어차피 류티스는 백작의 서명이 적힌 검을 선물로 받지 않았던가.
그렇게 군주로서도, 무인으로서도, 아비로서도 홀가분한 결혼식을 마친 후.
“황제 폐하를 대신하여 로벤스 왕가의 경사에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전하.”
“고맙소. 폐하의 축하에는 과인 또한 감사할 따름이오.”
제국에서 축하사절단장으로 온 외무성 장관과 독대를 했다.
왕세자도 아닌 일개 왕자의 결혼식에 장관이 직접 왔다라. 과거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우호 관계라 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아름답고도 평화로운 우호 관계는 내 치적 중 하나가 되겠지.
동시에 외무성 장관이 무슨 이유로 독대를 청한 것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외무성 장관이 양국의 우호를 보여주기 위해 방문한 것이라면 이미 그 소임을 다하였다. 굳이 나와 독대를 하지 않아도 아르메인의 모든 귀족들이 외무성 장관의 방문을 외칠 터이니.
그럼에도 이렇게 독대를 청했다. 절대 가벼운 일은 아니다.
“올해는 양국에게 있어 참으로 경사스러운 해입니다.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기도 하고, 가문의 번영이 이루어지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아, 소식은 들었소. 제국의 황제(皇弟)도 자식을 보았다지? 폐하께는 첫 조카가 되겠구려. 축하가 늦었소.”
“하하! 이드라펜 후작께서도 전하의 축하를 듣는다면 크게 기뻐할 겁니다!”
의례적인 덕담과 감사가 오고 갔지만 그게 용건이 아니라는 건 나도 장관도 알고 있었다.
양국 가문의 번영. 이는 우리 로벤스 왕가에게 있어서는 류티스의 결혼이고, 리브노만 황가에게 있어서는 방계 황족의 탄생이다. 가장 명확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니, 왕과 장관의 독대 이유로는 걸맞지 않다.
그렇다면 장관의 용건은 자동적으로 하나.
‘보물.’
우리 아르메인이 우연히 발견한 트리카 황제의 셉터. 그것이 장관이 직접 행차하고 독대까지 청한 이유다.
허나 이상한 일이다. 셉터에 관해서는 논의가 끝난 지 오래다. 아르메인은 셉터를 제국에 인계하는 대신, 이런저런 이권을 보장받고 대륙 제일 검의 하늘 베기를 볼 수 있었다. 이제 와서 더 논할 것이 있나?
“황제 폐하께서도 조카의 탄생을 축하해 주신 전하를 위해, 참으로 귀한 선물을 전할 수 있게 되어 만족하실 겁니다.”
‘아.’
놀랍게도 있었다.
외무성 장관이 결혼식 동안에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가방. 그 가방에서 꺼낸 보주.
아무래도 우리가 고대의 셉터를 발견한 것처럼 제국도 아르메인과 연이 깊은 보주를 발견한 것 같, 은…?
‘설마.’
아르메인과 보주라는 단어에서 바로 떠오르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설마, 설마 그건가? 자벨 3세께서 역적의 손에 잃을 바에는 신에게 맡기겠다며 내던진 그 보주인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로벤스 왕가가 지난 수백 년 동안 전력을 다하여 찾아다닌 물건이 왜 제국의 손에 있는 거지? 아니, 하지만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에는 우리도 트리카의 셉터를 찾았지 않나.
“양국이 맺은 조약은 유효합니다.”
‘흐으.’
외무성 장관의 말에 바삐 돌아가던 머리가 우뚝 멈췄다.
그래, 지금 중요한 건 타당성이 아니지. 자벨 3세의 보주가 제국의 손을 거쳐 내 앞에 왔다는 것이 중요하지.
‘조약은 유효하다라.’
양국의 영역에서 상대국과 연관된 보물이 발견될 시, 무조건 상대국에 인계한다는 조약. 사실상 셉터를 합법적으로 제국에 전달하기 위해 체결하였으며, 체결 대가로 이런저런 이권을 받아먹었던 조약.
헌데 일회성으로 끝날 줄 알았던 조약이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내가 보주를 받는다면, 제국은 조약에 따라 조건 없이 보주를 인계했지만 아르메인은 대가를 받고 셉터를 넘긴 꼴이 된다.
그건 곤란한 일이다. 아무리 조약을 체결한 나와 황제가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다지만, 아르메인이 제국을 상대로 일방적인 호의를 받은 상황이 되면 두고두고 발목이 잡힌다.
‘이번에는 우리가 내줘야겠군.’
그렇다면 제국이 셉터를 받기 위해 이런저런 대가를 내놓았듯이 우리도 대가를 내놓아야 한다. 무조건적인 유물 인계는 그 이후의 이야기다.
‘상관없다.’
물론 대가 정도는 얼마든지 낼 생각이 있다. 왕가의 숙원이 이루어지게 생겼는데 그깟 대가가 대수일까.
“유효한 조약을 영원토록 이어가게 하는 것은 지도자의 의무겠지. 그렇지 않나?”
“전하의 말씀이 실로 옳습니다.”
적극적 협조를 우회적으로 선언하니, 외무성 장관은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왕자의 결혼식과 검묘에서 일어난 하늘 베기에 이어 선조의 보물을 되찾는다라. 오늘은 정말 우리 로벤스 왕가를 향해 신께서 미소 지어주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