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79)
로판 속 공무원 879화(880/945)
아르메인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복귀했다.
복귀 직전에 아르메인 국왕의 검─ 그것도 검묘에 꽂아 넣은 인생의 절반과도 같은 검을 손상시킨 대참사가 터졌으나, 다행히 국왕은 그에 대해 추궁하거나 서운함을 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인에게 상처가 훈장인 것처럼 검에 난 금도 훈장이라고 넘어갔지.
솔직히 궤변이다. 검날에 사소한 금이 생긴다면 작은 충격으로도 검날 자체가 깨지게 된다. 무인의 상처는 훈장이 맞지만, 검날에 난 실금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불치병이다.
그래도 피해자가 괜찮다고 하니 어쩌겠나. 그저 국왕의 자비와 배려에 고개만 숙이며 감사하는 수밖에.
‘마법이 있으니 괜찮겠지.’
게다가 이 세계에는 다용도로 사용이 가능한 마법이 있다. 금이 간 검이라도 마법을 건다면 오래오래 보존될 터. 가만히 검묘에 보관한다면 부서질 일은 없을 거다.
분명 그럴 거다. 반드시 그래야 돼.
“하마터면 남의 나라에서 노역하고 올 뻔했네.”
– 멍?
내 중얼거림에 기지개를 켜던 티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냐. 신경 쓰지 말고 잘 다녀와.”
– 멍!
미소를 머금은 채 손을 흔들자 티티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쪼르르 문밖으로 나갔다. 오늘도 제니와 새끼들을 만나기 위해서.
이제 새끼들도 전부 눈을 떴고, 너도나도 루치아노의 저택을 누비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 사실 티티가 지금처럼 매일 출근할 필요는 없다.
허나 가족은 이유가 있어서 만나는 게 아니라 보고 싶어서 만나는 존재 아니겠나. 차마 아침마다 눈을 반짝이는 티티를 향해 ‘이제 애들은 제니가 잘 돌볼 테니 그만 가.’ 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 말을 하면 아무리 온화한 티티라도 주인을 물고 싶을 테니.
‘분양하면 진짜 무는 거 아닌가.’
문득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불안감이 솟구쳤다. 티티한테 물리면 몸보다는 마음이 아플 것 같아.
물론 새끼들은 최소 반 년 정도가 지난 후에 분양할 생각이다. 새끼들을 너무 빠르게 어미 품에서 떼어내는 것도 문제지만, 열이 넘는 리트리버들을 성체까지 기르는 것도 좀 그렇잖아. 흔히 마의 2년이라 부르는 기간에는 루치아노의 저택이 붕괴될 수도 있어.
‘반 년 뒤면 괜찮겠지…?’
그렇기에 반 년 후에는 티티의 부성애가 누그러들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아니, 애초에 분양이라는 개념이 특이한 개념도 아니고, 이 세상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지내고 있잖아. 그때마다 부모견에게 동의를 구하며 분양 보내는 사람도 없을 거다.
그걸 감안하면 티티의 눈치를 살피는 난 상위 0.01% 주인이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음? 티티?”
– 멍멍!
‘응?’
그런 생각을 하며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열린 문틈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도 새끼를 보러 가는 것이냐? 아침부터 성실하기도 하지. 이 세상 모든 남편들이 네 절반만 닮았더라면 제국 법원도 평온할 거다.”
– 왈!
“너를 닮은 새끼들을 기르면 얼마나 행복할지─”
– 으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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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농담이니 그렇게 보지 말거라.”
아침부터 티티의 부성애를 자극해버린 재무성 장관의 목소리에 픽 웃음을 흘렸다.
재무성이 아니라 전쟁성의 수장이라 해도 믿을 만큼 압도적인 덩치를 자랑하는 장관이다. 어지간한 맹견도 장관 앞에서는 꼬리를 말며 낑낑거리거늘, 티티는 장관이 자신의 새끼를 노리자 가차 없이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티티의 용맹함을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티티를 순식간에 분노케 만드는 장관을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가족 만나러 가는 애 괴롭히지 말고 여기로 오십시오.”
아무튼 문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장관에게 손짓했다.
왜 저 양반이 아침부터 저택에 왔는지도 의문이고, 접견실이 아닌 내 방까지 찾아왔는지도 의문이다. 그래도 기껏 온 사람을 돌려보낼 수는 없으니 대접부터 하는 게 옳다.
…그보다 정말 어떻게 사용인들을 뚫고 여기까지 온 거지? 사용인들도 나와 장관의 관계를 잘 알기에, 어떻게든 접견실에서 접대 풀코스를 시전하려고 했을 텐데?
‘무력으로 뚫은 건가.’
순간 필사적으로 막는 사용인들을 어깨로 치고 지나가는 장관의 모습을 상상했다.
놀랍게도 아무런 위화감 없이 빠르게 연상되었다. 내가 실제로 그 광경을 본 적이 있는 것처럼.
“왜 그렇게 보냐?”
“아뇨, 그, 아무것도.”
도저히 장관에게 ‘당신이 내 사용인들한테 어깨빵 하는 걸 상상했어요.’ 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런 말을 꺼내면 내가 어깨빵을 당하고 탈골될 테니까.
침실에 있던 찻잎으로 차를 우리던 중, 집사가 간단한 과자를 가져왔다.
실로 초췌한 안색이라 머리 깊숙한 곳에 박아 넣었던 망상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이거 정말로 사용인들을 무력 돌파한 건가?
“아르메인은 어땠냐.”
그 와중에 장관은 집사가 과자를 가져오든 말든, 팔짱을 낀 채로 덤덤히 입을 열었다.
뻔뻔한 모습이었지만 도리어 그 모습에 안도했다. 장관의 인성이 상당히 인상적이기는 하나, 무고한 평민들을 패고도 멀쩡할 사람은 아니니.
“뭐, 다행히 평범했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죠.”
“평범했다고?”
“생각한 것보다는요. 거기서는 지나가다 눈만 마주쳐도 대련을 할 줄 알았습니다.”
그제야 장관은 픽 웃으며 집사가 내려놓은 과자를 집어먹었다.
“하디네르 남작은 아직 아르메인에 있다던데. 생각 이상으로 괜찮은 곳인 모양이야.”
“걔는 오고 싶어도 못 온 겁니다. 류티스 왕자한테 붙잡혔거든요.”
나와 피네보다는 늦게 왔지만, 에리히도 류티스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아르메인으로 왔었다. 허나 류티스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순순히 보내줄 성격이 아니지. 덕분에 에리히와 제수들, 조카들은 아르메인에 무기한 체류 중이다.
그래도 때가 되면 다시 귀국하겠지. 류티스도 신혼이라 친구를 오래 붙잡아두지 못할 테고.
“그보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십니까? 급한 용무입니까?”
그렇게 간단한 근황 얘기를 주고받은 후, 곧장 용건을 꺼냈다.
저 양반도 이런 대화법을 좋아할 거다. 빙빙 돌려 말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고, 나랑 격식이나 예절을 차릴 필요도 없잖아. 귀족의 품위니 뭐니 따질 시간에 일부터 처리하는 게 속 편하다.
“급한 일이면 통신구로 연락해도 충분했는데. 혹시 통신구 잃어버린 겁니까?”
“잃어버리기는 무슨. 그걸 잃어버렸다면 여기가 아니라 마탑부터 갔지.”
시큰둥히 대답한 장관은 슬쩍 문 쪽을 바라봤다. 누가 근처에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는 것처럼.
“나 오늘 새벽에 휴가 냈다.”
“…예?”
“그동안 안 쓰고 모아둔 게 있어서 며칠 정도는 바로 쓸 수 있어. 마침 급한 용무도 다 처리한 상태니 다행이지.”
푹 한숨을 내쉰 장관은 거칠게 차를 들이마셨다.
미친 인간아. 그거 아이스티가 아니라 막 우린 차야. 냉수 같은 게 아니라고.
“그,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휴가 같은 거 즉흥적으로 쓰는 거 싫어하셨잖아요.”
절대 정상적인 모습,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조심스레 물었다.
어떤 공무원이 안 그러겠냐마는, 장관은 자신의 휴가를 애지중지하는 사람이다. 단 하루의 휴가라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기 위해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장관이다.
그런 인간이 당일 새벽에 휴가를 내던져? 심지어 당장 여행을 떠나거나 자기 집에서 휴식을 취해도 모자란 판국에 내 집까지 왔다고?
‘대체 뭔데.’
불안하다. 대체 무슨 일이 터졌길래 장관이 이러는 걸까.
“거하게 생겼지. 어마어마한 일이 생겼어.”
‘망할.’
장관의 대답에 반사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저 인간이 ‘어마어마한’ 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정도라면 결코 빈말이 아니다.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그래도 장관이 휴가라는 형태로 대피한 걸 보면 행정부 전체가 업무 포화 상태에 빠진 건 아닐 텐데?
“지금 행정부에 눈이 돌아버린 사람이 배회 중이다.”
그리고 내가 조용히 머리를 굴리자, 장관은 넌지시 힌트를 던져줬다.
허나 힌트를 받았음에도 머리는 더욱 복잡해졌다. 행정부서 서열 2위인 재무성의 수장이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이면 황제나 궁내성 장관 정도다. 하지만 황제는 요즘 보드카나 마시며 평범히 업무 중이고, 궁내성 장관은 재무성 장관보다 장관 짬이 적다. 서열상 궁내성 장관이 위여도 재무성 장관이 과하게 눈치를 살필 필요는 없지.
설마 상황이 분노한 건가? 만약 그런 거라면 난 행정부가 아니라 제도 밖으로 도망칠 의향도 있다.
“누굽니까?”
물론 도망치기 전에 정확한 상황 파악이 먼저인 법. 추리를 멈추고 장관에게 직접 물었다.
“외무성 장관.”
“아.”
돌아오는 답은 상당히 참혹했다.
“…….”
“…….”
“오신 김에 점심까지 있다가 식사라도 같이 하시죠.”
“그래. 신세 좀 진다.”
짧은 침묵 끝에 나와 장관은 일종의 합의점을 도출했다.
외무성 장관의 분노가 가라앉기 전까지는 그냥 쥐 죽은 듯이 있자고. 괜히 얼쩡거리다가 분노에 휘말리지 말자고.
‘자연재해는 피해야지.’
태풍 앞에 맞서는 건 용감한 게 아니라 멍청한 거야.
제국 행정부서 중 서열 1위는 궁내성이다. 궁내성은 황제, 황실과 관련된 부서이기에 1위가 아니라면 그게 더 곤란하다. 사실상 영구 결번이라고 보는 것이 옳은 수준.
그 뒤를 잇는 2위는 재무성이다. 이 세상 모든 업무는 돈이 있어야 진행할 수 있는 법. 그렇기에 제국의 예산을 쥐고 있는 재무성이 자동으로 2위일 수밖에 없다. 돈을 다루는 사람의 서열이 낮으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테니까.
그렇다면 3위는 어디일까. 제국의 살림을 도맡는 내무성? 백만 제국군을 책임지는 전쟁성? 황제의 수족이 모인 특무성? 법의 상징인 사법성?
전부 아니다. 황제의 권위와 돈을 제외하면 1위인, 사실상 제국 행정부서 중 ‘이 부서가 제일 중요함’ 이라는 판정을 받은 부서는 따로 있다.
‘외무성.’
바로 외무성이다. 제국의 대외 관계를 짊어지고 있는 기둥이자, 제국 행정부서 중 가장 많은 ‘부’급 부서를 지닌 곳. 그곳이 바로 제국 행정부서 중 실질적인 1위다.
그리고 외무성 장관은 그 외무성의 정점이다. 또한 상황이 즉위하기 전, 탄식이 절로 나오는 암군 라인으로 인해 제국의 대외 관계가 속된 말로 ‘지랄이 나버린’ 때부터 외무성 관료였던 고인물 중의 고인물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눈이 뒤집혔다고 한다. 후덕한 체형, 어지간한 일은 허허 웃어넘기는 성품을 가진 사람이 격렬하게 분노하고 있다.
“제국 사절이 맞고 돌아왔답니까?”
“전쟁 직전이던 국가들을 중재 중이었는데, 결국 전쟁이 터졌다고 하더군.”
“저런.”
장관의 말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어떤 국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외무성 장관의 체면에 똥칠을 하다니. 곱게 넘어가기는 글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