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80)
로판 속 공무원 880화(881/945)
우리 집에서 식사 중인 어느 장관은 발 빠르게 휴가까지 사용하여 대피에 성공했지만, 애석하게도 소식을 접한 게 늦은 대다수의 공무원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저택에 처박혀있는 나조차 알 정도로 처절한 비명을. 행정부와 조금만 연이 있어도 ‘아, 저기 지금 난리 났구나.’ 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비통에 찬 절규를.
– 외무성 전체가 비상사태에 돌입했습니다. 외무성 청사와 근접한 부서도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 팀장급 이상 관료라면 휴가 상태여도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들리는 얘기로는 장관의 집무실에서 고함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 진짜 눈이 제대로 뒤집혔는데요? 오죽하면 황제 폐하께서도 대면 보고를 잠시 늦출 정도겠습니까.
게다가 장관 비서, 정보부장, 정보차장의 보고도 행정부 전체에 켜진 적신호를 강조하고 있었다.
정보 관련에서는 가장 신뢰할 수밖에 없는 세 인물이 일제히 비슷한 증언을 했다. 외무성은 이미 핵폭격을 맞은 중심지고, 그 인근 부서들은 방사능 낙진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보는 게 옳다.
‘황제도 눈치를 보고 있다라.’
정보차장의 보고를 다시 떠올리자 절로 실소가 나왔다.
존귀한 황제가 일개 장관의 눈치를 보는 것. 상황의 맹활약으로 인해 황권이 반석에 오른 오늘날에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장관들이 황제의 눈치를 살피면 살폈지, 그 반대는 있을 수 없다.
허나 외무성 장관은 해냈다. 장관이 폭주 상태에 접어들자 황제도 숨을 죽이며 폭풍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
‘네가 그러면 안 되잖아.’
생각해 보니 미친놈이네 이거. 외무성 장관의 명확한 상사라고 할 사람은 황제뿐인데, 그 유일한 상사가 침묵 상태면 어쩌자는 거야. 이건 궁내성 장관 선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이해 못 할 건 아니지만.’
오늘도 아이들에게 쥐어 뜯기고 있는 장생이, 페디에게 목말을 태워준 채 정원을 활보하는 재무성 장관을 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상황 즉위 초기부터 외무성 공무원으로 일했던 사람이 외무성 장관이다. 어쩌면 황제가 살아가면서 먹은 빵의 개수보다, 외무성 장관이 외무성 청사에서 마신 커피가 압도적으로 많을 수 있다.
짬이 어마어마한 양반이 능력도 좋고, 실제로 세운 공로도 많고, 성격도 둥글둥글하다? 황제한테는 그보다 든든한 신하도 없을 터.
그런데 믿음직하고 온화한 양반이 갑자기 눈이 돌아버렸네? 아마 황제의 머릿속에서는 외무성의 중재를 무시하고 전쟁을 일으킨 국가들을 수십 번 정도 멸망시켰을 거다.
‘사실 직접 나서도 달래기 힘들겠지.’
외교는 그 나라의 권위와 국익과 직결된 하나의 예술이다. 심지어 대륙 유일무이한 제국의 외교는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고도의 작업일 수밖에 없다.
즉, 장기간 제국 외교 총책임자 자리를 맡은 외무성 장관은 ‘교체하면 대체 인력을 찾기 힘든 귀중한 인력’이다. 어떻게 보면 황제는 상황이 발굴한 외무성 장관을 공짜로 물려받은 것이니, 쓴소리를 하기 애매할 수밖에.
‘흐으으음.’
차갑게 식어가는 찻잔을 매만지며 고심했다.
솔직히 말하면 외무성 장관의 분노는 나도 무섭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공무원 경력도 길고, 의전 서열도 높고, 평소에 화도 내지 않던 사람이 망나니처럼 칼을 휘두르기 직전의 상태다. 거기에 대가리를 밀어 넣는 건 아무리 나라도 좀 그래.
허나 이대로 넘어가는 건 더욱 무섭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분노에 눈이 가려지면 어떤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다. 그것이 평소에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제국의 외교를 책임지는 거물이라면 더더더더더욱.
‘막말로 강성 매파로 암흑 진화하면 답도 없다.’
상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하다. 제국 외무성 장관이 전쟁을 외치고 다니는 강성 매파가 된다라. 대륙 긴장도 떡상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대륙 유일무이한 제국이 그대로 제국주의 루트를 밟는 거야.
결정적으로 장관 비서가 올린 보고 중에 이런 보고도 있었다.
– 대아르메인부 부장은 그나마 전쟁이 늦게 터져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조금만 이르게 터졌으면 각하의 아르메인 방문에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을 거라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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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 겠네. 확실히 그나마 다행이기는 해.”
외무성의 부서 중 아르메인과의 외교를 담당하는 대아르메인부의 부장. 그런 사람이 장관 비서와 굳이 대화를 하고, 굳이 전쟁 시기를 언급하며, 굳이 내 아르메인 방문을 언급한 이유는 뻔하다.
지금까지 외무성이 내 신혼여행 때마다 고생했으니, 제발 도움을 달라는 절박한 SOS였다. 공무원 중에서도 유독 우회적 화법에 능숙한 외무성 공무원이 직설적으로 말할 정도로.
‘많이 신세 지기는 했지…’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남의 나라에서 하늘 베기 같은 게 있지 않나. 그에 대한 양해를 구하느라 외무성이 제법 고생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러니 도의적인 측면에서 대아르메인부 부장의 SOS를 무시할 수 없다. 공무원 사회가 이득 앞에서는 비정한 사회라지만, 기본적인 신의도 지키지 않는다면 살아갈 자격이 없기에. 공무원 실격 이전에 인간 실격이다.
…
‘그냥 짐승 합격이나 할까?’
이러면 안 되는데 짐승 합격의 욕구가 스멀스멀 치솟는다.
망할. 그러게 왜 제국의 중재를 무시하면서까지 전쟁이나 해가지고.사태가 이렇게 되면 전쟁에서 누가 이기든, 승전국이나 패전국이나 사이좋게 제국의 경제 제재나 외교적 압박을 받을 텐데.
‘하여간 전쟁은 미친놈들이나 하는 거야.’
그 미친 짓에 여러 번 종군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외무성 청사로 향했다. 피할 수 없는 매는 차라리 빨리 맞는 게 좋으니까.
그리고 이 매는 묵히면 묵힐수록 어떻게 진화할지 장담할 수 없는 슈뢰딩거의 매다. 내 정신 건강을 담보로 도박을 할 생각이 아닌 이상,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맞다.
“누구는 태풍을 피하려고 남의 집으로 도망쳤는데, 정작 집 주인은 태풍으로 걸어들어가는구먼. 이래서 여기저기에 빚을 지고 다니면 안 되는 법이지.”
“안 그래도 심란하니까 조용히 하십쇼.”
그 와중에 장관은 스스로 사지로 가는 옛 부하를 동정하지 못할망정, 꼴좋다는 듯 비웃기 바빴다.
“페디야. 너는 네 아비처럼 살면 안 된다. 빚을 질 때는 편하지만, 갚을 때가 되면 저렇게 고생하게 돼.”
“비이잇?”
“그래, 빚.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워도 언젠가는 이해할 거란다.”
심지어 우리 순수한 페디에게 이상한 조기 교육도 시키더라. 저게 페디의 대부인지, 사탄인지 구별이 안 간다.
아무튼 장관과 페디의 기묘한 배웅을 받으며 외무성 청사─ 정확히는 대아르메인부장 집무실에 도착하니,
“어서 오십시오, 각하! 이리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초췌한 안색의 대아르메인부장이 거의 네 발로 달려오다시피 맞이해줬다.
너무 강렬한 기세라 움찔하고 말았다. 방문하기 전에 미리 연락을 하고 온 거라 대아르메인부장도 나름 몸을 정리할 시간이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이 모양이라니.
‘일부러 이러는 건가?’
과연 저 모습이 과도한 업무의 상징인 걸까, 동정심을 자극하기 위한 연기인 걸까.
안타깝게도 둘 다일 가능성이 너무도 높아 측은한 시선으로 대아르메인부장을 바라봤다. 타국에서 터진 사건 때문에 이리 고생 중이니 얼마나 억울할까.
“외무성의 고난은 남의 일이 아니지. 제국의 드높은 위엄을 묵묵히 받치고 있는 아름다운 부서거늘, 어찌 그런 외무성을 외면할 수 있겠나. 그동안 외무성에게 받은 배려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을 것 같아 기쁠 따름이다.”
“실로 감사한 말씀입니다! 아, 우선 자리에 앉으시지요. 커피와 차 중에는 어떤 게 좋으십니까?”
“커피로 부탁하지.”
차는 아까 저택에서 잔뜩 마시고 왔다.
게다가 대아르메인부장의 모습을 보니, 대화가 상당히 길어질 것 같다.그러면 식은 차보다는 식은 커피가 마시기 좋지…
“헌데 부장. 청사가 제법 조용하던데, 다른 관료들은 어디에 있지?”
“과장급 이상 관료들은 전부 장관실로 소환됐습니다. 그나마 대아르메인부는 처리해야 할 업무가 하나 생겨서 호출을 피할 수 있었지요.”
끔찍한 발언이라 침통히 눈을 감고 말았다. 부장급이나 차장급 이상도 아니고 과장급 이상 소환? 이건 사단장이 휘하 여단장 수준을 넘어 모든 대대장들을 소집해서 조인트를 까는 수준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그렇기에 진심을 담아 물었다.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전쟁이 터졌길래, 애초에 제국이 어쩌다 중재에 나섰길래 외무성 장관이 저렇게 분노한 거냐고.
“그것이 말입니다만.”
내 질문에 대아르메인부장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놀라운 일이다. 사람 안색이 저기서 더 어두워질 수도 있는 거였구나.
“우선 그, 각하께서는 어디까지 알고 오셨습니까?”
“류튼과 바젠이 충돌했다는 건 알고 있다.”
아르메인과 유벤처럼 검과 마법의 길을 걷는 두 국가. 내가 에리와 함께 북부 하우젠츠 관광을 갔을 때, 하우젠츠 서클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류튼인과 바젠인을 봤을 정도로 대립하는 국가.
때문에 류튼과 바젠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드디어 올 게 왔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그나마 아르메인이랑 유벤은 멀기라도 하지, 류튼이랑 바젠은 서로 붙어있으니까.
그리고 류튼-바젠 전쟁은 대륙의 전통이나 마찬가지다. 그 둘이 자주 전쟁을 하는 건 아니다만, 그렇다고 드물게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니었지. ‘잊을만하면 전쟁하는 것들’이 양국에게 붙은 평가였다.
“겉으로는 그게 맞지요. 단순히 류튼과 바젠의 일이고,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평범…’
그래도 설마 외무성 부장 입에서 ‘그 둘이 전쟁하는 건 일상임.’ 이라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지만.
“허나 이번 전쟁은 무려 6개국이 얽힌 전쟁입니다.”
“뭣.”
“정확히는 류튼과 바젠, 쿼로노스, 겨울 삼국이지요. 사실상 대륙 동북부 전역은 물론, 중부마저 연관된 일입니다.”
나도 모르게 힐끗 창문을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못 들은 척하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