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81)
로판 속 공무원 881화(882/945)
격렬하게 치솟는 탈주 욕구를 겨우겨우 억눌렀다.
사실 완전하게 억누르지는 못했지만, 창문으로 달려가는 탈주 경로에 대아르메인부장이 앉아있어서 포기했다. 지금 심정으로 탈주를 시도하면 대아르메인부장을 치고 지나갈 거다. 안 그래도 업무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뺑소니까지 선물하는 꼴이지.
‘대체 어떻게 일이 꼬였길래 그딴 참사가.’
다만 대아르메인부장의 육체적 건강을 지킨 대신, 내 정신적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류튼과 바젠의 전쟁? 흔한 일은 아니지만 드문 일도 아니다. 조금 성가신 이벤트기는 하다만 제국이 동요할 정도의 사건은 아니다.
하지만 류튼-바젠 전쟁이 양국의 이벤트를 넘어 6개국이 발을 걸친 이벤트로 확대되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애초에 3개 이상의 국가가 한 전쟁에 엮인 사례는 극히 드물잖아. 제국과 동부 왕국들의 전쟁이 가장 최근 사례일 정도니까. 그마저도 제국의 기막힌 암군 라인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을 일이었다.
즉, 이 사태는 10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기적의 사태다. 그 사태가 하필 우리 시대에 터진 거고. 외무성 장관이 격노할만하네.
‘참가 라인업도 화려하지.’
심지어 연관된 국가도 쿼로노스와 겨울 삼국이다.
레온에서 이루어진 특수 군사 작전에 숟가락을 얹으려다 매운맛을 본 놈, 제국의 자비에 생명줄을 이어가는 가련한 기초수급 국가들. 이런 것들이 제국의 골머리를 앓게 했다면 더더욱 분노가 치솟을 수밖에 없다. 원래 개새끼인 놈이 개지랄을 떨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서열 정리가 끝난 놈이 날뛰면 좀.
‘…왜 엮인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쿼로노스랑 겨울 삼국이 왜 개입한 거지? 아니, 그보다 자의적으로 개입한 건 맞나? 그런데 타의적 개입이라면 그럴만한 사유가 있나?
“부장.”
“예, 각하.”
“우선 커피부터 주게. 자세한 건 마시면서 얘기하도록 하지.”
커피는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 실제 효능인지 플라시보 효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한다면 충격적인 소식에도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 거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커피가 없었으면 무조건 즉사였다. 마음의 각오를 하지 않고 무방비 상태에서 들었다면 이목구비에서 피를 뿜었어.
‘꿈인가.’
커피잔을 매만지며 멍하니 대아르메인부장의 얼굴을 바라봤다.
나를 이렇게 놀라게 만들었으니 제법 성공적인 농담이었다. 지금이라도 ‘사실 휴가 중인 장관 각하를 위한 외무성의 서프라이즈였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웃으며 넘어갈 의향이 있다. 정말 치밀한 연기였다고 관람비도 지불할 수 있어.
하지만 대아르메인부장의 표정은 진지했다. 저게 연기라면 대아르메인부장은 지금이라도 극단에 가야 할 정도로.
“상당히, 일이 꼬였군.”
“예. 덕분에 대북방부와 대동방부에서도 난리가 났습니다. 예상치 못한 불씨가 대륙 동북부를 불태우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자, 착잡함 가득한 대답이 돌아왔다.
예상치 못한 불씨가 동북부를 불태우게 생겼다라. 맞는 말이다. 외교에 관해서는 비전문가라는 말도 과분한 나조차 ‘이게 이렇게 될 수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을 정도다. 외무성 공무원들은 얼마나 기가 차고 억울할까.
그리고 전쟁을 일종의 전통처럼 진행하고 있는 류튼과 바젠은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4개국은 이 기막힌 전쟁에 휘말린 것이 얼마나 억울할까.
‘진짜 이건 누구 잘못이라고 하기도 애매한데.’
결국 미간을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을 정리하면 할수록 머리가 지끈거렸으니.
우선 겨울 삼국. 대륙의 대표적인 최약체이자 밑바닥. 강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연합 체제를 도모했던 기초수급 국가. 제국이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다면 수 세대 후에 멸망했을지도 모를 개노답 삼총사.
그 국가들이 전쟁에 관여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많이 놀랐다. 지즈가 맹활약을 해서 겨울 삼국이 풍족해진 건가 싶었으니까. 만약 제국에게 공급받은 물자로 전쟁에 뛰어든 거면 진심 펀치로 쥐어팰 각오도 했어.
허나 착각이었다. 겨울 삼국은 배가 불러서 전쟁에 참여한 미치광이가 아니라, 어어 하는 사이에 휘말린 피해자였다.
‘목숨이 걸린 피해자라서 더 안타깝지만.’
본디 겨울 삼국은 삼국 간의 국경을 완전히 개방하여 그나마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물자라도 수월하게 교환하고자 했다. 그 눈물겨운 결단에 제국이 참여한 것이고, 제국과 겨울 삼국은 타국과 비하면 급진적이고 개방적인 교류를 이어가기로 합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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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제국과 겨울 삼국의 위치는 대륙의 끝과 끝. 지즈를 통한 물자 교류는 아무리 지즈가 활약해도 제한적이며, 높은 고도를 광속으로 날아가는 지즈의 특성상 특정 물자는 운반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물론 제국 입장에서는 그걸로도 충분하다. 겨울 삼국에게 물자를 하사하더라도, 과한 물자 공급이 이루어지면 제국의 은혜를 잊고 교만해질 수도 있으니까. 딱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 정도만 보내면 제국도 좋고, 겨울 삼국도 감지덕지한다.
다만 그 풀칠할 수준으로도 ‘주인님의 은혜 덕에 배불러용.’ 거리는 순박한 국가들을 보면 냉혈한도 측은함을 가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황제 또한 겨울 삼국에 동정심을 가지게 되었고, 제국의 충실한 친우들이 너무 궁핍해도 보기 안 좋다는 명분으로 새로운 교류 방법을 모색했지.
‘그게 도로 연결.’
공중 교류 확대는 지즈가 분신술을 쓰지 않는 이상 무리다. 해상 교류는 겨울 삼국의 고질적인 동항 문제로 논할 것조차 없다. 그렇기에 제국과 겨울 삼국이 대규모 교류를 이어가려면 육상밖에 답이 없다.
사실 제국과 겨울 삼국의 거리를 고려하면 육상 교류조차 비효율적이지만 어쩌겠어. 살다 보면 가끔 비효율을 감수하더라도 추진해야 하는 일이 존재하는 법인데.
그렇게 다소 지출을 감수하더라도 제국과 겨울 삼국이 연결되는 도로를 건설하고자 했고, 그 사이에 낀 국가들에게는 관세나 중개무역 장소 등을 조율하며 겨울 삼국의 숨통을 열어주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대륙의 전통, 류튼-바젠 전쟁이 터졌다. 겨울 삼국이 눈을 반짝이며 기대하던 도로 연결은 순식간에 무기한 보류되었고, 아동급식카드를 든 채 쭈뼛거리며 식당에 들어왔던 기초수급 국가들은 옆 동네 깡패들의 싸움에 휘말려 밥상이 뒤엎어졌다.
“어떻게든 겨울 삼국은 달래고는 있습니다만, 원래 희망은 있다가 사라질 때가 가장 비참한 법 아니겠습니까? 그 온순하던 겨울 삼국 외교부가 일제히 날뛰고 있습니다. 감히 제국의 국책을 방해한 역도들을 죽이겠다더군요.”
“본인들이 먼저 죽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겨울 삼국은 명백한 제국의 충신이자 친우. 살살 달래고 주머니에 먹을 것 좀 찔러주면 씩씩거리다가도 다시 온순한 펭귄으로 변할 거다. 류튼과 바젠의 전쟁은 다음에 싸우라고 중재하거나, 적어도 도로 근처에서 지랄하면 죽여버린다고 경고할 수 있지.
그런데 여기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쿼로노스가 개입했다.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몇 년 전, 쿼로노스에서는 내부대신을 필두로 한 쿠데타가 일어났었습니다. 그 이후로 당시 국왕이 양위 형태로 물러나고, 왕세자가 아닌 3왕자가 즉위하였지요.”
레온에서 발생한 특수 군사 작전을 계기로 일어났던 쿼로노스 내부 쿠데타. 제국과 아르메인의 압박으로 실시간 망국 루트를 밟아가는 조국의 모습에 쿼로노스 내부대신은 구국의 결단을 내렸고, 그럭저럭 사태가 진정되자 국왕과 왕세자를 몰아냈다. 거기까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헌데 새로 즉위한 3왕자의 부인이 바젠의 왕녀입니다. 졸지에 쿼로노스의 국왕이 바젠 국왕의 사위가 됐습니다.”
“망할.”
다만 이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단순히 왕족 간의 결혼이 아니라 국왕이 다른 국왕의 사위가 됐을 줄은 몰랐다.
이러면 아무리 제국의 눈치를 보며 숨을 죽이고 있는 쿼로노스라도 개입할 수밖에 없다. 아니, 오히려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내부대신과 그 여파로 즉위한 현 국왕이기에 더더욱 개입해야 한다.
국가 간의 외교가 철저히 이득에 따라 돌아간다 하더라도, 양국의 국왕이 장인-사위 관계면 단순히 이득만 따지기 애매해진다. 이건 이득 이전에 기본적인 신의와 도리의 문제니까. 기본도 지키지 않는 국가와 관계를 맺을 호구는 없으니까.
덕분에 쿼로노스는 장인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류튼-바젠 전쟁에 개입했고,
“류튼의 후방에 거대한 동맹이 생긴 꼴입니다. 바젠에게는 물러날 생각도, 명분도 없을 겁니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내부에서 동요가 생길 테니까.”
“예. 그리고 류튼 또한 양면으로 포위 당한 건 알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물러날 수 없겠지요.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바젠의 우위를 평생토록 인정해야 하니까요.”
국익, 자존심, 명분 등. 온갖 요소가 엮이고 엮여 6개국이 발을 들이고, 누구도 먼저 뺄 수 없는 기괴한 상황.
환장할 노릇이다. 이 요소들이 하나씩 따로 터졌다면 어떻게든 수습이 가능했겠지만, 연이어 터지면서 건드리기 복잡한 난국이 펼쳐졌다. 무려 6개국이 얽힌 전쟁이라는 희대의 괴물이 탄생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제국이 발을 뺄 수는 없다. 이미 중재를 하려다 전쟁이 터졌다면 제국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끝까지 달려야 한다. 만약 체면을 포기하고 물러나면 권위도 권위지만, 겨울 삼국이라는 충실한 친우들이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망할 놈들…’
외무성 장관의 분노가 나에게도 전염되는 기분이다.
잠시 복도 구석에 자리 잡은 뒤 통신구를 들었다.
– 응? 갑자기 웬 연락이냐?
이윽고 저택에 있는 재무성 장관에게 연락을 걸었다.
“별건 아니고요. 내일부터는 정상적으로 출근하십쇼. 그거 말씀드리려고 연락한 겁니다.”
– 오? 벌써 조용해진 거냐?
은근한 기대로 가득한 장관의 모습에 픽 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내일 되면 휴가고 나발이고 소환될 텐데, 휴가 중에 끌려 나온 장관 될 바에는 자진해서 간 장관이 돼야죠. 체면이라도 챙기십쇼.”
– 이런 망할.
내 친절한 설명에 장관은 탄식을 흘렸다.
이게 내가 장관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이자 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