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91)
로판 속 공무원 891화(892/945)
결혼이란 무엇인가.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사람이 하나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위대한 결합이다. 둘이지만 하나가 되고, 하나지만 둘이 되는 신묘하고도 독특한 행위다.
이는 흔히 푸른 피라고 불리는 귀족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귀족이기에 평민보다 결혼을 더 중한 행위이자 전략적 한 수로 여긴다. 평민은 가문보다 가족 단위로 활동하지만, 귀족들은 가족보다 넓은 가문 단위로 활동하기에.
‘결혼이 단순히 새로운 가정의 탄생만 의미하는 건 아니지.’
귀족의 결혼은 두 가문의 밀접한 동맹을 의미한다. 어떠한 우호 관계보다도 두텁고 끈끈한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결혼이라는 행위가 이루어지면 두 가문의 귀족들은 새로운 관계를 성립하게 된다. 아무리 상대의 작위나 권위가 높더라도, 결혼이라는 특이점에 도달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법.
그 예로 트릭시가 내 부인이 되자마자 바로 조카며느리라며 편히 대하는 현명공이 있지 않던가. 솔직히 이건 결혼의 특성이 아닌 현명공의 특성이기는 한데, 제아무리 현명공이라도 결혼이라는 특이점이 없었으면 트릭시를 편히 대하지는 못했을 거다.
그만큼 결혼이라는 행위는 중하고도 중하다. 괜히 관혼상제가 인간의 주요 예식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다.
‘페디와 황태녀가 결혼.’
그래서일까. 우리 페디와 황태녀가 결혼을 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언급되니, 머리가 굉음을 내며 복잡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만약, 만약 황태녀가 페디에게 품은 감정이 이성 사이의 감정이면 어쩌지? 그 감정이 성인 때까지 이어져서, 페디가 황태녀의 부군이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럼 크라시우스 가문과 리브노만 황가가 이어지는 건가? 나는 황태녀의 대부를 넘어서 시아버지가 되는 거고? 무려 국구─ 아니, 장인이 아니라 시아버지니 국구가 아니라 다른 명칭으로 부르겠다만, 아무튼 제국 내에서 어마어마한 지분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안 돼.’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런 미래만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이미 최연소 장관, 대륙 제일 검, 살아있는 복자 겸 성자(진), 제국백 중 하나, 리시자리우네 기사단원, 황태녀의 대부 등. 하나만 가져도 곤란한 타이틀을 대량으로 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판국에 차기 황제의 시아버지까지 된다면 진지하게 ‘저거 견제해야 하는 거 아님?’ 같은 여론이 조성될 수도 있다.
물론 귀족들이 견제에 나선다면 나야 좋다. 견제로 인해 공적 직책에서 물러나고, 그저 명예만 가진 뒷방 늙은이로 물러난다면 오히려 내가 반길 일이다.
‘그럴 리가 없지.’
허나 애석하게도, 내가 황태녀의 시아버지가 되더라도 공적 직책에서 물러날 확률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이는 황제의 장인인 전승공이 실시간으로 증명 중이다.
공작 겸 제국군 부사령관 겸 황제의 장인도 멀쩡히 공적 직책을 맡고 있잖아. 이미 ‘황제의 웃어른이 되어도 은퇴는 있을 수 없다.’ 같은 흉흉한 선례가 생겼으니, 감히 나 따위가 전승공의 선례를 깨고 은퇴를 노릴 수는 없다.
결정적으로 은퇴 여부를 떠나 황태녀의 시아버지가 된다면,
‘황제와 사돈이 된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내가 그놈과 사돈이라니. 서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악수를 하며 덕담을 하고, 자식들의 결혼에 함께 눈물을 흘리는 관계가 되다니.
“사돈. 부족한 딸아이지만 모쪼록 잘 부탁하네.”
“사돈이 아들을 훌륭하게 키운 덕에 안심하고 황태녀를 시집보낼 수 있겠어. 조금이라도 못 미더운 녀석이었다면 특무성을 동원해서 털었을 텐데 말이야.”
“혹시 우리 사위도 제 아비를 닮아 여러 부인을 두는 건 아니겠지? 일부다처가 불법은 아니지만, 감히 차기 황제의 부군이 여러 부인을 두는 건 대역죄나 마찬가지일세.”
“우리 사돈…! 나는 사위가 자식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했지, 부인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한 적은 없어!”
“결투다, 이 검은 머리 짐승아! 정정당당히 작위를 들고 붙는 거다!”
‘아.’
나도 모르게 미래의 광경을 엿보고 말았다.
웃는 얼굴로 주먹을 파르르 떠는 황제. 조곤조곤한 말투로 비수를 던지는 황제. 조금이라도 일이 꼬이면 폭군으로 각성할 준비를 마친 황제.
실로 기이한 일이다. 셋 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인데, 마치 실제로 본 것처럼 바로 연상되고 있어.
“대부. 괜찮은가요?”
그렇게 홀로 식은땀을 흘리던 중, 황후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조금이나마 정신줄을 붙잡을 수 있었다.
“방금 말한 것처럼 어린 시절의 가벼운 감정일 수도 있어요.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황후의 말은 상당히 합리적이고 지당한 말이다. 아직 10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의 감정이 얼마나 무겁겠나.
원래 그 나이에는 ‘나 아빠랑 결혼할래!’ 같은 말도 쉽게 내뱉는 나이고, 사랑의 대상도 시시각각 변하는 나이다. 만에 하나 지금 페디를 향한 감정이 이성 간의 감정일지언정 그 감정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아, 대부의 부탁대로 폐하께는 비밀로 하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실로 현명하고 자비로운 분이나, 자식이 얽힌 문제면 조금… 유별나지시니까요.”
“황후 폐하의 배려에 실로 감읍할 따름입니다.”
황후의 장담에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일단 그거면 됐다. 황태녀의 감정은 어른들이 제어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나, 적어도 황제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통제하는 건 어른의 힘으로 할 수 있다.
그리고 황제가 잠잠하다면 내 멘탈의 90%는 지킬 수 있다. 양심상 100%라고는 할 수 없지만, 황제의 권력이 사적 보복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버틸 수 있어.
‘망할.’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빌어먹을 황제 새끼. 쓸데없이 권한은 커서 사람 귀찮게 만들어. 그놈이 동네 이장이었다면 이런 걱정도 안 했을 텐데.
나도 동네 마름 정도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문제는 나도 황제도 동네가 아니라 제국 이장, 제국 마름이라는 거겠지만.
굳게 닫혀있던 황태녀 방의 문은 저녁이 되기 전에 열렸다.
“나 배고파…”
문틈 사이로쭈뼛쭈뼛고개를 내민 황태녀의 한마디에 후작성의 사용인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크게 토라져서 인생 첫 농성을 강행한 황태녀다. 그런 황태녀가 스스로 농성을 풀었다는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며, 동시에 농성을 풀 정도로 배고프다는 건 경악스러운 일. 존귀하신 황태녀의 위장이 비어있다는 건 제국의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샤를로테.”
“우웅…?”
그렇게 후작성이 비상 태세에 돌입한 직후, 황후는 농성을 풀고 나온 황태녀에게 초콜릿을 하나 건넸다.
“준비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거란다. 그전에 하나만 먹으렴.”
무려 초콜릿 선물이었지만 황태녀는 멀뚱히 초콜릿을 바라보기만 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 황태녀가 다른 것도 아닌 초콜릿을 거부하는 건가? 다른 디저트도 아닌 초콜릿을?
“대부가 우리 샤를로테를 위해 준비한 거야. 대부를 생각해서라도 먹는 게 어떠니?”
“때부가?”
그래도 황후가 나를 언급하니, 초콜릿과 황후를 번갈아보던 황태녀는 조심스레 초콜릿을 입안에 넣었다.
감동했다. 이 대부의 성의를 고려할 정도로 마음이 풀렸구나.
“이제 아픈 건 좀 괜찮아졌니?”
“예?”
황후의 말에 절로 반문이 나왔다.
아픈 건 괜찮아졌냐니. 그럼 농성 중이던 황태녀는 아픈 상태였다는 거잖아.
“폐, 폐하! 전하께 무슨 문제라─”
“쉬잇.”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대부가 걱정하는 그런 건 아닙니다. 우리 샤를로테의 작은 성장통이니, 걱정할 건 없어요.”
“그렇, 습니까.”
작은 성장통. 사소한 표현이었지만 대충 짐작 가는 것이 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소중한 황태녀. 부디 그 성장통을 성공적으로 이겨내기를. 나는 우리 관계가 영원히 대부와 대녀, 혹은 신하와 군주로만 남았으면 좋겠어. 그 외의 관계는 조금 그래.
***
엄마가 준 쪼꼬렛. 배고플때 먹어서 더 맛잇엇다.
하나만 더 먹고 싶지만 참앗다. 엄마가 식사전애는 만이 먹으면 안댄다고 햇서.
그리구 쪼꼴릿을 잔뜩 먹으면 이제 뻬디한테 화 안내는거 같잖아. 나 아직 화낫써! 뻬디 바보! 바보 동생! 진짜 바보!
‘당분간 말 안해!’
평생 안 하는건 무리지만… 그래도 잠깐 정도는 안할거야! 집에 돌아갈때까지 바보 뻬디는 보지도 안을꺼야!
아, 그치만 끄란은 봐야 하나…? 끄란은 나쁘지 않은대… 뻬디가 바보인게 싫은건대…
“누나.”
“으에?”
갑자기 뻬디 목소리가 들렷다.
때부 다리 뒤애서 뻬디가 나왔다.
“다시 들어가면 안 돼. 이제 식사해야지.”
“흐잉!”
뻬디를 보기 실어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찌만, 엄마가 막아서 못 들어갓다.
나 뻬디 싫어! 뻬디 보기 싫어! 바보 뻬디, 나 말고 끄란하고 실컷 놀아!
“미안해 누나.”
그치만 뻬디가 주는 꽃을 보고 눈이 똥그랗게 떠졌다.
Z2dKbDJFSCtSbEo3WFlpUEN0eDQxZENSRkowdGQ5bUJrakZrTlAwV0hDMm1RSjV5dGczV05UKzhyekd1SnFraQ
“나. 누나는 우리 집애 자주와서, 인형은 별로 안중요하다고 생각햇서. 아빠가 선물은 중요한걸로 주라고 햇단 말이야.”
“중요한거…?”
“웅. 중요한 사람한태는 중요한 걸 주는게 선물이라고 햇서.”
이상해. 뻬디가 엄청 미웟는데, 아니, 쪼끔 미웟는데 미운 생각이 사라졋서.
“집애 가면 인형줄깨. 그치만 지금은 인형두 없구, 누나도 인형은 잇다고 해서 다른거 줄게!”
‘인형 잇어?’
뻬디의 말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인형 업는데? 우리 집애 인형 말하는건가? 그러면 나도 인형 엄쳥 많키는 한대!
“꽃 예뿌지?”
“우, 우웅…”
“이거 전부 내가 뽑앗서! 샤아-티 아줌마가 그러는대, 여기에만 잇는 꽃이래!”
뻬디 말에 다시 꽃을 봣따.
여기만 잇는 꽃. 뻬디가 나한테 주려고 뽑은 꽃.
‘헤헤…’
그럼 인형보다 조아.
끄란이 가진 인형은 뻬디 집애 잔뜩 잇지만, 이 꽃은 나한테만 잇는거야! 나만 가진 거야!
“바, 받아줄깨! 바보 뻬디지만! 누나니까 받아주는거야!”
“고마워!”
히히!
***
누구 아들인지 참 착하고 똑똑하다. 샤티랑 같이 정원에서 꼼지락거리길래 뭘 하나 싶었는데, 설마 황태녀한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을 줄이야.
‘꽃이라.’
…
‘꽃, 이라.’
잠시 다투었던 두 아이가 화해한 훈훈한 광경이나, 하필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준 광경이기에 착잡한 감정이 몰려왔다.
어째 저 꽃이 훗날에는 목걸이가 되고, 반지가 되고, 그 외 기타 등등으로 변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겠지.’
제발. 내가 샤를로테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황제의 후계자 황태녀는 며느리로 들일 자신이 없어.
아마 황제도 같은 심정일 테니까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