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895)
로판 속 공무원 895화(896/945)
마르는 저택에서 말했던 것처럼 연회장의 슈퍼스타 역할을 하느라 바빴다.
전대 공작인 철혈공이 ‘바렌티의 보물’이라고 말했던 늦둥이 막내딸, 현 공작인 여명공의 귀여움을 듬뿍 받는 막내 여동생. 이 휘황찬란한 타이틀 덕에 바렌티 공작가와 연이 있는 귀족들이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마르다. 원래 계승 서열이 낮지만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는 막내처럼 무시무시한 것도 없거든.
심지어 마르는 나와 결혼하여 제국 실세의 부인이자 제국백 가문의 안주인이 된 상태다. 비록 바렌티 내의 권한은 적을지언정 그 외의 권한은 상당하니, 바렌티와 연이 없는 귀족들도 마르에게 깍듯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지.
‘정신없어 보이네.’
그 결과. 마르는 공작, 공작부인, 소공작과 함께 손님들과 인사하는 입장이 되었다.
무려 공작 가족 사이에 당당히 끼어있는 입지. 형님에게는 무려 다섯이나 되는 여동생이 있으나, 그중 유일하게 공작을 가까이서 모시는 권위. 보기만 해도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질 정도다.
허나 뿌듯한 것과 별개로 마르가 연회를 즐기지 못한 채 사교에 집중하는 걸 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마음 같아서는 마르랑 건배도 하고, 과자도 나눠 먹고 싶은데 말이야.
“페디야. 엄마 몫까지 우리가 열심히 먹자.”
“웅!”
그렇기에 내 옆에 착 달라붙어 있던 페디에게 초코 쿠키를 하나 건네주었다.
마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면 페디와 보내면 그만이다. 다행히 우리 페디는 엄마처럼 인파에 휩싸이지 않았으니까.
“아- 우-”
그 와중에 율리아는 페디가 먹는 쿠키가 탐났는지, 팔을 버둥거리며 옹알이를 했다.
“우리 율리아. 벌써 이런 거 먹으면 배가 아야 하니까. 참자?”
“우으…”
당연하지만 율리아의 탐욕은 간단하게 가로막혔다. 아직 쿠키같이 딱딱하고 자극적인 건 율리아의 소중한 입안으로 들일 수 없어.
나도 마음 같아서는 율리아에게 맛있는 걸 잔뜩 먹이고 싶다. 자식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른 것이 부모인 법이거늘, 나라고 다를 게 있을까.
그러나 율리아는 이제 막 모유를 뗀 가녀린 아이다. 혼자서는 기어다니지도 못해서 어른들 품에 안겨있는 아이지. 그런 율리아에게 평범한 음식을 먹이는 건 학대나 마찬가지다.
“제부.”
“아, 처형.”
그렇게 눈물을 머금으며 율리아를 달래던 중, 넷째 처형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혼자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신없어 보여서요. 제가 좀 도와줄까요?”
“아닙니다. 워낙 순하고 착한 아이들이라, 저 혼자 돌봐도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작게 웃음을 흘린 넷째 처형은 쿠키를 오물거리던 페디를 쓱 들어 올렸다.
“사실 허락을 구하려고 온 건 아니에요. 평소에는 볼 일이 드문 조카들이니,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귀여워하겠어요?”
그냥 페디를 안고 싶어서 왔다는 말인지라 픽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늦둥이 여동생의 자식. 덕분에 다른 조카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어린 꼬꼬마 조카들. 중년에 접어든 귀부인 입장에서는 이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없을 거다. 게다가 바렌티 공작가는 장인어른이 내세운 기조 덕분에 가족애를 중시하지 않던가.
“우리 페디. 이모 보니까 반갑지?”
애정 가득한 넷째 처형의 물음에도 페디는 끔뻑끔뻑 눈만 깜빡였다.
“아, 안 반갑니?”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을까. 넷째 처형이 조금 당황한 게 느껴졌다.
“처형과 마르가 너무 닮아서 그런 겁니다. 분명 엄마는 저기 있는데, 다른 엄마가 안아주니 혼란스러운 거죠.”
물론 페디의 반응은 넷째 이모를 꺼려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엄마와 똑 빼닮은 이모가 있으니 신기해서 뚫어져라 바라보는 거지.
심지어 바렌티의 짙은 유전자 덕분에 첫째 처형도 같은 과정을 거쳤었다. 당연히 둘째 처형, 셋째 처형도 마찬가지.
‘세 번이나 당했으면서 정보 공유를 안 하네.’
생각해 보면 특이한 일이다. 세 번이나 같은 일이 터졌으면 넷째 처형에게는 ‘페디가 너 보면 놀랄 거야.’ 라고 귀띔 정도는 할만하지 않나? 자기가 겪은 충격을 동생들도 당했으면 싶어서 함구하는 건가?
만약 그런 거라면 자매간의 우애가 참으로 두터워 경이로울 지경이다. 어떻게 말하지 않아도 셋의 생각이 통할까.
“후후, 그런 거였구나.”
어쨌든 진실을 알게 된 넷째 처형의 얼굴에는 당혹감 대신 짙은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엄마의 언니를 보고 엄마로 착각하는 아이. 이 얼마나 귀여운 아이인가. 이미 페디에 대한 애정이 극에 달한 처형 입장에서는 더욱 기꺼운 일일 터.
‘많이 닮기는 했어.’
솔직히 남편인 내가 봐도 마르와 넷째 처형은 많이 닮다 못해 빅-마르와 스몰 마르를 보는 기분이다. 다른 처형들도 마르를 닮기는 했으나, 넷째 처형은 닮았다는 말로도 표현하기 부족하다.
마르도 그걸 아는지, 장난삼아 자신의 미래를 보고 싶으면 넷째 언니를 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장난으로 끝내기에는 상당히 그럴듯한 말이라 오묘할 따름이다.
“우리 페디. 이모가 그렇게 엄마 같아요?”
“네!”
“이모도 페디가 아들 같아서 좋아!”
그렇게 말한 넷째 처형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빠르게 지갑을 꺼냈다.
이걸로 장인어른, 형님에 이어 여섯 번째 용돈 하사다. 당분간 페디 간식은 황궁 제과사한테 의뢰해도 부족함이 없겠어.
‘연봉으로 치면 대체 얼마냐.’
어느새 넷째 처형 손에 들린 금화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존재 자체로도 금화를 쓸어 담는 블랙홀이 되다니. 조카의 힘은 실로 경이롭구나.
‘로베르트랑 에두아르트가 자라면 나도 저렇게 되겠지.’
지금쯤 에리히 옆에서 뽈뽈뽈 기어다니고 있을 두 조카들.
그 아이들이 말할 수 있을 만큼 자란다면 내 지갑도 처참할 정도로 가벼워질 거다. 나한테 예지 능력 같은 건 없지만 기이할 정도로 선명하게 보이는 미래야.
‘아.’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다가, 막 손님과 인사를 마친 마르와 눈을 마주쳤다.
벌써부터 금화에 맛 들이면 페디의 금전 감각이 이상해지니 어서 거절하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바쁘게 인사를 나누던 마르도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받았어요?”
그러고는 앞뒤 문장을 다 자른 기묘한 문장을 입에 담았다.
“금화 18개…”
허나 나와 마르는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 앞뒤가 잘린 문장이어도 무엇을 묻는 건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고, 사실대로 말하자 마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넷째 처형의 금화 용돈은 불발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18개나 되는 금화가 페디의 용돈이라는 명목으로 입금되었다. 아무리 페디가 제국백 가문과 공작가의 피를 이었어도 과한 액수기는 하지.
“다들 너무 과했어요. 아무리 조카가 좋다지만 금화라니. 이러다 페디의 경제관념이 이상해지면 어쩌려고.”
이마까지 짚는 마르의 모습에 ‘그중 10개는 장인어른이 주셨어.’ 라는 말은 애써 삼켰다.
안 그래도 은퇴로 인해 권위가 하락한 장인어른이다. 그런 상황에서 18개 중 10개를 홀로 담당했다는 걸 들키면, 마르에게 얼마나 구박을 받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장인어른을 지키는 건 사위인 법이지. 그러니 자세한 지분은 함구하자.
“칼. 저한테 주세요. 제가 은화로 바꿔올게요.”
“은화는 괜찮은 거야…?”
“페디 나이를 생각하면 은화도 과하지만, 그래도 신분을 생각하면 그럭저럭 납득할 수치기는 해요.”
반박할 수 없는 말이라 조심스레 금화를 마르에게 건네주었다.
“엄마, 엄마.”
“왜 그러니?”
“나 노란게 좋아.”
페디의 말에 나도 마르도 흠칫 몸을 떨고 말았다.
설마, 설마 페디가 벌써부터 금화의 맛을 알아버린 건가? 마르가 우려하던 경제관념 붕괴가 벌써 터졌다고?
“노란거. 띠띠 같아서 조아. 띠띠도 저거처럼 노래.”
‘아.’
허나 이어지는 말에 안도했다.
다행이다. 금화의 가치를 알아서 탐내는 게 아니라, 단순히 티티의 털 색깔과 비슷해서 그런 거였어.
“페디야. 노란 것도 좋지만, 엄마가 가져올 동전도 예쁜 거야. 우리 마리아랑 세실리아, 카틀레아를 닮아서 하얗고 반짝거리는걸?”
“진쨔?”
“그럼. 아, 황태녀 누나도 닮았네.”
Z2dKbDJFSCtSbEo3WFlpUEN0eDQxZENSRkowdGQ5bUJrakZrTlAwV0hDM0VsK1JBWWI4ZlFqQWhKSHNORzhhYw
그러자 페디는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죠아! 다른걸로 줘!”
‘좋아.’
페디를 빠르게 설득한 나 자신이 대견했다.
티티를 닮아서 금화가 좋다? 그러면 은화를 닮은 사람들을 주르륵 읊으면 된다. 마침 페디의 바로 아래 동생인 세쌍둥이, 태어날 때부터 함께 논 황태녀가 은화와 비슷한 색이지 않나.
“자, 엄마한테 잘 다녀오라고 인사.”
“엄마! 잘다녀와!”
“우아-”
“그래. 금방 다녀올게.”
팔을 퍼덕이는 페디와 오빠를 따라 하는 율리아. 남매의 우애에 마르는 살포시 웃더니 장인어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금화를 은화로 교환해 주는 장인어른의 모습을 볼 수 있었─
“화, 황제 폐하!”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뭐야.’
갑작스러운 소란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금화처럼 흉측한 노랑머리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고 있었다.
***
울켄 공작성은 마치 신년하례식 때의 황궁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규모는 신년하례식이 압도적이지만, 연회에 참석한 고위직들의 면면은 신년하례식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새로운 공작의 탄생을 축하하는 연회니 당연한 일이겠지.
“폐하. 변방의 누추한 곳까지 친히 행차해 주시니, 실로 영광스럽고도 황송할 따름입니다.”
아무튼 내가 얼굴을 비치자마자 여명공은 황급히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누추하다니. 울켄은 제국 동부를 지키는 방패이자 천명을 지탱하는 기둥이지 않나. 공의 선조들이 황실과 제국을 위하여 가꾼 훌륭한 터전이기도 하니, 그런 말을 말도록.”
“명심하겠사옵니다, 폐하.”
허리까지 숙이려고 하는 여명공의 어깨를 토닥이며 제지하였다.
황제를 향한 예우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 자리는 여명공을 위한 자리니, 과하게 숙이는 것도 좋지 않다.
“아, 뻬디!”
‘음?’
다음은 공작부인과 인사를 나누려던 찰나. 황후 옆에 있던 황태녀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누나!”
페디였다.
이상한 광경은 아니다. 페디는 여명공의 조카이자 철혈공의 외손자. 오히려 이 자리에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러니 페디와 황태녀가 만나는 건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왜… 찝찝하지?’
이상하다. 수년 동안 둘이 만나고 함께 논 것이 몇 번이던가. 한 번도 이런 불안감과 찝찝함을 느끼지 않았거늘, 오늘은 어째서.
“누나! 이거바바!”
“우웅?”
“이거! 누나 닮아서 반쨕반쨕 예뻐!”
“예, 예뻐?”
‘으으으음…’
황태녀를 향해 쪼르륵 달려와 은화를 보여주는 페디. 그런 페디의 말에 히히 웃는 황태녀.
분명 흐뭇한 광경이어야 하는데. 분명 흡족해야 할 광경인데.
‘왜 위화감이 드는 것이냐.’
황궁에서부터 내 심장을 옭아매던 이 기묘한 위화감.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