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
제 9화
아카데미 입성 – 4
칼과 에리히가 상호 정신 공격이 가능하다는 슬픈 사실과는 별개로, 학생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본관에 가까워질 즈음에 등교 시간이 끝났다. 드문드문 보이던 학생들은 완전히 보이지 않았고, 창문을 통해서야 수업 중인 모습이 얼핏 보였다.
눈을 피한다는 결과는 칼이 원하는 대로 나왔지만 그 결과를 배출한 원인은 영 좋지 못했다. 돌아서 오지 않았다면 교장실에서 차라도 얻어 마실 시간은 있었을 것이다.
‘카피바라가 아니라 캣닢인가.’
어쩌면 루이제는 캣닢 문 분홍 카비파라일 수도 있다. 내가 발견하자마자 가던 길을 틀어 피했던 금발 남성은 국외에서 기어들어온 셋과 더불어 국내 유일한 요주의 인물. 3황자, 아인테르 리브노만.
와, 거기서 3황자가 나오네. 진짜 사람을 꼬이게 하는 뭔가가 있나?
그 넓은 아카데미에서, 하필 딱 그 시간에 아인테르가 루이제 근처에서 발견됐다. 그 순간 절로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아인테르 자체도 문제지만, 아인테르가 루이제 근처에서 관측되었다는 것은 다른 셋도 충분히 꼬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 아닌가?
파견 첫날부터 요주의 인물들 전부가 모인 정모 강제 참여?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내게 그것을 강요하려면 뚜껑 따인 웰치스 정도는 들이밀어야 할 것이다.
순간 대륙적 중요 인사 넷이 모인 장소에 있는 걸 상상해버렸다. 외무성 장관도 겪지 못했을 일을 상상한 것으로 심력이 크게 소모되어 근처 벤치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아카데미에서 이러고 있으니 대학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학생이 된 기분이지만, 아카데미에는 셔틀버스 같은 건 없고 나는 학생이 아니다. 20대 청년의 학창 시절 추억이 빙의 전 기억을 끄집어와야 겨우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 잡았다. 4년의 공무원 생활을 하며 단련된 육감은 파견이 결정된 순간부터 앞으로의 생활이 굉장히 험난할 것이라며 꾸준히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문제는 경고를 들어도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
날아오는 주먹이 눈에 다 보이는데 몸이 안 움직여서 그대로 처맞는 기분이었다. 이성과 본능이 동시에 파견에 반대했지만, 위에서 찍어 누르는 공권력의 힘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힘은 공권력이다…
혀를 한 번 차고 벤치에서 일어나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돌아다니는 학생도 없으니 원래 목적이던 구조 파악이나 마저 해야 할 시간이다.
수많은 푸른 피가 다니는 교육기관인 만큼 크고 화려한 건물들을 살펴보고, 가끔 다른 건물로 이동하거나 쉬는 시간이라 밖에 나온 학생들이 보이면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등교 시간에야 너무 시선이 몰려 동물원의 짐승이 된 것 같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애초에 앞으로 아카데미에 지내면서 쭉 학생들을 피해 다닐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내일까지는 감찰관이라고 알려야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안녕하세요, 감찰관입니다. 업무 차원에서 왔어요.’ 라고 인사하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이곳저곳을 누비며 아카데미 전체 조감도를 머리에 저장한 후, 주변을 살피고 통신구를 꺼냈다. 당장 할 일은 끝냈으니 까먹기 전에 처리해야지.
품 속에서 꺼낸 통신구로 차장에게 연락을 걸었다. 몇 번 진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떠오른 차장의 얼굴.
– 오랜만입니다, 부장님. 아카데미에는 잘 도착하셨습니까?
“어. 아침에 도착했는데 잠시 다른 일 좀 하느라 이제 연락했어.”
– 별 문제는 없으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사실 오자마자 문제가 우르르 쏟아졌다. 주인공 루이제, ‘넌 좋은 친구야’ 엔딩이 눈 앞에 아른거리는 에리히, 캣닢 문 카피바라에 홀려 다가온 아인테르. 하지만 굳이 그런 말을 덧붙여 차장을 걱정시킬 필요는 없었다. 냉정히 말해서 차장은 이번 파견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니까. 나는 조용히 마음 속에 루이제 외 2인의 이름을 담아두었다.
“뭐, 그렇지. 그런데 오는 길에 이상한 걸 봤는데.”
– 말씀하십시오.
“아카데미로 향하는 도로 정비 명목으로 예산이 빠진 적이 있을 거야. 그런데 상태가 개판이더라고.”
그거 추적해서 전부 털어.
동네 시장에서 물건 좀 사오라는 말을 하는 듯한 지시에도 차장은 아무 반문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마차 안에서 살생부 윗줄에 올라가 버린 이름 모를 지방관은 그렇게 처리가 결정되었다.
이것은 길고 열악한 여정을 함께 하며 작은 우정을 나눈 재무성 특급 마차를 위한 마지막 선물이었다. 우정은 지켰다, 특급 마차…
– 처리하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더 지시하실 일은 있으십니까?
“없어. 아, 거긴 별일 없지?”
– 예, 아무 일도 없습니다.
다행히 과장들은 조용히 지내는 모양이다. 밀려오는 안도감에 절로 표정이 조금 느슨해졌다. 차장이 따로 연락한 것이 없으니 소란이 터지지는 않았겠으나, 그래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직접 문제가 없다는 얘기를 들으니 한시름 놓였다.
“그래. 고생하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
– 알겠습니다.
더 이상 용건은 없었기에 차장에게 마지막으로 신신당부하며 연락을 끊었다. 그나마 차장이 집무실에 남아 있어서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모른다. 차장조차 없었다면 나라는 고삐가 풀린 사이에 과장들이 벌인 기행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이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 결말은 격노한 장관에 의하여 감찰부가 공중분해 당했을 것이다.
‘오히려 좋은가?’
만약 부서가 장관 손에 박살이 나면 부장으로서 어쩔 수 없이 책임을 지고 은퇴해야겠지. 물론 장관이라면 없던 부서를 만들어서 나를 형벌부대 마냥 그곳에 박아 넣고 굴릴 확률이 높다.
하지만 짧게나마 은퇴 가능성을 상상하니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 통신구를 다시 집어 넣고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통신이 끊기며 칼의 얼굴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차장은 통신구를 품에 넣고 바로 뒤에 있던 문을 열었다. 방 안이 꽤 소란스러웠기에 부장과 연락하기 썩 좋은 환경은 아니어서 잠시 나와있었다.
그 좋지 않은 환경에 문을 열고 다시 들어가자 대환장 파티가 눈 앞에 펼쳐졌다.
“3과장의 혼신의 재롱잔치!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히히, 히헤헤헤헥.”
“크흐, 야! 부장님 술잔 비었잖아!”
개새끼 세 마리 중 독보적으로 시끄러운 2과장. 심지어 부장이 없는 곳에서 부장을 찾고 있다. 시선을 돌린 차장의 눈에 부장석에 앉혀진 사람 사이즈의 인형과 그 인형 얼굴 부분에 붙어 있는 칼의 초상화가 보였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살짝 비틀거리며 걸어가서 인형 앞에 놓인 술잔에 술을 가득 붓고 냅다 초상화 부분에 뿌리는 2과장.
“부장님 잘 드신다!”
2과장은 낄낄거리며 빈 술잔에 다시 술을 채워 넣었다. 기분을 내기 위해 대충 앉혀둔 인형은 2과장의 마음 속에서 점점 진짜 부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 환장의 꼬라지에 비해 사건의 계기는 의외로 사소했다. 칼의 격노로 인해 기껏 준비한 플랜카드와 아카데미행 축하 파티 계획은 허공에 흩날리며 갈가리 찢겨버렸다.
그러나 감찰부의 과장이라면 그런 사소한 변수에 하고자 한 일을 포기하지 않는 법. 아카데미로 떠나는 파티를 못했다면 아카데미에 도착한 파티를 열면 되지 않느냐는 1과장의 말이 2과장과 3과장의 심금을 울렸다.
각 과의 업무를 미루거나 당기며 오전 시간을 비운 후, 과장들이 직접 발로 뛰며 파티를 준비했다.
“이 정도 크기면 대충 부장님 정도지?”
“와, 초상화라고 미화됐네 이거.”
진짜 칼은 없으니 대충 인형에다 칼 초상화를 붙여서 부장 자리에 앉혀두자는 의견이 통과됐다. 칼의 손에 조각난 플랜카드도 언제 챙겨두었는지 다시 붙여서 인형 바로 위에 매달았다.
[ 아! 꽃다운 20대의 아카데미 생활! ]그 와중에 필요 없는 글자는 버리고 누더기처럼 붙였다. 감찰부 관료에게 세절한 물건을 다시 맞추는 건 필수 교양이다. 적당히 구색만 맞추는 복원이야 일도 아니었다.
칼이 불태우지 않고 찢어버리는 것에 그쳤다는 원죄로 인해 탄생한 누더기 플랜카드가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냈다. 그것을 바라보던 차장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인형 앞에서 부장을 위한 재롱잔치라며 공중제비를 도는 3과장과 또 다시 술을 초상화에 뿌리는 2과장에게 시선이 향할 때, 1과장이 방에 들어온 차장을 보고 술잔을 건넸다.
“차장님도 드세요!”
차장은 망설임 없이 1과장이 건넨 술잔을 받고 단숨에 들이켰다. 이미 차장도 칼의 연락을 받기 전에 과장들과 함께 여섯 잔은 마신 상태였다.
“거긴 별일 없지?”
아까 전 이루어진 대화 중 칼이 불안과 초조함을 담아 내뱉었던 말. 그에 차장은 아무 일 없다고 당당히 답변했다. 어떻게 보면 직속상관을 향한 허위보고라고 할 수 있으나…
‘사고를 안 쳐서 오히려 불안하군.’
통탄스럽게도 차장은 오히려 환장의 파티를 벌이는 과장들을 보고 ‘사고를 치지 않는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칼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차장 마음 속의 ‘과장들이 터뜨리는 사고’의 기준은 몹시 널널했다는 것. 차장은 바가지가 밖에서 새지만 않으면 신경 쓰지 않았다. 안에서 새는 것을 억지로 막으면 밖에서 난장판이 난다는 것을 아니까.
지금까지는 과장들이 칼의 눈치를 보며 안에서도 적당히 새게 조절했기에 이런 차장의 성향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애석하게도 칼은 이곳에 없었다.
차장이 들고 있는 술잔에 실실거리며 술을 따르는 1과장을 보던 차장이 구석에 조용히 있던 5과장과 눈이 마주쳤다. 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5과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둘은 아무렇지도 않게 술잔을 비웠다. 지금은 이래도 업무를 시작해야 하는 오후가 되면 알아서들 술에 깨니 상관없다.
그렇게 칼 없는 칼을 위한 파티는 흥겹게 이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당분간 등장할 일이 없고, 고삐 역할을 하는 칼 없이 움직일 감찰부의 모습입니다. 사고를 치지 않는 과장들의 모습에 칼도 감동하겠죠…
오전 중에 9회를 작성했으니, 오후 중에 10회를 완성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공모전 시작 4일차가 되서야 스타트 라인에 설 수 있는 기분입니다. 이렇게 말했으면서 정작 10회가 내일에야 올라온다면 많이 민망하겠네요.
아무튼 부족한 소설에 많은 관심을 주시고 읽어주셔서 다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