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05)
로판 속 공무원 905화(906/945)
약 10년 정도 전의 일이다.
당시의 제국은 명확한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았고, 황제의 외척인 애실론 가문이 횡포를 부리며 제국을 뒤흔들고 있었다. 심지어 국경 밖에서는 역천자라고 불리는 존재가 유목민을 규합하여 봉기하였으니, 제국은 대내외적으로 혼란을 맞이하였다.
그 혼란을 틈타 아우스엔 대교구의 대교구장이 황혼 교단에게 암살당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교에 의해 교단의 추기경이 암살되는, 제국의 심장에서 암살 사건이 발생하는 대참사가.
대륙 전체가 술렁거린 이 사태로 인해 제국이 극도로 분노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우리 여명 교단 역시 탄식을 금치 못하였지.
“차기 대교구장으로 누구를 임명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제대로 된 인수인계도 받지 못한 채 업무를 시작해야 하고, 사제와 신도들의 동요도 상당하겠지요. 얼마나 큰 부담을 짊어져야 할지 상상조차 하기 버겁습니다.”
허나 분노와 탄식과 별개로 남은 사람들은 뒷수습을 걱정해야 했다.
아우스엔 대교구는 제국에서 제일가는 교구다. 사실상 제국 전체를 관할하는 곳이며, 그곳의 대교구장은 제국 내에서 서열 1위의 사제로 군림해야 한다. 오죽하면 제국 의전 서열상으로도 아우스엔 대교구장은 궁내성 장관, 제국의회 의장, 제국 수석 대법관 다음이겠나.
그 정도로 거대하고 막중한 교구이니 정상적인 인수인계 절차를 거쳐도 부족한데, 전임자가 암살로 인해 갑작스레 죽었다. 무엇도 인수인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거대한 교구를 이끌어야 하고, 동요하고 있을 사제들과 신도들을 다독여야 한다. 인세에 지옥이 있다면 바로 저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
“제가 가겠습니다.”
허나 나는 인세의 지옥으로 걸어갔다.
전임자의 사망으로 혼란에 빠진 아우스엔 대교구를 수습하기 위하여. 공포와 절망에 휩싸였을지도 모를 형제자매님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리고 부끄러운 말이지만, 신앙교리성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계속 신앙교리성에 있었다면 이교보다 내가 먼저 죽었을 거다.’
신앙교리성. 과거에는 이단심문성으로 불리었던 교단의 검이자 방패이며, 교단의 순수성을 지키는 경비병.
그래서인지 이교나 이단이 출몰하면 신앙교리성의 사제들이 성기사단, 사제단과 함께 토벌 작전에 나서기도 했다. 나 또한 신앙교리성의 사제로서 여러 번 토벌 작전에 나서기도 했고.
그것에 불만이 있지는 않았다. 설마 멀쩡한 성기사단을 두고 우리까지 동원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교단을 위해 헌신한다는 점이 너무나 기뻤다.
처음 몇 년까지는.
“이교 하나를 죽이면 선량한 신도 백이 웃을 수 있습니다! 이단 분파 하나를 박멸하면 교단이 10년은 평온해집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싸우십시오! 마땅히 교단의 적을 처단하십시오!”
내가 막 신앙교리성에 배정받았을 때, 신앙교리성 부성장이었던 페드로 오트바야 추기경 예하.
연로한 성장을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신앙교리성을 이끄셨고, 실로 열정적인 활약으로 무수히 많은 교단의 적을 처단하셨다. 추기경의 몸으로 시궁창을 기어다니시지 않나, 5층 높이에서 뛰어내리시지 않나, 이교 놈들의 화장실에서 4일이나 잠복하시지를 않나─ 감히 본받을 용기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헌신이었다.
그런 예하가 존경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동시에 두렵지 않다면 그 또한 거짓말이다.
‘수장이 솔선수범하면 부하들은 더 굴러야 하니까.’
그 두려움과 공포는 페드로 추기경 예하께서 신앙교리성 성장으로 올라가신 이후로 더욱 커졌다. 이렇게 살면 천상의 주를 좀 빨리 뵙게 되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지.
그래서 아우스엔 대교구장을 자청했다. 신앙교리성에 있나 아우스엔 대교구에 있나 주를 위해 헌신하는 건 매한가지니까.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서, 조금이라도 더 길게 헌신할 수 있는 길을 택해야 하지 않겠나. 당시에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 판단은 옳았다. 여러 형제자매님들의 위로와 응원, 페드로 추기경 예하의 격려를 받으며 아우스엔 대교구로 향한 이후, 정말 만족스러운 삶을 보낼 수 있었다.
지금은 상황으로 물러난 당대 황제는 내가 대교구장을 자처했다는 것을 알고 우호적으로 대하였다. 교단에서도 내가 사지를 자청한 것이라 여겨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처음 몇 년은 힘들었지만, 그 뒤는 좋았지.’
혼란에 빠진 대교구를 수습하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적극적인 지원과 형제자매님들의 헌신 덕에 혼란은 금방 가라앉았고, 나는 제국에서 가장 거대한 교구의 책임자로서 평온히 지내게 되었다.
게다가 몇 년 전에는 내가 사회를 보던 결혼식 중에 주께서 축복을 내리시지 않았던가. 사제로서 실로 영광인 일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이렇게 살자고, 아우스엔 대교구의 책임자로서 평온하게 살자고 다짐했는데.
– 새로운 시대의 교황이 되는 건 어떻겠소?
“예?”
황제의 갑작스러운 연락, 당혹스러운 대사에 혼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교황이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어어 하는 사이에 신성교국으로 압송되었다.
압송이라는 말은 최대한 정중하게 찾아온 성기사단에게 실례되는 말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압송보다 적절한 표현은 찾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교구장 예하.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물론입니다. 예하께서도 강녕하신 것 같아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리고 압송당하고 얼마 후. 교황 성하보다 신앙교리성 성장 예하를 먼저 뵙게 되었다.
이제는 명목상 동급의 추기경이지만, 대교구장보다는 중앙의 성장을 더 높게 취급하는 것이 교단의 의전이다. 심지어 성장 예하는 나보다 훨씬 먼저 추기경 자리에 오르신 분. 어찌 편하게 대할 수 있을까.
“추기경 예하를 뵙습니다.”
심지어 성장 예하 옆에 제국의 2인자가 있다면 더더욱.
혼란스럽다. 성장 예하와 타일글레헨 백작 사이에 친분이 있었나? 이렇게 단둘이 있는 모습은 상상한 적이 없는데?
“이리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각하. 설마 교국에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대교구장 예하. 타일글레헨 백작 각하께서는 이제 명실상부한 성인으로 시성 되셨습니다.”
‘아.’
그 말에 빠르게 납득했다.
과연. 교국에서 타일글레헨 백작의 생전 시성을 논의 중이라고 듣기는 했는데, 잠깐 관심을 거둔 사이에 시성이 진행됐구나. 그렇다면 교단의 중역인 성장 예하가 타일글레헨─ 아니, 성스러운 분과 함께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보수파의 수장으로서 살아있는 성인과 우호적 관계를 체결하고 싶을 터. 이는 진보파로 분류되는 성하로 인해 다소 열세인 보수파의 부상은 물론, 차기 교황을 보수파에서 배출하기 위해서, 라도…
…
– 새로운 시대의 교황이 되는 건 어떻겠소?
황제가 했던 말이 떠올라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교국에 압송되자마자 만난 사람이 유력한 차기 교황 후보인 성장 예하, 살아있는 성인이자 제국 2인자인 성스러운 분. 이건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미래가 뻔한 상황이다.
설마, 설마 정말 내가 교황이 되는 건가? 중앙 요직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내가?
아니, 물론 현 교황 성하도 중앙이 아니라 지방에서 경력을 쌓은 분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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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어느 정도 듣고 오셨겠지요?”
허나 내가 혼란에 빠지든 말든, 예하께서는 가차 없이 입을 여셨다.
듣기는 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이라 애써 한 귀로 흘리기는 했지만.
“그것이,”
“만약 듣지 못했다면 이 늙은이가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들었습니다.”
“좋군요.”
성장 예하와 1 대 1 대면은 가혹한 일이기에 사실대로 말했다.
애초에 이 일은 내가 거절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슴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나, 머리로는 체념한 상태다.
실로 서글픈 일이다.
***
1주. 고작 1주가 지났다.리시우코 추기경을 차기 교황으로 세우자는 말을 꺼내고 고작 1주가 지났을 뿐이다.
헌데 제도에서 배나 긁적이고 있어야 할 리시우코 추기경이 1주 만에 교국으로 날아왔다. 그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인해.
‘딱한 사람.’
절로 숙연한 마음이 들어 동정심 가득한 눈으로 리시우코 추기경을 바라봤다.
1주라는 시간은 한 사람의 운명이 정해지기에 너무나 짧은 시간이나, 정보를 전달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황제가 리시우코 추기경에게 접촉하여 지지 의사를 표명하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다만 리시우코 추기경의 표정을 보니 황제의 접촉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현실을 부정한 것 같지만,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마침내 받아들인 것 같다.
“저는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아니구나. 아직 못 받아들였구나.
“부족함이 많은 몸입니다. 과분하게도 아우스엔 대교구의 대교구장이자 대주교로 지내고 있으나, 그곳이 제가 마지막으로 이를 곳입니다. 그 이상은 감히 꿈에도 그려본 적이 없습니다.”
“이 세상 그 누가 예상한 대로만 살아가겠습니까. 이 늙은이도 신앙교리성 성장까지 올라갈 줄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저, 저보다 유능한 분들도 많습니다.”
“교황에게 필요한 것은 유능이 아닌 굳건함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저는 아닙니다. 저에게는 굳건함도, 굳건함을 갖출 용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흠, 그렇습니까?”
성장이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리시우코 추기경은 급격히 밝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야. 좋아하지 마. 이거 함정이라고.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알아채겠는데, 왜 당사자는 모르는 거냐고.
“물론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전 아직 준비가─”
“이 세상에 준비된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짊어질 수 있는 자만이 있을 뿐이지요.”
“예?”
“그리고 이 늙은이는 예하가 신앙교리성의 사제일 때부터 지켜봐왔습니다. 예하라면 능히 짊어질 수 있는 분이라는 걸 압니다.”
“예?”
그렇게 말한 성장은 자연스레 리시우코 추기경을 끌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예, 예하! 이럴 수는 없습니다! 예하!”
당연히 리시우코 추기경은 격렬히 저항했으나, 성장의 완력을 이기지는 못했다.
‘누가 보면 폐위당하는 줄 알겠네.’
절박한 표정과 목소리. 누가 저것을 보고 차기 교황 후보라고 생각할까.
아무리 봐도 기존 직책에서 쫓겨나게 생긴 사람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