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07)
로판 속 공무원 907화(908/945)
기존 군주가 물러나면 자연스레 후계자가 즉위하는 세속과 달리, 교단은 교황의 자리가 공석이 되면 대륙 곳곳에 퍼진 추기경들이 집결하여 투표로 차기 교황을 뽑는다. 이것이 교계의 군주를 옹립하는 절차이자, 제국 황제와 더불어 대륙을 이끌어가는 거물이 선출되는 성스러운 의식─ 콘클라베다.
사실 내 생전 시성 때문에 대부분의 추기경들이 교국에 있던 상황이라 추기경 전원이 소집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침 이 세상에는 텔레포트라는 위대한 이동 수단도 있잖아. 오래 걸리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성스러운 분과 그 성수의 앞날에 축복이 함께 하기를!”
그리고 콘클라베를 위해 모든 추기경들이 집결했다는 건, 내 귀국길도 모든 추기경들이 배웅했다는 것과 동일하다.
교단 행정부의 성장들과 대륙 각국을 관장하는 대교구장들까지 전부.
‘장관이네.’
이 어마어마한 광경에 실소가 절로 나왔다.
공식적으로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지라 평범한 사제로 복귀한 발트사크 37세. 이미 너, 나, 우리가 차기 교황으로 인식하고 있는 리시우코 추기경. 이번 콘클라베의 실질적인 주도자가 될 신앙교리성 성장. 교황의 자리가 공석인 현재, 사실상 교단의 최고 권위자인 타니안.
다른 신도들 입장에서는 일생에 한 명만 봐도 영광스러운 일인데, 나는 이 4명의 배웅을 동시에 받고 있다. 너무 황송스러워서 눈물이 다 나올 것 같아.
– 멍!
허나 착잡한 주인과 달리 티티는 교단의 배웅에 즐거워했다. 우리 티티는 사람이 많으면 마냥 좋기만 하니까.
게다가 주인이 차기 교황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사이, 티티는 이곳저곳을 누비며 온갖 귀여움을 받았다. 덕분에 추기경들과 적지 않은 친분을 쌓았지. 심지어 티티가 타니안의 축복을 받았다는 게 알려지자 아예 성수로 취급받기 시작했고.
‘성수라.’
헥헥거리고 있는 티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상황이 분양해 주었고, 차기 성자의 축복을 받았으며, 성인이 기르고 있는 개. 열하나나 되는 전직 악신들을 거느리는 위대한 리더.
이런 티티를 성수라고 부르지 않으면 누구를 성수라고 하겠는가. 아니, 전직 악신들이 성수로 분류되는 걸 생각하면 성수가 아니라 신수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다.
‘성 티티…’
우리 티티도 이름 앞에 성 붙이자. 어디 가서 대놓고 말하는 건 무리지만, 내 마음속으로는 성 티티라고 부를게.
“성스러운 분이시여.”
“아, 예하.”
그렇게 티티와 함께 텔레포트 마법진 위로 올라가려던 찰나. 신앙교리성 성장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놀랍게도 이번 신성교국 체류 기간 동안 가장 자주 만난 사람은 타니안이 아닌 성장이었다. 입국 전까지만 해도 친하기는커녕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상대거늘, 어느새 그럭저럭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었다.
역시 같은 문제를 두고 함께 구르면 빠르게 친해지는 법이야. 내가 그래서 빌라르와 국경을 초월한 친구가 됐잖아. 아마 신성교국에 몇 달만 더 있었다면 나이를 초월한 친구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성스러운 분께서 성인의 좌에 오르신 것은 콘클라베 직전에 발표하겠습니다. 제도에 도착하시고 여장을 풀 때 즈음이면 온 대륙이 살아있는 성인을 공경하고 찬양할 것입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다행히 저택에서 농성을 할 시간은 확보했군요.”
“대륙 제일 검과 마종공이 있는 저택에 누가 감히 공성을 시도하겠느냐만, 성스러운 분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다행입니다.”
내 농담에 성장도 작게 웃음을 흘리며 받아주었다.
사실 순도 100% 농담은 아니다. 현시점에서 내가 시성 된 건 교단과 가족들, 황제 정도밖에 모르니까. 교단이 시성이 이루어졌음을 선언하면 통신구는 미친 듯이 발광하고, 저택 대문은 성지 순례 뺨치는 인파와 마주하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못해도 한 달 정도는 저택에서만 지내야겠어.
“저 또한 성장 예하께서 이토록 저를 염려해 주시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안 그래도 교황 성하가 물러나시고, 수년 동안 아우스엔 대교구를 훌륭하게 이끈 리시우코 추기경 예하가 사라진 상황 아닙니까? 두 거목의 부재를 틈타 저에게 수많은 관심이 집중될 터인데, 예하의 배려가 없었다면 어땠을지.”
내 의례 반 진심 반의 감사 인사에 성장의 표정이 다소 굳었다.
아주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지만 코앞에 있어서 확실하게 봤다. 아우스엔 대교구라는 말에 분명 표정이 굳었어.
‘후임 문제 때문에 그런가?’
의아한 반응이었지만 금방 그럴듯한 가설을 떠올렸다.
공석이 된 교황 자리는 리시우코 추기경이라는 훌륭한 후보가 메울 예정이지만, 그로 인해 잘 돌아가던 아우스엔 대교구는 갑작스레 수장을 잃게 되었다. 그것도 전대 대교구장의 암살로 혼란에 빠졌던 대교구를 빠르게 수습한 유능한 수장을.
비록 교황 자리보다는 못하지만 아우스엔 대교구장도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다. 아우스엔 대교구는 제국에 존재하는 교구 중 으뜸가는 교구기에, 그곳을 관리한다는 건 제국의 모든 사제와 신도들을 관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대륙 최강국인 제국과의 외교 및 사교를 담당하는 건 덤이지.
‘마지막까지 고생만 하다가 가겠네.’
아주 미약한 동정심을 담아 신앙교리성 성장을 바라봤다.
공석이 된 아우스엔 대교구장 자리는 도의적으로 성장이 책임져야 한다. 멀쩡히 대교구장 역할을 하던 리시우코 추기경을 소환한 건 성장이잖아. 그러니 메꾸는 것도 성장이 하는 것이 도리다.
허나 중앙의 성장들보다는 의전에서 밀려도, 지방직 중에서는 제일이라 할 수 있는 자리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노리고 있겠나. 그중에서 능력과 성품을 판별하여 적절한 후임자를 고르는 건 골치 아프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예하. 예하께서 계기와 완결을 아름답게 장식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계기와 완결을 아름답게라. 가슴을 울리는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성장의 쓴웃음을 끝으로 텔레포트 마법진에 올랐다.
‘핫.’
그리고 제도로 날아가기 직전,성호를 긋는 타니안과 알렉산드리아나 추기경 품에 안겨 손을 흔드는 피에트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티티가 떠나니 울고불고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성직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 그런지 생각 이상으로 온순하더라. 덕분에 아무 소란 없이 귀국할 수 있게 됐어.
…
‘이제 어쩌지.’
이윽고 차기 교황에 대해 고민하느라, 잠시 우선순위가 밀려있었던 문제가 다시 부상했다.
황제 그 새끼… 아직도 황태녀 때문에 분노 상태일까? 그래도 시간이 지났으니 좀 가라앉을 것 같기는 한데.통신구로 대화했을 때는 감정보다 이성을 좀 앞세웠고.
아니야, 방심하면 안 돼. 그 새끼는 결정적인 순간에 엿을 먹이기 위해서 얼마든지 인내할 수 있는 놈이야. 귀국하자마자 이성보다 감정을 불태우고 있는 황제를 마주할 수도 있어.
‘콘클라베 끝날 때까지만 버틸 걸 그랬나.’
순간 그런 생각까지 들었지만 이미 텔레포트 마법진이 작동했기에 무를 수도 없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아빠와 티티를 보고 싶어 한다. 비록 교국에 있는 동안 통신구로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통신구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건 다르지.
‘결국 돌고 돌아 아이들을 위해서구나.’
실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 아이들을 보기 위해, 마찬가지로 자기 아이 때문에 분노한 황제 앞으로 나아가다니.
이게 아비가 짊어져야 할 무게인가 싶다.
저택에 발을 들이자마자 선 채로 기절할 뻔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것이 기뻐서? 그건 아니다. 기쁘다면 아이들과 더 열심히 놀아줘야지, 감히 기절할 시간 같은 건 없다.
아니면 신앙교리성 성장의 장담보다 이르게 인파가 몰려서? 그것도 아니다. 저택 앞은 아직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다. 성장 말처럼 내가 여장을 풀 여유는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이 완벽한 복귀였음에도 정신이 나갈 뻔한 이유는 너무도 강렬하고 단순했다.
‘이 미친 새끼.’
저택 중앙에 당당히 달려있는 초상화.
내가 살면서 저런 표정을 지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경건한 표정에, 머리 뒤에는 찬란한 후광이 그려진 초상화.
저택에 들어가면 장님이 아닌 이상 바로 볼 수밖에 없는 초상화.
‘이게 왜 여기 있어.’
내 성인 버전 초상화가 어떤 가족들보다도 먼저 나를 반겨주었다.
저거 분명 황제가 집무실에 잠깐 달았던 그거 아닌가. 엄연히 황제 소유물인 초상화가 왜 우리 저택에 있는 거지? 그 흉한 게 어째서 내 집에…
“아, 오셨다!”
그렇게 멍하니 초상화를 바라보자, 계단 쪽에서 우다다다 뛰어내려오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장관니이이이임!”
내 사랑스러운 가족 중 하나인 에리.
“아니, 성인니이이이임!”
그러나 티배깅만큼은 가족이든 남이든 가리지 않고 발군의 솜씨를 발휘하는 웬수.
“크읏, 성인이라 그런지 똑바로 볼 수가 없다! 너무 눈부셔!”
“그만해.”
“아아! 목소리조차 성스러워! 귀가 녹아내리는 것 같아!”
“그만하라고…”
미친 듯이 요동치는 손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당장 저 요망한 입술을 잡아당길까? 아니야, 참아, 내 안의 이성. 에리는 내 부인이지만 한 아이의 엄마기도 하잖아. 아무리 추하고 철없는 모습을 보여도 품위 유지는 시켜줘야 돼.
“저기, 성인님. 성인님을 누구를 위한 수호 성인이에요? 보통 성인들은 특정 집단을 수호하던뎅.”
내 멘탈 이것아.
난 다른 것보다 내 멘탈을 최우선적으로 지키고 싶어.
“혹시 관료들의 수호성인인가? 아니면 임산부드으으으읍!”
“그만하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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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참지 못하고 손이 튀어나갔다.
솔직히 이건 성인이 아니라 교황이었어도 못 참았다.
***
업무를 보던 중. 책상 한편에 두었던 통신구가 찬란하게 빛을 뿜었다.
‘봤군.’
이 시기에 올 연락이라면 하나밖에 없기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를 피하고 싶을 백작이 먼저 연락을 걸었다. 이는 내가 보낸 선물에 진심으로 감동했다는 의미일 터.
군주는 괘씸한 신하를 용서하고 도리어 선물을 보냈다. 신하는 그 선물에 감동하여 이리도 열렬한 연락을 보내고 있다.
실로 아름다운 군신 관계가 아닐 수 없다.
‘무시하면 알아서 오겠지.’
계속 발광하는 통신구를 보다가 도로 서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가 알아서 집무실까지 올 거다. 할 얘기는 그때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