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09)
로판 속 공무원 909화(910/945)
리제의 폭주로 인해 온 가족의 아티니 이주가 결정되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리제와 프리드리히만 아티니로 보내고, 나는 텔레포트를 통해 제도와 아티니, 타일글레헨과 세르베트를 돌아다닐 예정이었다. 가족들이 나 때문에 사혼의 구슬 조각처럼 흩어졌으니 원인 제공자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온 가족이 아티니로 간다면 텔레포트를 밥 먹듯이 사용할 필요가 없다. 빙빙 돌아다닐 거 없이 아티니에서 생활하다가, 아주 간혹 저택으로 복귀해서 대문 앞 신도들한테 손 좀 흔들면 그만이니까.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저희도 가는 겁니까?”
“그럼 너희만 저택에 남아 있게?”
“그건 아니죠…”
그리고 모든 가족들이 움직인다면 저택의 애완동물들도 같이 움직이는 것이 옳다.
우리 아이들의 소중한 놀이 상대. 얘네가 없다면 어른들의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
‘대가족이네.’
그건 그렇고 이렇게 보니 웅장하기 짝이 없는 라인업이다.
가장 하나, 부인 여섯, 아이 아홉, 짐승 열다섯, 전직 사왕인 인형 하나, 카틀레아가 움직이면 자동으로 따라올 정령들, 우리를 보필할 소수의 사용인들까지. 이게 대체 어떻게 돼먹은 라인업인가.
점점 장인어른과 장모님, 트르반 백작에 대한 죄책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가족의 방문이니 덜 놀라겠지만, 트르반 백작 입장에서는 진짜 날벼락이잖아.
‘대체 무슨 선물을 줘야 되지?’
결국 참고 있던 한숨을 내쉬었다. 대이주가 코앞으로 다가온 이 순간까지 마땅한 선물을 고르지 못했다.
골치 아픈 일이다. 트르반 백작도 고위 귀족에 대영주라 애매한 선물은 안 주느니만 못하니까. 게다가 우리 가족들의 대이주에 대한 양해 의미로 주는 선물이니, 어찌 보면 크라시우스와 바렌티, 카토반, 마살로 등등의 공동 명의 선물이라고 봐도 무방하고.
‘이 방법만은 쓰기 싫었는데.’
다시 한숨을 내쉬며 품속의 통신구를 꺼냈다. 정확히는 사적인 선물을 주자고 공권력을 쓰기 민망해서 미뤄두고 싶었는데, 더 이상 방법이 없다.
내 민망함 때문에 트르반 백작령을 개복치처럼 죽게 만든다면 그만한 민폐도 없잖아. 이렇게 고민하고 빈손으로 갈 바에는 공권력 좀 쓰고 웃으며 인사하는 게 마음 편할 터.
– 장관 비서입니다.
“어, 나야. 뭐 하나 부탁할 게 있어서.”
– 예, 말씀하십시오.”
통신구를 작동하자마자 바로 연락을 받는 장관 비서.
그런 장관 비서에게 조금, 아주 조금 사적인 지시를 내렸다.
“트르반 백작이랑 가족들에 대한 거 싹 다 알아봐. 특이한 점 보이면 바로 알려주고.”
감찰성 장관이기에 할 수 있는 추한 지시를.
‘이러면 뭐라도 하나 나오겠지.’
상대에게 뭘 줘야 할지 모르겠다면, 뭘 원할지 알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상대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다면 보다 완벽한 선물을 줄 수 있는 법.
좀 이상한 방식이지만 모로 가든 도착지에만 제대로 도달하면 그만 아니겠나.어차피 트르반 백작은 감찰성이 자기를 조사했다는 것도 몰라. 모른 채로 넘어가면 완전 범죄야.
아티니 남작령. 주장하기에 따라 제국 중부일 수도 있고, 남부일 수도 있고, 서부일 수도 있는 기막힌 자리에 위치한 트르반 백작령 휘하 소영지.
트르반 백작령 자체는 나름 교통의 요지로서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휘하 영지인 아티니 남작령은 특색이라고 할 게 없는 평범한 영지였다. 사실 대영지도 아닌 소영지가 특색을 가지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기는 해. 당장 타일글레헨 백작령도 타일글레헨의 이름만 유명하지, 하디네르 남작령이나 자이겔 남작령이 유명하지는 않잖아.
허나 아티니는 그 당연한 진리를 깨부순 위풍당당한 소영지가 되었다. 아티니의 특산품인 장어가 황금공도 즐겨 먹는 보양식이라서? 애석하게도 그건 ‘알 사람만 아는’ 수준의 인지도였다. 황금공이 큰손이라 수익은 짭짤해도 유명도가 제국을 뒤덮을 정도는 아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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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티니가 유명세를 얻은 이유는 간단했다. 아티니 남작령의 주인이 내 장인어른이라서. 제국 실권자의 장인 중 한 명이 일개 남작이어서 덩달아 아티니의 이름도 높아졌다.
“어째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화려한 것 같은데.”
그래서일까. 변장 마법까지 써가며 둘러본 아티니의 중심부는 일전에 비해 상당히 개발된 모습이었다.
분명 리제와 결혼식을 올렸을 때만 해도 한적하고 평화로운 남작령이었다. 간혹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뵈러 왔을 때도 건물 몇 채가 새로 올라왔을지언정,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지는 않았다.
헌데 이게 무슨 일인가. 잠시 아티니에 방문하지 못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정도로 변한 거냐.
“오라버니 덕분이에요.”
“내 덕분에?”
내 의문을 눈치챈 듯. 마찬가지로 변장 중인 리제가 작게 속삭였다.
“오라버니가 저희 가문에 백작령 하나 줬잖아요. 백작령 수입 일부를 아티니 개발에 돌리기도 했고, 오라버니 덕에 다른 귀족들과 거래하는 것도 편해져서 이렇게 됐다던데요?”
‘아.’
리제의 설명에 바로 납득했다.
우리 장인어른의 기도 살려드리고, 훗날 나이어드 가문을 물려받을 차차기 가주인 프리드리히를 위해 레온 왕국에서 파밍한 백작령을 장인어른께 드렸었다. 비록 레온 왕국이 제국보다는 못하더라도 백작령은 백작령. 제법 그럴듯한 백작령에서 나온 수입이라면 남작령 하나 개발하기는 충분하다.
심지어 장인어른의 뒤에는 내 이름이 있으니, 개발 과정에서 별 같잖지도 않은 날파리가 꼬일 일도 없다. 그럼 이런 광경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이거 사위가 어깨 좀 펴고 다닐 수 있겠어.”
이윽고 입꼬리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제국 실권자니 뭐니 하지만, 내 처가들은 고아가 되어버린 피네를 제외하면 이미 굳건하고 부유한 가문들이었다. 내 존재로 어깨에 힘을 줄지언정 극적인 변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 기껏해야 황금공 파벌 내에서 요룬 백작가의 발언권이 커진 게 특이점일까.
허나 공작가, 후작가, 백작가인 다른 처가들과 달리 셋째 장인어른은 남작. 사위의 덕을 가장 극적으로 맞이하신 것 같아 흐뭇할 지경이다.
물론 그 심정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이거 해석하기에 따라 ‘리제네 가문은 나약해서 좋아.’ 라는 미친 발언이니.
“그건 그렇고.”
그렇게 한참이나 중심부를 구경하던 중. 슬그머니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프리드리히.”
“웅?”
“이제 외할아버지 집으로 가지 않을래? 구경은 이따가 해도 되─”
“시러! 더 놀래!”
“그러자…”
단호한 프리드리히의 외침에 씁쓸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티니에 왔음에도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뵈기는커녕 애꿎은 중심부를 돌아다니는 이유. 팔자에도 없던 변장 마법까지 쓰며 느닷없는 관광을 하는 이유.
딱히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리제의 고향이라는 말에 흥분한 아이들이 강력하게 관광을 주장했으니까. 프리드리히조차 아주 어릴 때나 아티니에 와봐서, 현재의 아티니를 본 것은 처음이니까.
‘그나마 분산돼서 다행이다.’
가족 전체가 온 것이 지금처럼 다행일 수가 없다. 만약 부인들 전원이 아티니에 오지 않았다면 아홉이나 되는 아이들을 나와 리제가 끌고 다녔겠지.
그러면 변장을 했어도 당연히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눈치 빠른 몇몇은 ‘영주님 사위가 변장까지 하면서 영지를 시찰 중이다!’ 라는 소문을 퍼뜨릴 테고.
‘자기 아이들이랑 같이 장인어른 영지를 시찰하는 감찰성 장관이라.’
이 세상에 존재해도 되는 문장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어떻게 저런 흉측한 문장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그 흉측한 문장의 주인공이 될 뻔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찔할 따름이다.
***
리제가 오랜만에 집으로 온다는 연락을 보냈다.
출산이 코앞인 아이라 이 먼 아티니까지 움직여도 되는지 걱정이나, 동시에 우리 둘째 외손주는 외할아버지 집에서 태어날 것 같아 두근거렸다. 이는 부인도, 가신들과 사용인들도 마찬가지였지.
비록 사위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사위의 부인들과 아이들 전원이 오게 되었지만 상관없다. 사위의 가족은 리제의 가족, 리제의 가족은 우리의 가족. 이미 몇 년 전부터 그렇게 지내왔으니. 가족이 오랜만에 찾아온다면 기뻐할 일 아니겠나.
그래, 분명 기뻐할 일인데.
‘왜… 안 오는 거지…?’
이상하다. 분명 오늘 온다고 했는데? 아침은 먹고 출발한다고 했으니 넉넉하게 잡아도 점심 전에는 와야 하는 거 아닌가? 설마 텔레포트가 아닌 마차로 이동 중인 것도 아닐 테고.
혹시 오는 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라는 걱정은 들지 않았다. 대륙 제일 검과 마법의 정점이 있는데 무슨 걱정을 하겠나. 그저 아무 일도 없을 사람들이 제때에 오지 않아 의문일 뿐.
‘우리 애들 주려고 쿠키도 준비했는데.’
과자뿐이랴. 무려 케이크와 초콜릿, 사탕, 캐러맬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디저트는 잔뜩 준비해뒀다. 막 만든 것도 있어서 당장 먹어야 맛있거늘.
– 뿌우우욱.
애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자, 입에 물고 있던 피리가 기묘한 소리와 함께 툭 튀어나왔다.
이 기묘한 피리도 아이들을 위한 준비물 중 하나였다. 바람을 불어넣으면 유벤에 서식하는 코끼리라는 동물과 비슷한 소리를 내기에, 피리에 달린 작은 장난감이 긴 코처럼 툭 튀어나오기에 붙은 이름.
귀족으로서 이런 걸 물고 돌아다니는 건 조금 민망한 일이나,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정작 아이들이 오지 않아서 문제지만.
– 뿌우우우욱…
“여보.”
“아, 부인.”
부인의 부름에 입에 물고 있던 피리를 떼었다.
“때가 되면 올 거예요. 계속 서있지 말고 방에서 쉬고 있으세요.”
“쉬는 중에 아이들이 오면 어떡하오? 이 외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맞이해야 하는데, 사용인들을 먼저 만나면 얼마나 서운하겠소.”
“그런 걸로 서운해할 리 없으니 들어가세요. 정작 그 사용인들이 난감해하잖아요.”
그제야 주변의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영주가 문 앞에 멀뚱히 서있으니 평소보다 열정적으로 청소를 하는 사용인들, 심지어 이미 깨끗한 장소를 몇 번이나 확인하는 사용인들.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우리 리제와 사위, 아이들이 금방 올 줄 알고 서있던 건데.
“미안하오. 지금이라도 들아가겠─”
부인의 정당한 지적에 항복을 선언하려던 찰나,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온 건가!’
부인에게 향했던 시선이 자동으로 돌아갔다.
버티고 있길 잘했다. 역시 인내하면 그만한 보답이 오는 법, 이… 지?
“음, 여기인가.”
문이 열리자 보이는 것은 간절히 기다리던 아이들이 아니었다.
사위가 저택에서 기르는 말 하는 짐승들. 그 녀석들이 위풍당당히 서있었다.
사람은 안 오고 애완동물이 먼저 왔다.
“반갑다. 주인보다 우리가 먼저 왔다.”
“…그래. 어서 오거라.”
짐승들 중 가장 선두에 있던 작은 강아지의 말에 얼떨떨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얘네가 왔으니 아이들도 금방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