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1)
사용인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두 자릿수 마차를 주차하고 그 마차에 실린 물건을 옮기려면 꽤 열심히 움직여야겠지. 누가 보면 저택의 주인이 바뀌어서 이사라도 오는 줄 알겠다.
하나 둘 내리기 시작한 부원들의 안내는 집사가 맡았다. 짐짝과 다를 게 없는 놈들이라 마음 같아서는 하인들에게 맡기고 싶지만, 저택 사용인 중 신분이 가장 높은 사람이 직접 안내해야 뒷말이 안 나온다.
사실 지금까지 본 경험으로는 개노답 삼인방이 아랫놈에 대한 배려가 좀 부족해도 막상 신분 차이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기는 한데. 귀족이든 평민이든 어차피 아래 신분이라 그런가.
“화려한 저택이군요.”
“제도에서 이 정도 규모라.”
집사의 뒤를 따르는 부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이 저택이 큰 편이기는 하다. 아무리 감찰부장이라고 해도 아직 작위도 없는 귀족 자제의 저택으로 쓰기는 과하지.
그래도 어쩌겠나. 나도 갑자기 황태자가 ‘오다 주웠다.’ 라며 던진 걸 받아 쓰는 입장인데.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애실론 후작가의 저택이던 곳이라 감사한 마음으로 쓰고 있다. 느그 저택 내가 잘 쓰고 있다, 라는 티배깅 용도로는 딱이라.
덕분에 안 그래도 조용하던 아인테르가 더욱 조용해졌다. 살기 위해 손절을 친 외가라 교류도 하지 않은지 오래라지만 기분이 영 묘하겠지.
‘미안하다.’
이 사태는 내가 아니라 황태자가 범인이니 황태자를 원망하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황태자를 욕하면 대충 절반은 그 새끼 때문이 맞으니까.
“형이 영지에 안 오는 이유가 있었네.”
“하하, 바로 앞에 이런 곳이 있는데 굳이 먼 길을 가겠습니까?”
납득했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에리히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얘가 저택에 안 간 지 오래 됐다는 말을 아카데미에 있느라 못 갔다는 말로 해석했나. 진짜 저택 자체를 별로 못 갔는데.
딱 잠만 자는 용도인 저택. 그나마도 저택이 아닌 감찰부 집무실 구석의 접이식 침대에서 자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런 형의 고난을 순식간에 화려한 저택에 물든 사치로 취급하다니.
에리히가 졸업할 때가 되면 추천장 하나 써야겠다. 지가 공무원 생활을 해봐야 역지사지가 가능하지. 가주가 입법, 내가 행정이니 에리히는 사법으로 보내면 딱 맞겠네.
‘크라시우스 삼권 분립.’
가슴이 절로 웅장해진다.
처음 내 저택이 여관으로 전락했을 때는 막막하기 그지 없었지만 막상 저택에 도착하니 평온했다. 뭐, 갑자기 왕족이 온다고 멀쩡하던 저택이 반으로 갈라지거나 어딘가 터지지는 않으니까.
단지 마음의 안식처여야 할 공간도 업무의 연장에 먹혔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니 그 감정만 억누르면 그냥저냥 괜찮다. 그래, 아카데미에 지냈을 때하고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지금은 집사나 사용인들도 있으니 몸이 편하지 않나. 그러니 아카데미보다 상황이 좋다고 할 수 있다.
“제도의 광장이 아름답다고 들었습니다.”
“잘 꾸미기는 했지.”
류티스가 대표로 찾아오기 전까지는 좋았다. 아까는 얘들이 짐 푸느라 조용히 있었거든. 설마 도착한 당일에 바로 놀러 나가려고 할 줄은 몰랐는데. 마차에 오래 있었는데 피곤하지 않니?
“오는 길에 쌓인 피로도 있을 테니 오늘은 쉬지 그러나. 시간도 많은데.”
“방학 동안 제도만 보기는 아깝지 않습니까? 여유가 있을 때 많이 돌아다녀야죠.”
도대체 얼마나 쏘다니려고 그러는지 무서울 지경이다. 정말 방학 일정 전부를 여행으로 꽉 채울 생각 같다.
순간 매일매일 관광지로 유명한 도시의 시장들에게 연락을 걸어 ‘오늘 왕족들 갑니다.’ 라는 말을 반복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시장들 입장에서는 저승사자가 따로 없는 모습.
‘사교계에서 좀 씹히겠네.’
감찰부장이 감찰로 사람을 패는 게 아니라 인맥으로 패기 시작했다더라, 같은 말이 떠돌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 인맥 때문에 가장 고통받는 사람이 나라는 건 생각도 하지 않겠지. 원래 남을 씹을 때는 그냥 씹고 싶어서 씹는 거니.
“식사는 하고 나가겠나?”
“아, 나가서 먹으려고 합니다.”
“그래. 이따가 같이 나가지.”
“하하, 기다리겠습니다.”
귀찮지만 알겠다고 대답하며 류티스를 돌려 보냈다. 명목상 여행 목적으로 온 놈들이 여행을 하겠다는데 막을 수도 없는 노릇. 인파가 많은 광장, 게다가 식사도 제도의 식당을 이용할 예정이니 이래저래 준비할 게 많다.
그런데 제도 맛집 같은 건 나도 잘 모르는데. 왕족들을 아무 곳에나 처박을 수도 없고, 집사한테 물어보기에는 종류별로 수십 개씩 리스트 가져올 것 같아 무섭고.
결국 고민 끝에 떠오르는 건 한 놈밖에 없어서 통신구로 연락을 걸었다.
– 부장님? 아침부터 무슨 일입니까?
“너 광장 근처에 괜찮은 식당 아냐?”
갑작스런 질문에 금발을 긁적이는 2과장. 그래도 제도를 누구보다 활발히 휘젓고 다니는 2과장이라면 괜찮은 곳 정도는 금방 답할 거다.
– 광장 남서쪽에 붉은 지붕인 3층 건물 하나 있는데, 거기가 괜찮습니다.
역시 이런 믿음에는 배신하지 않는다.
“다른 곳은?”
– 동쪽에도 있긴 한데… 그런데 뭡니까, 맛집 위주로 세무조사라도 하시게요? 털면 좀 나오긴 하겠네.
“내가 가려고.”
– 오, 제도에 오십니까?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몰랐다는 듯이 말하는 2과장. 이 새끼는 나름 정보 다루는 놈이 왜 지 상관 소식은 느리지?
“이미 왔다. 제과 동아리하고 같이 왔어.”
– 아.
그 말에 2과장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 무언가 걸리는 점이 있는 모양.
– 이야, 그게 진짜였네.
“왜 그러냐?”
– 부장님이 올라온다는 말은 1과장한테 들었는데, 왕족들하고 같이 온다고 했습니다.
“제대로 들었네.”
– 뭐 그것만 말하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부장님 저택에서 방학 동안 같이 지낸다나? 개소리 하지 말라고 한 대 쥐어박았었죠.
오랜만에 2과장의 말에 심적으로 공감했다. 그 감찰부의 시선으로 봐도 개소리나 다름없는 상황. 하지만 황태자는 그걸 해냈다. 황제가 될 남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 그게 진짜인 줄 알았으면 안 그랬는데.
“걔 자기 말 안 믿으면 오래 삐치지 않냐.”
– 저도 명치 맞아서 그걸로 서로 퉁쳤습니다.
이 새끼들은 진짜 감찰부인 거에 감사해야 한다. 과장급이 서로 주먹다짐을 했다면 형무성에 잡혀가도 이상하지 않은 일. 어지간한 부서였다면 이미 진작에 잡혀서 어딘가에 갇혀있었을 텐데.
아무튼 2과장이 줄줄이 불러주는 리스트를 적당히 수첩에 적었다. 단순히 식당으로는 부족할 거라며 카페나 극장도 알려줬다.
‘개새끼.’
내가 집무실에서 쪽잠을 잘 때 이 새끼는 제도를 누비며 데이트를 즐겼을 거라는 생각에 불쾌해졌지만, 지금은 내가 부탁하는 입장이니 참아야지.
대신 마음 속 당직 리스트를 새로 쓸 뿐이다.
– 부장님이 오신 건 제가 차장님께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해라.”
2과장과의 연락을 끊고 이번에는 빌라르에게 연락을 걸었다. 2과장이 알려준 곳에 미리 사람을 보내서 자리를 잡아둬야지, 괜히 호위 전력이 우르르 따라 붙으면 오히려 거슬리고 시선만 쏠린다.
‘적당히 서너 명 정도 보내두면 충분하겠지.’
신호가 가는 통신구를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각오는 했지만 귀찮아 죽겠다. 원래라면 나도 의전을 받으면 받는 입장이지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짬은 아닌데.
의전을 떠올리니 또 황태자가 생각나서 빡친다. 아니 이 새끼는 내 머리에서 꺼지지를 않네?
‘그냥 빨리 할 것이지, 뭘 오후부터 한다고.’
원래라면 제과 동아리가 제도에 들어온 지금, 황태자가 왕족들을 맞이하기 위해 행차해야 한다. 하지만 먼 길을 오자마자 의전을 치르면 오히려 귀빈들이 피곤할 거라며 오후로 일정을 쭉 미뤄버렸다.
차라리 지금 의전을 행했으면 광장에 가자는 말은 안 나왔을 텐데. 의전이 끝난 뒤에도 인파가 많이 몰렸다는 핑계로 오늘 하루는 넘어갔을 텐데.
– 감찰관님?
“아, 빌라르 경.”
그래도 어쩌겠나. 까라면 까야지. 언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고.
“곧 광장으로 갈 예정인데─”
그나마 같이 구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원래 관광지도 모든 사람이 다 아는 뻔한 곳보다는 현지인이 작정하고 추천하는 곳이 더 좋은 법이다. 그리고 2과장은 제도 죽돌이.
“제도에 이런 곳도 있었군요.”
오죽하면 아인테르마저 그런 말을 할 정도였다.
“이거 고문 선생 덕분에 알차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곳들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잘 노는 지인이 하나 있다. 물어보니 술술 불더군.”
“어떤 분인지 직접 보고 싶을 정도군요.”
웃음을 터뜨리는 류티스에 동조하여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라테르. 다행히 높-으신 분들 입장에도 만족스러운 일정이었나 보다.
그런데 직접 보고 싶다라, 주둥아리를 열면 울대를 후려치고 싶다는 점에서는 둘이 닮기는 닮았다. 의외로 만나면 죽이 잘 맞을지도 모르겠네.
“잘 노는 지인이라, 저도 궁금하네요.”
빙긋 미소를 지은 마르게타도 슬쩍 입을 열었다.
글쎄, 마르게타가 2과장 같은 사람을 보면 문화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 만나게 하기 무섭지. 어지간하면 영원히 못 만나게 하고 싶다.
“기회가 되면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후후, 기대할게요.”
그렇게 2과장이 엄선한 광장 풀코스는 열렬한 성원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저택으로 복귀하자 의외의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또 뭔.’
분명 황태자가 특무성에 여유가 있다고 하긴 했다. 특무성에서 나하고 연이 깊은 건 그 아이들밖에 없으니 이번에도 묵광대가 올 거라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내가 당황하는 사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정원에서 가지치기를 하던 인물이 내 쪽을 쳐다봤다. 밀짚모자에 메이드복이라는 기괴한 조합. 아니, 애초에 왜 네가 가지치기를.
“주인님.”
모자를 벗으며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여인.
“다시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아, 그래.”
4과장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