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10)
로판 속 공무원 910화(911/945)
예정에 없던 관광을 마치고 나서야 아티니 남작성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거의 4시간 정도는 돌아다닌 것 같은데, 장인어른께 언제까지 가겠다고 확답을 드리지 않아 다행이다. 하마터면 장인어른과의 약속에서 4시간이나 늦은 미친 크라시우스 타임을 선보일 뻔했잖아. 세상 사람들이 날 얼마나 정신 나간 사위라고 생각할까.
‘뭐야.’
하지만 남작성에 진입하자마자 보인 광경에 정말로 정신이 나갈 뻔했다.
성의 본채로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거대한 홀. 그 홀에 옹기종기 모여 접시에 머리를 박고 있는 성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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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주인 왔나?”
마치 시고르자브종들이 짬밥을 먹고 있는 듯한 모습이라 잠시 할 말을 잃자,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든 장생이가 반겨주었다.
“오셨습니까! 저희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첫째 마님과 둘째 마님이 저희는 너무 눈에 띈다고 보내셨습니다! 도망친 거 아닙니다!”
“주인. 셋째 마님이 만든 쿠키도 맛있지만, 여기 쿠키는 더 맛있는 것 같다.”
이윽고 다른 성수들도 고개를 들며 너도 나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 미묘한 광경이다. 성수들이 밥을 먹는 건 일상적인 일이나, 저 녀석들의 지능이 인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고려하여 식사 자리는 그럭저럭 챙겨주는 편이다. 마치 사람이 먹는 것처럼 반찬도 여러 개 차려주고, 별 의미는 없겠지만 포크 같은 식기도 깔아주고, 플레이팅도 좀 해줄 정도로.
헌데 남작성에서는 그런 배려와 정확히 반대되는 형태로 밥을 먹고 있었다. 인간의 지능이고 나발이고, 사람 말을 할 줄 알고 모르고에 관계없이 애완동물처럼 먹고 있어.
‘저게 정상이기는 하지.’
사실 애완동물이면 저렇게 먹는 게 맞기는 한데, 우리 집에서는 곱게 먹던 녀석들이 한순간에 시고르자브종으로 전락한 것 같아 마음이 오묘했다.
“맞아. 나도 제과는 주방장한테 배운 거거든. 나보다 더 맛있게 만들 거야.”
“오오.”
그 와중에 리제는 괘씸한 발언을 한 겸손에게 미소를 지으며 답해줬다.
하긴. 리제의 스승이라면 리제보다 실력이 좋을 수밖에 없지. 비록 기본적인 것만 배우고 그 뒤로는 독학을 했다고 하지만, 리제의 제과 전설의 시발점이라면 어마어마한 은거 기인일 터.
“리제! 사위! 프리드리히!”
그렇게 쿠키를 흡입 중이던 성수들이 우리 곁으로 모이자,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 쪽에서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표정이 아니라 목소리만 들어도 느껴지는 반가움에 쓴웃음을 지었다. 저 반가움과 비례하여 우리를 애타게 기다렸을 장인어른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으니까.
‘미리 연락 좀 드릴걸.’
프리드리히랑 놀아주느라 바빠서 아주 작은 배려를 잊고 말았다. 아무리 도착 시간이 미정이었다지만, ‘프리드리히랑 아티니에서 놀고 있어요.’ 정도는 말하는 게 맞았는데.
그랬다면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변장을 해서 슬쩍 합류했을 수 있다. 외조부모님과 외손자의 관광,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일까.
“늦어서 죄송합니다. 점심 전에는 도착하려 했는데, 잠시 다른 일을 보느라 이제야 왔습니다.”
“죄송하기는! 아직 날이 밝으니 늦은 것도 아니지!”
아무튼 빠르게 달려온 장인어른께 슬며시 고개를 숙이니, 숨을 몰아쉬던 장인어른은 빠르게 손을 내저으셨다.
누가 봐도 사과를 해야 할 만큼 기다리신 것 같지만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저렇게 말씀하시는데 계속 사과하는 것도 실례겠지.
“헌데 장인어른. 저희가 먼저 온 겁니까?”
“사람 중에서는 그렇다네.”
어느새 프리드리히를 안아 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장인어른의 모습에 픽 웃음을 흘렸다.
사람 중에서는 우리가 먼저라. 아무래도 다른 부인들도 아이들의 성화에 질질 끌려다니며 관광 중인 모양이다.
‘때가 되면 알아서 오겠지.’
우리도 때가 돼서 남작성에 도착했으니, 다른 부인들과 아이들도 어련히 잘 올 거라 믿는다.
만약 저녁까지 안 올 것 같으면 그때 찾으러 가자. 이왕 셋째 외할아버지 집에 왔으니 저녁만큼은 같이 먹어야 하지 않겠나.
놀랍게도 우리 가족이 전부 모이는 것보다 장관 비서의 연락이 먼저 왔다.
장관 비서가 유능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빨리 보고가 올라올 줄은 몰랐다. 설마 트르반 백작에 대해 이미 조사 중이었나?
– 눈에 띄는 특이사항은 없었습니다. 약간의 흠결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대영주들이 관습적으로 행하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그래?”
장관 비서의 말에 속으로 안도했다. 털 준비를 하고 있어서 빠르게 정보가 모인 것이 아니라, 딱히 특별한 게 없어서 일이 빨리 끝난 것이었다.
‘관습적인 수준이라.’
만족스러운 정보라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약간 부패한 사람보다는 청렴결백한 사람이 더 좋은 법이지만, 백작이자 대영주 정도가 되면 손에 콩고물이 묻는 법이다. 고위 귀족으로서 접근할 수 있는 정보, 대영주로서 손에 쥔 권리가 얼마나 되겠나. 당장 나조차도 먼지 없이 살았다고 자부할 수 없는 입장인데.
게다가 ‘관습적으로 행하는 수준’이라면 현대인 감성에서야 부패지, 이 시대 기준으로는 일상이나 마찬가지다. 약간의 흠결이라는 표현도 어떻게든 상대의 죄를 찾아야 하는 감찰성 입장에서 말한 것뿐이다.
– 그나마 작은 특이점이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보고드려도 되겠습니까?
“해. 이왕 찾은 정보면 전부 들어야지.”
잠시 턱을 매만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서가 작다고 할 정도면 정말 작고 미미한 내용이겠다만, 그 작은 내용을 토대로 적절한 선물을 마련할 수 있을 터.
– 신앙심이 상당한 신도입니다. 매주 세 번은 영지 내의 교회에 방문하며, 각하께서 시성 된 이후로는 각하의 저택으로 성… 지 순례를 갔었다고 합니다.
‘아.’
작지만 강력한 내용이라 침통히 눈을 감고 말았다.
그보다 아주 잠깐 장관 비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분명 성지 순례라는 단어에서 동요했어.
–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밤중에 은밀히 다녀갔다고 하니, 일부 가신들과 사용인들을 제외하면 모릅니다.
“그렇군.”
뒤이은 비서의 말에 간신히 눈을 떴다.
그렇구나. 우리 트르반 백작은 신앙심이 투철했구나. 그래서 살아있는 성인이 등장하자마자 거주지로 성지 순례를 갔었구나.
내 시성 사실이 선포된 게 고작 며칠 전의 일이지 않나? 트르반 백작이 대영주라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소식을 접하자마자 달려온 수준이다.
‘많이 신실하네.’
그래도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상대가 신실한 신도라는 걸 알게 돼서 적절한 선물이 떠올랐다.
***
딱딱하게 굳은 뒷목을 어루만지며 잠시 펜을 내려놓았다.
고작 몇 시간 업무를 손에 놓은 대가로 그 배가 넘는 업무들이 몰려왔다. 역시 업무 시간에는 업무만 봐야 미래가 편한 법인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아무리 은밀하게 외출을 하는 것이지만, 무려 대영주가 영지를 벗어나 제도까지 향하는 일정이다. 필연적으로 준비가 필요할 수밖에 없으니 밤에 움직인다면 저녁 이전부터 바삐 움직여야 한다.
그 대가가 이 업무라면 기꺼이 감당하리라. 내 생전에 무려 살아있는 성인이 나왔으니, 주의 뜻을 따르는 종으로서 마땅히 그분의 성인을 뵈러 가리라.
물론 성인의 얼굴은커녕 저택만 보고 돌아왔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성인이 태어난 장소도 종교적 관광지인데, 실시간으로 거주 중인 저택이라면 성지라 부름에 부족함이 없다.
‘그분이라면 크게 될 분일 줄 알았지.’
문득 몰려오는 뿌듯함에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성인이 되기 이전부터 대륙 제일 검으로서 무명을 떨친 분이지만,나는 옛날부터 그분이 교계에서도 크게 되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제국의 실권자이자 최강의 무인임을 떠나 교단에서도 중요한 분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분이 살아서 복자가 된 분이라? 그런 가벼운 이유 때문은 아니다. 애초에 복자는 그분이 거쳐가는 단계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럼에도 주께서 그분을 크게 쓰시리라 짐작한 것은 그분의 일생을 알기 때문이다. 그분이 걸어온 일생은 주의 총애와 가호가 있어야 가능했던 일이니.
‘그게 아니라면 어찌 그런 삶을 살았겠는가.’
귀족으로서도 무인으로서도 화려한 족적을 남겼다. 인간으로서도 여러 기적의 중심에 서며 위상이 드높아졌다.
마음 같아서는 나와 그분을 같은 시대에 태어나게 해주신 에넨께 감사 기도를 드리며 그분의 업적을 나열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업무가 밀려있기에 참았다. 기도는 업무가 끝난 후에 하자.
“각하!”
“무슨 일인가?”
그래도 주를 향한 감사의 마음은 언제나 표현해야 하는 법. 약식 기도라도 하기 위해 손을 모은 찰나, 집무실 문이 열리며 집사장이 들어왔다.
“타, 타일글레헨 백작께서 사람을 보냈습니다!”
…
?
“뭐?”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그, 것이. 장인어른의 이웃이라면 자신의 이웃이나 마찬가지이니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본능적으로 기억을 되짚었다. 혹시 내가 아티니 남작을 서운하게 대하거나 홀대한 적이 있었나?
‘없다.’
다행히 없다. 정확히는 주를 향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도 바빠서, 휘하 영주들과 접촉할 일이 없었다는 게 옳은 표현이지만.
“그리고 각하의 신실함은 타일글레헨 백작 각하께서도 익히 들었기에, 같은 주의 종으로서 이렇게나마 연을 트고 싶다고─”
“당장 모셔 와라!”
집사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감동적인 일이다. 내 보잘것없는 신앙을 성인께서 알아주시다니. 인생에 둘도 없을 영광이다.
“아니지, 내가 가도록 하마!”
그렇기에 성인께서 보냈다는 사람을 보기 위해 급히 걸음을 옮겼다.
손님이 주인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손님에게 가는 건 옳지 않다? 그런 사소한 의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 성인의 대리자가 친히 일개 신도를 만나러 오셨거늘! 어찌 그런 사사로운 의전에 집착할까!
‘주께서 보우하심이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주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주여. 성인의 대리자와 만나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지금쯤 트르반 백작에게 보낸 선물이 도착했을 것 같아 통신구만 만지작거렸다.
신앙심이 투철한 사람. 그런 사람을 위한 선물은 의외로 빨리 구할 수 있었다.
– 으잉? 썬물로 쥴 성물가튼거 업냐구? 죠카! 성무른 막주고받는 돌떵어리가 아냐!
“그래서 없습니까?”
– 잇끼는하지! 우리 아부지가선물룡으로 모아둔거 잇꺼든!
현명공의 부친인 경건공. 제국 내에서 신앙심 깊기로 유명한 양반인지라, 이래저래 선물용으로 모아둔 성물이 많다고 들었다.
그중 하나를 현명공에게 부탁했고, 거기에 나름 기도까지 얹어서 트르반 백작에게 보냈다.
‘성물에 성인의 축복을 얹으면 그만한 선물이 없지.’
내 축복 따위는 솔직히 아무런 효능이 없겠다만, 그래도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