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13)
로판 속 공무원 913화(914/945)
내가 방에서 나오자 다시 막내를 살피러 들어간 사제들, 마법사들, 의사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기적입니다! 분명 심장 쪽에 이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런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멀쩡했던 것처럼 깔끔합니다!”
이건 이성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라고.
천상의 주가 진정으로 성인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 거라고.
‘신의 자비기는 하지.’
몰래 방으로 들어왔던 것처럼 몰래 밖으로 나간 장생이. 어느새 복도 너머로 사라진 장생이를 떠올리며 픽 웃음을 흘렸다.
비록 천상이 아닌 지상에 있고, 주가 아닌 종으로 지내는 녀석이지만 한때 신이기는 했다. 그렇다면 내 기도에 신이 응답했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나의 터전에 내 허락 없는 죽음은 없나니. 너는 장생할지어다.”
장생이가 했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
우리 막내에게 축복을 내리는 것처럼 속삭이던 장생이는 막내의 볼을 핥았고, 신이었으나 성수인 존재의 축복에 막내의 표정은 빠르게 밝아졌었다.
분명 곤히 자고 있음에도 묘하게 어두웠던 안색이. 심장에 품은 고통 때문에 찌푸려졌던 안색이 순식간에 녹아내렸었다.
‘신앙심을 담을 수 없다고 했는데.’
과거 악신들을 봉인지에서 수거했을 때. 영원한 푸른 하늘은 악신들의 신성을 거두어서 영원히 신앙심을 회복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아무리 추앙을 받아도 신성이라는 그릇이 없으면 신이 될 수 없으니까. 대륙을 뒤흔들고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악신이라도, 신성이 없고 신앙심이 없다면 그냥 말하고 힘 좀 센 짐승에 불과하니까.
헌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릇을 잃으면서 악신이 아닌 성수가 된 장생이다. 성수라는 단어가 듣기에는 좋지만 결국 성스러운 짐승에 불과했다. 그런 장생이가 인간에게 깃든 죽음을 수거할 만큼 신의 권능을 선보인다라.
‘조치를… 취해야 하나?’
장생이가 보인 의외의 모습과 막내의 기적과도 같은 회복에 정신이 팔려 미처 떠올리지 못했지만, 전직 악신이 권능을 선보였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만약 장생이가 완전히 힘을 되찾는다면. 에넨도 위협했던 악신의 위용을 되찾는다면.
…
‘넘어가자.’
장생이가 사라진 방향을 흘깃 쳐다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번 일은 넘어가자. 장생이가 악신 시절의 편린을 선보였어도 추궁하거나 견제 방안을 마련하지는 말자.
막내의 병이 치료될 때까지 장생이에게 저런 힘이 있는 걸 모르고 있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겠지. 즉, 장생이가 작정하고 숨기려고 했다면 아무도 장생이의 권능을 몰랐을 거다. 숨기고 숨기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터뜨렸다면 거하게 뒤통수를 맞았을 거다.
그럼에도 장생이는 내 앞에서 당당히 막내를 치료했다. 막내에게 붙었다는 죽음의 기운을 처리하고, 자신의 이름에 맞게 장생의 축복을 내렸다.
‘그렇게 나왔는데 어떻게 추궁해.’
장생이가 선의로 나섰다면 나도 선의로 답해야 한다. 전직 악신이자 현 짐승조차 아이부터 살리고 봤는데, 정작 아이의 아빠인 내가 불신과 경계로 돌려주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그러니 이번 일은 넘어가야 한다. 내 앞에서 능력을 선보인 게 이런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한 빅-픽처여도 말이야.
설령 장생이에게 뒤통수를 맞더라도, 기꺼이 웃으며 받아들이자.
내 아이를 살린 녀석에게 배신 한 번 정도는 죄도 아니니까.
‘반격은 별개의 문제지만.’
허나 장생이의 배신은 나에게 죄가 아닐지언정 대륙에는 큰 죄다.
그렇다면 한 대는 맞아주고, 그 뒤에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두들겨 패야지. 아마 에넨과 영원한 푸른 하늘, 콘스탄티나도 칼춤을 추면서 달려올 터.
부디 장생이가 죽음으로 변하는 건 오지 않을 미래기를.
다음날 아침.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막내를 살피던 의료진은 막내의 완쾌를 선언했다.덕분에 막 낳은 딸과 강제로 떨어져야 했던 리제는 다시 딸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아직 리제의 몸도 출산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떨어진 딸과 다시 만날 수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자신과 같은 병에 걸렸던 딸이 기적적으로 병마를 벗어냈다. 어떤 엄마가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흐읍, 흐으으윽…!”
저러다 넘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달려간 리제는 여전히 잠들어있던 막내를 보더니, 입가를 막으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면 막내가 깨기라도 할까 봐. 혹시라도 막내가 깨면 저 평온한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질까 봐.
“걱정 많았지? 이제 괜찮아. 전부 잘 됐어.”
그런 리제를 부드럽게 껴안았다. 몸도 마음도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짐작조차 할 수 없기에.
“꾸, 꿈은 아니겠죠? 정말, 정말 나은 거, 맞죠?”
“정말이야. 사제, 마법사, 의사가 전부 같은 의견이니 확실해. 새벽 중에 트릭시가 직접 살피기도 했고.”
내가 살아있는 성인이라 기적을 위해 기도했다면, 트릭시는 마법의 정점으로서 마법사들과 머리를 맞대며 치료 방안을 모색했다. 어쩌면 장생이가 아니었어도 몇 년 정도 후에는 완치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 정도로 막내를 위해 노력한 트릭시다. 막내의 병을 해결하기 위해 짧은 시간이나마 진심을 냈고, 섣불리 완쾌 선언을 했다가 번복하면 리제가 절망할 것이 뻔하기에 나노 단위로 막내를 살폈다.
“정말 완쾌구나.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그 결과. 친모인 리제보다 트릭시가 먼저 눈물을 흘렸었다.
“이, 이게 아니지. 나보다 리제가 먼저 울어야 되는데.”
완쾌한 딸과 기쁨을 나누는 것은 친모의 몫이라며 방으로 도망쳤지만.
아무튼 모든 정황이 막내의 완쾌를 가리키고 있다. 리제가 실망을 할 가능성도 없고, 막내가 잘못될 확률은 더더욱 없다.
“우리 막내… 엄마, 놀라게 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돼?”
그제야 리제는 활짝 웃었다. 눈가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있었으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고마워요, 오라버니.”
“응?”
“오라버니가 계속 기도했다고 들었어요. 오라버니 기도니까 신도 귀를 기울여 준 거겠죠.”
그 말에 마땅한 대답을 출력하지 못했다.기도를 한 건 맞지만 기도를 들어준 건 에넨이 아닌 다른 신이었으니까.
아니, 들어줬다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찾아온 신이었으니까.
아니지, 현시점에서는 신도 아니지. 어떻게 한 문장 안에 맞는 말이 하나도 없냐.
“그리고 에넨께서 오라버니의 기도를 듣고… 언니를 보내주셨나 봐요.”
“언니를?”
예상치 못한 말인지라 절로 고개가 기울어졌다.
언니라니. 리제가 언니라고 부르는 건 마르와 에리, 피네 정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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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실 꿈에서 힐다 언니를 봤거든요.”
더 예상하지 못한 말이라 리제를 안고 있던 손이 흠칫 떨렸다.
어떻게 하지. 이런 말에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지? 유감스럽게도 나는 리제와 언니 사이에 있던 일들을 필요 이상으로 알고 있다. 내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알고 있던 원작 지식이 리제의 트라우마와 언니의 죽음이잖아.
리제의 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무엇인지, 리제가 그 말로 인해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나마 나와 연인이 되고 결혼을 하면서 많이 나아졌다지만, 그래도 있던 일이 없던 걸로 되는 건 아니다.
“언니가 우리 막내를 안고 있었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언니의 모습으로요.”
“그, 래?”
“네. 아이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었죠. 어찌나 귀엽던지. 만약 언니가 살아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면 그런 모습이었을 텐데.”
씁쓸히 중얼거린 리제는 조심스레 막내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간지럽다는 듯 콧등을 찡긋거리는 막내. 그 모습에 나도 리제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정말 정성스레 안고 있더라고요. 울고 있는 막내를 다독여주고, 자장가도 불러주고, 심심할까 봐 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언니도 막내가 좋아서 웃고 있었어요.”
“조카는 귀여운 법이지. 나도 로베르트랑 에두아르트하고 하루 종일 놀아줄 수 있어.”
“그렇죠. 그래도 언니는 제 아이들이라면… 저처럼 미워할 줄 알았거든요.”
그렇게 말한 리제는 쿡쿡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정성스레 돌봐줬어요. 한참이나 놀아주다가 이마에 입을 맞추더니, 요람에 두고 떠났어요. 저도 그때 잠에서 깼죠.그리고 막내가 완쾌됐다는 소식을 들었고요.”
‘아.’
실로 절묘한 꿈이라 절로 탄성이 나왔다.
과연. 그렇다면 언니가 다녀갔다고 생각할 법하다. 심지어 언니가 자기 자식을 정성으로 돌봐줬고, 꿈에서 깨어나니 자식의 완쾌 소식을 듣게 됐다. 이러면 언니가 치료해 줬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저는 언니한테 못나고 나쁜 동생이었는데. 그래도 언니는 저를 동생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생각만 하겠어? 좋아하니까 살기 좋은 천국에서 내려와 조카를 돌보고 간 거지.”
“그런 걸까요?”
내 말에 리제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사실 평범한 꿈일 확률이 높다. 막내를 치료한 건 장생이니, 리제의 꿈은 ‘자신과 언니가 걸렸던’ 병이 자식에게도 이어진 부담감에 이루어진 꿈일 수 있다.
정 진실을 알고 싶다면 장생이에게 물어보면 된다. 죽음의 기운도 처리한 녀석이 혼 하나 보지 못할까. 근처에 언니의 혼이 있었다면 장생이가 알고 있을 터. 그에 대해 물어본다면 바로 답을 돌려줄 거다.
‘그럴 필요는 없지.’
허나 그러지 않았다. 굳이 진실을 알아내고자 나아가지 않았다.
리제는 이미 언니가 다녀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나도 앞으로는 우리 처형이 막내를 지켜주고 떠난 것이라 생각할 거다.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니까.
막내의 완쾌를 기념하며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눈물과 기쁨의 진심 연회를 준비하셨다.
당연한 일이다. 두 딸이 걸렸던 병을 외손녀마저 가지고 태어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깔끔히 회복됐다. 뭔가 병 주고 약 준다는 느낌이지만 신의 기적이 아니던가.
덕분에 어른들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은근 위축되었던 아이들이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근래 어른들의 분위기가 심각했지만, 이제 다시 밝은 분위기로 돌아왔으니까.
“날씨 좋네. 안 그러냐?”
“으, 으음. 그렇군.”
그 소란 속에서 나는 장생이와 함께 제국백들의 아지트인 호수로 갔다.
이유는 별거 없다. 아이들에게 시달리던 장생이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지.
“장생아.”
“왜 그러지?”
“고맙다.”
내 감사 인사에 장생이는 코웃음을 치며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천수를 누리는 거라면 모를까, 내 눈앞에서 내 허락 없는 죽음은 용납할 수 없었다. 감사 받을 일은 아니야.”
“그러냐.”
퉁명스럽고도 자부심 넘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 힘을 찾았냐는 말도, 혹시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냐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호숫가에 앉아 낚싯대만 매만졌다.
장생이도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듯. 조용히 몸을 만 채 잠에 들었다.
그래. 푹 자라. 넌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