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23)
로판 속 공무원 923화(924/945)
기념 예배니 뭐니 나름 거창하게 준비한 것 같지만, 정작 예배 자체는 별다른 소란 없이 무난하게 마무리되었다.
아무리 살아있는 성인의 탄생을 기념하는 예배라도, 예배를 진행하는 주체가 교단 내 보수 파벌의 수장이라도, 예배 참석자 하나하나가 신년하례식 수준으로 화려해도─ 결국 경건하고 조용해야 할 의식이 예배니까. 차라리 연회장이었다면 어느 공작으로 인해 난리가 났을 텐데.
‘현명공도 교회 안에서는 자제하는 편이지.’
황제가 앞에 있어도 여러 의미로 당당한 현명공이나 놀랍게도 교회에서는 다소 잠잠한 편이다.
딱히 현명공이 신실해서 그런 건 아니다. 에넨의 곁으로 돌아간 현명공의 부친이 신실했기에, 현명공과 외숙부가 처음 만난 장소가 교회기에 나름 자제하는 걸 거다. 그 현명공의 유일한 제어 장치가 있다면 가족뿐이니.
“쬬까! 아니, 썽 칼! 시성 츄카해!”
물론 ‘다소’ 잠잠하다는 거지 완전히 잠잠하다는 뜻은 아니다.
예배가 끝나고 참석자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요란하게 다가온 현명공은 정숙과 거리가 멀었다.
착잡함을 느낄 것도 없었다. 현명공은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게 정상이지 않나. 오히려 조용하고 경건한 모습을 보였다면 더 무서웠을 거야.
“히힣! 아부지가 보셧따면 어어어엄쳥! 기뻐햇쓸탠대! 가죡쭝애 성인이 나온거자나! 그것두 살아서!”
아무튼 헤실헤실 웃음을 흘리던 현명공은 내 어깨를 격하게 두드렸다.
솔직히 경건공과 내 관계는 가족이라고 하기에 좀 멀지 않나 싶지만, 이 시대 기준으로는 제법 가까운 편에 속한다. 사위의 조카면 명절 때 만나서 용돈이라도 쥐여줄 수준의 관계지.
애석하게도 그런 경건공을 에넨이 너무도 총애한 나머지 다소 이르게 하늘로 데려갔지만 말이야. 살아있었다면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됐을 사람인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럼 보여드리러 가면 되지요.”
그렇기에 약간의 아쉬움을 담아 입을 열었다.
“으잉?”
“며칠 내로 경건공 각하의 묘에 가겠습니다. 살아있는 성인이 기도를 올린다면 하늘에 계신 경건공께도 닿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대신 들은 에넨이 하늘 어딘가에 있을 경건공에게 전해주거나.
나를 정말 성인으로 생각한다면 그 정도는 해줄 거라 믿는다. 내가 뭐 기적을 비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안부 인사만 전해 달라는 거잖아.
“죠카…”
내 말에 현명공은 멍하니 눈을 깜빡이더니,
“우리 쬬카! 말두엄쳥 이뿌게해!”
기습적인 포옹을 시도했다.
밀어내면 취객을 폭행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아 차마 밀어내지 못했다. 게다가 취한 사람이 잘못 넘어지면 그대로 골로 가기도 하고.
제국 공작의 사인이 ‘외조카에게 주정을 부리다가 넘어져서 사망’이면 좀… 많이 그렇잖아.
“쬬까! 이 외숙모랑 뽑뽀!”
“아니, 잠까─”
하지만 현명공의 격렬한 볼 뽀뽀를 받았을 때는 밀어내야 했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엄청난 흡입력과 강렬한 알코올 냄새. 어느덧 서른에 가까워진 나로서는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었다. 나도 어디 가면 남들한테 대접받는 위치거늘. 어째서 현명공한테는 이런 수모를.
‘어디 가 이 새끼야.’
얼마나 처참한 모습이었는지, 나에게 다가오려던 황제가 자연스레 몸을 돌려 물러날 수준이었다.
가지 마 이 비겁한 누렁이. 황제라면 황제다운 단호한 위엄과 기세로 공작을 몰아내라고. 황제가 공작을 피해서 도망가는 게 말이 되냐.
‘상황도 저랬던 것 같기는 한데.’
저 누렁이 황제가 아닌 상황조차 현명공과는 다소 거리를 벌렸던 것 같다. 대놓고 꺼리는 건 아니었지만 딱 필요한 대화, 필요한 대면만을 이어나갔었지.
…
‘원래 그랬나?’
생각해 보니 상황은 모든 귀족들과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했다. 딱히 현명공이라 피한 건 아닌 것 같아.
그런데 그게 더 문제 아닌가. 상황은 개인적 성향 때문에 모든 귀족들과 거리를 둔 것이나, 저 누런 놈은 두려워서 현명공을 피한다는 거니까.
‘리브노만의 수치.’
사실 진짜 수치들은 이미 저승에 있지만 아무튼 수치다.
지금 살아있는 리브노만 중에 수치라고 불릴 사람은 저 새끼밖에 없으니까.
“언니. 조카가 반가운 건 이해하겠지만, 칼도 어엿한 가장이고 제국백입니다. 보는 눈이 많을 때는 조금만 자제하시는 건 어떨까요?”
‘아.’
그렇게 리브노만의 수치를 원망하며 볼을 헌납하고 있으니, 어머니가 다가와 부드럽게 현명공을 타일렀다.
“이이잉… 아가씨가 그러케말하면 어쩔수업찌…”
다행히 가족에게는 약한 현명공이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정말 다행이다.하필 외숙부는 다른 귀족들과 대화 중이라 누구도 현명공을 말릴 수 없었지.이미 나락으로 수직 하강한 듯한 체면이지만, 아주 티끌만큼 남은 체면이라도 지킬 수 있었어.
‘나도 가족인데.’
위기를 벗어나고 나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어머니처럼 현명공의 가족인데, 왜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거지.
혹시 외숙부와 촌수가 가까운 순서대로 말을 듣는 건가? 그래서 외조부님과 외조모님, 어머니한테는 약한 거고?
‘그럴듯해.’
분하다. 내 촌수가 조금만 더 가까웠어도 이런 수모는…!
예배가 끝난 다음날. 오랜만에 감찰성으로 출근했다.
딱히 일이 생겨서 걸음을 옮긴 것은 아니다. 일하느라 바쁜 녀석들이 얼굴을 보이지 못했으니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놈이 찾아가는 게 맞지 않겠나.
아무리 감찰성 출범 이전부터 휴가를 때린 기적의 장관이자 잠시 장관직을 내려놓은 상사라도, 어쨌거나 명목상 상사는 상사다. 그런 상사가 부하들과 경사를 나누지 않는 건 남들이 보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예를 들면 감찰성 장관이 부하들을 신뢰하지 않는다거나, 부하들이 장기간 휴가 중인 장관에 대한 신뢰를 거두었다거나─ 대충 그런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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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 싫다.’
허나 필요성과 별개로 감찰성 출근은 상당히 꺼려지는 일이다.
가기는 가야 한다. 감찰성의 장관과 간부들이 끈끈한 사이라는 걸 과시하기 위해서는 분명 가야 돼.
그런데 그 과시를 위해 감찰성으로 발을 들이면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떤 참사가 터질지 불 보듯 뻔하다는 게 문제야.
‘…괜찮겠지?’
그래도 약간의 희망을 가지며 마음을 다잡았다.
감찰부 시절이라면 100% 정신 나간 광경이 나를 반겨주겠지만, 현 감찰성은 구 감찰부는 물론 특무성 소속 인재들이 섞인 혼합체다. 간부 중 일부도 특무성 소속이었으니 내가 걱정하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을 터.
라고, 잠깐 부질없는 희망을 품었다.
“존귀하고 성스러운 분을 뵙나니. 주의 일개 종이 주의 사랑을 받는 성인을 뵙습니다.”
장관실에 들어가자 반겨주는 인파를 보기 전까지는.
인파 중 가장 앞에 서서 부복 중인 정보차장을 보기 전까지는.
‘이 시발.’
플래카드를 걸고 폭죽을 터뜨리는 것보다 끔찍한 광경이라 절로 탄식이 나왔다.
그래, 언제나 정보차장 저 새끼가 문제였다. 감찰부 시절에도 에리, 정보차장, 집행부장은 개노답 1, 2, 3과장으로 맹활약했었지만, 그중에서도 1위를 꼽자면 저 새끼였다.
나도 모르는 여벌 목숨이 존재하는 건가 싶은 파괴적 행보.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아가리. 본인의 장점인 혓바닥과 외모, 풍성한 모발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상대를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흉악함까지.
감찰부에서 흉한 일이 생기면 절반이 저 새끼 탓이었지. 잠깐 휴가 중이었다고 그 당연한 걸 잊고 말았다.
‘하.’
일단 최대한 인내심을 가지며 인파를 둘러봤다.
분위기는 정확히 반이었다. 진심으로 성 칼을 축하하며 경배하는 인원과 이 행동이 과연 옳은 건지 의문을 가지는 인원. 이렇게 반반.
저 반반에 속하지 않는 극소수의 미친놈도 몇몇 보였지만 무시했다. 지금 미친놈들을 바라봤다가는 나 또한 광기에 빠질 것이기에.
‘믿었는데.’
다시 터져 나오려던 한숨을 도로 삼켰다.
믿었다. 특무성 출신 인사들의 상식과 양심을 믿었다. 감찰부 출신 놈들이 미친 짓을 저지르려고 해도, 특무성 출신 인사들이 최후의 양심으로 작동하여 균형을 지킬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내가 특무성 출신 인사들을 과대평가한 것이 아니라 정보차장을 필두로 한 감찰부 출신의 광기를 과소평가하고 있었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
“제국인이 살아있는 성인이 된 것은 제국의 경사요, 감찰성 장관이 시성 된 것은 감찰성의 경사. 그렇다면 마땅히 모든 간부들과 관료들이 모여 축하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겨우 입을 열자 정보차장은 언제나처럼 풍둔 주둥아리술을 발동했다.
감찰성의 수치인 새끼. 내가 저놈 혓바닥을 진즉에 도려냈어야 했는데.
“비록 관료들 전원이 모인 건 아니나, 과장급 이상은 전부 모였습니다! 친애하는 장관 각하를 위해서!”
그 말에 다시 인파를 바라봤다.
정보차장처럼 부복한 새끼는 히죽거리는 집행부장과 씁쓸함이 함유된 무표정을 짓고 있는 집행차장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기립해 있는 상황.
그중에서도 공허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정보부장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정보부장.”
“…예, 각하.”
“이 못난 장관을 위한 정보부의 성의. 실로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다 나올 것 같아.”
내 질책 아닌 질책에 정보부장은 조용히 허리를 숙였다.정보차장의 직속상관으로서 이 참사를 막지 못해 송구스럽다는 듯이.
정보부장이 원망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이상 질책하지는 않았다.
나도 감찰부장 시절에는 저 새끼 완벽하게 통제 못 했잖아. 나도 못 한 것을 정보부장에게 바라는 건 가혹한 짓이다.
***
우리의 친애하는 상사께서 성인이 되었다.
그것도 무려 살아있는 성인. 단순히 권위로만 보면 교황과 성자 다음에 두어야 할 성스러운 존재.
단순히 동네 이웃이 성인이 되어도 격하게 축하하는 것이 마땅한데, 상사가 성인이 되었다면 영혼을 불사를 각오로 축하해야 하지 않겠나. 그것이 인간의 도리지, 아무렴.
그렇기에 친애하는 상사─ 성 칼께서 감찰성 청사에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간부들을 설득했다. 이건 간부 일동이 경건한 마음으로 축하해야 한다고. 업무에 치여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으니 우리끼리 약식 예배라도 드려야 한다고.
‘흫.’
물론 어디까지나 명분에 불과하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화도 못 내고, 웃지도 못하고 꿈틀거리는 장관 각하의 얼굴이야.
당연히 속이 타들어가기는 하겠지. 나에 대한 증오가 무럭무럭 피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휴가 중인 상사가 나한테 어떤 보복을 할 수 있는데.
추가 업무? 이미 업무가 가득 쌓여서 더 받을 업무도 없다. 징계? 감봉이나 시말서 같은 건 타격도 없다. 만약 근신이면 쉴 수 있으니까 오히려 좋지.
즉, 현 상황은 내가 일방적으로 때릴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망설이는 건 졸장이나 하는 짓.
절대 우리 아들에게서 ‘아빠는 왜 밤에 돌아와?’ 같은 말을 들었기에 이러는 건 아니다.
부하는 개처럼 구르는데 상사라는 사람이 휴가 중이라 이러는 게 아니다.
‘부럽다.’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