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3)
4과장이 기묘한 용기로 가득 찬 모습을 과시하는 소소한 사건이 있었지만 아무튼 4과장의 합류로 마음이 놓였다. 사용인들은 집사 정도를 제외하면 무력과 거리가 머니까.
저택 안에 4과장, 밖에는 묵광대가 버티고 있다면 작정하고 테러를 시도하는 것들도 역으로 털어버리는 것이 가능한 수준이다. 아카데미에서도 이 정도 수준의 인력 지원이 있었다면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 흥미로운 의견이었소.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무얼, 현장을 직접 관리하는 건 감찰부장 아니오.
그래서 의전 관련으로 얘기하다가 슬쩍 궁내성 장관에게 운을 띄어보니 흥미로운 말이었다며 가볍게 웃어 넘겼다. 물론 이 바닥에서 흥미롭다는 말은 ‘개소리 하지 말고 하던 일이나 해라’ 라는 의미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역시 안되는구나. 하긴 저번에 묵광대가 아카데미에 온 것도 세번째 영광 토벌 때문이었지, 평상시에 묵광대 정도 되는 전력을 아카데미에 두기는 너무 아깝다.
지금 지원을 받은 것도 내가 저택을 강탈 당한 특이 케이스라 가능한 거고. 한 번 편한 거에 맛들였다고 그걸 상수로 생각하면 곤란한데. 미련은 빨리 버려야겠다.
– 귀빈들은 어떻소?
“광장을 중심으로 가볍게 살피고 왔습니다. 마음에 들어하더군요.”
– 하하, 시장이 들으면 기뻐할 말이구려.
궁내성 장관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평소에는 나이 때문에 조용하게 지내는 시장이지만, 이상하게 광장은 도시의 얼굴이나 마찬가지라며 광장 관리에는 열을 올린다.
대충 어르신들이 소일거리로 화단이나 텃밭을 꾸린다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지. 스케일이 너무 크지만.
아무튼 그런 시장이니만큼 자신이 관리한 광장이 왕족들이 보기에도 좋았다고 하면 몹시 흡족해 할 거다. 괜히 그 말을 들었다가 극도의 행복감으로 성불하지 않으려나 몰라.
– 이미 봤다면 잘 된 일이지. 조금이라도 익숙한 곳에서 의전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의전은 광장에서 하겠다는 말에 적당히 수긍했다. 사실 어디서 하든 상관없다. 이미 그 녀석들에게 시달리고 왔는데 광장이든 황궁이든 무슨 소용이야. 할 거면 점심에 미리 했어야지.
– 곧 황태자 전하의 업무도 끝날 테니 감찰부장도 준비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나가기 귀찮은 마음이 살짝 솟구쳤지만 애써 몸을 일으켰다. 황태자를 방치하기에는 후환이 두렵다.
아인테르의 동공이 급격하게 요동치는 사소하고 안타까운 소란이 있었지만 결국 전원 광장으로 가기는 했다. 꿈에 나올까 두려운 황태자를 만나러 가기와 그 황태자를 바람맞히기 중에 고르라고 하면 전자가 낫지.
“아인테르, 괜찮아? 쉬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
“괜찮습니다, 루이제 영애. 멀미가 뒤늦게 오는 것 같군요.”
애써 웃으며 답하는 모습에 절로 짠해졌다. 이번만큼은 아인테르도 나처럼 개노답 부원들에게 휘둘린 피해자에 불과하니까 더욱 그랬다.
“금방 끝날 거니 걱정 마라. 황태자 전하는 다른 업무로 바쁘시니.”
그렇게 말하자 아인테르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적어도 이번 의전에서 황태자가 아인테르를 터치할 일이 없다고 내 입으로 확답을 한 거니까. 만나는 건 여전히 두렵겠지만 적어도 자기를 친히 갈구기 위한 행차가 아닌 게 어디냐.
“공식 방문이 아니니 빠르게 끝나겠지. 돌아가면 푹 쉬는 게 좋겠군.”
옆에서 라테르가 아인테르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한 학기 동안 같이 지내면서 이런 걱정을 할 정도의 우정은 쌓은 모양이다. 겉으로만 보면 훈훈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기는 한데.
‘누구 때문인데.’
애초에 이 개노답 삼인방이 제도로 가겠다는 말만 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다. 아인테르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고마움 반, 쌍욕 반이 뒤섞인 오묘한 눈빛으로 라테르를 쳐다봤다. 병 주고 약 준다는 게 딱 이런 거구나.
“배려에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하는 아인테르의 모습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저런 평정심은 가져야 황태자의 용작두쇼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구나.
아무래도 2황자에게 갈 멘탈도 전부 아인테르에게 갔나 보다. 멘탈이 나약한 새끼는 살아남을 자격이 없지. 2황자 그 새끼가 개같이 멸망한 이유 중 하나를 알게 된 것 같다.
그렇게 깨달음을 얻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안절부절 못하는 이리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리나.”
“흐읏!”
툭 어깨를 건드니 화들짝 놀라는 모습에 괜히 머쓱해졌다. 아니, 그 정도로 놀랄 줄은 몰랐지.
“아, 오빠.”
“너무 떨지 말고. 황태자 전하도 괜찮다고 하신 일인데.”
이리나가 아까부터 미어캣처럼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황태자가 행차하고 다른 왕족들도 있는 자리에 일개 백작가 영애가 있어도 괜찮나 의문이겠지.
나도 원래는 딱 느그 나라 세 놈만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황태자가 전원 참석을 원해서 어쩔 수 없이 전부 끌고 왔다. 그 새끼가 사소한 일 하나하나로도 사람 귀찮게 하는 재주가 있어.
“그, 그래도 왕족들 자리에 제가 감히…”
하지만 이리나는 황태자가 허락했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사실 이게 정상이기는 하지. 루이제는 동아리에서 쌓은 경험이 많아 본의 아니게 내성이 생긴 케이스고, 에리히는 루이제와 함께라면 무서운 게 없고, 마르게타는 황족 바로 다음 가는 공작가 일원이고. 이래저래 이리나만 불쌍한 상황이다.
“왕족 자격이 아니라 여행 목적으로 다 같이 왔잖아. 누군 만나고 누군 안 만나는 것도 이상하지.”
“그런가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리나에게는 미안하지만 거짓말이다. 아무리 여행 목적이라도 딱 왕족만 만나면 끝날 일을 일행까지 전부 부를 필요는 없지. 그냥 황태자의 패시브 스킬인 의심병이 발동한 거다.
타국 왕족과 같이 여행을 올 정도의 친분이 있는 자국 귀족. 황위 계승권과 굿바이 키스를 한 이복동생과 접촉한 자국 귀족. 황태자 입장에서는 이 기회에 직접 확인할 생각이지.
물론 그렇게 말했다가는 이리나의 눈물을 다시 볼 것 같아 좋게 포장해서 말했다. 아무튼 황태자가 와도 괜찮다고 한 건 맞으니까. 거짓말은 안 했어.
‘미안하다.’
들리지 않을 사과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얼굴 확인하는 거 말고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의전 자체는 별일 없이 진행됐다. 장관들이 모여 철저하게 의논했으니 오히려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심지어 내 역할은 자리에 앉아 적당히 박수나 경례를 하는 게 전부니 무슨 일이 터지려고 해도 터질 수 없고.
‘저 양반도 왔네.’
주변을 둘러보다가 호위군을 지휘하는 중년 남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제도 방위의 역할을 맡은 근위 1군단의 군단장. 3년 전에 임명된 이후로 열심히 구르고 있는 것 같던데 아직도 구르고 있었구나.
아, 눈 마주쳤다.
서로 가볍게 목례를 하자마자 시선을 돌렸다. 딱히 반가운 일로 만난 게 아니니.
“아는 사람이야?”
“제도에서 내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 찾는 게 더 힘들 걸.”
옆에서 작게 물어보는 에리히의 말에 씁쓸히 답했다. 제도에서 나름 이름값 있는 공무원들은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다. 전부 잠재적 감찰 대상이라 대략적인 정보는 머리에 담아야 하고, 그 사람들 입장에서도 난 언제 방문할지 모르는 깜짝 손님인지라.
“대단하네.”
감탄스럽다는 듯 말하는 에리히에게 잠깐 눈길이 갔다. 형의 공무원 생활을 대단하다고 한 것을 보면 얘도 공무원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닐까?
‘진짜 써줘야지.’
얘가 졸업하고 할 일 없으면 재무성이든 사법성이든 전쟁성이든 바로 추천장 써서 꽂아줘야겠다. 분명 에리히도 기뻐할 거다. 공무원 생활은 겪어야 크라시우스 남자지.
“오늘의 작은 만남이 각국의 거대한 우정으로 나아간다면 어찌 기쁘지 않을까.”
동생의 미래를 설계하는 기분 좋은 고민에 빠진 사이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단상 위의 황태자가 환영사를 읊고 있었다. 길게 말하는 걸 지양하는 황태자니 환영사 읊는 순서까지 왔으면 행사도 거의 끝났겠지.
그렇게 심드렁한 마음으로 환영사를 듣고 있었는데, 평범했던 내용이 드리프트를 하기 시작했다.
“알고 있는 손님보다 예상하지 못한 방문이 더욱 반가운 법이다.”
어?
“무거운 발걸음보다 가벼운 발걸음이 더욱 기꺼울 때도 있는 법.”
어어?
“제국은 모든 것이 모이기에 제국이오, 모든 사람들이 올 수 있기에 제국이다. 그렇기에 어떤 방문이라도 마음을 열어 반길 수 있다.”
황태자 너 이 새끼.
‘너도 꼭지 돌았구나.’
마음 깊은 곳에서 몰려오는 감동에 입술을 살짝 깨물고 말았다. 그렇지 않으면 기립박수와 함께 황태자 지지 연설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그래, 이게 나라지. 이게 옳게 된 환영사지.
‘역시 신분이 깡패네.’
일개 후계자인 나는 차마 할 수 없지만, 황태자 정도 되는 위치면 충분히 왕자나 차기 성자에게도 돌려까기가 가능하다. 왕세자도 황태자에게는 밀리는 판국에 일개 왕자면 말할 것도 없지.
예상하지 못한 방문이 반갑다? 가벼운 발걸음이 기꺼워? 어떤 방문이라도 반긴다고? 물론 겉으로는 손님을 환영하는 평범한 멘트다. 겉으로도 열렬히 까는 거면 그건 외교적으로 싸움을 거는 거고.
하지만 겉과 속이 다르게 말하는 건 높으신 분의 기본 교양. 황태자의 말은 왕자라는 위치에 있는 새끼들이 뭔 약속도 없이 갑자기 제도에 사적 방문을 하고 지랄이냐는 저격이나 마찬가지다. 제국은 그런 너희도 반겨줄 아량과 여유가 있다는 과시는 덤.
‘고맙다…’
나는 죽어도 내뱉지 못할 마음 속 응어리를 황태자가 대신 쏟아내준 상황. 이 꿈도 꾸지 못한 상황이 얼마나 기쁜지.
감동에 목이 메여 멍하니 황태자만 바라보자 환영사를 끝낸 황태자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쿨하게 단상에서 내려가는 황태자.
난 사실 황태자의 지지자가 아니다. 지지자를 넘어선 일심동체의 관계다. 앞으로 황태자에 대한 도전은 나에 대한 도전이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