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32)
로판 속 공무원 932화(933/945)
우리 아이들에게 새로운 탈것이 생겼다.
“쥬니! 바끄로!”
– 음머어어어어.
어쩌다 보니 베히모스에게 받았던 송아지 한 마리. 베히모스 주니어라는 뜻에서 주니라는 이름이 붙은 녀석.
본래는 작디작은 송아지라 아이들을 태우기에는 다소 무리였으나,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 간신히 한 명을 태울 정도로 커졌다. 비록 성체에 비하면 한참 작은 크기일지언정 아이들이 타기에는 충분하지.
‘잘 걷네.’
게다가 소는 느린 속도와 별개로─ 아니, 느린 덕분에 상당한 안정성을 지닌 존재다. 워낙 느릿느릿하게 걷다 보니 위에 탄 사람이 떨어질 일이 없어.
이는 아이들을 돌보는 입장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요소다. 아이들이 등 뒤에서 춤을 추지 않는 이상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안전한 탈것. 부모 입장에서 이토록 반가운 존재가 어디 있을까.
자선과 친절이 들으면 서운해하겠지만 뭐 어떤가.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만 않으면 되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걔네가 어떻게 알겠어.
“압빠!”
그렇게 주니를 타고 정원으로 가던 알리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중, 알리나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압빠두 가치! 엄마 보러가!”
“그럴까?”
“웅!”
알리나의 해맑은 요청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밖으로 나가려고 하나 싶었는데, 정원에 있는 엄마를 보기 위해서였구나.
‘분명 아까까지는 안에 있지 않았나.’
경이로운 속도로 움직인 린의 행동력에 쓴웃음을 지었다.
어느덧 만삭에 접어든 린이었지만 방에서 편히 쉬는 대신에 정원을 돌아다니고 있다. 애석하게도 린은 아카데미 제일의 기수였을 정도로 활동적인 성향이니까. 방에 조용히 있는 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일 거다.
심지어 현재 정원은 가을맞이 대대적 단장에 들어간 상태다. 우리 저택의 정원과 후원 관리는 린이 담당하고 있기에, 만삭의 몸임에도 정원사들을 이끌며 정원을 뒤엎는 중이지.
‘이런 건 설렁설렁해도 되는데.’
솔직히 정원 미관 같은 건 정원사들에게 맡긴 채 편히 쉬었으면 한다. 린이 허약한 체질은 아니지만 괜히 여기저기 움직였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허나 린은 아카데미 시절에 원예 동아리를 택할 정도로 식물에 대한 관심, 애정이 상당하다. 그런 린에게 정원, 후원 접근 금지령을 내린다? 몸은 안전해도 정신이 망가질 터.
‘그래도 마법으로 보호 중이니 괜찮겠지?’
그래도 조금씩 꿈틀거리던 걱정과 불안은 대륙 제일의 마법사 덕분에 바로 진압되었다.
우리 저택에는 누구보다 든든한 마법사가 존재한다. 그 마법사가 걸어둔 온갖 마법 덕분에 우리 부인들, 아이들은 안전하기 그지없다.
다소 차가워지기 시작한 가을바람도, 조금 딱딱해지기 시작한 땅도 대마법사의 마법 앞에서는 아무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 어떠한 바람도 추위를 가져오지 못하며, 넘어지더라도 피부 하나 까지지 않을 테니까.
물론 배로 넘어지면 아무리 마법이라도 위험하니 움직이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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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 빨리 끝나기를.’
주니와 나란히 걸으면서 속으로 기도했다.
차마 아내의 건전한 취미 활동을 막을 수 없다. 그렇다고 아내의 육체가 0.01%라도 위험한 상태를 방치할 수도 없다.
그러니 부디 정원, 후원 단장이 빠르게 끝나기를.그도 아니라면 우리 FC 크라시우스의 마지막 조각이 될 열한 번째 아이가 빨리 태어나기를.
제발.
***
오랜만에 황금공 각하를 따르는 파벌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제국 남부의 지배자인 보야르 공작의 파벌이 아닌, 제국 경제의 기둥인 황금공 각하의 파벌. 제국 동, 서, 남, 북, 중부를 가리지 않고 황금을 추구하는 귀족이라면 누구나 몸을 담고 있는 파벌.
이 어마어마한 덩치와 드넓은 범위로 인해, 어지간한 일이 아닌 이상 파벌원들이 직접 모이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럼에도 황금공 각하께서는 파벌원들을 소집하셨다.
“슬슬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다.”
제법 긴 시간 동안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던 논의를 끝내기 위해.
“레온 주둔군 사령관도 올해가 끝나기 전까지는 확답을 달라고 하더군. 본작에게 서신을 보낼 정도면 어지간히 급하기는 한 모양이야.”
“송구하옵니다, 각하. 저희가 미숙하여─”
“송구할 거 없다. 보다 좋은 물품을 빠르게 이송하기 위한 논의지 않나. 괜히 급하게 처리했다가 품질에 이상이 생기면 그게 더 수치스러운 일이지.”
파벌의 2인자라 할 수 있는 바르카 후작 각하의 말에 황금공 각하는 고개를 저으셨다.
건전한 논의는 얼마든지 길어져도 상관없으나, 정작 이렇게 길게 끌었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각오하라는 암묵적 경고. 언제나 보는 황금공 각하의 모습이라 편안할 정도다.
“그래. 후보는 얼마나 좁혀졌지?”
“플란벨 백작과 그린단 백작입니다.”
바르카 후작 각하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나와 그린단 백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황금공 각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파벌원 사이의 논쟁은 황금공 각하께서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당사자가 아닌 바르카 후작 각하의 보고를 통하여 언급되어야 하니.
“플란벨 백작령은 울켄 공작령과 인접한 지역입니다. 그 이점을 살려 울켄에서 생산된 군수물자, 혹은 가공 전의 자원을 빠르게 레온 남부 지역으로 운송할 수 있습니다. 울켄 공작령으로 집결하는 생필품이나 사치품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겠지.”
“반면 그린단 백작령은 레온 남부와 거리가 있으나, 제레노 왕국과 육상은 물론 해상으로도 교류를 할 수 있는 위치입니다. 상당한 운송 거리를 각오한다면 플란벨에서 동원할 수 있는 물자보다 다양한 물자를 레온 남부에 공급할 수 있습니다.”
바르카 후작 각하의 설명에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는 황금공 각하.
그런 각하를 보며 슬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아마 그린단 백작도 마찬가지일 거다.
제국의 특수 군사 작전으로 인하여 레온 남부에 제국군이 주둔한 이후, 레온 남부는 우리에게 있어 새로운 시장이 되었다. 면적은 북방에 비하면 안쓰러울 정도로 좁으나, 인구와 개발도는 상당한 지역이 제국만의 시장으로 개방된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장에 우선적─ 이라는 이름의 실질적인 독점 권한을 두고 그린단 백작과 경쟁하게 되었다. 당연히 영구적 독점이 아닌 5년 독점이지만, 초기 5년은 미래의 500년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 아니겠나.
“각각 장단점이 명확하군. 논의가 오래 이어질만했어.”
“허나 레온 주둔군 사령관에게 확답을 주려면 이제 논의가 아닌 결단이 필요합니다. 플란벨 백작과 그린단 백작은 각하의 결단에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부담스럽군. 이런 일을 본작 개인의 판단에 맡기겠다니.”
작게 미소를 지은 황금공 각하는 나와 그린단 백작에게 시선을 돌리셨다. 할 말이 있다면 지금 하라는 것처럼.
“아닙니다, 각하. 저희의 진전 없는 논의보다는 각하의 영민하신 판단이 필요합니다. 어떠한 결정을 내리셔도 기쁜 마음으로 따를 터이니, 부디 각하의 고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 또한 플란벨 백작과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가.”
당연히 우리가 각하께 드리는 말씀은 다분히 의례적인 내용이었다.
이미 이 자리가 만들어진 것부터가 황금공 각하께서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이지 않나. 기껏 파벌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올해가 지나기 전에 당사자들끼리 잘 협의해라.’ 라는 결론이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각하의 권위가 다소 무너질 정도의 일.
“자네들의 뜻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의례적인 절차를 거친 황금공 각하는 희미한 미소를 거두셨다.
절로 긴장감이 솟구쳤다. 이제 각하께서 어떤 결단을 내리시느냐에 따라 압도적인 이익이─
“각하. 실례하겠습니다.”
“으음?”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보야르 공작령의 집사장이 들어왔다.
“플란벨 백작부인이 급한 연락을 보내왔습니다.”
“백작부인이?”
이어지는 집사장의 말에 나도, 각하도 살며시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이 회의실에 입장한 모든 사람들은 통신구를 제출한 상태다. 혹여나 회의 중에 급한 연락이 온다면 집사장이 대신 대처하기 위해서. 감히 공작 앞에서 연락을 받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을 거치는 게 나으니까.
그 다른 사람이 보야르의 집사장인 건 회의 중 생기는 모든 일은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황금공 각하의 배려지만, 정작 회의 중에 연락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미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급한 일은 처리하고 오는 편이니까. 이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들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부인이 연락을 한 건가 고민하는 사이. 집사장은 황금공 각하께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호오.”
뒤이어 각하의 입꼬리가 확연하게 올라갔다.
“플란벨 백작.”
“예, 각하.”
“축하하네. 오늘 내로 외손주를 보겠어.”
그 말에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이거야 원. 아무래도 이번 안건은 플란벨 백작의 손을 들어줘야겠군. 이런 경사스러운 날에 이 정도 선물은 줘야 하지 않겠나?”
“물론입니다, 각하. 저 또한 플란벨 백작의 외손주를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아쉽지 않습니다.”
“음. 그 배려심, 아주 좋아. 그린단 백작 자네에게는 조만간 본작이 따로 선물을 주도록 하지.”
“영광입니다!”
각하와 그린단 백작의 대화가 들렸지만, 기억에는 남지 않았다.
외손주. 내 외손주. 오늘 내로 태어날, 부인이 급하게 연락을 보낸 외손주.
“가, 각하.”
“자네 왜 아직도 여기 있나? 냉큼 나가게.”
“감사합니다!”
각하께 감사를 표한 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지금만큼은 독점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다. 우리 린, 우리 외손주가 더 중요해.
***
넷째 장모님이 저택에 도착하고 얼마 후. 넷째 장인어른도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며 달려오셨다.
장모님 말씀으로는 황금공의 소집 때문에 보야르 공작령으로 가셨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다.
“사, 사위. 우리 린, 우리 복덩이는 어떤가?”
“일단 숨부터 고르시지요.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장인어른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정원에 있던 린이 진통을 시작한 걸 보고 놀라기는 했지만, 장인어른은 그걸 직관한 나보다 더 놀라신 것 같아.
하긴. 그게 아비의 마음이겠지.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