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34)
로판 속 공무원 934화(935/945)
리온의 탄생으로 인해 FC 크라시우스의 주전 11명이 완성되었다.
물론 교체 인력까지 고려하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일단 주전을 완성한 것만으로도 고무적인 성과이다. 다른 귀족 가문들을 보면 아이가 11명이기는커녕 5명만 있어도 많은 편이지 않던가.
“때부! 나 동생 보러왓써!”
그리고 리온이 태어나고 정확히 열흘 후. 황태녀가 해맑은 얼굴로 놀러 왔다.
거의 매일 방문하던 황태녀가 열흘이나 침묵했다? 이건 막 태어난 리온과 출산을 마친 린의 면역력을 고려하여 황제가 황태녀를 붙잡아둔 것이다. 그것도 무려 열흘이나.
‘기도 효과가 좋기는 좋구나.’
사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황태녀가 봉인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황제는 자신이 힘을 쓸 때마다 은근히 생색을 냈었지. 이번에는 작은 생색조차 없이 조용하게 황태녀를 다독이고 있었다. 나에게 어떠한 부담도 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감동적인 일이다. 그 황제조차 친모의 은인에게는 자비롭구나. 역시 황제의 인성이 조금 안타깝기는 해도, 확실히 인간 언저리에 속하기는 한 것 같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저도 전하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쪼르륵 달려오는 황태녀를 품에 안으며 미소를 지었다. 황태녀를 붙잡아둔 황제와 황제의 말에 따른 황태녀. 둘 다 우리 가족을 위해 노력한 것이니.
게다가 우리 아이들도 얼마 전부터 리온의 곁에 옹기종기 모이기 시작했다. 리온의 볼과 손을 콕콕 찌르며 구경 중이니, 황태녀 하나가 추가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딱 좋은 타이밍에 왔어.
“마따! 때부! 나 선물도 가져왓서!”
“오호. 그렇습니까?”
내 품에 안긴 채 양팔을 퍼덕이는 황태녀를 보며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알고 있다. 페디가 태어났을 때부터 황제는 탄생 기념 선물을 꼬박꼬박 보내는 중이다. 이번에도 황실의 시종과 마차가 정원에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오는 길이지.
하지만 눈치 없이 ‘아까 봤습니다.’ 라고 하는 건 황태녀를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짓. 적당히 놀란 시늉을 하며 받아주─
“이거! 아빠가 때부한태 주래!”
“예?”
주머니에 손을 넣은 황태녀가 꼬깃꼬깃한 종이를 하나 내밀었다.
뭐야 이거. 백지수표 같은 건가? 뭔 선물을 종이로 주지?
“어어어엄쳥! 조은거래! 꼭 때부만 보라고해써!”
“그렇습니까? 이런 귀중한 걸 가져오시다니. 전하께서도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웅!”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황태녀를 반사적으로 칭찬했다.
설마 황태녀가 아무 종이나 주워와서 농담을 하는 건 아닐 테니까. 정말로 황제가 전달하라고 준 선물이고, 전달 과정에서 약간 문제가 생긴 거겠지.
그 문제마저 황태녀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하다가 생긴 작은 해프닝에 불과하다. 좋은 선물이라고 해서 무엇보다 안전한 자기 주머니 안에 넣은 걸 텐데, 애석하게도 6살 여아가 입는 옷 주머니는 매우 작지 않나.
‘구겨져도 상관없는 물건인가?’
허나 나도 인식한 문제를 딸바보 황제가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처참히 구겨지는 걸 감수하고 굳이 황태녀에게 맡겼다라.
점점 이 종이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황제와 나, 황태녀 정도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공개할 수 없는 선물이라는 것이니.
아니지. 황제가 보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면 황태녀도 내용을 보지 않았을 테니, 나와 황제만의 비밀일 확률이 높다.
‘둘만의 비밀이라.’
어감이 이상해서 조금 역겹지만 의문은 더욱 커졌다.
일단 황태녀부터 리온이 있는 방에 안내하고, 무슨 물건인지는 느긋하게 확인하자.
오늘부터 난 대가리가 깨져도 황제파다.
황제를 향한 도전은 나를 향한 도전으로 간주하며 단호히 대처하겠다.
이 영혼과 충성을 리브노만께.
***
업무 중에 통신구가 맹렬히 빛을 뿜었다.
황태녀가 백작의 저택으로 향한 직후니 백작의 연락일 터. 아무래도 내가 보낸 선물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따로 보내려다가 그냥 같이 보냈는데, 괜찮은 결정이었어.
– 황제 폐하 만세. 크라시우스 가문의 가주, 칼 크라시우스 오브 타일글레헨이 존귀하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먼저 연락을 주다니 별일이군. 황태녀는 잘 도착했는가?”
– 예, 폐하. 또한 폐하께옵서 보내신 깊고도 따스한 자비도 막 확인한 참입니다.
내 얼굴이 절로 뜨거워질 것 같은 찬사에 픽 웃음을 흘렸다.
마음에 들어도 제대로 든 것 같다. 방금 백작이 한 말은 의례적인 찬사가 아니라 진심이 가득한 찬사였으니.
‘그렇게 좋을까.’
당연히 좋을 법하다. 백작은 어떠한 부와 명예보다도 자유를 갈망하는 독특한 귀족이지 않나.
그런 백작에게 명령 거부권이라는 어마어마한 카드를 전달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거부권을 부여잡고 통곡했다고 해도 납득할 수 있다.
다만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거부권을 백작에게 하사한 건 아니다. 아무리 백작의 성품을 믿어도 어찌 황제로서 후대의 분란이 될 카드를 남발할까.
‘나름 제한을 두기는 했지.’
우선 거부권은 10년에 하나씩 누적되는 형태로 만들었다. 현재 백작이 가지고 있는 거부 권한은 한 개지만, 10년이 지나면 또 하나, 다시 10년이 지나면 다시 하나가 생기는 형식이다.
그리고 황명을 거부할 수 있으되 모든 명을 거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예컨대 몇 년 전에 있었던 칸의 발호처럼 제국 수뇌부가 전부 모여야 하는 일이 발생할 경우. 이런 경우에는 명령 거부권보다 소집령이 우선시 된다.
이건 제국과 황권을 위한 제한이지만 백작을 위한 배려기도 하다. 제국 전체가 움직이는 일에 백작만 빠지면 그건 그거대로 이상한 일이야.
물론 백작이라면 그 정도 일에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순순히 참가하겠다만, 그래도 남들이 보기에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건 차원이 다른 일. 괜한 뒷얘기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제한을 두는 것이 옳다.
“백작의 공을 생각하면 하늘에 닿을 금화 더미와 드넓은 영지를 주는 것이 옳지. 그러나 성인이 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백작이니, 눈에 띄는 포상이 아닌 무형의 포상으로 그쳤다네.”
– 실로 현명하신 판단이옵니다.
깊숙이 고개를 숙이는 백작의 모습에 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만일 내가 금화나 영지를 줬다면 저런 반응이 나왔을까? 절대 아니다. 분명 포상을 받은 주제에 벌레를 씹은 표정으로 의례적인 감사, 진심이 담긴 사양을 표했을 거다.
‘어떻게 보면 역신 같은 행동인데.’
기이하기 짝이 없다. 이미 많은 걸 가진 귀족이 황명 거부권을 가지고 저렇게나 좋아한다? 누가 봐도 역적, 누가 들어도 제위 찬탈자라고 생각할 수준이다.
그러나 백작이라면 보잘것없고 하찮은 사유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역적은커녕 충신, 제위 찬탈자가 아닌 수호자로 지낼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무해한 신하가 얼마나 있을까.’
역사를 보면 뛰어난 능력을 가진 신하가 군주의 의심을 받아 숙청되는 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맹목적인 충성을 바쳤어도 끝내 숙청을 당하는 경우도 존재하지.
역사 속 신하들도 그걸 알기에 필사적으로 자신의 무해함을 과시했다. 미친 척을 하며 의심에서 벗어나고, 과도하게 탐욕적인 연기를 해서 스스로의 인망을 바닥으로 처박았다. 그래야 군주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지 않으니.
허나 백작은 미친 척도, 탐욕스러운 척도 하지 않았지만 무해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다. 백작이라면 황권에 도움이 되면 됐지, 아무런 해가 될 수 없다고 느껴진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마치 죽을 때까지 충성하기 위하여 태어난 존재 같아.
“아무튼 선물이 마음에 들었다면 다행이네만, 짐은 일이 있어서 이만 끊도록 하지.”
– 폐하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아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송구는 무슨. 미안하다면 그만큼 황태녀나 잘 돌봐주게.”
그 말을 끝으로 통신구를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흐으.”
뒤이어 통신구가 완전히 빛을 잃은 걸 확인한 후, 몇 번째인지 모를 웃음을 흘렸다.
거부권. 듣기에는 좋지만 막상 백작이 저 거부권을 마음 편히 사용하지는 못할 거다.
10년에 하나씩 거부권이 쌓인다면 백작은 거부권을 볼 때마다 고심하게 된다. 이 명령을 거부해야 하나, 아니면 훗날을 위해 비축해야 하나. 지금 썼다가 나중에 더 큰 명령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그런 걱정을 할 터.
그런 고민이 머리를 잠식한다면 어지간한 황명은 따르게 된다. 이 정도는 버티고, 더한 명령이 나올 때 거부하자며 자기 자신을 다독이게 된다.
‘백작의 한계는 드높지.’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백작은 온갖 사건을 겪은 몸이라 고난에 대한 기준치가 높다. 내가 생각해도 어마어마한 일을 ‘이 정도면 몸으로 버틸 수 있다.’라고 여기며 받아들일 확률이 높아.
‘아무튼 거부권은 줬으니 상관없다.’
조금 머리를 쓴 결과지만 양심에 찔리지는 않았다.
남들은 꿈에서도 바랄 수 없는 권한을 줬다. 그 권한에 약간의 제한, 약간의 심리전을 거는 건 황제로서 마땅한 조치 아니겠나.
게다가 백작이 제한 내에서 사용한다면 거절할 생각도 없다. 나는 진심으로 거부권을 하사한 거야.
그저 백작의 고뇌를 아주 약간 자극한 것일 뿐.
***
리온을 둘러싼 아이들, 짐승들을 보다가 흐뭇하게 내 가슴팍을 매만졌다.
이 안에 있는 나의 영혼, 나의 삶, 나의 긍지, 나의 신념.
그리고 고귀한 리브노만과 크펠로펜 주인이 나에게 하사한 자비.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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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찔끔 눈물이 나올 뻔했다. 무엇보다 가벼운 종이 한 장이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자비로 느껴진다.
설마 이런 걸 받게 될 줄은 몰랐다. 황제가 이런 어마어마한 권한을 서면으로 하사할 줄은 몰랐어.
‘…복귀 명령에는 당연히 못 쓰겠지.’
순간 황제가 장관직 복귀를 명할 때 사용할까 싶었으나, 막말로 내가 거부권을 사용하면 한 석 달 정도 뒤에 다시 복귀 명령을 내릴 것이 뻔하다. 그때는 거부도 못 해.
그러니 이 거부권은 최대한 아끼고 아끼다가 결정적일 때 사용하자. 괜히 이상한 곳에 사용해서 후회하지 말고.
‘우리 사랑스러운 막내.’
다시 가슴팍을 매만진 후, 요람에 누워있는 리온을 바라봤다.
태어날 때부터 외할아버지한테 선물을 주더니. 이제는 이 아빠한테도 선물을 주는구나. 우리 리온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황제도 겸사겸사 이 선물을 주지 않았을 테니까.
고맙다, 우리 막내. 이 아빠가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