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35)
로판 속 공무원 935화(936/945)
새로운 막내가 태어난 기념으로 큰어른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다.
“호오. 그새 새로운 아이를 낳았다라. 이제 네 자식만 열 명이겠구나.”
“열한 명입니다. 열 번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이런저런 일이 있던지라 미처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런가? 대단하군.”
다만 그 큰어른이 나이만 많은 어른이 아니라 덩치도 압도적으로 거대한 어른이라는 게 작은 특이점이었다.
“비록 인간의 수명이 장수종들과 비교하면 긴 편은 아니나, 너는 그중에서도 젊은 편으로 기억하는데. 벌써 열한 명이라니.”
감탄스럽다는 듯 중얼거리는 큰어른─ 아텔리우스의 말에 어색히 미소를 지었다.
그렇구나. 드래곤 중에서도 원로급에 속하는 아텔리우스가 보기에도 우리 가문의 번영은 놀라운 수준이구나.
“허나 그것이 인간의 특징이자 아름다움이겠지. 짧은 삶이기에 누구보다 뜨겁게 불태우고 흔적을 남기는 것. 이 얼마나 훌륭한 일이더냐.”
“실로 옳은 말씀입니다. 수명이 길든 짧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래도 아텔리우스의 감탄은 은근한 놀림이 아닌 순도 100% 감탄이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만약 황제가 저런 말을 했다면 무슨 속셈으로 내뱉은 망언인지 필사적으로 고민했을 터.
게다가 한때 삶을 포기하려고 했던 아텔리우스가 타인의 삶을 보고 평가를 내릴 만큼 여유로워졌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보다 칼.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예?”
“네 몸에는 분명 다양한 기운이 공존 중이었지. 헌데 한 기운이 과거보다 더욱 강렬해졌다.”
‘아.’
한 기운이 강렬해졌다는 말. 누가 들어도 에넨의 기운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 아텔리우스한테는 생전 시성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구나. 생전 시성과 플로렌스 탄생, 시성 기념 예배, 경건공과 상황비를 위한 기도, 에넨 면담 등. 어마어마한 대형 사건을 연이어 겪다 보니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최근에 시성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에넨과 더 가까운 존재가 되어서, 아무래도 품속에 있던 기운이 강해진 듯합니다.”
“시성? 그게 살아서 받을 수도 있는 거였나?”
잠시 고개를 기울인 아텔리우스였지만 이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텔리우스는 여명 교단의 역사보다도 오래된 존재다. 그런 존재에게 교단의 관례나 전통 같은 게 의미가 있겠나. 생전 시성을 하든 말든 그러려니 넘어갈 일이다.
“아무튼 축하한다. 여명 교단과 우호적인 관계가 되었다면 살아가기 편하겠지.”
“너무 우호적이 돼서 부담스러울 지경입니다.”
“허면 부담 하나 없이 평온을 누릴 생각이었느냐? 야생을 살아가는 곰조차 벌꿀을 먹기 위해서 벌에 쏘이는 걸 감수한다. 너 또한 이 정도는 능히 감수해야 한다.”
웃음 섞인 목소리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반박하고 싶지만 묘하게 맞는 말 같아서 반박할 수가 없다. 이게 수천 년, 혹은 그 이상을 살아온 드래곤의 지혜인가.
“참. 새로운 아이가 둘이나 태어났다고 했지. 그렇다면 그냥 보낼 수 없겠군.”
그 와중에 아텔리우스의 꼬리가 슬그머니 움직이더니, 엉덩이 쪽에 있던 비늘을 떼어내 내 앞으로 내려놓았다.
또다. 이번에도 드래곤의 비늘을 받고 말았다. 남들은 비늘의 파편만 받아도 황송해 하는, 능히 일국의 국보로 지정될만한 물건을 또 받았어.
“그, 어르신. 아직 율리아가 태어났을 때 받은 선물도 다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율리아까지 갈 것도 없다.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꼬박꼬박 비늘이나 손톱을 받고 있는지라 알리나 때 받은 선물도 창고에 보관 중이다.
내가 어떻게든 페디, 세쌍둥이, 프리드리히 때 받은 선물은 열심히 가공했는데… 가공 속도보다 공급 속도가 월등히 빨라서 그만…
“가지고 있다 보면 언젠가는 쓰겠지. 네 아이들, 혹은 손주들을 위해 비축하는 것이라 생각해라.”
순간 ‘제 손주들이 태어나면 그때도 뿌릴 생각 아닙니까?’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치솟았지만 참았다.
괜히 그런 말을 했다가 별생각 없던 아텔리우스를 자극할 수도 있으니까. 손주들이 태어날 때도 비늘이나 발톱을 받으면 그것만으로도 작은 드래곤 조각상을 만들 수 있을 거다.
“헌데 대제의 후예는 어떻더냐? 황녀가 태어났다는 소식까지는 들었다만.”
“최근에 황후 폐하께서 넷째를 임신하셨다고 합니다.”
“그거 참 기쁜 소식이로군.”
그래, 정말 기쁜 소식이기는 하다. 아마 하늘에 있는 상황비도 활짝 웃으며 기뻐할 거다.
정황상 상황비를 위한 기도를 올린 날. 대충 그때 즈음에 거사가 일어난 것 같더라고.
그러니 상황비도 분명 좋아할 거야. 손주가 한 명 더 늘어나면 할머니로서 얼마나 좋겠어.
“다음에는 혼자 오지 말고 네 아이들과 대제의 후예들도 함께 오거라. 못 본 지 제법 된 것 같구나.”
“아, 예. 아이들도 어르신을 뵙고 싶어 하니, 꼭 데려오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됐다.”
흡족한 대답이었는지 아텔리우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어서 비늘이나 주워라. 은근슬쩍 두고 갈 생각은 하지 말고.”
“…예.”
그 말에 묵묵히 비늘을 품에 안았다.
자연스레 넘어갈 줄 알았는데 이걸 들키네. 드래곤을 속이는 건 인간 따위가 달성할 수 없는 업적인 건가.
이런 드래곤들과 대타협을 하고, 전대 로드와 연을 맺은 에이만카 대제가 경이롭게 느껴진다.
저택으로 복귀하자 리온을 안고 있던 린과 마주쳤다. 마침 정원으로 나가려던 찰나에 내가 돌아온 모양이다.
“산책하려고?”
“네. 리온이 혼자 가만히 있으면 심심한지, 애들이 사라지면 울더라고요.”
살며시 미소를 지은 린은 리온의 볼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하긴. 가끔 막 태어난 시점부터 어마어마한 활동력을 보여주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는 타일글레헨에 있는 테레사나 내 조카 에두아르트 같은 경우가 있지.
그 둘은 자기 혼자 몸을 움직이지 못할 만큼 어렸을 때에도 상당한 활동력과 호기심을 품고 있던 탓에, 마치 영웅호걸과 같은 울음소리로 자신의 원통함을 알렸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할 정도야.
“아- 우-”
“응?”
부디 리온은 영웅호걸 반열에 오르지 않고 평범하게 자라기를 빌며 손을 뻗자, 린의 품에 있던 리온이 옹알이를 냈다.
세상에. 우리 리온, 벌써 옹알이를 한다고? 넌 대체 얼마나 천재인 거냐.
“우- 우-”
“…갑자기 왜 이러지?”
“그, 글쎄요?”
허나 옹알이의 빈도나 높이가 상당히 심상치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꽂힌 것처럼 격렬한 반응이야.
뭐지. 설마 기도가 실패한 건가? 그 반작용으로 리온의 활동성이 급격히 상승한 거고? 그런 거라면 좀 서글픈데.
“아, 오빠. 잠시만요.”
그래도 멍하니 리온을 바라보던 나와 달리, 린은 무언가 짚이는 게 있는 듯 나를 향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정확히는 조심스레 손을 뻗으며 내 품에 있던 아텔리우스의 비늘을 수거했다.
“아-! 우-!”
“이거 때문이었네요.”
“엄청나네…”
비늘이 자신에게 가까워지자 리온의 옹알이가 더욱 거세졌다.
그렇구나. 우리 리온, 귀한 물건을 용케 알아보고 반응한 거였구나.
‘요룬의 피가 얼마나 짙은 거야.’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드래곤에 대한 지식, 비늘에 대한 지식이 없는 리온이 보자마자 반응했다. 이는 후천적인 지식이 아닌 선천적인 직감으로 귀한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한다는 뜻.
경이롭고도 놀라운 재능이다. 리온은 넷째 장인어른처럼 상인의 길을 나아갈 운명인 건가?
‘그 길을 원하면 그쪽으로 가게 해야지.’
다행히 이 세계는 상업을 천시하는 세상이 아니다. 당장 황금공부터가 장사의 왕인데 누가 감히 상업을 천하다고 할까.
만일 천하다고 하는 놈이 있다면 그놈의 가문을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가면 된다. 어디 그러고도 상업을 천시할 수 있나 구경이나 해보자.
‘벌써부터 진로를 보여주는 아이라.’
그건 그렇고 우리 리온이 대견하기 짝이 없다.
진통 2시간 만에 건강히 태어나 엄마를 행복하게 했고, 외할아버지에게 거대한 이권을 주었으며, 이 아빠에게도 거부권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비록 거부권을 준 건 황제지만 리온의 탄생을 명분으로 준 것이기에 아무튼 리온 덕이다.
YW9peUx5cktZYXhyU2hzY1VsMkQ0VXVlS3k5cFVPeSt1U2JPVHgrem9TWG10YUt2OEhwVlh5WXAvZU8wQ2M4TA
그런 리온이 타고난 재능까지 보여준다? 기특하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어.
‘미리 상단이라도 몇 개 만들어야 하나.’
아니면 제도 거리에 상점이라도 세우거나.
아니지. 이왕 세우는 거면 백화점처럼 으리으리한 종합쇼핑센터를 세워볼까? 시간은 제법 걸리겠다만, 리온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충분히 만들 것 같은데.
당장 떠오르는 유통망도 다양하다. 우선 북방 파벌을 동원하여 북방의 물건을 끌어올 수 있고, 장인어른의 도움을 받으면 제국 동부와 레온의 물건도 가져올 수 있지. 세르베트 공작령과 체네스 공작령에도 협조를 요청하면─
“오빠?”
린의 목소리에 저 멀리 사라지던 정신이 돌아왔다.
“괜찮으세요? 그, 오빠 눈이 조금 탁해져서…”
“괜찮아. 잠깐 다른 생각 좀 하느라.”
민망하다. 대체 얼마나 혼자만의 상상에 빠졌길래 린의 입에서 눈동자가 탁해졌다는 말까지 나올까.
‘자중하자.’
여전히 비늘에 관심을 보이던 리온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정말 리온에게 상재가 있더라도, 벌써부터 소란을 떠는 건 곤란한 일이다. 오히려 리온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일이야.
그러니 이 기쁨은 철저히 억누르자. 언젠가 리온의 입에서 ‘저도 장사하고 싶어요.’ 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그보다 오빠. 이번에도 받아오신 거예요?”
“응? 아, 응. 플로렌스 거까지 같이 받았어.”
“파편 하나만 풀려도 대륙 시장이 뒤집힐 물건인데. 이제는 선반 하나를 가득 채우게 생겼네요.”
“그러게.”
차마 부정할 수 없는 말이라 애꿎은 비늘만 매만졌다.
이 대륙에서 황궁 다음으로 많은 비늘을 보관 중인 장소는 공작성이 아니라 우리 저택일 수도 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공작가들조차 이 정도로 비축하지는 못했을 거야.
‘진짜 조각상이나 한번 만들어볼까.’
아낌없이 주는 드래곤. 자비로운 아텔리우스를 기념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