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38)
로판 속 공무원 938화(939/945)
다행히 세 번째 부지에는 유적은커녕 유물 한 점 나오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전혀 다행이 아니다. 이미 부지 두 개가 날아간 순간부터 다행이라는 말로 위안을 가질 수 없다.
‘이게 말이 되나.’
어이가 없어 실소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물론 유적 발견으로 인해 내가 피해를 본 것은 없다. 어차피 쓰지 않는 땅이었으며, 사관학교 건설을 위한 공사였기에 100% 황실의 재산으로 진행 중이었다. 막말로 공사가 엎어져도 나한테는 아무런 영향이 없어.
하지만 전승공이 선정한 부지 중에 둘이나 유적이 발견됐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위리디아는 세 개의 공사 현장 중에 두 개가 당첨된─ 무려 66.6%의 확률을 자랑하는 유적판이라는 거다.
게다가 이 66.6%라는 확률도 네 번째, 다섯 번째 부지 후보를 확인하지 않아서 나온 확률이잖아. 어쩌면 75%, 80%까지 당첨 확률이 치솟았을 수도 있다.
‘그럼 곤란한데.’
상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지금이야 남는 땅이 많으니 ‘다른 땅 쓰지 뭐.’ 라고 넘어갈 수 있으나, 미래에는 그런 여유가 불가능하니까.
더 이상 여유분의 땅이 없을 때, 혹은 마음 놓고 부지를 선정할 수 없을 때 유적이 반겨주면 그대로 혀를 깨물고 싶지 않겠나. 이건 위리디아의 미래와 내 후손들의 멘탈이 걸린 일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런데 미래가 걸린 일이면 뭐 어쩔 거야. 수백, 수천 년 전부터 땅속에 숨어있던 것들인데 무슨 방법이 있겠어. 명확한 해결 방안이 있었다면 공작이 피눈물을 흘리며 공사 현장을 지켜봐야 했을까? 없으니까 눈 뜨고 코 베인 거겠지.
‘환장하겠네.’
애꿎은 통신구를 매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관학교를 지을 만큼 거대한 부지. 그 거대한 부지를 뒤엎고도 남을 더더욱 거대한 유적. 그런 유적이 연이어 한 영지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제국 전역으로 퍼졌다.
근래 제국은 황제의 말처럼 유적 품귀 현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거대 유적은커녕 작고 소소한 유적도 보기 힘든 상황에서 두 개나 발견되었으니, 귀족들이 얼마나 놀랐겠나. 덕분에 나와 연이 있는 귀족들은 안부 연락을 하기 바빴다.
그리고 전승공은 자신이 이상한 곳을 골라 미안하다고 농담 섞인 사과까지 했다. 사실 전승공이 조기에 발견해 줘서 그나마 충격이 덜한 거지만.
– 문화성의 발굴부장과 복원부장이 방문했습니다. 며칠 뒤면 문화성 장관께서도 직접 오신다고 하는데, 송구하오나 제가 의전을 맡기에는 너무나 과분합니다…!
뒤이어 집사장의 처절했던 보고가 떠올라 이마를 짚었다.
졸지에 위리디아가 제국 사교계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문화성 악마들의 탐욕스러운 눈길을 받게 되면서 집사장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 사실상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집사장이라고 보는 게 옳다.
‘최대가 아니라 유일한 피해자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최대보다는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맞는 것 같다.
만약 사관학교 건설이 무기한 연기됐다면 꿈이 좌절된 전승공도 피해자겠지만, 사관학교 건설은 세 번째 부지에서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위리디아의 주인인 나한테도 미래에 대한 걱정을 제외하면 아무런 피해가 없다.
반면 집사장은 나를 대신하여 위리디아를 관리하는 입장. 문화성의 괴물들이 위리디아를 누비고 다니면 그에 대한 여파를 감당해야 하고, 문화성 고위직이 방문하면 달려나가 접대해야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당분간 위리디아에 있어야겠다.’
그렇기에 심도 있는 고민을 거쳐 위리디아행을 결정했다.
이번에는 잠깐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 길게 체류해야 한다. 일회성 방문은 오히려 집사장의 업무만 늘리는 꼴이잖아. 적어도 문화성의 활동이나 고위직 접대는 내가 담당해야 집사장의 돌연사를 막을 수 있을 터.
‘망할.’
이윽고 짙고도 깊은 억울함이 몰려왔다. 지금의 나에게는 황제조차 업무를 강요할 수 없거늘. 설마 문화성 때문에 출장을 가게 될 줄이야.
물론 위리디아는 내 영지기에 출장이라고 하기 애매하나, 내 주요 거주지와 활동 범위는 제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철저히 행동반경만 보면 위리디아 방문은 출장이 맞아.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억울함을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
가족들에게는 잠시 출장을 다녀온다는 말과 함께 위리디아로 향했다.
출장이라는 말에 불안해하던 부인들도 목적지가 위리디아라는 걸 알자마자 오묘한 표정을 짓더라. 마치 자기 영지를 방문하는 게 어딜 봐서 출장이냐는 것처럼.
조금 가슴 아픈 표정이었지만 괜찮다. 부인들을 걱정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나 하나 아프고 끝나는 게 공리적, 대의적으로 옳으니까.
“각하를 뵙습니다!”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이거 집사장을 귀찮게 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
“아닙니다, 각하! 각하의 존재는 저희에게 태산과도 같은데, 어찌 그런 생각을 품겠습니까!”
“그런가.”
실제로 부인들뿐만 아니라 집사장도 나를 열렬히 반겨주었으니, 내 발걸음은 공리적 측면과 대의적 측면에서 합당한 행동이었다.
‘그새 늙은 것 같은데.’
그보다 기분 탓인가. 집사장의 얼굴에서 저번에 봤을 때보다 더욱 짙은 세월이 느껴졌다.
남들은 하루를 24시간으로 보내는 와중에 홀로 2400시간처럼 보낸 것 같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
“앞으로 발굴단과 접촉할 일이 생기면 본작이 직접 나서도록 하지. 그러니 집사장은 발굴단의 활동에 적극 협조하되, 복잡한 일이 생기면 본작에게 보내도록.”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집사장과 대화를 해봤자 최종적으로는 본작의 결재가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본작이 처리하는 게 편하다. 위리디아의 업무가 발굴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말에 집사장이 급속도로 회춘했다.
실로 흐뭇한 광경이다. 고작 일 하나 가져오는 대가로 유능한 인재가 젊어진다라. 이렇게 가성비가 좋은 업무가 어디 있을까.
“말이 나온 김에 발굴단과 인사라도 할 생각인데, 어디 있지?”
“발굴부장은 첫 번째 부지, 복원부장은 두 번째 부지에 있습니다.”
“둘 다 방문해야겠군.”
부지가 두 개라 부장도 두 명. 어떻게 보면 과잉 전력이라고 할 수 있으나, 오랜만에 나타난 대규모 유적이라는 걸 감안하면 적절한 인선 배치일지도 모르겠다.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잠깐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첫 번째 부지. 이제는 1호 발굴 현장이라 불리는 곳에서 삽을 들고 있는 발굴부장을 보기 전까지는.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인부들을 부리고, 직접 삽으로 땅까지 파는 퍼포먼스. 저건 절대 현장을 시찰하는 높으신 분이 코스프레를 하는 게 아니다. 진짜로 발굴 현장을 직접 지휘하는 거야.
그것도 서늘한 날씨임에도 반팔을 입은 채로. 흙먼지 묻은 얼굴을 과시하면서까지.
‘진짜다.’
삽질을 하는 게 진짜라는 것이 아니다. 저 발굴부장이 진짜라는 말이다.
아니, 무슨 부장이 직접 삽질을 하냐고. 중요한 일이면 부장급 간부가 현장을 지휘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으나, 현장 지휘와 삽질은 많이 다르잖아.
‘설마 복원부장도 저러고 있는 건가?’
굉장히 가능성 높은 일이다. 굳이 부장 두 명이 위리디아까지 강림하여 두 현장으로 흩어졌다면, 2호 발굴 현장에서는 복원부장이 삽질 중일 거다.
두렵다. 저 행동력과 열정이 두려워. 안 그래도 문화성은 진짜배기만 모인 광기의 소굴인데, 부장급 간부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아.’
삽질을 하던 발굴부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달려오는 발굴부장의 모습은 실로 경이로웠다. 먹이를 포착한 코뿔소가 대충 저러지 않을까 싶어.
그보다 삽은 좀 내려놓고 오면 안 될까. 수염도 하얗게 센 연장자가 삽을 들고 달려오면 좀 무서운데.
“장관 각하를 뵙습니다!”
“아, 음. 이렇게 보게 되니 반갑군.”
어느새 내 앞까지 다가온 발굴부장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인사를 올렸다.
‘크네…’
이 기세, 이 덩치, 이 나이, 이 근육.묘하게 익숙하다 싶었는데 재무성 장관이나 첫째 장인어른과 비슷한 과다.
차이가 있다면 무인의 길이 아닌 학자의 길을 걸었다는 점. 정말 어마어마한 차이점이 아닐 수 없다.
“제가 먼저 각하를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각하께서 직접 오시게 만들어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위리디아가 아닌 제도에 있었으니 어쩔 수 없지. 게다가 바쁜 사람보다는 한가한 사람이 오는 게 맞지 않겠나.”
고막에 다이렉트르 꽂히는 듯한 목소리에도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상명하복이 철저하다. 윗사람이면 조금 피곤할 수 있어도, 아랫사람이면 정중하고 깍듯하기 그지없지. 목소리가 조금 큰 정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래, 어떤가. 발굴은 잘 진행 중인가?”
“예! 지형이 평평한지라 아래에 묻힌 유적의 형태도 확실하게 파악했습니다! 단순히 위에 쌓인 흙만 거두어내면 되는 일입니다!”
그 흙을 거두어내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 아닌가 싶지만, 전문가가 그렇다고 하니 그러려니 싶었다.
“그보다 축하드립니다, 각하! 각하의 영지에 잠들어 있던 위대한 유적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레 고개를 숙이는 발굴부장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 이게 축하를 받을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문화성 입장에서는 유적의 존재가 축복처럼 느껴질 수 있어도, 나한테는 공사를 방해하는 걸림돌에,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만, 대륙 초기 인류의 정착지로 추정됩니다! 대륙의 역사 교과서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대발견입니다!”
불과한…?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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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발굴 현장도 비슷한 시기의 정착지입니다! 실로 천상의 주께서 각하께 미소 지으심이지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대륙 초기 인류의 정착지? 대륙의 역사 교과서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어?
‘그게 뭔데.’
왜 그런 거창한 게 내 영지에 있는 건데.
왜 내가 영주일 때 그런 게 발견된 건데.
“아니지. 아무래도 초기 인류는 하늘을 숭배했을 가능성이 높으니, 천상의 주보다는 저 북방의 하늘이 미소 지은 것이겠군요!”
뒤이은 말에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북방과 가까운 위리디아. 하늘을 숭배했던 초기 인류. 이 두 가지 키워드가 결합되면 딱 하나만이 떠오른다.
‘영원한 푸른 하늘.’
이거 혹시 영원한 푸른 하늘 관련 유적인가?
근래 지즈랑 노느라 잠잠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한테 깜짝 선물을 주는 건가?
‘너무 큰 선물인데.’
과하게 깜짝인 선물이라 심장이 위태로울 지경이다.
우리 사이에 이런 선물은 필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