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41)
로판 속 공무원 941화(942/945)
제국의회에서 연락이 왔다.
정확히는 의장의 직통 연락이었지만, 명의가 의회든 의장이든 무슨 의미가 있을까.
– 신혼 휴가 중에 꺼내기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자네와 호르펠트 백작 중에 한 명만 와주지 않겠나? 권한 위임장도 가지고 오면 더 좋고.
어느 쪽이든 휴가 중인 사람을 부르는 건 매한가지인데.
‘이게 형의 기분이었나.’
그리고 의장의 말을 듣자마자 형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휴가 중임에도 툭하면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형. 왜 저렇게 사나 진지하게 의문이었지만, 막상 내가 비슷한 상황에 처하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형도 좋아서 바깥을 돌아다닌 건 아니었다. 힘이 없어서 불려 다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부탁을 들은 순간부터 찝찝하잖아.’
바로 부탁을 인지한 그 시점부터 도저히 무시할 수 없기에. 도대체 무슨 일로 휴가 중인 사람을 찾는 걸까 불길해지기에 움직인 거였다.
만약 생면부지의 사람이나 데면데면한 관계인 사람이 부탁을 꺼낸다면 단호히 거절했을 거다. 애초에 그런 관계라면 먼저 부탁을 꺼낼 일부터 없겠지만, 설령 부탁을 받아도 들어줄 의리는 없다. 난 휴가 중이니까.
하지만 내가 휴가 중이라는 걸 아는 사람, 내가 얼마나 휴가를 고대했는지 아는 사람이 연락을 건다? 대체 얼마나 위급한 일이 생겨서 그러는 걸까. 게다가 그런 무례한 부탁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내가 더 잘 아는데?
‘의장이 꼬장을 부릴 사람은 아니다.’
통신구 너머로 보이는 의장의 얼굴을 빠르게 훑어봤다.
혹시 가정에 우환이 생겨서 나한테 화풀이를 하는 건가 싶었으나, 언제나처럼 덤덤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제국의회 정원이 늘어난 이후로는 급격히 밝아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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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대리지만 명예로운 제국의회의 의원으로서 기꺼이 의장 각하의 부름에 응해야지요. 헌데 무슨 일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 아, 그게 말일세…
그렇기에 직설적으로 묻자 의장은 난감하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고,
– 황제 폐하께옵서 친히 의회에 행차하시어 위리디아 백작령 내의 문화 특구 지정 법안을─
“호르펠트 백작의 위임장을 가지고 가면 되는 겁니까? 바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 무리한 부탁임에도 흔쾌히 들어줘서 고맙네. 표결이 끝나면 바로 돌아가니 좋으니, 조금만 힘내주게나.
그 말을 끝으로 통신구가 빛을 잃었다.
뒤이어 내 입꼬리도 미묘하게 올라갔다.
‘문화 특구 지정이라.’
근래 위리디아가 소란스러운 건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위리디아가 북방과 접한 변두리 영지라도, 다른 사람도 아닌 형의 영지이지 않나. 나름 동생으로서 형의 영지에는 어느 정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아니, 애초에 세상사에 관심 없는 은둔기인이 아닌 이상 위리디아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형이 아니라 남의 영지였어도 모를 수가 없어.
‘어떻게 한 영지에 유적만 여섯 개가 나오는 거지?’
아직도 믿기 힘들다. 오죽하면 온 세상이 나를 상대로 깜짝파티를 준비하는 게 아닌가 고민했을 정도였다.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고.
유적. 그것도 단순히 집 몇 채나 대장간 한두 개가 나오는 소규모 유적이 아닌─ 무려 마을 단위의 대규모 유적이다. 심지어 대륙 초기 인류의 정착지로 추정되는 대규모 유적이 여섯 개가 발견됐다. 이건 영지가 아니라 제국 전체에서 하나가 발견되었어도 교과서에 기록될 대사건.
헌데 그 정도의 대사건이 같은 장소, 같은 시기에 터지는 게 말이 되냐고. 형이 위리디아에 체류 중인 게 아니었다면 아직도 믿지 못했을 일이잖아.
‘형이 제도를 떠날 정도면 진짜지.’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미묘하기는 하다. 형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사건의 경중을 짐작할 수 있다니. 무슨 광산 속 카나리아도 아니고.
‘가족의 일이니 확실하게 챙겨야겠어.’
아무튼 의회 소환 사유가 위리디아 관련이라면 마땅히 응하는 것이 옳다. 남의 일이 아닌 형의 일에 동생이 빠진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
그리고 내가 의회에 참석해야 위리디아를 두고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 의원들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폐하께서는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형에게 빠짐없이 보고할 수 있다.
그러니 이건 내 개인적 즐거움이 아닌 크라시우스 가문의 가주를 위한 결단이다. 가주를 위해서 휴가를 잠시 포기하고 출근을 하는 거야.
“이런 동생이 어디 있냐.”
“우웅?”
내 중얼거림에 뽈뽈뽈 기어다니던 로베르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베르트. 아빠한테 오렴.”
“우아!”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슬쩍 팔을 벌리자, 로베르트도 활짝 웃으며 이 아빠에게 다가왔다.
좋은 동생인 것도 모자라 좋은 아빠인 인생. 내 인생도 제법 훌륭하다.
비아에게 위임장을 받고 제국의회로 향했다.
졸지에 타일글레헨 백작 대리 겸 호르펠트 백작 대리라는 기적의 대리인이 되었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 싶다. 전자는 언젠가 내려놓을 직함이고, 후자는 몇 시간만 사용할 직함이니.
…
‘내려놓을 직함 맞겠지?’
순간 불안해졌다. 타일글레헨 백작 대리… 이거 내려놓을 수 있는 거 맞나?
물론 페디가 장성하려면 한참 남았기에 당장 내려놓을 생각은 없다. 이제 5살인 애한테 의회에 출두하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딴 만행을 저지르는 건 나 스스로가 페디의 삼촌으로서 용납할 수 없다. 형의 하늘 베기를 몸으로 겪고 싶지도 않고.
진짜 문제는 아직 어리고 어린 페디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원 직함에 익숙해지고 있는 나 자신이다.
‘나만 익숙해진 게 아니야.’
더욱 끔찍한 것은 내 가족들도, 의원 동료들도, 주변인들도 내 의원 직함 뒤에 대리라는 단어가 붙은 걸 조금씩 잊어간다는 점이다.
이러다 영원히 의원 대리로 지내면 어쩌나 걱정이다. 페디가 타일글레헨 백작으로 등극해도 ‘삼촌이 의회 업무에 능통하니 대의를 위해서라도 의원직을 맡아주세요.’ 같은 말을 할까 두려워.
‘서민원은 내가 대리인 것도 모르는 모양이던데.’
게다가 상대적으로 신참인 서민원 의원들은 내가 형 대리가 아니라 그냥 의원인 줄 알고 있다. 정말 끔찍한 일이야.
“벌써 왔는가?”
“아, 의장 각하.”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의회 건물을 바라보던 중. 의장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무리한 부탁임에도 이리 흔쾌히 와줘서 고맙네. 폐하께서 친히 오시는데 귀족원 의원 중 공백이 있으면 민망하지 않나.”
“물론입니다. 폐하의 방패인 저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그만한 치욕이 어디 있겠습니까.”
“역시 크라시우스 가문의 충심은 감탄스러울 정도로군. 빌헬름이 자식 교육을 훌륭히 했어.”
작게 웃음을 터뜨린 의장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건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자, 어서 들어가서 좋은 자리나 차지하세. 마침 폐하의 시선에 살짝 벗어나 있고, 표결이 끝나면 바로 나갈 수 있는 명당이 하나 있지. 내가 막 의원이 된 시절부터 애용하던 자리야.”
“그런 귀한 걸 저에게 말씀해 주셔도 되는 겁니까?”
“휴가 중인 동료에게 이 정도 배려는 해야지. 이 의장을 너무 치졸한 사람으로 만들지 말게.”
그 말에 나도 웃음을 흘렸다.
빠른 입장과 빠른 퇴장이 가능하고, 존재감을 희미하게 만들 수 있는 자리. 의원으로서 최고의 자리가 아닐 수 없다.
나도 의원직을 페디에게 넘기게 되면 꼭 말해주자.
꼭.
***
일단 제국의회 의원 중 귀족원 소속 의원들과 먼저 대면했다.
문화 특화 지구로 지정할 위리디아는 제국백인 타일글레헨 백작의 영토. 그렇다면 같은 제국백인 귀족원 의원들과 1차 논의를 나눈 후,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힌 법안을 서민원과도 논의하는 게 옳다.
그럭저럭 틀은 잡혀야 130명과 논의할 여유가 생기지 않겠나. 아무런 틀도 없는 상황에서 130명이 발언권을 가진다면 그만한 재앙도 없다. 상상만 해도 정신이 아찔해.
‘왜 29명이지?’
그건 그렇고 뭔가 이상하다. 귀족원 의원 중 백작의 동생과 호르펠트 백작은 휴가 중 아니었나? 그러면 28명이어야 하는데, 왜 1명이 더 많지?
‘…아하.’
빠르게 회의실 내부를 둘러보자 구석에 앉아있던 백작의 동생, 하디네르 남작이 시야에 들어왔다.
과연. 둘 중 한 명은 참석했군. 나이나 경력으로 보면 호르펠트 백작이 와야 하지만, 가장으로서 하디네르 남작이 온 것인가.
실로 흡족스럽다. 백작의 동생 아니랄까 봐 제국 귀족으로서의 충성심,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상당해.
“위리디아 백작령에 대규모 유적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특정 귀족을 과도하게 바라보는 것은 황제의 총애를 나타내는 것. 자연스레 시선을 돌리고 입을 열었다.
“그 숫자는 무려 여섯. 하나하나가 마을, 혹은 도시 수준인 유적이 여섯 개나 발견되었으니, 이는 위리디아만의 경사가 아닌 제국과 대륙의 경사다.”
내 말에 의원들은 침묵으로 대답했다. 이 뒤에 이어질 말을 충분히 짐작하는 것처럼.
“그렇기에 짐은 여섯 유적지를 통합하여 위리디아 문화 특화 지구를 지정할 것을 건의하는 바이다. 대륙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밝혀내고 보존하기 위함이니 문화 특화 지구 내의 개발은 제한해야겠지만, 발굴 비용 및 유지 비용은 철저히 황실이 부담할 생각이다.”
“폐하의 자비가 실로 하늘처럼 드높고 바다보다 깊을 따름입니다. 타일글레헨 백작도 폐하의 위대한 결단에 충심으로 따를 것입니다.”
의장의 의례적인 대답과 그 뒤를 이은 의원들의 호응.
여기까지는 딱 기본적인 대화다. 위리디아에 문화 특화 지구를 설정하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니까. 중요한 것은 이 뒤에 이어질 말이다.
“허나 아무리 대의를 위함이라도 적지 않은 토지가 문화 특화 지구로 묶이는 건 치명적인 일이다. 심지어 위리디아는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기 아니던가.”
“폐하. 하오면 발굴과 보존 비용 외에도 백작에게 적절한 보상금을 하사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혹은 관광 수익의 분배 비율을 자비롭게 조절하시는 것도 백작의 서운함을 달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의장의 말이 옳다. 다만 짐은 의장의 의견에 하나를 더 추가할 생각이다.”
“추가라… 하옵시면?”
땅으로 생긴 문제는 땅으로 해결하는 것이 옳다.
“마침 위리디아 백작령은 갈란 왕령과 인접해있다. 이에 짐은 갈란 왕령 내 영지 일부를 백작에게 하사할 생각이다.”
난데없이영지의상당수가개발금지구역으로묶였다면개발이원활한땅을주는것이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