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42)
로판 속 공무원 942화(943/945)
자동 사냥은 장단점이 명확한 양날의 검이다.
우선 장점은 말 그대로 자동이라는 점이다. 굳이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내가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알아서 업무가 진행된다. 귀찮은 일은 알아서 돌아가게 두고 나는 자유 시간을 누리는 것.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이 갈망하는 염원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다만 어떠한 일이든 장점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자동 사냥에는 압도적 편의성 외에도 결코 피할 수 없는 강력한 단점이 존재한다.
‘남한테 맡기는 거라 100% 대처할 수가 없다.’
바로 나를 대신하여 움직이는 사람이 내 바람대로 움직일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사람마다 능력과 성향은 다르다. 같은 사건을 마주하더라도 그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떻게 대처하는지 다를 수밖에 없지. 이는 피를 나눈 형제라도 어쩔 수 없는 잔혹한 숙명이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우리 크라시우스 형제 또한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 폐하께서 갈란 왕령에 속한 영지 일부를 형한테 하사하신다고 하더라.
“뭐?”
– 관리하기 편하도록 위리디아랑 붙어있는 영지로 고르실 예정이래.
“뭐?”
에리히의 말에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황제가 제국의회에 행차한 거?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영지 하나에 대규모 유적 여섯이 발견되었으니 문화 특구 지정을 위해서라도 의원들과 의논할 수밖에 없잖아. 오히려 황제가 의회에 행차하지 않았다면 ‘저 새끼 무슨 짓을 하려고 조용한 거지?’ 라며 불안해했을 거다.
문화 특구 지정으로 인한 보상을 주는 거? 이 또한 납득할 수 있는 범위다. 문화 특구가 지정되면 관광객들이나 학자 입장에서야 좋지, 땅 주인 입장에서는 멀쩡한 땅을 국가에 반쯤 빼앗기는 수준이니까. 피해와 비례하는 보상을 주는 것은 제국의 신념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보상이 땅일 줄은 몰랐다. 보상금을 일시금으로 지갑에 꽂아주거나, 관광 수익 분배 비율을 넉넉하게 떼어줄 줄 알았어.
“아니, 그걸 왜 보고만 있었어!”
이윽고 굳었던 머리가 맹렬히 가속하며 에리히를 향해 울부짖었다.
타일글레헨 백작 대리로서 제국의회에 있는 놈이 형의 고통을 방관해? 이 형이 남작에 불과한 놈에게 의원 대리라는 자리를 줬으면,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최선을 다해야지. 이 형한테 불리한 안건은 이 악물고 막았어야지.
내가 의회에 있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막았을 거다. 적어도 당일에 틀이 잡히는 건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황제의 집무실에 찾아가 타협을 보고자 했을 거다.
하지만 저놈이 망쳤다. 짝퉁 모바일 게임 AI 보다도 못한 저놈 때문에 망했어. 자동 사냥의 폐해가 이렇게 치명적으로 다가올 줄 누가 알았을까.
– 당연히 보고만 있어야지. 내가 나서지 않아도 잘 돌아가던데?
“그게 뭔 개소─”
– 내가 형 덕분에 레온 왕국에서는 후작으로 지내잖아. 형한테 받은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걱정이었는데, 폐하께서 형한테 영지를 하사하신다는 걸 왜 막아?
그 말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 새끼. 설마 그때의 일을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건가? 형으로서 남작인 동생의 기를 살려주고, 조카들에게 고위 귀족 작위를 물려주고 싶은 삼촌의 배려에 앙심을 품었어?
– 그리고 이거는 나만 알고 있는 내용인데.
빠르게 좌우를 훑어본 에리히는 통신구 쪽으로 얼굴을 기울였다.
– 공식적으로는 형한테 하사 될 영지는 남작령급 영지거든?
“그렇겠지. 백작령 일부가 피해를 봤는데 백작령 전체를 줄 수는 없잖아.”
– 주려고 하셨어.
“…뭐?”
– 원래 폐하께서 하사할 영지는 백작령급 영지였다고. 그것도 세 개.
이번에는 머리가 아니라 눈앞이 새하얘졌다.
그건 무슨 개소리야. 피해를 본 건 백작령 일부인데, 어떻게 보상이 백작령 세 개일 수가 있어. 부동산으로 2배 이벤트라도 하냐?
‘2배도 아닌데…?’
혼란스럽다. 이건 대체 몇 배 이벤트일까. 최소 10배라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
– 그래도 다른 의원들 앞에서 말씀하신 건 아니야. 귀족원 의원들끼리 1차 표결을 끝내고 돌아가려는데, 폐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신 거라서 나밖에 몰라.
“너한테 직접?”
– 어. 귓속말로 아주 친절히 말씀해 주시더라.
표결이 끝나고 빠르게 탈주하려던 에리히. 그런 에리히에게 직접 다가와 귓속말로 ‘네 형 영지 백작령 3개일 예정이었음.’ 이라고 속삭이는 황제.
상상만 했음에도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왜 그딴 기괴한 퍼포먼스를 했는지 알 것 같으니까.
‘반항하지 말고 순순히 받으라 이거지.’
에리히는 귓속말을 해서 자신만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애초에 황제가 특정 귀족에게 귓속말을 했다는 것부터가 문제다. 귓속말 내용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문화 특구 지정에 대한 보상으로 영지를 하사하는 건 과한 보상이다. 반드시 귀족들 사이에서도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으나, 황제가 내 동생인 에리히와 귓속말을 나누는 게 보인다? 아마 황제와 타일글레헨 백작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끝났다─ 라고 생각할 터.
그러면 귀족들, 특히 같은 귀족원 의원들의 반발은 빠르게 가라앉을 거다. 같은 제국백끼리 얼굴 붉힐 일이 생기는 건 곤란한 일이니.
‘망할.’
나도 모르게 이마를 짚고 말았다.
이 보상이 단순히 엿을 먹이기 위한 조롱일까, 아니면 상황비를 위해 기도를 드린 것에 대한 보답일까.
전자면 빡치는 일이고 후자면 곤란한 일이다. 보답을 거부하는 것도 일종의 무례나 마찬가지기에.
“본 표결은 언제야?”
– 나흘 후. 그때는 나 없어도 된대.
‘나흘이라.’
넉넉하지는 않지만 촉박한 시간도 아니다. 그 정도면 황제의 의중을 파악하고 타협을 보기에 충분하다.
‘잠깐 다녀와야겠어.’
결국 참았던 한숨이 튀어나왔다.
유적 때문에 위리디아 체류를 하는 것도 서럽거늘. 이제는 황제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제도로 복귀해야 한다. 일이 끝나서 저택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업무를 위해 황제의 집무실로.
실로 통탄스러운 일이다. 이래서 머리 누런 놈하고는 상종하는 게 아니야.
집무실에 발을 들이니 황제가 웃는 얼굴로 반겨줬다.
망할 놈. 내가 여기까지 오도록 만든 주제에 웃음이 나오냐. 영지를 보상으로 걸면 올 수밖에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어서 오게, 백작. 이리 온 것을 보니 의회에서 있던 일을 들은 모양이군.”
“소신의 동생이 명예로운 의회의 의원이지 않습니까. 제국백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건 송구스러우나, 언제나 눈과 귀는 의회를 향해있습니다.”
“그런가? 역시 백작은 충신이야.”
그렇게 말한 황제는 책상 앞에서 상석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나에게 어서 앉으라는 듯 손짓을 했다.
“그래서 애석할 따름일세. 충신의 영지에서 인류의 보물이 나타났거늘, 합당한 보상을 내리지 못하니까 말이야.”
이윽고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먼저 본론을 꺼냈다.
말 잘 했다 이 새끼야. 합당한 보상을 운운할 거면 영지가 아니라 돈으로 퉁쳐야지. 어떤 정신 나간 황제가 유적 발굴에 대한 보상을 영지로 대체하냐고.
“폐하. 문화 특구 지정에 대한 보상으로 남작령을 하사하실 생각이시라 들었습니다. 이미 그조차 과분할진대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과분하다니. 이번에 발견된 유적들은 인류의 역사를 다시 쓸 정도로 훌륭한 유산이네. 그러한 유산을 여섯이나 찾았다면 남작령 하나가 아니라 백작령 셋은 줘도 부족함이 없어.”
“그저 땅에 묻힌 것을 우연히 찾았을 뿐입니다.”
“황실은 그 우연히를 이루지 못하였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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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한 목소리에 슬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짧은 문답이었지만 확실하다. 이 단호하고도 진지한 태도. 아무리 봐도 남작령 하사는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다.
‘돌겠네.’
곤란하다. 황제의 성격과 전적을 고려하면 조롱이나 장난의 의미가 섞이기는 했겠지만, 그 기반은 확실히 보상이자 보답이 맞다.
황제가 친히 건네는 보상, 황실의 은인에게 주는 보답을 거부한다? 이는 황제의 권위와 직결된 참사다. 황제, 황실을 영원히 채무자로 만드는 꼴이야.
‘받을 수밖에 없나.’
위리디아에서는 타협이니 의중 파악이니 요란하게 다짐을 하며 제도로 왔으나, 정작 제도에 오자마자 뜻을 꺾고 말았다.
세상에는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것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애석하게도 이번 일이 그 ‘안 되는 것’에 속하는 일이다.
“그보다 백작. 온 김에 이것 좀 보고 가게.”
내 침통한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황제는 책상 위에 돌돌 말려있던 무언가를 펼쳤다.
지도였다. 형태를 보니 갈란 왕령을 확대한 지도.
“이 중에서 백작에게 어떤 영지를 하사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네. 우선 위리디아와 인접한 영지여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이왕이면 부유한 영지여야 백작도 기쁘겠지.”
“소신은 폐하의 은혜가 깃들어있다면 변방의 시궁창이어도 만족─”
“그래서 적절한 후보를 선정하였으니, 백작은 이 중에서 고르기만 하면 된다네.”
내 말을 무시한 황제는 지도를 뒤집어 뒷면을 보여줬다.
‘뭐야 이거.’
그러자 뒷면은 공백 대신 거대한 원이 그려져 있었다.
정확히는 하나의 원 안에 여러 선과 이름이 적혀있는, 마치 룰렛을 보는 것 같은 원이.
“저, 폐하. 이거 설마.”
“이번 유적 발굴은 백작의 공로지. 허나 하늘의 가호가 아예 없었다고 하기에는 실로 공교로운 일이었어.”
미소를 지은 황제는 내 어깨를 토닥이더니, 어째서인지 주머니에서 다트 핀을 꺼냈다.
“그러니 이번에도 하늘에 맡겨 보도록 하지. 과연 하늘은 백작에게 어떤 영지를 하사할까.”
멍하니 황제와 다트 핀을 번갈아봤다.
그렇구나. 이 새끼는 나한테 ‘다트로 영지를 얻은 귀족’이라는 타이틀을 주려고 하는 거구나.
‘망할 새끼.’
단호하고 진지하기는 개뿔. 잘나가다가 왜 이딴 방향으로 향하는 건데.
‘실수한 척 이 새끼한테 던질까?’
순간 그런 욕망이 치솟았다. 이 룰렛에 던지는 척, 손이 미끄러진 척 황제한테 던져버릴까?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다. 검이나 창도 아닌 다트 핀이니 맞아봤자 살짝 따가운 정도로 끝낼 수 있겠지. 설마 다트 핀 좀 맞았다고 나를 역적으로 몰아가겠나.
“참, 백작.”
그런 생각을 하며 다트 핀을 잡자 황제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핀으로 맞춘 것을 줄 예정이니, 만약 짐을 맞춘다면 제위와 제국을 줄 수밖에 없네.”
그 말에 조용히 룰렛으로 핀을 던졌다.
그렇게 난 다트로 영지를 얻은 유일무이한 귀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