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43)
로판 속 공무원 943화(944/945)
적당히 다트 핀을 던져서 적당히 남작령 하나를 손에 넣었다.
참담한 심정이다. 귀족이 영지를 손에 넣는 건 가문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경사인데, 나는 그 경사를 다트로 해결했다. 이건 역사에 기록하기도 민망한 일이잖아.
역사를 숨기는 건 끔찍한 만행이지만 내 자식, 손주, 증손주를 거치며 대대손손 이어질 영지에 다트 남작령이라는 불명예가 생기는 건 더욱 끔찍한 일이다. 내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그것만큼은 피해야 돼. 선조로서 후대에게 치욕을 안길 수는 없으니.
“후보를 선정한 건 짐이었으나 최종적으로 고른 것은 하늘의 뜻이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 영지에 유적의 이름을 붙이고자 하는데, 백작의 생각은 어떠한가?”
“폐하의 뜻대로 하소서.”
“좋다. 그렇다면 첫 번째로 발견한 유적이자 모든 유적의 어버이나 다름없는 레필도리아 푈렌의 이름을 따, 레필도리아 남작령이라 개칭하겠다. 비록 유적은 위리디아에 있으나 유적 덕분에 얻은 영지니 부족함 없는 이름일 터.”
그리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황제가 친히 영지의 이름까지 바꿔가며 ‘이 영지는 문화 특구 지정에 대한 보상이다.’ 라는 인식을 드높였다.
이러면 레필도리아 남작령은 유적 남작령이라고 불릴지언정 다트 남작령이라 불릴 일은 없다. 훗날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한 번 박힌 인식이 변하지는 않을 거다.
그래, 다트 남작령보다는 유적 남작령(유적 없음)이 훨씬 낫지. 뭔가 영주가 인텔리하고 정중한 신사일 것 같잖아.
‘최악은 피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원치 않던 부동산을 받은 건 씁쓸한 일이나, 그래도 대륙 역사계와 고고학계를 뒤흔든 결과치고는 그럭저럭 납득할 수 있는 범위다.
백작령도 아니고, 남작령 여러 개도 아니다. 남작령 하나 정도면 지나가다가 나뭇가지에 긁혔다고 치자.
“참.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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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폐하. 말씀하시지요.”
“유적 발굴이 끝나면 황태녀한테 구경이라도 시켜주게. 대부가 저택에 없으니 황태녀도 의아해하더군.”
그 말에 조금 감동하고 말았다. 우리 대녀가 이 대부를 찾고 있었구나.
애석하게도 나는 문화성 수뇌부 접대 문제로 위리디아에 체류 중인지라, 황태녀가 저택에 놀러 와도 나를 볼 수는 없다.물론 저택에는 나 외에도 부인들, 아이들, 여러 애완동물들이 있으니 큰 지장은 없지. 솔직히 나하고 노는 시간보다는 아이들, 애완동물들하고 노는 시간이 더 많기도 하고.
그럼에도 황태녀는 대부를 찾았다. 대부의 부재를 눈치채고, 대부가 어디 있느냐며 황제에게 물은 것이다.
‘역시 엄마를 닮았어.’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하게 된다. 황태녀는 인간 언저리인 황제와 달리 자비롭고 온화한 황후의 성품을 닮은 게 틀림없다.
황제를 닮았다면 절대 저런 순박함과 순수함, 다정함을 가질 수 없다. 전승공과 황후의 핏줄이 이어진 게 분명하지, 아무렴.
“물론입니다, 폐하. 이 땅의 모든 것은 고귀한 리브노만의 것일지니. 위리디아에 나타난 유적들 또한 리브노만의 것입니다. 허면 마땅히 황태녀 전하께 새로운 역사를 보여드리는 것이 옳겠지요.”
“백작이 황태녀를 아끼는 마음이 대녀가 아닌 친딸을 대함과 같아 흡족할 따름일세. 다만 황태녀에게 유적이나 유물은 낯설기 그지없는 것. 구경 중에 투정을 부려도 이해해 줬으면 하는군.”
실로 타당한 말이라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녀가 아무리 똑똑하고 심성이 곱다고 해도 아직 6살 아이다. 6살 아이가 유적의 가치를 깨닫고 진지하게 관람한다? 그건 그거대로 이상한 일이다.
게다가 황태녀는 트리카 제국의 수도였던 크로이타 정도를 제외하면 유적의 ‘ㅇ’자도 접한 적이 없다. 그 크로이타 방문조차 유적 도시 크로이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닌, 그곳에 서식하는 베히모스와 짐승 친구들을 보기 위함이었으니 오죽할까.
‘황태녀의 관심을 끌만한 걸 만들어야 할 텐데.’
그렇기에 진지하게 고민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유적은 어른들 중에서도 역사나 고고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이 환장할 요소다. 그런 공간을 어린아이 눈에도 재미있는 공간으로 만들려면 무슨 수단을 동원해야 할까. 어떻게 치장해야 위리디아 유적 지대를 학자들의 성지를 넘어 가족 여행지로 만들 수 있을까.
…
‘아.’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
위리디아 백작령 내 문화 특화 지구 지정. 그에 대한 보상으로 백작에게 레필도리아 남작령을 하사.
이 두 안건은 별다른 이의 없이 무난하게 통과되었다. 서민원 의원들이 100명이나 있기에 조금 걱정했지만 괜한 걱정을 했던 것 같다.
‘논의가 길어지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황제와 제국백들이 친히 틀을 만들어줬는데, 그 틀에 이의를 제기할 정도로 용감한 존재는 고위 귀족 중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우려한 것도 130명이나 되는 인원이 동시에 발언하여 논의가 길어지는 것이지, 안건 자체가 좌초되는 걸 우려하지는 않았다. 이 안건은 변수에 변수가 개입된다고 해도 무너질 리 없는 안건이 아닌가.
‘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참여했어도 찬성했을 거다.’
누가 이 경이로운 사태에 반발할 수 있을까. 실로 오랜만에 발견한 유적에 관심을 기울이고, 졸지에 영지 상당 부분을 잃게 된 영주를 다독이는 법안이다. 보상이 다소 과하다는 말이 나올 수는 있어도 법안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심지어 보상을 받을 영주가 백작이지 않나. 백작의 주머니에 들어갈 보상을 줄이자고 외치는 건, 사실상 제국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외치는 꼴.
그렇기에 법안 통과 소식을 곧바로 백작에게 알렸고,
‘호오.’
기다렸다는 듯이 답장이 날아왔다.
위리디아의 영주로서 문화 특화 지구를 어떻게 관리하고, 보다 원활한 발굴과 관광 수입 향상을 위해 어떤 대책을 세우겠다─ 대충 그런 내용이 담긴 답장.
[ 과거 유적에 살았던 주민들의 삶을 체험하는 공간 마련. 당대의 주택과 도로 등을 구현한 작은 마을을 유적 근처에 만들고, 철저히 체험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 ] [ 당시 가축화가 이루어진 짐승, 혹은 가축화를 시도한 짐승들을 마을 외곽에서 사육. 보다 현실감 있는 당대 분위기를 조성. ] [ 당대 원주민을 연기하는 조력자들을 마을에 배치. 의복도 시대에 맞게 입을 것. ]허나 대충이라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내용들이었다.
단순히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체험과 놀이로도 접근한다라. 그러면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관심도 높아지겠지. 안 그래도 대륙 고고학계의 주목을 받는 지역이 더욱 높이 날아오르겠어.
‘하여간 속내가 투명해.’
게다가 백작이 이런 독특한 방식을 채택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유적 발굴이 완료되고 황태녀와 유적을 관람할 때, 유적 관람을 지겨운 경험이 아닌 즐거운 경험으로 남게 하기 위한 백작 나름의 계책일 거다.
유쾌하기 그지없다. 다트 핀을 던질 때는 세상 우울한 표정이었던 주제에 황태녀가 엮이니 이렇게 열정적으로 변하다니. 대부의 역할을 너무 성실히 수행하는 것 아닌가.
‘…음?’
그렇게 기꺼운 마음으로 통신구를 바라보던 중. 이상한 문장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 이 땅과 유적의 정당한 지배자이신 황제 폐하를 위하여 상징적인 조형물을 세울 것. ]‘뭐지 이거.’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장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당한 지배자? 황제를 위한 상징적인 조형물?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런 단어를 쓰는 거지?
불안하다. 백작이 절대 순수한 마음으로 나를 기릴 리가 없다. 또한 이런 문장을 맨 처음이 아니라 길고 긴 답장 중간에 숨겨 뒀다? 더더욱 노리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속내가 투명하다는 말은 취소다. 감히 황제에게 의미를 알 수 없는 수작을 부리다니. 남작령 하나가 아니라 백작령을 줬어야 했나.
‘일단 말리자.’
허나 지금 중요한 건 백작을 향한 배신감 따위가 아니다. 도저히 속을 알 수 없는 백작의 만행을 만류하는 것이다.
마침 본능도 외치고 있다. 지금 말리지 않으면 평생을 후회할 거라고.
***
문화 특화 지구 지정으로 인해 위리디아 일부가 개발 제한 구역이 되었다. 이에 대한 보상은 적절한 금전으로도 충분했으나 황제는 무려 남작령으로 보답했다.
이는 통상적인 수치를 넘어선 과분한 보답. 내가 10을 받아야 했다면 20이나 30을 준 자비로운 행동.
그렇다면 나는 초과분만큼 황제에게 보답해야 한다. 올바르고 건강한 군신 관계를 위해서라면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닌, 철저한 교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가 좋겠군.”
그래서 위리디아에 도착하자마자 적절한 장소를 찾았다.
문화 특화 지구에 방문하는 관광객이나 학자들이라면 가장 먼저 발을 디딜 태초 마을을. 어느 유적지를 목적지로 삼든 바로 도착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를.
“이곳에 폐하의 동상을 세운다. 폐하의 치세 때 이런 경사가 벌어졌다는 건 폐하의 덕이 하늘에 닿았기 때문이지. 또한 유적지를 하나로 묶어 문화 특화 지구로 지정하셨으니, 마땅히 폐하께서 만드신 공간이라 할 수 있지 않나.”
“각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내 말에 집사장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역시 집사장도 내 마음을 이해할 거라 믿었다. 내 결단은 틀리지 않았어.
‘랜드마크 수준으로 세운다.’
이윽고 아직은 허허벌판인 평원을 보며 다짐했다. 이 자리에 아주 화려하고 거대한 동상을 세우자.
황제의 누런 머리는 황금으로 장식하고, 주로 입고 다니는 의복은 백금으로 칠한다. 피부는 색이 연한 상아를 사용하면 적당하겠지.
그리고 눈동자는…
‘아텔리우스의 비늘.’
비늘이 검은색인 건 상관없다. 색이야 염색으로 바꾸면 그만이니까.
높이는 내가 양보해서 수십 미터 정도로 봐주마. 마음 같아서는 100 미터를 넘기고 싶은데, 그러면 완공이 너무 늦어질 것 같아.
“저, 하온데 각하.”
“왜 그러나?”
“지금이라도 예비 통신구를 가져오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슬쩍 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황제에게 보고서를 올리자마자 우연히,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려 짓밟아버린 통신구가 보였다.
“괜찮다. 휴가 중인 사람을 찾는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만약 있다면 사특하고도 흉악한 사람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