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44)
로판 속 공무원 944화(945/945)
우연히 반으로 쪼개졌던 통신구는 정확히 3시간 후에 복구했다.
아주 가루가 되었다면 복구도 여의치 않았겠지만, 깔끔히 반으로 쪼개진 덕에 무난히 수리할 수 있었다. 굳이 트릭시한테 부탁할 것도 없이 위리디아에 있던 마법사 선에서 해결되더라.
그리고 잠시 침묵하였던 통신구를 다시 작동하자, 3시간 동안 쌓였던 문자가 봇물이 터진 것처럼 몰려왔다.
‘더 늦었으면 직접 왔겠네.’
황제의 절박함을 구현한 듯한 문자 세례에 픽 웃음을 흘렸다.
예상대로 3시간이 적당했다. 3시간보다 빠르게 복구를 했다면 황제의 열렬한 연락을 받았을 것이고, 3시간보다 늦었다면 참다못한 황제가 멱살을 잡으러 왔을 터.
역시 부족하거나 과한 것보다는 중용의 미덕이 최고야. 중용이야말로 인간의 미덕이지. 아무렴.
[ 문화 특화 지구에 관한 일로 바쁜 모양이군. 제국의 기둥이 제국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으니, 짐은 실로 기쁠 따름이다. 이는 리브노만의 큰어른이신 로드께서도 기특해하며 고개를 끄덕이실 일이다. ]그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문자를 하나하나 확인한 후, 황제의 마지막 문자를 확인했다.
‘흐으.’
실로 가소로운 내용이라 절로 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길래 황제의 연락도 무시하느냐는 질책. 동시에 자신에게는 현 드래곤 로드라는 강력한 뒷배가 있으니 서로 후회할 짓은 하지 말자는 협박.
마치 내가 아텔리우스의 비늘을 동원한다면 자신은 현 드래곤 로드의 비늘을 쓰겠다는 말로 들린다. 아니, 실제로 그런 의미로 작성한 문자겠지. 그러니 이는 상호확증파괴나 마찬가지인 강력한 협박이나,
‘네가?’
유감스럽게도 협박은 현실성이 있을 때나 위협적인 법. 황제가 그런 행동을 할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현 드래곤 로드는 에이만카 대제의 자식이다. 비록 대제 이후의 황제들은 황후 소생이고, 로드는 전대 로드 소생이기에 현 황제가 로드의 후손인 건 아니나─ 로드가 까마득한 조상의 아들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리브노만 황가의 기둥이자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지.
헌데 그런 존재께서 하사하신 귀하디 귀한 보물을 나를 골리는데 사용한다? 명분을 중시하는 황제가 절대 그럴 리 없다. 설령 눈이 뒤집혀 그딴 짓을 하려고 해도 상황과 황후가 말릴 것이며, 궁내성과 재무성에서 통촉을 외칠 것이다. 그 귀한 드래곤 비늘을 그딴 곳에 사용하지 말라면서.
물론 나는 이딴 곳에 써도 괜찮다. 아텔리우스는 내가 존중해야 할 대상일지언정 상급자라고 하기는 애매하잖아. 게다가 나한테 비늘을 줄 때마다 ‘네가 쓰고 싶은 곳에 써라.’ 라고 하기도 했고.
‘드래곤 비늘로 황제의 동상을 만들면 충신이지.’
결정적으로 내 행동은 황제한테나 치명적인 반격이지, 대외적으로 보면 충신 중의 충신인 행보다.
다른 보물도 아닌 드래곤 비늘로 황제를 위한 동상을 세우다니. 이게 충신이 아니면 뭐가 충신인데. 드래곤의 척추를 가져와서 조각상을 만들어야 충신이냐?
그렇기에 이 싸움은 나의 승리로 돌아, 가… 는…?
‘잠깐.’
승리감을 만끽하다가 뒤늦게 위화감이 들었다.
‘이 새끼 어떻게 알고 있지?’
황제가 현 드래곤 로드를 들먹이는 걸 보면, 내가 아텔리우스의 비늘을 동원할 생각이라는 걸 파악했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라면 리브노만의 큰어른을 함부로 입에 담을 리 없으니.
그런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나는 황제한테 상징적인 조형물이라는 말만 전달했다. 동상을 제작할 예정이라는 말은 물론, 재료 중에 아텔리우스의 비늘이 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놈은 알고 있다. 내 원대한 계획과 충심을 눈치챘어.
‘관심법이라도 배웠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털어냈다.관심법으로 내 마음을 읽었다면 문자로 협박하는 게 아니라 드래곤 로드를 타고 위리디아로 날아왔을 테니까.
‘어디선가 샜다.’
그렇다면 가장 유력하고도 유일한 가능성은 빅-길버트 프로젝트가 누설되었을 경우다.
사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위리디아가 지금은 내 영지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는 황실 직할령이었다. 심지어 현재 위리디아를 지탱하는 다수의 공무원들이 황실 직할령 시절 지방관, 보좌관 출신이지.
이 지방관이나 보좌관 출신 인사들이 황제와 연이 있는 건 아니겠으나, 제도에 있는 공무원들과는 공적, 사적인 연이 있을 확률은 높다.
‘너무 들떴었나.’
지극히 당연한 결론에 도달하고 나니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방심했다. 내 영지, 반격할 수 없는 일방적인 공격, 일시적인 연락 차단. 일반적인 귀족이 상대라면 압승을 거두었을만한 조건이라 너무 고무됐어. 황제의 정보력과 인맥을 잠시 망각할 정도면 얼마나 흥분한 거야.
내가 제국에서 아무리 날고 기어도 황제의 권한보다는 못하거늘. 3시간이면 위리디아에 대한 정보는 전부 털고도 남지.
– 백작?
“황제 폐하 만세. 크라시우스 가문의 가주, 칼 크라시우스 오브 타일글레헨이 존귀하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다가 황제에게 먼저 연락을 걸었고,
– 허어. 드디어 여유가 생긴 건가. 짐의 연락을 받지 않아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걱정이 많았어.
“송구하옵나이다. 폐하의 위엄과 영광을 드높일 상품의 재료를 고심하느라, 미처 통신구를 챙기지 못했습니다.”
– 실로 안타까운 일이로군. 얼마나 고심했기에 3시간이나 소식이 없었던 건지. 그래, 고심한 만큼 원하는 결과는 얻었나?
“예, 폐하. 아텔리우스 어르신께서 하사하신 비늘 중 가장 거대하고 반짝이는 것들만 골랐습니다.
당당하게 면전에다 내뱉었다.
네가 뭐라고 하든 나는 아텔리우스의 비늘을 사용할 거라고. 누렁이가 짖어도 검둥이는 달린다고.
‘네가 알면 뭐 어쩔 건데.’
인정한다. 내가 황제의 영향력과 정보력을 과소평가한 건 맞다. 위리디아 내에 여전히 자리 잡은 황실의 권위를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고. 네가 내 계획을 알면 뭐가 달라지는데.
‘달라지는 건 없지.’
황제가 알아봤자 제발 그런 거 세우지 말라고 애원하는 것 말고는, 이렇게 되면 드래곤 로드의 비늘을 쓸 수밖에 없다고 협박하는 거 말고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황제도 그걸 알기에 3시간 연락 두절에도 불구하고 눈물겨운 협박만 보낸 거겠지. 아마 내 빅-길버트 계획을 알자마자 속이 타들어가지 않았을까?
– 그런, 가.
실제로 황제의 눈동자가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가 굽히지 않고 강경 선언을 한 것에 동요한 것처럼.
‘어떠냐 이 새끼야.’
평소라면 선보일 수 없는 당당함에 나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평상시에 이런 태도를 보였다면 바로 반격을 당했을 터. 황제는 드래곤 로드의 비늘을 언급할 것도 없이, 빅-길버트 동상을 받아들이고 내가 예상치 못한 죽창을 날렸을 거다.
허나 지금의 황제는 그러지 못한다. 이 동상은 내 선빵이 아닌, 황제가 선사한 ‘과분한’ 보상에 대한 거스름돈이니까. 이번만큼은 나에게 명분이 있다.
만약 황제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이 거스름돈에 대한 반격을 날린다? 그때는 진짜로 상호확증파괴지. 동시에 거스름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나약한 쫄보라는 증거야.
– 백작의 충심과 정성이 실로 갸륵할 따름이다. 허나 드래곤의 비늘은 고작 이런 곳에 사용하기에는 귀중한 물건인 바. 그 뜻을 접는 건 어떻겠나?
“폐하. 이 대륙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의 형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재료도 가장 귀한 것을 사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고작 물질로 세워야 하는 권위라면 애초에 그 정도 수준의 권위일 뿐. 백작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니, 백작이 보다 좋은 곳에 사용했으면 한다.
“소신에게 황제 폐하의 영광을 드높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부디 말씀을 거두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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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도 그런 절망적인 미래는 피하고 싶은지, 강압적인 황명 대신에 구구절절한 설득으로 동상 건설을 취소하고자 했다.
저놈도 아는 거다. 이 상황에서 황명을 내세워봤자 자신만 바보 되는 거라는 걸. 겉으로는 충신의 헌신, 속으로는 거스름돈 정산을 꺾는 자충수라는 걸.
– …짐이 백작에게 큰 것을 주었더니, 백작도 짐에게 크나큰 충심을 보이는군.
그렇게 짧은 침묵 후. 황제는 씁쓸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동상 건설을 인정한다는 항복 선언. 누렁이가 검둥이에게 고개 숙인 최초의 패배.
‘됐다.’
역사적인 첫 승리에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미친 상사 아래에서 버티고 버티다 보니 이런 날도 다 오는구나.
망할 누렁이 새끼. 이쪽이 명분을 가지고 있으니 아무것도 아니었어.
‘한 번 이기면 두 번은 쉽지.’
두고 보자 이 새끼야. 앞으로 검둥이가 누렁이를 물어뜯는 날이 많아질 거야.
***
씁쓸히 통신구를 책상 서랍 안으로 넣었다.
‘졌다.’
변명할 여지없는 완패다. 백작에게 일방적인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대륙 역사를 다시 쓸만한 유적 여섯 개를 발견하였기에, 백작이 어머니를 위한 기도도 올렸기에 다소 과한 보상은 괜찮을 줄 알았더니.
‘그걸 유적과 엮어서 충성으로 포장할 줄이야.’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유적이 위치한 영지의 주인이 황제를 기리기 위해서 동상을 건설하고, 유적을 찾는 모든 관광객들에게 황제의 위엄을 보인다라.
아무리 생각해도 핑계다. 백작이 그런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동상을 세울 리 없다. 허나 겉으로나마 그런 명분을 챙기면 도저히 막을 수 없다.
만일 내가 막는다면 귀족들이 나서서 백작을 지지할 거다. 황제를 기리기 위한 동상을 황제가 반대한다? 누가 봐도 귀족들의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한 연기지 않나.
‘옆에 백작의 동상도 같이 지을까?’
아주 잠깐 그런 욕망이 치솟았지만 포기했다.
내가 ‘과분하게’ 남작령을 하사하며 기울었던 저울이 이제야 수평으로 맞춰졌다. 남작령 반대편에 동상을 세워서 맞춰진 수평인데, 내가 새로운 추를 얹으면 백작은 다른 추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조심해야겠어.’
그렇기에 다짐했다. 앞으로는 백작에게 명분을 주지 말자.
단순히 내가 하사하는 걸 거절할 수 없는 명분이 아니라, 반격조차 할 수 없는 명분을 줘야 이런 참사가 재발하지 않는다.
‘거참.’
이윽고 픽 웃음이 나왔다.
10년 정도 관료로 생활해서 그런가. 미숙하고 투박했던 젊은 귀족이 이제는 황제도 이기다니.
세월이라는 게 참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