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46)
로판 속 공무원 946화(947/985)
달갑지 않은 침입자에서 선물을 들고 온 손님으로 변한 사제들. 덕분에 언짢게만 보였던 사제들이 조금은 반갑게 느껴졌다.
“발크로스의 자랑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가 비록 주의 빛을 따라 나아가는 종에 불과하지만, 형제님의 작품은 늘 즐겨 보고 있습니다.”
“흐음. 그렇소? 그거 영광이오.”
그리고 반가운 손님이 듣기 좋은 말을 한다면 더더욱 마음이 풀어지는 법. 그동안 쌓였던 피로와 불쾌감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절대 한 병만 가져왔을 거라 생각한 성수를 다섯 병이나 줘서 하는 생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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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이라 다섯 병인 건가.’
내 맞은편에 앉은 사제 하나. 앉아있는 사제 뒤에 서있는 사제가 넷. 총 다섯 명의 사제를 보며 홀로 납득했다.
과연. 사제 한 명당 한 병의 성수를 가져온 것이구나. 단체 손님이라면 선물을 하나만 가져와도 이상하지 않거늘. 역시 사제들이 사람을 조금 귀찮게 할지언정 선량하고 예의 바른 자들이기는 하다.
“잠시 기다려주시오. 차라도 가져오겠소.”
“아, 괜찮습니다. 형제님께 드리기 위하여 저희가 따로 가져온 것이 있습니다.”
“으음?”
그 말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사제를 바라보자, 뒤에 서있던 사제 중 하나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건넸다.
포도주였다. 투명하면서도 은은한 백색을 자랑하는 포도주병이 튀어나왔다.
‘저런 걸 용케 품속에.’
깨지기 쉬운 병을 품속에 두고 있었다니. 성법이나 마법으로 강화를 한 건가? 그렇다면 내용물을 떠나서 병 자체로도 가치가 있는 선물이다.
“민덴 대교구에서 만든 포도주입니다. 포도부터 민덴 대교구의 사제들이 직접 재배하였으며, 대교구장께서 신도들과 함께 만드셨지요.”
“참으로 뜻깊은 선물을 준비했구려.”
“하하, 발크로스의 자랑이자 살레리아의 기둥을 뵙는 자리 아닙니까. 이럴 때가 아니면 민덴 사람인 제가 언제 형제님을 뵙겠습니까? 최대한 좋은 것으로 준비하였습니다.”
“민덴 대교구에서 왔던 거였소?”
사제의 말에 잠깐 움찔하고 말았다.
당연히 살레리아 대교구의 사제라고 생각했는데, 살레리아가 아니라 수도인 민덴 대교구에서 온 손님이었다니. 아무리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더라도 은근 거리가 있는 곳 아닌가.
이거 졸지에 멀리서 온 손님을 연속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민덴 대교구 소속이라고 말해줬으면 올 때마다 냉수라도 먹이고 보냈을 터인데.
“사실 살레리아의 동포들께서 형제님을 뵙고자 하였으나, 이 미숙한 놈이 아직 욕심을 완전히 벗어내지 못하여 고집을 부렸습니다. 형제님은 제가 뵙겠다고 추기경 예하께 간청하였지요.”
“민망할 따름이오. 그렇게까지 해서 볼 정도로 잘난 얼굴은 아닌데.”
“그럴 리가요. 형제님께서 작가가 아닌 연기의 길을 걸으셨다면 뭇 여인들을 애타게 만드셨을 겁니다.”
“허, 참.”
곤란하다. 노골적인 칭찬이었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본래 칭찬은 듣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직설적이어야 듣는 맛이 있는 법 아니겠나. 몇 번이나 곱씹어야 겨우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칭찬이 아니라 그냥 덕담이다.
“난 어떠한 간섭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소.”
그렇기에 나 또한 직설적으로 말했다.
나는 어떠한 간섭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내 마지막 작품이 될 거작에 다른 사람의 손길은 넣지 않겠다고.
무례하게 들릴 수 있을 정도의 발언이지만, 오히려 이렇게 입장부터 말하는 것이 사제들을 위한 태도다. 괜히 들어 줄 듯 말 듯 애를 태우기보다는 단호한 태도가 대화에 용이한 법이니.
“그렇습니까.”
사제도 내 마음을 이해한 것처럼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 또한 아름다운 작품을 위해서라면 작가가 온전히 사랑과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의 말씀을 담은 성서 또한 주의 계시를 들은 선지자들이 아무런 외압 없이 적었기에 탄생한 것. 만약 그 과정에 권력자의 압력이 있었더라면 오늘날 성서가 있었겠습니까?”
“아마 우리가 아는 성서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겠지.”
“예. 그렇기에 저희는 작가들을 존중합니다. 모든 문학과 예술을 이해하며, 창작의 자유를 지지합니다.”
그 말에 빤히 사제의 얼굴을 바라봤다.
교단이 성인과 관련된 일이라면 얼마나 엄격한 검열을 하는지 알고 있거늘. 어디서 그런 거짓말을.
“물론 저희가 창작을 존중하는 만큼, 창작자들도 신앙을 존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단이 지정한 성인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다면 교단의 규칙을 따라야지요.”
“그건, 그렇소.”
이어진 사제의 설명에는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존중받고 싶다면 존중해야 하는 법. 신앙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성인을 주제로 택했다면, 그 성인이 일생을 바쳐 헌신한 교단을─ 성인에게 성인이라는 명예를 안겨준 교단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법.
애초에 검열이 싫었다면 성인이 아닌 다른 주제를 택하면 그만이다. 성인의 단맛은 누리고 싶고, 교단의 쓴맛을 거절한다면 염치가 없는 짓이지.
하지만 나는 그러한 염치없는 것들과 다르다.
‘난 성인이 되기 이전부터 저술했다.’
교단의 성인 지정보다 내가 먼저 백작의 일대기를 쓰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의 명성에 포크를 얹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에게 허락을 받았다.
그렇다면 제아무리 교단이라도 감히 나에게 간섭할 수 없다. 내 아름다운 걸작과 인생을 건 대작에 개입할 수 없어.
“그런데 이게, 형제님께서 쓰고 계시는 작품은 상당히 특이한 경우이지 않습니까?”
‘오호.’
여차하면 성수도 반납할 각오를 다지던 중. 사제가 먼저 은근한 말을 꺼냈다.
“본래 성인과 관련된 작품은 창작자가 교단의 허락을 구하고, 교단의 검열에 동의함으로써 창작에 돌입합니다. 그러나 형제님은 시작부터 그 관례에서 벗어났지요.”
그것도 상당히 직설적이라 알아듣기 편한 말을.
만족스럽다. 포도주를 받자마자 입장을 표명한 건 옳은 선택이었어. 그게 아니었다면 저 사제도 빙빙 돌려서 말했을 테지.
“실로 복잡한 일입니다. 생전 시성이라는 일 자체를 처음 겪다 보니… 위쪽에서도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라고 덧붙인 사제는 상체를 내 쪽으로 기울였다.
“형제님의 시간을 잠시 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내 시간을 말이오?”
“네. 관례가 없어서 고민하는 중이니, 새로운 관례를 만들면 그만입니다. 창작 당사자인 형제님께서 억울함을 몸소 부르짖으시면 다른 형제자매님들도 차마 검열을 주장할 수 없을 테니까요.”
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사제들도 단호하게 나설 명분이 없으니, 감정에 호소하여 위기를 돌파하라는 말.
‘그거 참.’
마음에 든다. 상대의 감정에 호소하는 건 늙은이의 기본 소양이지.
게다가 신앙에 단호한 사제들에게 예외를 요청하는 것. 살면서 언제 해볼 경험이겠나. 색다른 경험은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게 하는 법이고, 넓은 시야는 저술 활동에 도움을 준다.
이 또한 내 마지막 걸작을 위한 한 걸음일지니. 그렇게 생각하니 갑작스러운 동행 요구에도 불쾌하지가 않다.
“좋소. 오랜만에 민덴에 발을 들이겠군. 내 열심히 설득하리다.”
“감사합니다. 형제님께서 힘을 보태주신다면 형제자매들의 시름도 가라앉을 겁니다.”
그러자 사제도 미소로 화답했다.
그리고 그 사제가 민덴 대교구에서 온 것이 아닌, 신성교국에서 온 신앙교리성 소속 사제라는 건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런 망할.’
그러고 보면 나한테 민덴 사람이라고만 했었지. 정작 민덴에서 왔다는 말은 한 마디도 안 했었다.
당했다. 기껏해야 민덴 대교구장만 설득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교황과 성장들 앞에서 울부짖게 생겼어.
***
이제 내년 신년하례식까지는 별다른 소란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어느덧 가을을 지나 겨울이 다가오는 시기고, 제국 사교계의 관심은 위리디아의 문화 특화 지구로 향했다. 고작 몇 개월 사이에 이 뜨거운 관심을 뒤엎을만한 사건이 터질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자잘한 사건은 잠당할 수 없지만 그 정도는 괜찮다. 이제 자잘한 충격 정도는 반쯤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경지에 이르렀으니까. 작은 소란 정도는 폭풍전야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어.
– 오랜만입니다, 형제님.
허나 내가 무언가를 장담하면 반드시 반대의 일이 터진다는 걸 잊고 있었다.
‘폭풍전야가 아니라 폭풍이 왔네…’
무려 타니안의 직통 연락.
친구인 에리히를 거쳐서가 아닌, 혹은 아우스엔 대교구의 사제들을 거쳐서가 아닌 나에게 직접 건 연락.
아무리 행복회로를 돌려도 평범한 일이 아니기에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나를 기다리는 중이길래 차기 성자가 연락을 건 걸까.
“예, 오랜만입니다. 형제님도 잘 지내셨습니까?”
– 하하, 저야 과분할 정도로 행복을 누리고 있지요. 형제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정황상 아들인 피에트로와 하루하루를 보내는 덕에 행복하다는 뜻일 터.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라 쓴웃음은 자연스러운 미소로 변했다.
– 그리고 이렇게 형제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기쁘기도 합니다.
물론 얼마 가지 않아 도로 쓴웃음으로 변했지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허나 조금 의외기는 하군요. 무슨 일이길래 형제님께서 친히 연락을 주신 건지.”
– 그것이 말입니다만.
내 물음에 타니안은 작게 미소를 지었고,
– 발크로스 왕국의 알렌 형제님. 기억나십니까?
예상치 못한 이름이 타니안의 입에서 나왔다.
– 며칠 전, 알렌 형제님이 신성교국에 오셨습니다. 형제님의 일대기 관련으로 긴히 논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제 일대기… 말입니까?”
혼란스럽다. 대체 내 일대기랑 교단이 무슨 연관이 있길래 알렌이 교국으로 가게 된 걸까.
아니, 그보다 알렌이 일대기를 저술 중이라는 건 어떻게 안 거지? 알렌도 최소한의 인물에게만 밝힌 채로 우직하게 저술 중이라고 했는데?
‘교단 정보력도 엄청나네.’
경이롭다. 얼마 전에는 황제 정보력에 털렸는데, 이번에는 교단 정보력에 털렸어.
– 예. 성인의 작품은 교단의 검열이 동반되어야 하는 법. 그러나 알렌 형제님은 형제님께서 시성 되기 전에 저술 활동을 시작하시지 않았습니까.
‘아.’
아무튼 타니안의 첨언에 알렌이 교국으로 간 이유는 알게 됐다.
그렇구나. 생전 시성 때문에 일이 좀 꼬인 거였어.
– 그래서 저희와 알렌 형제님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봤는데, 조만간 형제님께 사람이 갈 겁니다.
“예?”
– 아무래도 성인 당사자의 발언만큼 중요한 건 없어서 말이지요. 아마 사흘 안에는 도착하지 않을는지.
“예…?”
아니 미친놈들아.그런 거 일방적으로 통보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