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5)
일단 케이크에 맞고 쓰러진 2과장과 기껏 준비했는데 너무하다고 징징거리는 1과장을 내쫓았다. 표정은 울상이면서 목소리는 웃음기로 가득한 것이 도발에 재능이 있는 녀석이다. 제발 네 밑으로 꼭 너 같은 부하 직원 들어가면 좋겠는데.
결국 오랜만에 출근하자마자 하는 첫 업무는 바닥에 흩날린 케이크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치우고 꺼지라고 할 걸, 너무 일찍 내보내버렸다.
‘마가 끼었나.’
감찰부에는 마가 낀 것이 분명하다. 팀장들은 과장들에게 깍듯한 편이지만, 이상하게 과장이 되면 귀신 같이 부장에게 반항성이 투철해진다. 장관도 과장 시절에는 당시 부장한테 목소리 꽤 높인 걸로 기억하는데.
가끔은 긴장으로 굳어있던 과장들이 그립다. 2년 전만 해도 빠릿빠릿하고 엄격 근엄 진지하던 애들이 왜 저렇게 된 건지.
“감찰부는 하는 일도 힘드니까 우리끼리는 편하게 지내자!”
북방에서 팀장들이 서로 어색했을 때 헤카테가 했던 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헤카테, 이번만큼은 네가 틀린 것 같다. 우리끼리는 몰라도 저 새끼들은 편하게 해주면 안됐어.
-똑똑
“부장님. 차장입니다.”
“아, 들어와.”
정작 조금은 막 나가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도 깍듯하다. 이것도 균형이라면 균형이겠지.
서류를 가득 안고 들어온 차장이 쪼그려 앉은 내 모습을 보고 흠칫하더니 조용히 서류를 내려놓았다. 미안하다, 추한 꼴을 보여서.
“도와드리겠습니다.”
“부탁할게.”
케이크를 쓸데없이 큰 걸로 가져 와서 아직도 다 못 치웠다. 분명 사람이 다섯 모이면 하나 정도만 쓰레기라던데 우리는 대체 몇 명이 쓰레기인 거야.
“당직은 새로 정하겠습니다.”
“그래.”
주섬주섬 빵조각을 치우던 차장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이런 일을 저질렀으면 오늘 당직은 자기가 하고 싶다는 강한 어필이나 다름없지. 오히려 정상 퇴근 시켜주면 섭섭해할 거다.
그 어필에 꼭 보답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21살, 32살이 쪼그려 앉아 철없는 25살, 27살 어른이들의 난을 수습했다.
차장이 가져온 서류의 양은 상당했다. 서너 달을 부장 없이 지내다 보니 밀린 것들도 많았겠지. 아무리 부장 대리를 두고 갔다고 해도 부장의 최종 승인으로만 통과되는 안건도 있는 법이니까.
“북부는 여전히 난리네.”
“피해가 극심한 곳이라 아직 잡음이 많습니다.”
특히 북부 관련 결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토벌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 북부다 보니 아직까지도 그 여파가 현재진행형이다.
그나마 전쟁 자체는 가끔 역습을 당한 국경 지대를 제외하면 국경 밖 북방에서 이루어졌다. 덕분에 영토 자체가 망가진 것은 아니지만, 물자나 인력은 북부에서 징발이 많았으니 골골거릴 수밖에.
문제는 북부의 전후 복구를 지휘할 명확한 사령탑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 북부 귀족 담당 일진인 전승공은 영지가 아닌 제도에 머물고 있고, 북부에 딱 하나 있는 변경백은 유목민을 감시하느라 바빠서 정작 내부를 살필 여력이 없다.
“몇 개는 사법성으로 돌려. 자기네 일도 뺏어간다고 불만이던데.”
“알겠습니다.”
복구 자금이 몰리지만 그 자금을 감시하고 분배할 수장급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 그러면 당연히 신나는 횡령 파티가 벌어지고, 그런 파티에는 감찰부가 서프라이즈 손님으로 찾아가게 된다.
오죽하면 감찰부 신입은 북부에서 경험치를 쌓는 것이 정석 루트처럼 여겨질까. 하도 쥐어패다 보니 사법성에서 ‘우리 실적도 남겨줘’ 같은 서글픈 항의도 흘러나올 정도다.
아니, 그런데 양도 많으면서 스케일도 장난이 아니네. 다른 지역 안건 둘이나 셋을 합쳐야 북부에서 해먹은 거 하나 크기다. 징한 새끼들, 옆에서 같이 장난치던 놈이 제도로 끌려가면 움츠러들지 않나? 이상한 곳에서 뚝심 있어.
“장관 각하도 좋아하시겠군.”
고함을 내지르며 책상을 내려칠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리자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복구 자금을 편성하는 것은 재무성의 일이다. 있는 돈 없는 돈 아득바득 긁어모아서 북부로 보냈더니 거기서 횡령 파티가 터지면 제일 먼저 뒷목을 잡는 건 장관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상관없다. 예산을 짜는 건 내가 아니라 장관이니까. 장관의 고통은 나의 행복.
그렇게 하나하나 서류를 넘기다 이상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이거.’
북부에 딱 한 명인 변경백의 요청. 가볍게 대할 수 있는 요청이 아니기도 하지만, 유목민 감시에 여념이 없을 양반이 감찰부는 왜?
잠시 서류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차장에게 돌리니 차장도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차장 입장에서도 의문이거나 골치 아픈 일인 것 같은데.
“오늘 새벽에 접수된 요청입니다. 북방에 풀린 물자 파악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환장하겠네.”
하필 제일 듣고 싶지 않은 말이 나왔다.
아무리 2년 전까지 서로 명치와 고환을 후려치며 싸웠다고는 하지만, 원래 북방에는 친제국 유목민의 숫자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 친제국은 적당한 친구비를 입금하며 유지되는 관계.
그래서 공무역이든 사무역이든 밀수든 아무튼 여러 루트로 제국의 식량과 공산품이 북방에 흘러가는 법인데, 가끔 북방에 풀린 물량 일부가 파악이 되지 않고 오리무중인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그건 역사적으로 좋지 않은 일의 징조였다. 제국의 눈을 피해 물자를 꿍쳐뒀다는 것은 제국에게 들키면 곤란한 일을 꾸민다는 의미니까. 시발, 카간 죽고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이런 일이 생겨.
“특무성은?”
“이미 북방 쪽에 투입됐습니다. 묵광대도 북방에 있다가 얼마 전에 복귀했습니다.”
그래, 소르덴 변경백이 감찰부에 파견 요청을 할 정도면 이미 황제 귀에는 들어갔겠지. 카간 쇼크를 당한 황제 입장에서 북방에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는 건 눈이 뒤집힐 소식이니.
미칠 노릇이네. 안 그래도 카간 혈육을 못 죽여서 2년 동안 북방을 뒤지는 중인데. 황제의 발작 버튼이 북방과 엮일 일이 하나 더 생겨버렸다.
“해프닝이었으면 좋겠군.”
“동감입니다.”
차라리 소르덴 변경백이 물자를 헤아리다가 잘못 센 거면 좋겠다. 그러면 황제도 소르덴 변경백에게 일 똑바로 안 하냐며 쪼인트를 까면서도 은근히 안심할 테니까.
하다못해 친제국 부족 하나가 다른 친제국 부족을 두들겨 패려고 물자를 비축 중인 거라도 상관없다. 적어도 카간 같은 대형 연합체가 등장하지만 않으면 된다.
‘시발.’
1과장의 케이크를 봤을 때와는 다른 의미의 지끈거림이 몰려왔다. 하여간 유목민 새끼들은 한시라도 잠잠한 적이 없어. 카간에게 입은 피해가 심각하지만 않았어도 전부 밀어버렸을 텐데.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꾹 누르다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오늘 출근하길 잘했네. 오늘 쉬려고 했어도 이런 요청이 있었으면 잠옷 차림으로 달려와야 한다.
“파견은 2과로 보내.”
“알겠습니다.”
일단 소르덴 변경백의 요청은 받아야지. 전투보다는 물자 흐름 탐색이 중점일 테니 2과가 가는 게 맞다.
와, 그런데 2과장 이 새끼. 당직을 이렇게 피해가네.
‘대신 파견이지만.’
누가 당직을 열렬히 거부하는 2과장에게 원숭이 손이라도 선물한 것 같다. 아무튼 당직을 피하기는 했잖아.
차장이 가져온 서류를 다 처리하니 어느새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출근하자마자 가뿐히 퇴근 시간을 초과했다.
진짜 제국의회에서 공무원 노동법 같은 거 발의 안 하나. 물론 제국의회 의원들이 죄다 가주 같은 양반들인 걸 생각하면 어림도 없기는 한데.
-똑똑
막 자리에서 일어나 퇴근을 하려는 찰나에 들리는 노크 소리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망할, 이번에는 뭔데.
“부장니이이이임─”
들어오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미는 1과장. 퇴근을 방해한 사람이 1과장이라는 사실에 더 불쾌해졌다. 내 출근과 퇴근을 장식하는 게 하필 너냐.
“나 가야 돼.”
“아직 화나셨어요?”
“알면 꺼져.”
“히잉…”
히잉, 같은 소리하고 있네.
“용건 없으면 빨리 가. 나도 퇴근 좀 하자.”
“어차피 늦은 거 왜 이렇게 급하세요.”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하는 1과장의 모습에 다시 손을 올릴 뻔했다. 진정하자, 여기서 흥분해봤자 퇴근만 더 늦어진다.
“이거, 선물이에요!”
내면 속 충동과 사투를 벌이는 사이, 1과장이 등 뒤에 있던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1과장의 손에 들린 거대한 케이크 하나. 아니 이 새끼가 또.
표정이 자동으로 일그러졌는지 1과장이 황급하게 말을 이었다.
“선물! 이번에는 진짜 선물이에요!”
“아까는 가짜 선물이었냐고.”
“아.”
이번에는 진짜면 아까는 정말 고의 가득한 놀림이었다는 말이 된다. 급하게 말하다가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
어쨌든 눈을 어색하게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에 작게 한숨을 쉬고 손을 뻗자 1과장이 비어있는 손으로 자기의 입술을 가렸다. 그 본능적인 방어에 순간 당혹감이 몰려왔다.
그냥 케이크 가져가려고 한 건데. 손 좀 뻗었다고 저럴 정도로 그렇게 자주 잡아 당겼었나?
…자주 하기는 했네.
“줘. 잘 먹을게.”
“여기요.”
혹여나 내가 받는 척하면서 손을 입술로 꺾을까 봐 여전히 입술을 가리고 있는 1과장의 모습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솔직히 자업자득이기는 한데 보기는 조금 그렇다.
“고맙다.”
슬쩍 어깨를 토닥이며 감사 인사를 전하자 그제야 손을 치우고 헤헤 웃었다. 여기서 입술을 기습 공격하면 정말 우는 1과장을 볼 수 있겠지.
하지만 참았다. 장난이 아닌 순수하게 선물을 주는 애한테 그러기는 좀.
“부장님, 이제 화 풀리셨어요?”
“진작에 풀렸어.”
아까는 퇴근 방해 받아서 예민한 거였고. 아침에 있던 일로 저녁까지 화나있으면 그게 사람이냐, 분노 바이러스 보균자지.
“그러면 저 당직 취소 좀…”
“나 간다.”
“아아아앙! 부장니이임!”
뒤에서 1과장이 애타게 부르는 소리는 무시했다.
웬 선물인가 했더니 하여간 의도가 순수한 녀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