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51)
로판 속 공무원 951화(952/985)
신성교국에서 온 귀빈들과 진지한 논의를 나눈 끝에 다섯 가지 합의문을 만들었다.
첫째. 알렌이 작성하는 내 일대기는 오롯이 알렌의 자율 의지에 맡긴다. 저술 과정에 교단이 개입하지 않는다.
둘째. 일대기의 1차 판매는 교회가 맡는다. 수익 분배는 작가인 알렌과 모티브가 된 나, 판매를 맡은 교회가 합리적으로 나누어 가진다.
셋째. 한 달 후부터 사전 판매에 돌입한다. 사전 판매 수익 또한 본 판매와 마찬가지로 합리적으로 분배한다.
넷째. 본 판매와 별개로 사전에 구매한 자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실시하며, 이는 본 판매 추첨 인원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대망의 다섯째.
‘사전 판매는 철저히 경매 형식으로 진행한다.’
마지막 다섯째 항목에서 전율하고 말았다.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교단이 작정하고 돈을 추구하면 저렇게까지 하는구나─ 라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두렵다. 사전 판매까지야 급전이 필요하니 그렇다 쳐도, 설마 사전에 구매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1차 추첨을 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사전 판매 수량은 철저히 제한되어 있고, 사전 구매자들의 당첨 비율은 본 판매보다 높인 상황.
즉, 당첨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고 싶다면 본 판매가 아닌 사전 판매를 노려야 한다. 경매라는 경쟁에 끼어들어서 당당히 승리를 거머쥐어야 한다.
‘낙첨이라도 내 서명을 동본해서 보낸다고 했던가.’
추첨에서 떨어지더라도 무언가는 얻게 조치를 취하는 세밀함까지. 경이롭고도 완벽하여 실소가 절로 나왔다.
동시에 에넨에게 감사했다. 만일 에넨이 탐욕스러운 신이거나 신의 말을 조금 이상하게 전달했다면, 혹은 교단의 타락을 방치했다면 이 미친 두뇌는 보다 흉악한 방식으로 구현되었을 거다.
면벌부라거나 면벌부라거나 면벌부라거나. 상상만 해도 가슴이 옹졸해지네.
‘건전한 교단이라 다행이다.’
이건 진심이다. 권력을 쥔 교단이 타락하는 것은 잠시 다녀온 세계에서 상식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 역사가 증명한 진리기도 했고.
그 상식과 진리가 이 세상에서는 통하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태양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찬란하기 그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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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나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불구하고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교단을 향한 호감도를 소폭 상향 조정하는 사이. 식사를 거쳐 티타임까지 마친 귀빈들은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갑작스러운 손님이 너무 오래 머무르는 건 예의가 아니고, 이왕 제도까지 온 김에 아우스엔 대교구장과 만날 예정이라던가? 확실히 아우스엔 대교구장은 얼마 전까지는 신앙교리성 성장이었던 양반이다. 이 손님들 입장에서는 장기 출장을 간 동료를 보는 기분이겠지.
“저뿐만 아니라 대교구장께서도 멀리서 온 친우들을 반길 겁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군요. 그분 성격을 생각하면 바쁜데 왜 왔냐고 구박을 하실 가능성이 높아서 말이지요.”
내 덕담에 경신성사성 성장은 웃음을 흘리더니, 슬쩍 목에 멘 십자가를 매만졌다.
“그래도 성스러운 분의 가호가 함께한다면 그분도 저희를 반겨줄 거라 믿습니다.”
그 말에 어색히 미소를 지었다.
성장이 말한 가호는 저 십자가 뒷면에 새겨진 내 사인을 말하는 거니까.
솔직히 많이 불안하다. 교단의 상징에 내 사인 같은 걸 새겨도 되는 건가. 상당히 신성모독 같은데.
‘괜찮겠지.’
허나 다른 사람도 아닌 추기경이자 성장이 부탁한 일이다. 교리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그런 부탁을 할 리가 없다.
게다가 경신성사성 성장의 독단이 아니라 다른 성장들, 부성장도 사인을 받지 않았나. 혼자 기행을 저지르면 돌발 행동이나, 다 같이 하면 그게 평균이 되는 법.
뭔가 이상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냥 그렇다고 여기자.
***
하얀 사람이랑 비슷한 사람들이 나갔어요.
아쉬워요. 예전에 주인님이랑 같이 다른 곳으로 놀러 갔을 때, 그때 봤던 사람들이라 반가웠었는데. 그때 나랑 놀아줘서 좋았는데. 벌써 헤어져서 슬퍼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저 사람들도 바쁠 테니까요! 이렇게 본 걸로도 좋아요!
‘다시 볼 수 있겠죠!’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얼마 전에는 주인님이 들고 다니던 물건 덕분에 작은 사람도 봤잖아요!
작은 주인님들처럼 작고 작았던 사람. 예전에 나한테 따뜻한 기운을 줬던 하얀 사람의 아이.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작은 사람도 다시 봤었잖아요! 그러니 분명 저 사람들도 다시 보게 될 거예요!
– 끼이잉…
하지만 그게 언제일지 모르겠어요. 언젠가는 보겠지만, 그게 과연 언제일까요?그리고 나를 좋아해 주던 작은 사람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조금 슬퍼요. 나를 좋아하는 작은 사람을 다시 보지 못하다니. 나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작은 사람을 다시 태우지 못하다니. 그 작은 사람도 나를 좋아해 줬는데.
“티티?”
그렇게 하얀 사람의 아이인 작은 사람을 떠올리자, 주인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어요!
“왜 그래. 뭐 불편한 거라도 있어?”
– 끼이이잉…
주인님의 말에 꼬리를 축 늘어뜨렸어요.
작은 사람이 있는 곳은 멀어요. 주인님은 내가 제니가 있는 곳으로 가는 걸 막지 않지만, 엄청 멀리 있는 곳으로 가는 건 막을 거예요.
그러다 문득, 나를 좋아하는작은 주인님들이 나를 만나지 못하는 걸 상상해버렸어요. 작은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데 만나지 못하고 있잖아요. 그 슬픔을 작은 주인님들도 느끼면 어떻게 될까요?
안 돼요. 그건 슬퍼요. 작은 사람이 너무 불쌍해졌어요.작은 슬픔이 확 커져버렸어요!
– …멍!
“티티야?”
잠깐 고민하다가 앞으로 달려나갔어요.
다른 사람들, 작은 사람들은 언제든지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 가는 사람들이랑 주인님 물건 덕에 본 작은 사람은 쉽게 볼 수 없어요!
– 멍멍!
“으음?”
그래서 빨리 달려나가서 하얀 사람이랑 비슷한 사람들을 잡았어요!
“갑자기 무슨 일이니? 혹시 할 말이라도─”
– 멍!
주인님이랑 대화하던 사람의 옷자락을 물었어요.
나랑 같이 가요! 잠깐만 나랑 같이 가요!
***
갑작스럽게 뛰쳐나간 티티는 막 저택 대문을 빠져나가려던 교국 귀빈들을 붙잡았다.나도, 귀빈들도, 대문을 지키던 경비병들도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
이 기습적인 한방으로 분위기를 장악한 티티는 경신성사성 성장의 옷자락을 물며 잡아끌었다. 마치 자신들 따라오라는 것처럼.
‘뭐지.’
차마 티티를 말려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만약 다른 성수 녀석들이 저랬다면 에넨의 신성력에 시달리다가 미친 거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티티는 미칠 이유가 없고, 아무 이유 없이 저럴 녀석은 더더욱 아니다. 티티 나름의 사정이 있기에 저러는 것일 터.
“허허. 이 아이가 저희를 새로운 곳으로 인도할 모양이군요.”
그렇기에 티티를 말려야 할지, 아니면 은근히 도와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경신성사성 성장이 먼저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성인께서 기르시고, 차기 성자의 축복을 받았다면 실로 신수라는 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수의 인도를 받음이 마땅하지요.”
“바쁜 발걸음을 괜히 붙잡는 건 아닌가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런 말씀은 마시지요. 진정으로 급한 용무는 이미 성스러운 분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처리했습니다. 아우스엔 대교구장을 만나면 할 것도 없으니, 저희를 원하는 존재의 부름에 응하는 것이 옳습니다.”
더욱 짙은 미소를 지은 성장은 티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옷자락을 물지 않아도 순순히 따라가겠다는 것처럼.
그 마음을 티티도 느꼈는지 옷자락을 물고 있던 입을 조심스레 열었다.
– 멍!
이윽고 우렁차게 짖으며 쪼르륵 대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분위기를 보니 나도 같이 가야겠다. 티티가 손님들을 이끌고 어딘가로 가려는데, 주인인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
같이 가기를 잘 했다.
티티 덕분에 ‘작별 인사를 한 친구와 가는 방향이 같아서 나란히 걷는 어색한 상황’과 유사한 경험을 하는 사이, 시야에 들어온 목적지를 보고 절로 탄식이 나왔다.
루치아노의 저택이다. 티티의 두 번째 집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며, 티티의 가족이 생활하는 마음의 고향이다.
‘여기는 왜.’
혼란스럽다. 티티는 갑자기 귀빈들을 왜 이곳으로 안내한 걸까.
“가, 각하? 뒤에 계신 분들은 대체…”
그리고 루치아노는 무슨 죄가 있어서 교국 성장과 부성장을 맞이하게 된 걸까.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이 평일인데도 저택에 있는 걸 보면 오랜만에 휴가를 쓴 모양인데, 기가 막히게 휴가 날에 이런 일이 생기냐.
나도 나지만 루치아노의 일복도 범상치 않다. 그러니 평민 출신에서 과장까지 오르고 유력 부장 후보가 된 거겠지만.
“교국에서 오신 귀한 손님들이다.”
“예?”
“티티가 이분들을 이곳으로 안내해서 말이야. 어쩌다 보니 이렇게 오게 됐군.”
내 말에 루치아노는 멍하니 성장들과 부성장, 티티를 번갈아봤다.
“어째서…?”
그러고는 진심이 가득 담긴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게. 그건 나도 모르겠다. 티티는 왜 이곳으로 우리를 데려온 걸까.
– 멍멍!
이 극심한 혼란 속에서 티티는 총총 제니를 향해 달려갔다.
– 왈! 왈왈!
– 왈왈!
– 끼이잉?
– 낑낑!
당연하게도, 제니 곁에서 짤막한 꼬리를 고속으로 흔들고 있던 티티의 새끼들도 티티를 향해 우르르 달려갔다.
열이 넘는 미니 인절미들이 빅-인절미에게 달려간다라.절로 미소가 지어질만한 흐뭇한 광경이었다.루치아노가 세상이 무너진 표정을 짓고 있지만 않았어도 웃었을 텐데.
– 멍!
– 멍멍.
‘음?’
다만 티티의 시선은 아이들이 아니라 제니를 향하여 대화하듯이 짖기 시작했다.
– 멍멍! 멍!
뒤이어 자신의 몸에 달라붙은 아이들에게도 여러 번 짖었다.
그러자 열이 넘는 인절미들은 콩알 같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 왈!
그중 한 녀석이 툭 튀어나와 경신성사성 성장 앞으로 달려갔다.
– 왈왈!
안 그래도 빨랐던 꼬리를 더욱 거세게 흔들면서.
상당히 익숙한 광경이라 픽 웃음이 나왔다. 몇 년 전, 나를 처음 봤던 티티도 딱 저런 모습이었지.
…
‘어?’
순간 위화감이 들어 티티에게 시선을 돌렸다.
설마, 티티야. 드디어 마음을 먹은 거니?
아이들의 독립을 각오한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