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954)
로판 속 공무원 954화(955/985)
재무성 장관의 행동력은 내 생각 이상으로 재빨랐다.
그 인간 분명 재무성의 수장 아닌가. 심지어 가을을 넘어 연말을 향해 달려가는 시즌이라 이래저래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을 텐데?혹시 재무성 업무보다 미니 인절미 분양을 더 중요한 업무로 생각하는 건가?
‘중요하기는 하지.’
솔직히 정답이기는 하다. 재무성 업무는 매일, 매달, 매년 존재하지만 미니 인절미 분양은 이 시즌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티티가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식들의 독립을 결정한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몰라.
재무성 장관이 저택에 방문했던 그날 밤. 홀로 생각하는 벽을 바라보던 티티가 얼마나 큰 결심을 하고 일어섰던가. 하염없이 벽만 바라보던 티티가 나에게 다가왔을 때, 결의에 찬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을 때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기적을 두 번이나 바라는 건 양심이 없는 일이다. 그러니 미니 인절미 픽업 기간인 지금을 노려야 돼.
물론 그걸 감안해도 장관 겸 백작이라는 양반이 다짜고짜 일개 기사의 저택에 방문할 줄은 몰랐지만.
“저 왔습니다.”
“어, 왔냐?”
그렇기에 루치아노의 절망과 애통함이 가득 담긴 ‘재무성 장관 각하와 부인께서 오셨습니다.’ 라는 답장을 확인하자마자 티티와 함께 루치아노의 저택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쪼그려 앉은 채 미니 인절미들을 하나하나 만지작거리던 재무성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저건 또 뭔.’
상당히 기괴한 광경이다. 약 2M의 거구를 자랑하는 근육맨이 미니 인절미들을 고르는 광경이라.
이런 생각을 하는 건 굉장한 실례지만, 마치 개장수가 동네 누렁이들을 납치하기 직전인 상황 같다. 당장이라도 사악한 장관의 손에서 미니 인절미들을 해방해야 할 것 같아.
– 낑, 끼잉!
– 끼잉! 끼이잉!
– 왈왈!
정작 장관의 손에 잡힌 녀석도, 그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녀석들도 장관을 꺼려 하기는커녕 열정적으로 반기고 있지만 말이다.
이상하다. 동물들은 착한 사람을 본능적으로 알아본다고 하던데. 왜 이 아이들은 장관의 성품을 알아보지 못하는 걸까. 실로 애통할 따름이다.
‘티티 때문에 그런가?’
어느새 제니 옆에 착석한 티티를 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티티가 장관이 올 때마다 반겨줘서, 티티의 냄새가 장관에게 깃들어서 새끼들도 장관을 따르는 건가? 제법 그럴듯한 가설이다.
“마침 잘 왔다. 네가 보기에는 누가 좋은 것 같냐?”
“티티랑 제니 자식이니 다 좋죠. 아무나 골라도 됩니다.”
그 와중에 장관은 선택 장애라도 왔는지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나한테 그런 거 물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난 쟤네가 누구인지 구별도 못 한다고. 어제까지 1호였던 애가 오늘은 8호가 되는 것이 저 녀석들의 팔자다.
“게다가 제가 아니라 각하와 부인께서 돌볼 아이 아닙니까. 골라도 두 분이서 고르셔야죠.”
“흠. 그건 그렇지.”
내 논리적인 답변에 고개를 끄덕인 장관은 부인에게 시선을 돌렸고,
– 왕! 왕왕!
– 끼잉! 낑!
장관 앞에 모여있던 미니 인절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부인 앞으로 달려갔다.
“어머나.”
갑작스러운 노란 웨이브에 부인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다들 장관이랑 부인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누구를 데려가도 좋은 가족이 될 수 있겠─
“각하. 오셨습니까?”
“아, 경.”
다소 초췌한 루치아노의 목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미리 재무성 장관 각하께서 오신다고 전해야 했는데, 저렇게 빨리 오실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미안하군.”
“아닙, 니다. 같은 관료로서 재무성 장관 각하를 뵙게 되어 오히려 영광일 따름이지요.”
내 사과에 루치아노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안타까우면서도 미안한 대답이다. 앞으로 그 영광을 10번 정도 더 느껴야 할 테니까. 장관이 저 13마리 중에 한 마리를 가져간다고 쳐도, 무려 12마리의 새끼들이 남아있으니까.
‘미안하다.’
차마 그 잔혹한 진실을 입에 담지는 못했다. 이미 장관의 급습에 정신적 타격을 입은 루치아노지 않나. 그런 루치아노에게 확인 사살을 하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그리고 루치아노도 이 진실을 짐작하고 있을 거다. 그저 인정하기 싫어서 애써 외면하는 것일 뿐.
실로 안타깝고도 측은한 일이다.
“이 아이는 어떨까요?”
– 왕!
그나마 다행이라면 부인이 집으로 데려갈 녀석을 고른 듯하니, 이제 장관 부부도 돌아갈 거라는 점이다.
미래의 손님들은 막을 수 없지만 현재의 손님은 돌아간다. 잠깐이지만 손님 없는 청정 저택에서 편히 지낼 수 있다.이 정도면 나름 경사가 아닐까 싶다.
타니안과 장관이 각각 한 마리씩 분양받으며 12마리의 미니 인절미가 남았다.
이 중에서 타일글레헨에 계시는 부모님, 제도에 있는 에리히도 티티의 새끼를 노리고 있으니 두 마리를 빼야 한다. 그러면 남은 새끼는 10마리.
여기서 첫째 장인어른, 셋째 장인어른, 넷째 장인어른, 다섯째 장인어른에게도 보낸다고 치자. 그러면 네 마리가 추가로 빠지니 남은 건 6마리.
마지막으로 구 감찰부 출신 간부들인 장관 비서, 정보차장, 집행부장, 집행차장을 고려하면 또 네 마리가 빠진다.
‘최소치로 잡아도 2마리밖에 안 남네.’
정말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14마리 중에서 2마리만 남는 경이로운 상황. 티티의 새끼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막연하게 알았으나, 이렇게 체감하고 나니 얼떨떨한 수준이다.
심지어 이것도 최소치, 보수적으로 계산한 결과다. 이미 정령들과 요정들과 함께 살아서 애완동물이 필요하지 않은 트릭시의 외조모님, 에리히의 처가 둘, 루치아노의 지인들을 고려하면 제로를 넘어서 마이너스에 도달하고 만다.
어쩌지 이거. 설마 14마리가 적다고 느껴질 줄은 몰랐는데.
“우리 티티. 너무 잘나서 이런 문제도 생기네.”
슬쩍 티티의 머리를 쓰다듬자 엎드려 있던 티티의 꼬리가 느릿하게 흔들거렸다.
두 번째 겪는 자식의 독립이지만, 새끼를 떠나보내는 것에 익숙해지는 부모 같은 건 없다. 스스로 각오한 일이어도 가슴이 공허한 건 어쩔 수 없겠지.
‘속도는 조금 조절해야 하나?’
그 모습에 조용히 머리를 굴렸다.
지금이 미니 인절미 픽업 기간이기는 하나 너무 고속으로 분양을 진행하면 티티와 제니의 공허감이 극대화될 수도 있다. 적당히 속도는 조절하면서 분양하는 게 맞겠지?
일단 다음 주나 다다음 주 중에 부모님과 에리히에게 보내고, 그 뒤는 개월 단위로 보내자. 어차피 티티가 갑작스러운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몇 년 후에나 분양을 시작했을 테니.
“…티티야.”
– 멍?
“오랜만에 남매들이나 보러 갈까?”
내 제안에 티티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티티의 남매들. 다른 사람도 아닌 무려 상황이 기르고 있는 네 마리의 골든 리트리버들.
예전에는 황태녀가 그 녀석들과 함께 놀러 온 적이 잦았지만, 우리 저택에 온갖 짐승과 놀 거리가 늘어나면서 점점 방문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걔네 입장에서도 남의 집에 놀러 가는 것보다는 아늑한 상황의 비호 아래에서 편히 낮잠이나 자는 게 좋을 거고.
그래서 티티가 남매들과 만난 건 제법 과거의 일이 되었으나,
‘가족으로 생긴 공백은 가족으로 채워야지.’
티티의 기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라면 오랜만에 남매 상봉을 이루어야 한다.
비록 그것이 상황의 처소에 방문해야 가능한 것임에도. 상황에게 먼저 방문 요청을 해야 하는 것임에도.
‘티티를… 위해서라면…’
어느새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두렵다. 아무리 내가 황태녀의 대부라도 상황을 만나러 가는 건 무섭다. 상황이 포악하거나 지랄맞은 성품인 건 아니지만 가까이 가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잖아.
게다가 방문 사유도 ‘폐하께서 기르시는 개들 좀 보러 왔어요.’다. 이건 상황 입장에서 제국백 나부랭이가 총애 좀 받는다고 황족을 능멸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도 평범한 황족도 아닌 제국을 중흥시킨 전대 황제를.
‘혼자 가면 좆된다.’
확신할 수 있다. 나 혼자 상황을 찾아가면 입장할 때는 칼, 퇴장할 때는 ㅋㅏㄹ이 될 가능성이 상당해.
사실 상황 스스로가 황궁 구석에서 두덕리 온라인을 하고 있기에 조용한 거지, 상황이 헛기침 한 번만 하면 온 제국의 시선이 상황에게 쏠리게 되니까. 작정하고 나선다면 황제조차 황제(실권 넘침)에서 황제(실권이 있었는데 사라짐)로 전락할 정도로.
‘어쩔 수 없지.’
헥헥거리며 눈을 반짝이는 티티를 보다가 통신구를 꺼내들었다.
티티를 생각하면 상황을 만나야 하나, 혼자 방문하기에는 두렵다. 그렇다면 대상황 결전 병기를 동원하는 것이 옳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를.
상황이 유일하게 약할 수밖에 없는 존재를.
***
갑작스러운 손님의 방문에 쇠죽을 만들던 걸 멈추었다.
쇠죽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금방 타버리지만, 다행히 막 솥에 풀을 넣은 찰나다. 불도 붙이지 않았으니 잠깐 미루어두는 건 문제가 없다.
“할아부지!”
그리고 설령 불을 붙였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다시 만들 수 있는 쇠죽보다는 황태녀가 더 중요하니.
“어서 오거라. 점심은 먹고 왔느냐?”
“웅! 먹고왓써!”
내 품에 안기는 황태녀를 토닥였다.
전에 안았을 때보다 미세하게 커졌다. 역시 성장기라 그런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구나. 건강하게 자라는 것 같아 기쁠 따름이다.
“아! 때부랑 띠띠도 가치 왓서!”
“으음?”
황태녀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대부가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상황 폐하 만세! 크라시우스 가문의 가주, 칼 크라시우스 오브 타일글레헨이 존귀하신 상황 폐하를 뵙습니다!”
– 멍!
그리고 대부가 돌보던 아이가 꼬리를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L2o5S3ZhQ0ZyRElUdDcyYjh4WU5aWGtRby9OVzlrZ0tNa3JWV3pIdytyZmdBc1NOc3hpeVlYL0tmRFdnMXRqUA
저 녀석도 못 본 사이에 많이 컸다. 내 품을 떠났을 때는 한 손으로도 들 수 있을 만큼 작았거늘.
“띠띠, 가족들 보고시픈것 같아서 데려왓어!”
“그렇구나.”
황태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 아이의 남매들이 힘차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과연. 가족의 냄새를 맡았기에 부르지 않았어도 눈치챈 것인가. 역시 개의 후각은 실로 훌륭하다.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순식간에 다 같이 바닥을 구르는 다섯 마리의 성견을 보다가 다시 대부에게 시선을 돌렸다.
황태녀는 자신이 대부와 티티를 데려온 것처럼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대부가 황태녀를 데리고 왔다고 보는 것이 옳다.
헌데 그 이유를 짐작할 수가 없다. 어째서 대부가 나를 자청해서 찾아온 것일까. 그것도 티티를 대동하고.
…
‘신경 쓸 필요 없겠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생각을 접었다.
대부라면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이유가 황실과 제국에 해로운 것 또한 아닐 터.
그러니 지금은 황태녀와 놀아주는 것에 집중하자.